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0일(목)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사랑에 아파본 적 있나요…'멜로 배우' 유연석의 가치

강선애 기자 작성 2023.03.03 19:28 수정 2023.03.06 14:56 조회 3,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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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석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유연석은 선역도 악역도 다 잘 어울리는 배우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안정원처럼 천사 같은 성품의 캐릭터도 찰떡 같이 소화하고, 영화 '건축학개론'이나 '늑대소년'처럼 주먹을 부르는 악역 캐릭터도 밉상 맞게 잘 구현해낸다.

이것저것 다 잘하는 스펙트럼 넓은 배우 유연석. 그가 잘하는 게 또 하나 있다. 사랑한다고 마냥 행복하지는 않은, 고난과 역경이 동반된 아픈 사랑을 하는 캐릭터다.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 '미스터 션샤인'의 구동매처럼 말이다. 유연석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아파하는 캐릭터의 감정을 섬세하게 연기해내며, 지켜보는 시청자가 그를 응원하게 만든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아픈 사랑 전문 배우' 유연석의 장점이 두드러진 작품이었다. 그가 연기한 은행원 하상수는 직장동료 안수영(문가영 분)을 사랑하지만 순간의 잘못된 선택과 현실적인 이유들로 다가서지 못하고, 박미경(금새록 분)과 교제하면서도 안수영을 향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유연석은 하상수를 대한민국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냄과 동시에, 특유의 '멜로 눈빛'과 애절한 연기로 하상수의 아픈 사랑을 표현했다.

'사랑의 이해'는 하상수, 안수영이 각각 박미경, 정종현(정가람 분)과 사귀면서도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을 멈추지 못하는,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이야기한 멜로 드라마다. 각기 다른 이해(利害)를 가진 이들이 서로를 만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이해(理解) 하는 과정이 현실적으로 그려지며 '과몰입'을 부르는 드라마로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상수가 아무리 선하고 반듯한 성품의 남자 주인공이라 해도, 좋아하는 이성이 따로 있는데 다른 이와 교제하고, 교제 후에도 연인이 아닌 그 이성을 계속 바라보는 내용은 충분히 '욕 먹을' 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유연석의 애절한 눈빛을 보면, 하상수의 갈등과 고민이 충분히 이해됐다.

유연석이 그리는 멜로에는, 그런 공감의 힘이 있다.

유연석

▲ 하상수에 공감, 더 찌질해 보여도 좋았다

'사랑의 이해'는 3%대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평범한 등장인물로 쌓는 뻔하지 않은 관계성과 전개가 '과몰입'을 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화제성이 높았다. 유연석도 주변 사람들의 높은 관심도로 '사랑의 이해'의 인기를 체감했다.

"주변 분들로부터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평소 드라마를 잘 챙겨 보지 않는 분들, 영화 쪽에 계신 분들도 '재밌게 보고 있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이 작품은 시청률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거 같아요. 애정을 갖고 몰입해서 보신 분들이 많았죠. 보면서 대화할 거리가 가득했어요. 저도 드라마를 보며 실시간으로 포털사이트 드라마 대화창을 켜놓고 봤는데, 열띠게 토론하면서 시청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걸 같이 보는 게 재밌었어요.(웃음) 드라마가 입소문이 나고, 애정을 가져주신 분들이 많다는 게 감사해요. 그런 작품을 만나서 뿌듯하기도, 끝나서 시원섭섭하기도 해요."

평소엔 직진남의 모습을 보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망설이고, 어쩔 때는 답답해 보이기까지 했던 하상수. 선하고 반듯한 성품으로 마냥 '좋은 남자'일 거 같았던 하상수는 속물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자존심에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유연석은 이런 하상수의 모든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연기에 임했다.

"전 상수를 공감하면서 연기하려 했어요. 상수가 겪는 감정적인 충돌들과 고민들을, 그가 왜 이런 고민들을 하고, 왜 이런 선택들을 해서 후회의 감정을 겪는지, 충분히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남들이 봤을 땐, 이해가 안되고 납득이 안될 수 있어요. 전 상수가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청자들은 때론 미경이 입장에서, 때론 상수의 입장에서, 각자의 입장에 대입해 공감하면서 보니, 상수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했을 거예요. 전 상수의 이런 모습들이 누군가한텐 찌질하게 보일 수도, 누군가한텐 자기 마음에 솔직해지려 노력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상수가 느끼는 감정들을 최대한 잘 전달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느끼는 정도 까지만, 때론 조금 덜 표현하고, 때론 충동들을 많이 표현해보며, 그렇게 완급 조절을 하려 노력했어요."

