2024년 4월 15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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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군용기 추락, 장병 53명 전원 사망"…무리한 전두환 경호가 부른 참사

강선애 기자 작성 2023.03.10 11:40 수정 2023.03.10 11:56 조회 23,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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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9일 방송된 '수상한 비밀작전:C-123기 추락사건'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표예진, 최원영, 그룹 하이라이트 손동운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한라산에 추락한 군용기

때는 1982년 2월 5일, 제주도 한라산의 어리목 관리소. 창 밖을 바라보는 12년차 베테랑 청원 경찰 양송남 씨의 얼굴에 근심이 한가득이야. 며칠째 계속 거센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치며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았거든. 그런데 그 때, 제주도청 직원한테 전화가 왔어. 다음날 새벽에 청와대 경호팀이 한라산을 등반할 거니 양씨한테 안내를 하래. 앙씨는 한라산 지리에 능통한 사람이라 종종 이런 일이 있었어. 앙씨는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어. 그런데 걱정이야. 이렇게 눈이 쌓였는데 무슨 등산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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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씨는 그날 밤 저녁을 먹자마자 일찍 잠자리에 들었어. 내일 새벽부터 산행을 해야하니까. 그런데 밤 11시쯤 되니까 쉴 새 없이 전화벨이 울려. 도청, 경찰, 군부대 등 각종 기관에서 돌아가면서 앙씨한테 확인 전화를 하는 거야. 양씨는 '윗분들 오신다고 엄청 신경 쓰는구나'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잠을 설치던 양씨는 새벽 3시에 약속 장소로 나갔어.

캄캄한 어둠 속 저 멀리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였어. 경찰 트럭이었어. 누군가 뒤에 타라고 해서 뒤 칸에 올랐는데, 어째 분위기가 무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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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해서 누군지 밤에 확인 못하니까 일단 탔어요. 타서 보니까 군인도 몇 사람 있었고 경찰관도 몇 사람 있었고. 차가 한참을 달렸어요. 속으로는 '이거 어디 가나?' 싶었죠. 어디 간다고 얘기해주는 사람도 없고. 서로 대화할 분위기도 아니었고."
-양송남, 당시 한라산 국립공원 청원경찰

트럭은 30분쯤 달리더니 멈췄어. 양씨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깜짝 놀랐어. 한라산으로 간다고 했는데, 도착지는 웬 초등학교 운동장이야. 게다가 운동장에는 군인들이 가득해. 얼핏 봐도 100명은 넘어보여. 양씨가 얼떨떨하며 서 있는데, 장교 한 사람이 다가와 한라산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을 찾았어. 장교의 부름에 양씨가 앞으로 나섰어. 그랬더니 그 장교는 앙씨를 학교 강당으로 데려갔어.

장교는 커다란 제주도 지도를 보여주며 양씨한테 한라산 등반 코스를 알려달라 했어. 양씨는 열심히 알려주면서도, 유난이라 생각했어. 청와대 경호실에서 온다고 군인들까지 이렇게 나설 일인가 싶었지. 등반 코스 브리핑을 마치고, 다같이 곧장 한라산으로 향했어.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코스별로 병력이 흩어지기 시작해. 양씨는 50여명의 군인들과 지휘관인 최 소령과 함께 움직이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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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향한 곳은 관음사 코스야. 한라산 북쪽에서 시작해 정상 쪽으로 올라가는 꽤 난코스야. 양씨 일행이 등반로 입구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어. 정작 같이 등반한다고 했던 청와대 직원들이 안 온 거야. 그런데 갑자기 군인들이 서둘러 산을 오르기 시작해. 앙씨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여전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야. 양씨는 군인들을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어. 그런데 누군가 양씨를 향해 인사하며 다가와. 앙씨가 이틀 전 산에서 만난, 대학 산악부 학생들이야. 엊그제 양씨가 숙직할 때 같이 밤을 지새우며 안면을 튼 사이라, 반가워서 인사를 한 거야.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최 소령이 갑자기 양씨를 불러. 그러더니 뜻밖의 부탁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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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분들한테 하나 부탁을 해주십시오' 하더라고. 무슨 부탁이냐고 하니까, '올라가다가 비행기 기체 조각이라든지 추락한 물체를 보면 신고를 해달라'고 부탁해달라는 거예요. 그 때 처음, '아 사고났구나' 인지했어요."
-양송남, 당시 한라산 국립공원 청원경찰

한라산에 비행기가 추락했고 군인들은 사고 현장을 찾으려고 수색을 한 거야. 애초에 청와대 경호팀 등반 때문이 아니었던 거지. 양씨는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됐어. 왜 그렇게 쉴새 없이 전화가 왔고, 왜 그렇게 급하게 산에 올랐는지, 그리고 표정들은 왜 하나같이 어두웠는지.

