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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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끝내 시신으로 돌아온 故고미영…목숨 걸고 약속 지켜낸 김재수 대장

강선애 기자 작성 2023.02.24 11:59 수정 2023.02.24 12:28 조회 1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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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3일 방송된 '목숨을 건 약속-철의 여인과 매니저 김'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유이, 김범, 카라 한승연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오른 김재수 대장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들이 모여 있는 히말라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를 포함해 8,000m가 넘는 14개의 산을 '14좌'라고 불러. 8,000m 위의 세계에서는 생명체는 살 수 없고, 오로지 눈과 얼음, 바위만이 존재해. 산소도 평지의 1/3 밖에 안 돼. 몇 발자국만 걸어도 전력질주를 한 것처럼 숨이 가빠져. 게다가 기온은 영하 60도에 바람은 시속 200km.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 극한 지대야. 그래서 8,000m 이상의 세계를 '신의 영역', 혹은 '죽음의 지대'라고 불러. 하지만 이 곳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

때는 2009년 9월 25일. 한 남자가 눈 높인 설산을 오르고 있어. 이름은 김재수, 나이는 48세야. 그가 오르는 산은 히말라야에 있는 안나푸르나. 높이는 세계에서 10번째 인데, 사망률이 1위이야.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산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어. '8,000m 중에서 안나푸르나보다 치명적인 산은 없다. 안나푸르나를 무사히 등정한 세 명의 등반가가 있을 때, 한 명은 시도하다가다 죽는다'는 말도 있어. 김재수 씨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산을 오르고 있는 거야.

정상을 향해 가는데, 예고 없이 위기가 찾아왔어. 어디선가 '꽝!'하는 소리가 들렸고, 저 멀리에서부터 눈이 쏟아져 내리는 게 보였어. 눈사태였어. 쏟아지는 눈의 속도는 무려 시속 200km. 휩쓸리면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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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 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위를 쳐다보니, 산이 하나도 안 보이고 눈사태가 앞으로 덮치는 거예요. 처음에는 피해야지, 했는데 피할 수가 없죠. 그 반경이 수백 미터인데 그걸 어떻게 피해요. 까만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죽음이라는 걸 직접 눈 앞에서 보니까. 너무 끔찍하더라고요."
-김재수, 당시 원정대장

"저 멀리에서부터 눈이 흘러내려요. '온다 온다 온다' 했을 때, 김재수 대장님이 '피해!' 하는데. 다 죽었구나 그냥…"
-문철한, 당시 원정대원

피할 수도 없는 눈사태에 대원들 모두가 피켈을 눈 속에 깊이 박고는 꽉 붙잡았어.

"제가 70m 정도 허공을 날았거든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100m 정도 날아갔어요. 죽기를 각오하고 갔는데 정말 막상 죽음 앞에 딱 서니까 살기 위해서 발버둥쳤죠."
-김재수, 당시 원정대장

이 위험한 곳을 김재수 대장은 왜 찾아간 걸까. 김 대장은 반드시 정상에 올라야 하는 이유가 있었어. 누군가와 굳게 약속한 게 있거든. 그 약속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 고미영과 김재수 대장의 만남

2007년 봄, 김재수 대장은 에베레스트 원정을 준비하고 있었어. 후배들과 원정대를 꾸리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 이번 원정대에 한 명을 더 합류시켜 줄 수 있겠냐고 묻는 후원사의 전화였어. 합류를 원하는 대상은 여성 클라이머였어. 암벽등반을 하는 여성 선수가 에베레스트 원정에 꼭 같이 가고 싶다고 했대. 바로 이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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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고미영, 당시 39세였어. 전국 등반 경기 9년 연속 우승, 아시아 챔피언십 클라이밍 대회 6년 연속 우승, 암벽 등반 세계랭킹 5위, 빙벽 등반도 세계랭킹 5위. 그야말로 명실상부 스포츠 클라이밍계 최고의 선수야. 그런데 고미영 선수가 암벽등반을 잘하는 건 알겠는데, 높은 산도 잘 오를 수 있을까? 보통 암벽등반은 100m 달리기에 비유하고, 고산 등반은 마라톤으로 비유해. 단거리 선수가 마라톤으로 종목을 바꾸는 게 쉽겠어? 그리고 고산 등반은 팀플레이야. 혼자 뛰는 선수가, 팀플레이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김 대장은 이런 고민들에 고미영 선수의 합류를 처음에는 거절했어. 그랬더니 고미영 선수가 직접 김 대장한테 전화를 걸어왔어. 그녀는 할 수 있다고, 꼭 같이 하고 싶다고 거듭 부탁했어. 우여곡절 끝에 김 대장은 허락했고, 히말라야로 떠나는 날 공항에서 고미영 선수를 처음 만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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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히말라야에 대해 잘 모르는 철부지구나 싶었어요. 친구들이 많이 배웅을 왔던데, 거기서 웃고 떠들고 하는 걸 봤을 때. 과연 히말라야 등반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 사람인가, 걱정이 됐습니다. 서로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근육의 형태가 다릅니다. 그래서 많이 걷고 참고 견디는 게 과연 어디까지 일까? 적응을 할 수 있을까? 란 생각을 많이 했죠."
-김재수, 당시 원정대장