유연석

하상수에게 공감하려 노력했다는 유연석은 특히 외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감정에 공감도가 높았다고 한다. '아픈 사랑 전문 배우'다운 답변이다.

"상수가 외사랑을 하는 부분에 특히 더 공감이 됐던 거 같아요. 제가 예전부터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 연기를 할 때, 잘 표현한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저도 그동안 온전히 잘 이루어지는 사랑만 했던 건 아니고, 어릴 때 짝사랑도 많이 했었죠. 그 때의 아픔들이 있다 보니, 그런 면들이 공감이 더 잘 되는 거 같아요."

유연석은 하상수를 연기하며 제작진에게 "더 찌질해져도 좋다"는 의견을 전했다. 상수가 멋있어 보이는 걸 오히려 배제했고, 평범보다도 찌질한 모습을 더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상수가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의 상수는, 평범한 직장인인데 굉장히 호감형이고 멋진 모습들을 그린 포인트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감독, 작가님과 이야기해서 더 평범한 느낌으로 가려고 저 나름대로 노력했어요. 어떻게 하면 평범한 느낌을 줄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을 많이 했어요. 상수의 모습을 멋있게 그리지 않으려 했고, 초반에 감독님이랑 얘기하며 '전 조금 더 찌질해도 될 거 같아요'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상수가 그래야, '영포점 여신'인 수영이가 더 돋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상수는 대사에도 '평범하고 싶었다'는 말이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평범한 모습, 그보다 더 찌질한 모습이 그려져야 한다고 봤어요."

유연석

▲ E에서 I로 바뀐 MBTI…사랑은 여전이 이해 안 돼

'사랑의 이해'의 주인공들이 사랑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는 사건의 발단은 하상수의 망설임이다. 안수영과 설레는 감정을 나누며 '썸'을 타던 하상수는, 안수영과의 저녁식사 약속 장소 앞에서 망설이다가 돌아선다. 이런 하상수의 모습을 지켜 본 안수영은 자신의 별볼일 없는 배경 때문에 하상수가 망설였다고 생각해 그를 향했던 마음이 차갑게 식는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의 엇갈림이 시작된다. 하상수의 망설임에 대해, 유연석은 이렇게 생각했다.

"나중에 상수가 그런 말을 해요. '언제부턴가 결말을 시뮬레이션 해본다', '그게 습관화 됐다' 고요. 어릴 때 트라우마 때문에 그 순간에도, 갈등하고, 멈칫하고, 망설였던 거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수는 다시 그 약속 장소를 찾아가지만 이미 수영은 떠난 후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죠. 망설임을 들키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래서 수영이와 어긋나기 시작해요. 우리 드라마가 은행이 배경인데, 그런 배경 안에서 인물들을 대비시켰다고도 생각해요. 은행은 돈을 다루고 대출 심사 과정에서 누군가의 능력을 수치상으로 평가하고 그러잖아요? 그런 배경 속의 인물들이 사랑할 때, 감정적인 마음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을 평가하고, 인물들의 갈등 구조와 비유돼 표현됐다고 생각해요."

유연석의 멜로 연기가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 배우인 안수영 역 문가영과의 호흡이 중요했다. 두 사람은 실제 띠동갑의 나이차가 있지만 그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멜로 케미로 드라마의 몰입감을 높였다.

"문가영 씨는 어릴 때부터 활동해 작품 경험이 많다 보니, 너무 집중을 잘 했어요. 나이차를 느낀다거나 선후배 허물, 그런 거 없이 편하게 지냈어요. 그러다 보니, 서로 집중해가면서 찍는게 어렵지 않았어요. 그리고 신에 대해 많이 계획하지 않고 동선만 맞춰도, 감정이나 표현들을 워낙 본인이 잘 해줬어요. 안수영이 정말 표현하기 어려운 역할인데, 가영 씨의 연기에서 제가 의아하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본인이 집중을 잘 해서 신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미세한 감정을 섬세하게 잘 표현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저 역시도 몰입해서 표현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유연석