어젯밤에 관련 뉴스 하나 없었는데 대체 무슨 비행기가 추락한 건지 궁금했지만, 여전히 물어볼 상황이 아니야. 추락한 비행기를 얼른 찾아야 하니까 다들 땀을 뻘뻘 흐리면서 산에 올라. 그런데 좀처럼 등반에 속도가 안나. 온 산이 눈으로 덮여 있었거든. 걷다 보니 발이 눈에 푹푹 빠져. 게다가 군인들은 산악 장비도 없어. 눈 덮인 가시덤불숲을 헤치고 다닌 지 7시간이 지났고, 해는 이미 중천에 떴어. 바로 그때, 탐라계곡 근처에서 비행기 기체를 발견했다는 무전이 왔어.

양씨는 앞장 서서 탐라계곡으로 향했어. 꼬박 3시간을 거의 뛰다시피 해서 탐라계곡 근처에 도착했는데, 눈 앞 광경이 평소와 달랐어. 원래 같으면 탐라계곡 주변에 적송이 빽빽하게 있어야 하는데, 하나도 안 보여. 가까이 가보니, 그 커다란 나무 기둥이 줄줄이 다 꺾여 있는 거야. 비행기가 날개로 나무를 자르면서 추락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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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이 잘린 방향으로 따라갔어. 서서히 퀴퀴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게 보여. 그리고 마침내 음푹 파인 골짜기 아래쪽에 구겨진 비행기가 눈에 들어와.

비행기는 뒤집혀 바퀴는 하늘을 향하고 있고 동체는 종잇장처럼 구겨졌어. 양쪽 날개와 프로펠러는 산산조각이 났어. 그런데 비행기가 뭔가 이상해. 평소 보던 비행기랑 색깔이 달라. 일반 여객기는 흰색인데, 이건 국방색이야. 맞아, 추락한 비행기는 군용기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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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사고 기종 C-123이야. 미국에서 개발한 수송기인데 월남전에 많이 사용됐어. 우리 군에서는 장비, 물자수송, 병력 이동을 하는데 주로 쓰였어. 사고 수송기가 추락한 지점은 바로 여기, 한라산 중턱 해발 1,060m 개미목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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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탐라계곡과 서 탐라계곡 사이 좁은 골짜기에 떨어졌어. 아마도 이 군용기는 한라산 북쪽 어딘가를 날다가 능선에 충돌한 후 적송들을 자르면서 이 곳으로 추락한 거 같아. 일단 생존자 탐색이 우선이야. 양씨는 부서진 기체 주변으로 다가갔어. 하얀 눈 사이로 뭔가가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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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까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폭발을 여러 차례 했어요. 폭발해서 시신이, 밖으로 튀어나온 시신이 있었고, 뼈 이런 부분들이 까맣게 그을려 있고 타 있고. 너무 비참하게 훼손이 되다 보니까. 가슴에 명찰 하나 있는 시신이 가장 온전한 시신이었고, 그 나머지는 다 갈기갈기 조각이 나 있어. 나도 그런 상황은, 다시 볼 수 없지만, 정말. 기가 막히더라고."
-양송남, 당시 한라산 국립공원 청원경찰

양씨는 이 참혹한 광경에 할 말을 잃었어. 잔해와 시신을 수습하라고 최 소령이 지시를 했어. 그런데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멍하니 자리에 서있기만 해. 비행기에 탔던 사람들은 동고동락하던 전우들이었거든. 충격이 얼마나 컸겠어. 지휘관이 다시 한 번 불호령을 내리니까, 그제야 하나 둘 기체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 저곳을 다 뒤져보는데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어. 탑승했던 군인 53명, 전원이 사망했어.

어느덧 날이 어두워져 철수를 시작해. 양씨도 내려갈 채비를 하는데, 최 소령이 불러세워. 그리고 이런 말을 해. "이 현장을 본 민간인은 선생님 밖에 없습니다. 이 사고는 절대로 죽을 때까지 누구 앞에 말씀하면 안 되니까 혼자 무덤까지 가져가야 합니다"라고.

최 소령은 양씨한테 왜 비밀을 지키라고 했을까? 그리고 C-123기는 왜 제주도 한라산에서 추락한 걸까?