김 대장은 여전히 고미영이 걱정됐어. 그런데, 히말라야에 도착한지 일주일만에 그 생각은 바뀌었어. 고미영 선수가 고소 적응 훈련을 하는데, 적응이 빨라. 또 성격이 쾌활하고 친화력도 좋아. 팀하고도 자연스럽게 금방 잘 어울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정상에 오르겠다는 의지가 강해. 고미영 선수는 그게 가장 돋보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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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힘든 걸 제가 견디지 못하고서 어떻게 8,000m를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힘들지만 좀 더 힘을 내서 끝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당시 고미영

그래서 김재수 대장은 '이 정도면 같이 오를 수 있겠다' 생각했고, 고미영 선수와 함께 에베레스트 정상 도전에 나섰어. 그리고 고미영 선수는 많은 사람의 우려 속에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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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좌 완등'의 꿈을 같이 꾸게 된 두사람

등정 후 기분 좋게 하산하는 길, 고미영은 김 대장에게 넌지시 이런 이야기를 했어. "8,000m 14좌 완등이 제 꿈이에요"라고.

당시 8,000m 14좌를 모두 오른 여성은 전세계에 단 한 명도 없었어. 고미영 선수는 아무도 이루지 못한 꿈을 꾸고 있었던 거야. 그러면서 김 대장한테 한가지 부탁을 해.

"대장님이, 제 매니저가 되어 주세요."

'등반 매니저'는 선수가 등반에만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해. 등반 코스를 연구하고, 일정을 짜고, 먹을 식량과 장비를 준비하는 것 등이 모두 매니저의 업무야. 그리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며 등반 과정을 기록하는 것도 매니저의 일이야. 당연히 정산까지 같이 올라가야 해. 오르는 선수와 똑 같은 일을 하는 거야. 사실 고미영은 앞서 혼자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했다가 경험 부족으로 실패를 맛 봤어. 그래서 고산 등반 경험이 많은 김재수 대장한테 도와달라고 한 거지. 등반 매니저가 되어 달라는 이 부탁, 김대장은 딱 잘라 거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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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히말라야를 은퇴할 나이가 지났던 나이였습니다. 47세였으니까 그때 당시에. 등반 매니저를 맡아서, 어떤 사람의 8,000m 꿈을 이뤄줄 만큼의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어요."
-김재수, 당시 원정대장

게다가 김 대장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어서 시간적 여유도 부족했어. 김 대장은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며 고미영에게 충분히 알아듣게끔 상황을 설명했어. 그런데도 고미영은 굽히지 않아. "대장님이 꼭 매니저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계속 부탁했어. 한참 옥신각신 하다가, 고미영이 한 발 물러서면서 "그러면 다음 산까지만 같이 가주세요"라고 부탁했어. 그것까지 거절하기 좀 그렇잖아? 김 대장은 그 한 번은 함께 해주기로 결정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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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사람은 또 다른 8,000m 산, 브로드피크를 함께 오르게 됐어. 두 달 뒤 2007년 7월. 두 사람은 수시로 떨어지는 낙석과 눈폭풍을 해치고 정상에 섰어. 고미영은 당시 심경을 이렇게 적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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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힘을 다해 올랐던 정상을 자꾸만 돌아보았다. 혼자였다면 힘들었으리라. 더불어 사는 인생 함께 가는 파트너가 있기에 가능했다. 원정은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은 김재수 대장과 나의 공통점이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당시 고미영이 쓴 글 中