하상수는 대학 친구이자 직장 동료인 소경필과 마음을 터놓는 '찐친' 사이다. 사랑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갈등 상황에 놓이기도 하지만, 두 남자의 끈끈한 우정은 다시 원상복구 된다. 유연석과 소경필 역 배우 문태유는 자연스러운 친구 연기로 두 남자의 우정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태유와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같이 찍긴 했는데, 거기서는 저랑 붙는 신이 거의 없어 교류가 없었어요. 이번 작품에선 서로 믿을 수 있는 단짝 친구 관계로 그려져야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말 편하게 하고 지내자 했어요. 태유가 빠른 생일인데 그런 거 생각하지 말자고 했죠. 상수랑 경필이가 같이 스크린 골프장 다니고 그런 장면들이 있는데, 태유가 원래 골프를 못 쳤어요. 그래서 같이 골프 연습도 하면서 그렇게 친해졌어요. 촬영할 때도 너무 좋았어요. 너무 연기를 잘하는 친구거든요. 태유가 공연하는 곳도 찾아가 봤어요. 태유가 빠른 생이라 (정)경호 형이랑 친구 먹었다고 하던데, 저랑 또 친구가 되어서 꼬였어요.(웃음)"

드라마 이름이 '사랑의 이해'지만, 이 작품을 다 끝낸 지금도 유연석은 사랑을 이해할 수도, 정의 내릴 수도 없다. 그리고 감정을 절제하고 표현하지 않던 하상수를 연기해서 인지, MBTI가 바뀌었다는 유연석이다.

"MBTI가 원래 E였는데 I로 바뀌었어요. ENFP에서 ISTP로요. 상수의 어떤 감정들을 계속 생각하면서 지내서 그런건지, 시기적으로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이 작품을 찍으며 저한테 그런 변화가 있었어요.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도, 저한테 스스로 물어보고 고민해봤는데, 여전히 모르겠어요. 생각하면 할수록 정의가 안되고 이해가 안 되는게 사랑인 거 같아요."

유연석

▲ 30대의 마지막, 멜로 배우 유연석의 가치

1984년생인 유연석은 만나이 시행인 안 된 현재 시점에서 한국 나이로 마흔 살이 됐다. 그가 '사랑의 이해'를 선택한 배경 중에는, 30대의 마지막 작품으로 멜로 장르를 하고 싶다는 바람이 깔려 있었다. 왜, 멜로였을까.

"그 땐 만나이 발표가 나오기 전이었는데, 30대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30대에 보여줄 수 있는 멜로, 사랑 이야기를 지금 이 때 해보고 싶었어요. 40대엔 또 다른 표현을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다른 작품들도 많이 했지만, 작품 속 안에 멜로가 있긴 했는데, 온전히 멜로만 다룬 작품은 뜸했던 거 같아요. 정통 멜로, 흔하디 흔한 사랑 이야기에 집중해 해보고 싶었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연기적으로 진정성을 전달하고, 멜로 장르에서 유연석이란 배우에 확고한 신뢰를 갖게 해드린 거 같아요. 그래서 진짜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 같아요."

사랑의 작대기가 서로를 가리켜 행복하게 사랑을 나누는 것보다, 한쪽 방향으로 향하는 사랑으로 인해 여주인공을 바라보고 눈물 흘리는 연기를 주로 해 온 유연석이다. 칠봉이, 구동매, 하상수처럼 아픈 사랑을 겪는 캐릭터를 선택하는 건, 그런 작품들의 러브콜이 많아서 일까, 본인의 의지일까.

"두가지 다예요. 그런 고난과 역경의 과정을 겪고 제가 사랑에 아파하는 연기들이 공감이 많이 되나 봐요. 댓글을 찾아보면 '유연석 멜로눈빛 나왔다' 하면서 그런 걸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다 보니 멜로 라인이 있는 역할들이 들어오곤 해요. 전 느와르도 많이 하고 싶은데, 멜로 라인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 선택하게 되는 경향도 있어요. 그리고 저도, 단순히 알콩달콩 하는 것보다 그런 힘든 과정을 표현하고 연기하는 게, 재밌는 거 같아요."

유연석

현재 영화 '멍뭉이'를 통해 다시 한 번 '선역'으로 대중을 만나고 있는 유연석. 차기작에서는 확 달라진다. 웹툰 원작의 드라마 '운수 오진 날'에서 연쇄살인마 역할을 맡게 됐다.

"제 악역을 좋아하시는 팬들이 있어요. '운수 오진 날'에서는 다시 한 번 날 선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런 과정들이 재밌어요. '멍뭉이'에서 따뜻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다음 작품에서 또 다른 모습 보여드리고 하는 거요. 그런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는게, 제가 추구하는 방향이에요."

[사진=킹콩by스타쉽]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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