▲ 사고 현장을 찍은 사진기자

양씨가 산에서 내려오던 그 시각, 한 남자가 한라산을 오르고 있어. 걸음이 엄청 빨라. 거의 산악구보 수준이야.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는 이 남자, 어깨에 카메라를 매고 있어. 이름 서재철, 당시 나이 35세, 제주신문의 사진기자야. 서 기자는 군용기 추락 현장을 찾고 있었어. 서 기자는 이 사고를 어떻게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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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기자한테 촉이 온 건 하루 전이었어. 저녁에 퇴근 준비를 하는데, 속보를 전하는 텔레타이프 기계에서 긴급뉴스 타전 때만 울리는 땡땡땡땡 소리가 들렸어. 기자들 모두 텔레타이프 앞에 모여 속보 내용을 확인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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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중이던 군용기 추락-추자도 해역"

추가 소식이 들어오나 싶어 기자들이 한참 기다렸는데, 그게 전부야. 속보에 쓰인 추락 지점은 추자도 해역. 추자도는 제주도에 속하긴 해도 한참 떨어져있어. 그 때까지만 해도 군 당국도 추락 지점을 정확히 몰랐던 거야. 그럼, 서 기자는 어떻게 알고 추자도가 아니라 한라산으로 향했을까.

다음날 아침, 제주공항에서 큰 행사가 열렸어. 서 기자도 취재에 나섰는데, 행사장 한 쪽에 고위급 인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서 기자는 귀동냥으로 "바다가 아니라 한라산 같다네요" 라는 말을 듣고 '군용기가 바다가 아니라 한라산에 추락했구나'라고 추측했어. 한라산을 빨리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서 기자는 행사 취재를 마치고 기사 마감 시켜놓고 서둘러 한라산 갈 채비를 했어. 그런데 이런 서 기자를 회사에서 말렸어. 82년도는 군사정권 시절이야. 통제가 일상이던 그 때, 정권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있을 텐데 가서 뭘 하겠냐며 말린 거야. 그래도 서 기자는 기자 정신으로 사고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해보겠다는 일념으로 한라산으로 향했어.

근데 한라산이 얼마나 넓어. 사고 지점이 정확히 어딘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서 기자는 산악회 회원으로, 해박한 지식에 신체적 능력까지 갖춘 등산 전문가야. '찾다보면 나오겠지' 하며 무작정 한라산에 올랐는데, 결국 사고 현장을 찾았어. 엄밀히 말하면, 군인들을 찾은 거지. 개미목 근처를 군인들이 지키고 서 있었거든. 서 기자는 바로 몸을 숨기고, 곧장 하산했어. 괜히 들키면 골치 아파질 거 같은 거야. 어차피 날이 어두워져서 촬영도 못하니까.

다음날 새벽, 서 기자는 다시 한라산에 올랐어. 군인들이 나오기 전에 먼저 현장에 가려 한 거야. 심장이 터질 것처럼 달려서 날이 밝기 전 이른 시각, 개미목 근처에 도착했어. 다행히 군인들은 아직 안 나왔어. 조심조심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는데, 부서진 군용기가 저 안쪽에 고꾸라져 있는게 보여. 주변에는 잔해들이 마구 흩어져 있어. 서 기자는 시신까지 확인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야. 군인들 오기 전에 얼른 찍고 가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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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볼 형편은 못 됐죠. 전체 보이는 장소만 가서 그 현장에서 찍고, 옆에서 잔해 수습해 놓은 것들도 찍고. 빨리 현장을 기록하고 자리를 떠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 서재철, 당시 제주신문 사진부장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 순식간에 36장짜리 흑백필름 4통을 다 썼어. 그리고 서 기자는 서둘러 옷을 뒤집어 입었어. 사진기자라고 찍혀 있는 옷이었거든. 신분이 들키면 안되니 옷을 뒤집어 입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필름통도 몸 여기저기에 하나씩 따로따로 숨겼어. 그리고 나서 빛의 속도로 하산했어. 얼마 안 가서, 길 아래쪽에서 군인들이 올라오는 게 보여. 일단 태연한 척 내려갔어. "선생님,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묻는 군인한테 서 기자는 "등산 왔다가 용진각에서 눈 좀 붙이고 내려가는 길입니다"라고 덤덤하게 말했지만 심장은 요동쳐.

다행히 서 기자는 무사히 하산했어. 회사에 도착해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갑자기 사장이 불러. 그리고 대뜸 "서 기자, 그 필름 다 내놔요"라고 말했어.