그럼 김재수 대장의 생각은 어땠을까? 여전히 매니저를 맡을 생각을 안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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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피크에서 저도 생각이 조금 바뀌었죠. (고미영이) 등반에 임하는 자세는 항상 진지했어요. 목표의식이 항상 뚜렷했고, 실제로 등반 가게 되면 '두 번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 '한번으로 끝내겠다'는 집념이 보였죠. 이걸 보면 '할 수 있는 만큼은 도와주자'란 생각을 했어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떤 사람의 꿈을 한 번쯤 이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어떨까? 인생의 선배로서, 한사람의 최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일조를 한다면, 그거 역시 의미있는 일이지 않나. 그래서 브로드피크 이후에 매니저를 맡기로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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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꾸게 된 거야. '8,000m 14좌 완등'이라는 꿈을.

▲ 공무원이었던 그녀가 산을 타게 된 이유

3개월 후, 두 사람은 다음 목표 시샤팡마 정상에 올라. 고미영에게는 이게 4번째 8,000m 산이었어. 사실 고미영의 원래 직업은 공무원이었대. 누구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거지. 22살 봄날, 가평에 있는 명지산으로 야유회를 갔는데, 그 때 본 산이 너무 아름다웠다는 거야. 그 때부터 미영 씨는 전국의 산을 다니기 시작했어.

그러던 어느날, 북한산에 갔다가 갈림길을 마주하게 돼. 왼쪽 길은 백운대 방향, 길이 편해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이야. 오른쪽은 만경대 방향, 길이 험해서 선택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길이야. 그런데 고미영 씨는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오른쪽 길을 택했어. 가파르고 험한 길이야. 운명처럼 그 길에서 본 풍경이 고미영의 눈을 사로 잡았어. 만경대에서 암벽 타는 사람들을 봤고, 그 순간 온 마음을 뺏기고 만 거야. 그렇게 고미영의 암벽등반이 시작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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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북한산 가고, 거기서 암벽타는 모습 보고 완전히 반했다고 하더라고요. 침낭을 챙겨가서 산에서 자기도 하고. 본격적으로 한 몇 년을 그렇게 한 거 같아요."

-고미란, 고미영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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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미영 씨가 처음 산에 다닐 때의 사진이야. 체중이 70kg을 넘었어. 그런데 암벽등반을 시작하고 완전히 바뀌어. 20kg 이상 빼면서 완벽한 근육질 몸매가 된 거야. 오전에는 조깅, 수영, 헬스, 오후엔 인공 암벽에 올라가 구슬땀을 흘렸어. 클라이밍 대회에 나가 입상도 하면서 해외에도 나가게 되니, 직장생활과 병행할 수 없었어. 결국 일을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암벽에 입문하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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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영 씨는 일기에 이런 글을 적었어.

"실패는 고통스럽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을 깨닫는 것은 몇 배 더 고통스럽다. 실패를 웃음으로 넘겨버릴 줄 아는 여유가 인생에서는 중요한 것이다."
-고미영의 일기 中

대부분 자신에게 당부하는 다짐들이야. 이 일기에 자주 나오는 단어들은 '꿈', '노력', '인내', 그리고 '도전'이었어. 그렇게 고미영은 세계적인 선수가 됐어. 그리고 39세가 되던 해, 아무도 이루지 못한 도전을 시작한 거야.