"그때 당시에 언론사마다 (정권 쪽) 주재원이 있었잖아요. 보도 통제가 아주 심했죠. 특히 그런 군 관련 부분은. 당시에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서재철, 당시 제주신문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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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윗선에서 보도 통제를 지시한 거야. 더군다나 이건 군 관련 사고야. 서 기자는 필름을 어쩔 수 없이 건넸어. 대신 한 통을 빼고. 어차피 애초에 그가 몇 통을 찍었는지 아무도 모르잖아. 그래서 4통 중에 1통을 빼도 발각되지는 않았어. 서 기자는 언젠가 이 사진을 쓸 수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통을 남겨뒀어.

▲ 최정예 부대원 53명의 허무한 죽음

이 사고와 관련해 보도가 완전히 통제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어. 얼마 후에 기사가 났어. "군용기 추락. 장병 53명 순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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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3시경 제주도 지역에서 작전 훈련 중이던 군용기 1대가 추락. 이 비행기에 타고 있던 53명의 군장병이 모두 숨졌다고 국방부가 6일 저녁 발표했다. 이 사고는 대침투작전 훈련 도중에 발생했고 사고의 원인은 이 수송기가 착륙하기 위해 제주도 해안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강한 북서풍에 의한 이상기류에 휘말려 한라산 정상 북방 3.7km 지점에 추락되었으며 자세한 사고 원인은 조사 중에 있다."
-당시 신문기사 내용 中

여기서 '대침투작전' 훈련은, 적이 침투한 상황을 가정하고 소탕하기 위해 실시하는 훈련이야. 보도는 2월 8일, 사건 발생 3일 후야. 사고 내용을 주요 신문사들이 다 다뤘어. 그런데 모든 신문 기사가 국방부 발표를 받아쓴 거라 다 똑같아. 직접 취재한 건 없고, 사건 현장을 담은 사진도 없었어. 정부는 왜 이렇게 보도 자체를 자제했을까.

사고 소식을 듣고 가장 논란 건 가족들이야. 이재수 씨도 동생 재훈이의 사고 소식을 확인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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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보다 보니까 자막으로 '비행기가 기상 악화로 추락했다' 간단하게 한 줄로 잠깐 지나갔어요. 근데 예감이 참 이상하더라고. 전화기도 그렇게 흔한 때도 아니고. 그래서 우체국 가서 전화를 해봤어요 집으로. 큰동생이 그러더라고. '(재훈이는) 강원도로 동계 훈련 간다고 그랬는데' 라고. 그럼 훈련 갔으면 걔는 거기 있으니 얘는 아닐까 싶었는데. 그 이튿날 큰동생한테 전보가 온 거예요. (재훈이가) 제주도로 갔다는데 거기에 알아보라고. 가슴이 무너졌지 뭐…"
-이재수, 故 이재훈 준위 누나

현실이 믿기지 않은 건 다른 유족들도 마찬가지였어. 평소처럼 훈련 갔다 오겠다고 인사하며 집을 나선 사람이 그대로 비명횡사 한거니까. 유족들이 이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다른 이유가 있었어. 사망한 장병들이 아주 특별한 군인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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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대원들은 각종 특수작전 임무를 수행하는 대한민국 최정예 부대, 707특수임무대대(제707특수임무단) 소속이었어. 검은 베레모가 이 부대의 상징이야. 극한의 훈련으로 한계를 뛰어넘고 극강의 정신력으로 어떤 임무도 완수하는 대한민국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 707특임대는 그런 특전사 대원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요원들만 선발해 만든 국가급 대테러부대야. 인질 구출 및 적 핵심부에 대한 직접 타격 임무를 수행해.

그런데 이번 사고로 사망한 53명 장병 중에 공군 6명을 제외하고, 47명이 707특임대원이었던 거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강도 훈련을 해오던 부대야. 그러니 가족들 입장에선, 믿기가 힘들지. 그 험한 훈련을 견뎌낸 베테랑 요원들이 허무하게 죽었다는 게.

"그 당시에도 최 소령이 얘기한 게, 최고 A급 베테랑이라는 거예요. (사망한) 팀이. 1인당 훈련비만 1억 정도 들였다는 거예요. 그 당시 1억이면 지금 10억 정도 되는 돈이야. 비행기가 추락할 거라고 예측만 하면 전부다 뛰어내려서 거의 다 산다는 거예요."
-양송남, 당시 한라산 국립공원 청원경찰

사고 당시 대침투작전 훈련 중이었던 대원들. 군용기를 탔다면 보통은 낙하산이 필수 장비야. 그런데 그 날은 낙하산이 없었대. 유족들은 특전사령부를 찾아가 물었어. 무슨 훈련을 어떻게 받았길래 대원들이 다 죽냐고. 그런데 명쾌한 설명 없이, 그냥 집에 가서 기다리래. 유족들은 패닉상태가 된 거야. 혹시 그날 사고에 뭔가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 유족들은 "그럼 죽은 우리 애 시신이라도 보여달라"고 소리치고 오열했어. 바로 그때, 유족 중 한 사람이 유리창을 깨고 빈 상황실에 들어갔어. 맨손으로 유리를 깨서 팔뚝에 피가 철철 흘러. 그래도 뭐라도 알고 싶은 마음에 위험을 무릅썼어. 그 절박함 때문인지, 은폐됐던 진실 한 조각이 드러났어.

▲ 실제 임무는 '봉황새 1호 작전'

그 때 그 상황실에서 유족이 들고 나온 문서 중에는 사령관이 발신해 707대대장이 수신한 문서가 하나 있었어. 문서의 제목은 '훈련 명칭 변경'으로, "금번 훈련은 동계 특별 훈련으로 호칭을 하니 전장병에게 주지시키기 바람"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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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훈련을 '동계 특별 훈련'으로 명칭을 바꾸겠다는 거야. 훈련 명칭이야 바꿀 수 있지.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건, 메시지를 보낸 시간이야. 1982년 2월 6일로, 사고가 난 이후야. C-123기가 추락한 게 2월 5일 오후이고 기체가 발견된 건 다음날인 6일 오후야. 그런데 메시지는 6일 오전 8시 45분에 보내졌어. 부대원들이 양송남 씨와 같이 한참 사고 기체를 수색하고 있을 때야. 사령관은 왜 사고가 난 이후에, 갑자기 훈련 명칭을 바꾸라고 한 걸까. 이들의 진짜 임무가 뭐길래?

이날의 진실을 알 만한 사람은 누가 있을까. 당시 같은 707특임대 요원이라면, 알지 않을까. 그래서 '꼬꼬무'가 찾아냈어. 사고가 있던 그날, 순직한 대원들과 같이 출동했던 대원이야. 출동은 하고 그 군용기는 안 탄 거지. 아주 극적으로 사고를 피한 거야.

꼬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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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 저녁에, '3박4일 정도 훈련을 나가니까 훈련 준비만 해오라'고 듣고 퇴근했어요. 어디 가는지를 모르고. 그래서 2월 5일 갑자기 아침에 성남 비행장에서 군용기를 타고 제주도에 내려갔었는데, 한 250명 정도, 총 8대의 비행기가 나왔었어요. 제가 4번기에 편성이 되어 있다가 조종사가 올라와서 '8명은 내리라'고 했습니다. 너무 인원이 많고 짐도 많다 보니까. 다른 예비기가 나왔으니까 그 쪽으로 타라고 해서 갈아타고 제주도에 도착해보니까, 없어졌어요 4번 비행기가. 우리가 '이거 어떻게 된 거냐. 우리 4번기가 어디 갔냐' 했죠.''
-이장락, 특전사 예비역 원사

그날 707특임대원들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한 군용기는 총 8대였어. 사고가 난건 4호기. 이 원사가 탔다가 내린 그 군용기야. 이 원사는 그날 본인의 목숨은 구했지만, 동료 47명을 한꺼번에 잃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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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보다 더 가깝게 지낸 그런 사람들이거든요. 시신들이 그냥 숯덩이가 되어 있는데 다른 말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정신이 아니었죠.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요 그 참사 현장이."
-이장락, 특전사 예비역 원사

중요한 건 사고가 국방부의 발표처럼 대침투작전 훈련중에 난 게 아니었다는 거야. 비행기는 제주도로 이동하던 중에 추락했어. 제주도에서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작전 임무가 있었거든. 작전명은 '봉황새 1호 작전'이었어. 봉황새, 대한민국 대통령의 상징이야. 그럼 봉황새 1호라면? 그래 대한민국 대통령, 전두환을 의미해.