▲ 산에서 동료를 잃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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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4개의 봉우리에 올랐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해. 히말라야에 오르기 힘든 겨울 시즌에도 멈추지 않았어.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에 이어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까지 올라. 아시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올랐잖아? 내친김에 7대륙 최고봉 완등, 세븐 서미츠(Seven Summits)에도 도전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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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거침없이 등정을 이어가는 동안, 고미영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 물건이 있어. 바로, 이니셜 M 자가 새겨진 목걸이야. 첫 등정을 함께 하고 김재수 대장이 선물한 거야. 'M'의 의미는 산(Mountain)의 M, 자신의 이름 미영(Mi-young)의 M이야. 그녀의 꿈을 상징하는 물건이면서, 자신을 지켜주는 부적처럼 생각했던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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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8년 봄, 두 사람의 8,000m 도전이 다시 이어졌어. 세계 4위봉, 로체 등정에 성공한 두 사람은, 곧바로 다음 목표로 향해. 하늘의 절대 군주라 불리는, K2. 칼날처럼 솟은 능선, 예측 불가능한 강풍, 그리고 눈보라까지,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이자, '죽음을 부르는 산'이라 불리는 곳이야. 2008년 8월 1일, 두 사람을 포함한 총 5명의 원정대가 강풍과 눈보라를 뚫고, K2의 가장 높은 곳에 서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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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대는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어. '보틀넥'이란 곳을 지날 때, 히말라야 등반가들이 절대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들어. 바로 '세락'이 무너지는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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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락'은 눈이 모여 커다란 빙벽을 이룬 걸 말해. 크기가 엄청나. 거대한 빌딩 만한 것들도 있어. K2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꼽히는 곳을 지나갈 때, 반드시 이 아래를 지나가야만 하는데 언제 빙벽이 무너질지 몰라. 고미영 씨는 이 아래를 지날 때의 기분을 마치 "러시안룰렛을 하는 기분"이라고 했대. 총알이 언제 발사될 지 모르는 것처럼, 세락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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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락은 지난 54년동안 딱 두 번 무너졌대. 그런데 하필 이날 세번째로 무너져 내린 거야. 거대한 세락이 그 밑을 지나고 있는 원정대를 덮쳤어. 김 대장과 고미영 씨가 지나가고 나서 벌어진 일이야. 그럼 뒤따라 내려오던 원정대원들은 어떻게 됐을까? 이 사고로 한국팀 원정대원 3명과 셰르파 2명, 총 5명이 목숨을 잃었어. 외국팀까지 포함하면 모두 11명이 사망했어. 고산 등반 역사에 꼽히는 최악의 참사가 일어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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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영 씨도) 상당히 충격을 받았고 베이스캠프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우울해했고 힘들어 했어요. 제 눈으로 직접 본 사고였고, 제가 팀을 이끌었을 때 첫번째 사고였기 때문에, 특히 더 힘들었어요. 산이라는 것에 대해, 참 가혹하구나… 항상 대원들이 생각나고, 생각하면 또 가슴이 미어지고 그러죠."
-김재수, 원정대장

등반을 함께 하는 동료들은 가족과도 같은 존재야.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극한의 상황 속 믿고 의지하는 존재니까. 후배들을 잃은 김재수 대장은 그 충격으로 산을 떠날 생각까지 했어. 그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바로 고미영 씨였어. "여기서 포기하면 먼저 간 후배들은 어쩌냐, 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힘을 내셔야 한다"는 고미영의 말에, 김 대장은 고민 끝에 49제를 마치고 다시 짐을 쌌어.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로 한 거야. 그렇게 두 사람은 7번째 산, 마나슬루로 향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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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4일. 늦어진 일정 탓에 강추위가 앞을 가로막아. 코와 발에 동상을 입었지만, 결국 정상에 올라. 두 사람이 그 정상에 두고 온 게 있어. K2에서 영면한 세 후배들의 사진을 묻고 왔대. 영혼이라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 서로의 몸에 묶은 로프…위기에도 꺾이지 않았던 마음

8,000m 14좌 중에서 7좌를 등정하자, 언론의 관심은 더 뜨거워져. 14좌를 모두 오른 인물은 전세계 14명. 그 중 여성 산악인은 한 명도 없었어. 누군가 해낸다면 역사에 남는 거야. 전세계에서 고미영을 주목하기 시작했어. 언론사의 인터뷰, 행사가 줄을 이어. 그런데 인터뷰를 하던 그녀가 김대장을 보더니 눈물을 흘리더래. 대장님이 "왜 우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해.

"등반을 준비하고 코스를 정하고 다 대장님이 하잖아요. 난 그저 이를 악물고 정상에 오를 뿐 인데, 나 혼자만 그 영광을 차지하는 거 같아서, 너무 미안해요."