꼬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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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국제공항에 점보기 등 대형 항공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새 활주로가 착공 3년만에 완공됐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새 활주로 준공식에 참석해서 개통 테이프를 끊고 관계자들을 격려했습니다."
-당시 대통령 동정 뉴스

"비행기 안에서 브리핑을 하는데, 대통령이 내일 오시니까 경호차 내려간다고. 제주공항에 보잉 747(대형여객기)이 앉을 수 있는 4km짜리 활주로를 개통해서 그날 준공식이었어요. 준공식 겸 대통령이 연두 순시를 내려간다고 했거든요. 그게 봉황새 1호 작전이라고... 봉황새 1호 작전이 끝나고 나서 추가적인 임무가 내려왔는데, '대침투작전'으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대침투 훈련을 저희가 수행한 거죠. 2월 25일까지."
-이장락, 특전사 예비역 원사

그날 707특임대 250명의 진짜 임무는, 전두환 대통령 경호 임무였어. 그러다 갑자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 거야. 애초에 대침투작전 훈련은 없었어. 그런데 정부는 사실과 다른 발표를 하고, 언론의 취재도 막았어. 왜 그랬을까? 불미스러운 사건의 보도가 미칠 부정적 요소들을 고려한 거야. 대통령이 욕을 먹으니까. 거기다가 그날 사고에는 숨겨진 진실이 또 있어.

▲ 무리한 경호가 부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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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신조는 '안되면 되게 하라'야.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방법을 찾으면 해낼 수 있다는 의미지. 극한의 상황을 이겨내야 하는 특전사 요원들한테는 맞는 표현일 수 있어. 그런데 이 말의 이면에는, '무조건', '반드시'라는 의미도 있어. 이 사고와 관련해 이런 증언들이 있어.

"비행기를 수없이 탔어도 이번 같이 어려운 조종은 처음이었다. 내리니깐 온몸이 땀으로 젖었었다. 눈 때문에 앞이 안 보여 '꼭 죽는 줄 알았다'"
-사고 당일, 다른 군용기를 조종했던 공군 소령의 증언

"82년 2월 5일은 기상상태가 악조건이라 청와대에 비행기가 이륙할 수 없다고 두 번이나 건의했음에도 위 상부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이륙했습니다."
-당시 군부대 책임자의 증언

한사람의 경호를 위해 위험한 비행길에 오른 대원들. 무리하게 경호 임무가 진행된 건, '안돼도 되게 하라'는 거지. 출발지인 서울과 도착지인 제주도 모두 며칠째 폭설이 내리던 때야. 그래서 악천후로 이날 비행기 운항은 전면 통제됐대. 베테랑 조종사들도 이륙을 반대할 만큼 악천후였던 거야. 오죽하면 청와대에 두 번이나 건의했겠어. 하지만 무조건 띄우래. '안되면 되게 하라'.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군용기를 띄운 거야.

"제주공항 가는 데 시간이 두시간 넘게 걸렸어요. 선회를 많이 하다 보니까. 제주도 도착했다고 내릴 준비 하라는데 밑을 보니까 어디가 어디인지 보이지 않아요 구름이 껴서."
-이장락, 특전사 예비역 원사

제주도에 현지 경찰, 군병력이 있는데, 다른 대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정예 부대를 고집한 거야. 전시상황이 아니라, 그냥 행사였잖아. 이 악천후에 군용기를 띄웠어야만 했을까. 청와대는 왜 봉황새 1호 작전을 강행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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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새 1호 작전 지휘자는, 대통령 경호 총책임자인 청와대 경호실장이야.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은 장세동이었어. 별명이 '의리의 돌쇠'야. 각하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해. '심기 경호'란 말 들어봤어? 대통령이 마음이 편해야 국정이 잘 운영된다, 그러니 심기까지 잘 살펴야 한다는 거야. 어느 정도냐면, 각하가 산책을 하다가 돌에 걸려 넘어지면 심기가 불편해질 수 있으니. 각하가 다니는 산책로를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도 했대.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그날 사고 소식을 듣고 사고수습 대책 본부를 찾았어. 상황을 보고 받고 나서 이렇게 말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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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은 조종사의 착각으로 빚어진 사고다. 인명은 재천인데 어떻게 하겠냐.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

본인을 위한 작전 중 발생한 사고. 그 사고 현장에 찾아가 한 말이야. 이 얘기를 들은 유족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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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동생이 군대 갈 나이 되어 공수부대(특전사)에 지원했다고 그러니까, 아버지가 못 가게 했어요. 왜 공수부대를 가느냐 위험한데. (아버지가) 그 때 못 말린 걸 한으로 여기고 사셨지. 막말로 다리 몽둥이라도 꺾어서 앉힐 걸 못한 게 한이라고 그랬지…"
-이재수, 故 이재훈 준위 누나