김재수 대장은 매니저야. 정상에 오른 고미영 씨를 찍은 카메라 뒤에는 늘 김재수 대장이 있었어. 그녀가 무사히 산을 오를 수 있도록, 또 무사히 내려올 수 있도록, 그림자 역할을 해 온 거야. 하지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화려한 행사장에서 그는 주인공이 아니지. 그게 미안하다며, 고미영 씨는 늘 김재수 대장에게 감사인사를 돌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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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대장은 그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마웠대. 함께 오른 봉우리가 늘어날수록 두 사람의 신뢰도 점차 두터워졌어. 그리고 운명의 2009년. 봄이 되자 두 사람은 다시 히말라야로 향해. 세계 5위 마칼루, 세계 3위 칸첸중가, 세계 7위 다울라기리까지. 봄 시즌에만 3개의 8,000m 봉우리에 올라. 한시즌 최다 세계 신기록을 세운 거야. 물론, 아찔한 고비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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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울라기리 때 한번에 정상에 가고자 시도했었는데 거의 8,100m까지 갔다가 다시 철수했어요. 날이 너무 안 좋아가지고. 이래서 사람이 죽는구나를 느꼈어요. 고미영 씨가 환상, 환각, 환청이 들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큰 바위를 보고 '텐트가 있다'고 그러고. 그 바위 위로 반짝반짝 별이 빛나니까, '사람들 있는 불빛이 보인다'고 그러고..."
-김재수, 원정대장

고소 증상, 즉 산소부족으로 감각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거야. 게다가 악천후 때문에 체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야. 김재수 대장은 "정말 큰일 났구나" 싶었대. 심지어 이들을 도와주던 셰르파는 포기하고 먼저 산을 내려가버렸어. 현장에는 두 사람만 남게 된 거야. 절체절명의 상황, 두 사람은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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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프를 한 2m 정도 절단했죠. 그리고 고미영 씨하고 저하고 몸을 묶었습니다. 묶어서 같이 하산하면서 (고미영) 뒤에서 내려오게 됐죠."
-김재수, 원정대장

등반 대원끼리 로프로 연결하는 걸 '안자일렌'이라 불러. 누군가 추락하더라도 다른 대원들이 붙잡아 주는 건데, 다섯명 이상이 되어야 한 사람을 지탱할 수 있대. 그런데 단 둘이서 안자일렌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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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한 사람이 앞에서 추락하거나 뒤에서 추락한다면, 그건 같이 희생당하는 방법 밖에 없지. 지쳐서 더 이상 갈 수 없어 앉아 있을 때면, '같이 옆에 앉아서 죽어 줄게'. 그러니까 그냥 이야기하자면,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 그런 심정이죠."
-김재수, 원정대장

극한의 상황이지만, 절대 실수하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고, 우리 둘 다 같이 무사히 내려가자는 단단함 마음. 그 덕분인지 두 사람은 무사히 캠프까지 내려왔어. 이대로 철수를 할지 고민하던 때, 고미영 씨는 "이대로 포기하지 말고 한 번 더 시도해보자"라고 말했어. 그 위기를 겪고도 고미영은 꺾이지 않았던 거야.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정상에 도전했고, 결국 등정에 성공해. 이로써 두 사람은 14좌 중에 10개의 산을 등정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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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춰진 고미영의 도전

김재수 대장과 고미영 씨는 휴식을 취하고 다음 산에 올라. 이번에는 세계 9위봉, 낭가파르바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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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에는 '킬러 마운틴'이라는 별명이 있어. 등정 난이도가 높고 위험해서 많은 산악인을 집어 삼킨, 이른바 '악마의 산'이야. 이 산이 얼마나 오르기 힘든지 보여준 일화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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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29세의 헤르만 불이라는 사람이 최초로 낭만파르바트에 올랐어. 그는 홀로 낭가파르바트 정상에 도전했고, 오랜 시간 눈 폭풍을 뚫고 사투 끝에 정상에 올랐어. 문제는 그 때부터였어. 내려가기에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고, 눈보라는 심해지고 기온은 뚝뚝 떨어졌어. 게다가 아무런 장비도 지니고 있지 않았대. 그는 앉을 공간조차 없는 비좁은 공간에서 선 채로 밤을 지새웠고, 우여곡절 끝에 날이 밝자 캠프로 내려왔어. 내려온 그를 보고 동료들은 깜짝 놀랐어. 헤르만 불의 모습이 완전 달라져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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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41시간 만에, 29살 청년이 노인으로 변해버린 거야. 그만큼 낭가파르바트에 오른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닌 거야. 이런 산이 김재수 대장과 고미영의 다음 목표야.