사고의 원인은 따로 있는데, 피해자들은 그 고통을 떠안고 자기 탓이라 생각했어. 사고 당시 27세였던 이재훈 준위는 다정하고 의젓한 아들이었어. 그리고 대부분의 특전사 대원들이 그랬듯이, 가난한 집안에 보탬이 되려고 자원입대를 했어. 아마 사고가 있던 그날, 이재훈 준위를 비롯해 707특임대의 젊은 장병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묵묵히 군장을 챙겨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을 나섰을 거야.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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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나흘 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합동 영결식이 거행됐어. 21살부터 37살까지, 53명의 청년들이 한날 한시에 사고로 목숨을 잃고 차가운 땅속으로 사라졌어. 하지만 유족들은 실감이 안 났어. 시신을 두 눈으로 직접 못 봤거든. 사고가 제주도에서 났잖아. 지금이야 쉽게 오가는 곳이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제주도는 외국이랑 다름 없었어. 게다가 군 당국이 현장을 통제했잖아. 영결식 땐 이미 화장이 끝난 상태였어. 고인의 뼛가루가 든 유골함마저, 유족들은 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 유족들은 너무 슬프고 서운했대. 근데 이 이야기는 뜻밖의 국면을 맞게 돼.

▲ 시신 수습을 직접 한 유족들

1882년 5월 중순, 사고 100일쯤 뒤야. 동생 재훈 씨를 하늘로 보낸 누나 이재수 씨가 사고 현장에 가기 위해 한라산을 올랐어. 재수 씨는 유족 중 유일하게 제주도에서 거주하고 있었어. 이전에도 몇 번 올라가긴 했는데, 갈 때마다 군인들이 지키고 서있어서 직접 현장을 보진 못했어. 그러다 백일 위령제 이후 군인들의 경계가 조금 풀리자, 재수 씨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현장에 가서 동생의 넋이라도 달래주고 싶었던 거야.

그런데 재수 씨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눈 앞에 펼쳐졌어. 치운 줄 알았던 군용기는 고철덩어리처럼 그대로 방치돼 있고, 사고 잔해도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어. 심지어 병사들의 유품들도 군데군데 떨어져있어. 현장 수습이 제대로 안 된 거야.

재수씨는 곧장 본가에 전화했고, 아버지는 다른 유족들을 데리고 한달음에 제주도로 달려 오셨어. 사고 현장을 둘러보는데 흙색깔이 좀 달라. 땅을 판 흔적이야. 유족들은 맨 손으로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어. 그 때 어디선가 군인들이 나타나서 그만 하라고 소리쳤어. 총을 든 군인들이 위협적으로 다가와. 그 행동이 더 의심스러워서, 유족들은 군홧발을 밀어내며 멈추지 않고 계속 땅을 팠어. 그리고, 거기서 시신의 일부를 발견했어.

"군화 신은 발 두개, 한 사람이야 이게. 한쪽은 무릎까지만 이고, 나머지 한쪽은 이 위에 (허리)까지 있더라고. 추운 때니까 부패가 안 된 거야. 군화 줄을 묶은 그대로. 비행기 잔해들이 무거우니까 다 들지는 못해도 옆을 이렇게 돌면서 보는데 까만 베레모가 있더래요. 꺼내 보니까 베레모가 아니고 머리가 이렇게 잘린 거야."
-이재수, 故 이재훈 준위 누나

시신 수습이 제대로 안 됐어. 고인과 유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조차 지키지 않은 거야. 유족들이 느꼈을 참담함. 다들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어. 사고 직후 눈에 띄는 유해만 걷어가고, 나머지는 현장에 대충 묻어놓은 거야. 이 조각난 시신을 보고 유족들은 큰 충격에 빠졌지.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폭발했을 테니 시신이 온전할 거란 기대는 애당초 하지도 않았어. 유족들은 너무 끔찍해서 누구 시신인지 확인해볼 엄두도 안 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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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화 안에 이름이 쓰여 있잖아요. 그걸 끌러보려고 했어요, 누구 건가. 그러니까 '끌러보지 말자. 만약에 내 새끼면 어떡할 거냐' 그랬죠."
-이재수, 故 이재훈 준위 누나

그동안 서운하고 속상해도,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의 가족이기에 억눌렀던 감정들인데.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유족들은 석달 전 영결식을 떠올렸어. 멀리서 바라만 봤던 그 유골함. 거기에 유해가 들어있긴 했던 건지 의심스러워. 그런데도 유족들은 항의를 할 수가 없었어. 서슬퍼런 군사정권 치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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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이 할 수 있는 건, 삼삼오오 모여서 한라산을 오르는 수 밖에 없어. 틈만 나면 사고 현장을 뒤져서 고인들의 시신을 직접 수습했어. 그리고 그때마다 정성껏 화장해서, 장병들의 묘지 위에 뿌려줬어. 국가가 외면했기에 유족이 직접 나설 수 밖에 없었던 현실. 그렇게 그날의 사고도 유족들의 슬픔도, 세상에 꽁꽁 숨겨져 있었어.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어.

▲ 처벌 받은 이도, 사과한 이도 없다

1987년,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어.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영원할 것 같던 권력도 끝이 보이기 시작한 거야.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야 했던 유족들도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 그때까지도 한라산 군용기 추락사고는 훈련 중에 벌어진 걸로 세상에 알려져 있었거든.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사고가 있었다는 거 자체를 국민 대부분이 몰랐어. 1988년 유족들은 유족회를 만들고, 국회랑 청와대를 찾아가서 청원서를 제출했어. '봉황새 1호 작전'의 진실을 밝히고 무리하게 작전을 강행한 책임자를 처벌해 달라고.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 시신수습을 제대로 마무리 해 달라고 요구했어.

그 무렵, 제주도에서는 서재철 기자가 그동안 꽁꽁 감춰뒀던 그 필름 한 통을 꺼냈어. 서 기자는 7년 전 한라산에서 찍은 사진을 조심스럽게 인화했어. 그리고 마침내, 신문에 실었어. 이 사진은 지금까지도, 사고 현장이 찍힌 유일한 사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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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신문 기사도 나고 유족회도 나섰으니, 봉황새 1호 작전의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졌을까? 아니, 너무 조용해. 그동안 은폐됐던 사건들이 너무 많아선지 별 반응이 없어. 국회나 청와대 쪽은 다섯차례나 탄원서를 제출했는데 답변조차 없어. 그래도 유족들은 포기하지 않았어. 이번엔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어. '피고소인'은 전 대통령 전두환, 전 특전사령관 박희도, 전 국방부장관 주영복, 전 육군참모총장, 전 공군참모총장 이희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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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군에 근무하는 군인을 전두환 씨는 사병인 것 같이 아무렇게나 사용해도 무관하다는 식으로 사용하다가 죽인 것입니다. 권력 남용으로 군인을 강제 동원하고 도저히 비행기가 이륙할 수 없는 악조건의 기후를 무시하고 강제로 비행기를 이륙시킨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간주할 수가 있으므로 살인죄로 고소합니다."
-고소장 내용 中

3년만에 고소 결과가 나왔어. 살인 혐의는 무혐의, 직권남용은 공소권 없음. 처벌은 없었어. 그럼 최소한 사과라도 한 사람은 있었을까? 그것도 없었어. 전두환 씨는 2021년 사망할 때까지 이 사건에 대해선 언급조차 안 했어. 그리고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박희도 씨는 2018년 언론 인터뷰에서 "오래 돼서 기억이 안난다"고 말했어. 단 한마디의 사과조차 그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어. 그런데, 이걸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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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중에 사망한 대원들을 위한 충혼비야. 한라산 중턱 관음사 휴게소 내에 위치해있어. 사고 현장에서 수습한 수송기 잔해들을 함께 보관하고 있는데, 여기 충혼비에 이런 시가 쓰여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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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화한 전우에게. 안되면 되게 하라, 짧은 내 인생 영원한 조국에. 네가 죽음으로써 우리가 살고 조국은 지켜지리니. 검은 베레는 죽어서 영원히 산다."

'산화한 전우에게' 바치는 시. 지은 사람이 누구냐면, 박희도. 당시 특전사령관이야. 충혼비에 직접 지은 시까지 새겨 넣은 사람이, "오래 돼서 기억이 안난다"고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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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인건, 이 충혼비의 뒷면이야. 뒷면은 진실을 되찾았어.

'대통령 경호작전 중' 이라고 적혀있어. 예전에는 '대침투작전 훈련중'이라고 적혀 있었어. 이게 언제 바뀌었을까? 지난 2015년이야. 이거 한 줄 바꾸는데 33년의 세월이 걸렸어. 유족들, 서 기자, 양송남 씨, 그 외 많은 사람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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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을 제외하고, 평시 작전 중에 가장 많은 군인이 희생된 사건은, 바로 이 '봉황새 1호 작전'이야. 천안함 피격 사건 때 46명이 사망했어. 그 때보다도 많아. 이런 이번 이야기로 이 사건을 알게 된 사람도 꽤 많을 거야. 그들의 숭고한 헌신, 희생을 절대로 잊으면 안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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