등반은 순조로웠어. 베이스 캠프를 떠나, 캠프1, 캠프2, 캠프3, 마지막 캠프4에서 정상 등반에 나섰어. 수직에 가까운 급경사, 허벅지까지 쌓인 눈을 온 몸으로 헤쳐 나갔어. 거기다 갑자기 강풍까지 몰아쳐. 이렇게 힘겹게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니, 더 갈 데가 없어. 어느새 가장 높은 곳에 서게 된 거야. 2009년 7월 10일, 드디어 11번째 봉우리 낭가파르바트 정상에 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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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문제가 생겼어. 야간에 하산하게 됐는데 날씨가 급격히 나빠져. 눈보라 때문에 한치 앞도 안 보여. 짐을 지고 가던 포터까지 이상증세를 보여. 저산소증으로 착란증이 일어난 거 같아. 심지어 무전기까지 말썽이야. 베이스캠프와 교신을 할 수가 없어.

간신히 캠프4까지 내려왔지만, 모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야. 거기서 간단하게 차 한잔 마시고, 김재수 대장은 안전을 위해 미리 설치해 둔 고정 로프를 확인하려고 먼저 산을 내려왔어. 도중에 로프가 없는 구간이 5m 정도 있었지만, 특별히 위험한 구간은 아니었어. 먼저 캠프2에 도착한 김재수 대장은 물을 끓이기 시작해. 곧 도착할 지친 대원들에게 따뜻한 차를 주려고 한 거야. 그런데 다른 원정대의 셰르파가 김 대장에게 이상한 소리를 해. "당신네 대원, 좀 전에 아래로 떨어졌어요"라고. 김 대장은 무슨 소리냐고 다시 물었어. 그랬더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져. 고미영이 추락했다는 거야.

꼬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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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지점은 캠프2에서 불과 100m 거리였어. 고정 로프가 없던 5m 구간에서 사고가 난 거야. 다른 대원들이 발로 디딜 곳을 만들면서 내려갔는데, 가다가 뒤를 돌아봤을 때, 휘청 하면서 넘어지는 고미영의 모습이 보였다는 거야. 황급히 붙잡으려 했지만 닿지 않았고, 손 쓸 새도 없었대. 경사면으로 미끄러져 내려간 그녀는 1,500m 협곡 아래로 사라지고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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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제가 받았던 충격, 마음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불과 몇 미터 사이에서 이렇게 된다는 게…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진 거예요."
-김재수, 원정대장

아무도 예상 못한 사고. 실종 소식은 바로 가족들에게 전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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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제가 연락을 받았거든요. 실종됐다고 그러니까, 진짜 가슴이 쿵쾅쿵쾅 뛰면서, 말이 안 나왔죠 더 이상. 뉴스를 켜니까 (실종 소식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고미란, 고미영 언니

"그 뒤에 김재수 대장님이 전화 왔더라고요. 대장님이 우시니까… 우리도 울고 그랬죠."
-고석균, 고미영 오빠

고미영 씨가 처음 고산 등반에 도전했을 때, 로프가 끊어져 추락한 적이 있었대. 그때, 척추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고도, 그 몸을 이끌고 정상에 올랐던 사람이야. 그녀는 걱정하는 가족들한테 늘 이렇게 말했대. "난 절대 안 죽어. 혹시 그런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올 테니까 걱정마"라고. 가족들은 그 말을 믿고 싶어서 실낱 같은 희망을 놓지 않았어.

헬기를 동원해 수색을 시작했어. 히말라야에서 실종자를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비슷한 거야. 세 번을 수색했지만, 흔적조차 찾지 못했어. 보다 못한 김재수 대장이 직접 헬기를 탔어. 사고지점을 돌며 찾아봤지만, 역시 보이지 않아. 이제 연료가 부족하다고, 돌아가야 한대서 할 수 없이 돌아가려던 그때,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더래. 김재수 대장은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어. 그런데, 뭔가가 눈에 들어와. 저 가파른 경사면 위에 뭐가 있어. 자세히 보니, 하늘색이야. 바로 그녀가 입고 있던 옷 색깔이야.

꼬꼬무

가까이 가보니, 맞아. 새하얀 눈 위로 고미영이 보여. 정상을 바라보는 자세로 누워 있었어. 고미영이 실족한 곳은 캠프2 부근으로, 6,200m 지점이야. 발견된 곳은 캠프1 부근, 5,300m 지점이야. 무려 1,000m 가까이 추락한 거지. 생존을 기대하긴 힘든 상황이야. 그런데 시신 수습도 쉽지 않아. 히말라야에는 등반가의 시신이 등산로 곳곳에 남아있어. 데려가고 싶어도 데려갈 수가 없거든. 심지어 고미영이 있던 곳은, 깎아지듯 가파른 경사면이라 헬기도 접근하기 어려워. 게다가 갑자기 눈보라가 불어와서 구조작업은 중단되고 말았어. 그렇게 며칠이 지나, 살아있을 거란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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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대장과 대원들은 어떻게든 고미영 씨를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가 있는 곳으로 향했어. 쉴새 없이 낙석이 쏟아지고, 언제 눈사태가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야. 다들 목숨을 걸고 구조에 나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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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까지 등반하면서 제일 위험을 느꼈던 때가 그때였던 거 같아요. 그 지역이 얼음벽에 돌들이 박혀있는 데 예요. 머리만한 돌들도 있고 주먹만한 돌도 있고. 근데 햇빛이 나니까 이 돌들이 다 떨어져 나가는 거예요. 다 지나가더라고요. 제 옆으로."
-문철한, 당시 원정대원

그렇게 목숨 걸고 수습한 고미영 씨의 시신을 팀원들이 번갈아 안고 절벽을 내려왔어. 이때 걸린 시간이 무려 13시간. 오랜 시간이 걸린 끝에 시신을 수습한 대원들은 목놓아 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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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혼자 내려와서… 정말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닌 거 같습니다. 여러 사람들한테 피해도 많이 줬고… 너무 힘듭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데리고 갈 수 있다는 게 조금 위안은 되는데. 내 평생 어떻게 삽니까. 이래가지고…"
-김재수, 당시 원정대장

김재수 대장은 고미영 씨의 유해와 함께 한국에 돌아왔어. 그리고 장례식 내내 고미영 씨의 곁을 지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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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많이 했어 이제 편하게 쉬어. 정말 미안해. 내가 약속 못지켜서…"

그가 슬퍼한 이유는 약속을 지키지 못 해서였대. 8,000m에서 단둘이 남게 됐을 때, 안자일렌을 묶으며 했던 그 약속. 누가 되든, 혼자 죽게 놔두지 않겠다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후회였어.

그렇게 고미영의 도전은 11번째 봉우리에서 멈추고 말았어.

▲ 결국 지켜낸 마지막 약속

두 달 뒤, 김재수 대장은 인천공항을 찾았어. 그의 목에는 낯익은 목걸이가 걸려있어. 첫 등정을 마치고 고미영에게 선물했던, 고미영이 마지막까지 지니고 있던 그 M 목걸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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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장은 고미영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새로운 약속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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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남았으니까. 그 어떤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라도 나머지 세 개 봉우리에 대해서는 정말 안전하고 완벽한 등반을 하면서 당신에게 8,000m 14개 봉우리를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있다면 지켜봐주십시오…"
-김재수, 당시 원정대장

그녀의 유품을 목에 건 김재수 대장은 안나푸르나로 가려는 거야. 다른 산악인들은 모두 말렸대. 지금 그 마음 상태로 가면 위험하다고. 하지만 아무도 김 대장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어. 낭가파르바트에서 함께 했던 문철한 대원도 함께 가기로 했어. 그렇게 김 대장은 고미영 씨가 오르지 못한 나머지 3개의 봉우리에 오르기 위해, 먼저 안나푸르나로 향했어. 김재수 대장은 고미영의 사진을 옷 왼팔에 넣었어. 그녀와 함께 한다는 의미로.

아까 초반에, 안나푸르나에 오르다가 눈사태를 맞았던 대원들 기억나지? 그게 바로, 김재수 대장과 대원들이 고미영 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안나푸르나에 오른 거야. 그럼 눈사태를 맞은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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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당시, 안나푸르나에 함께 했던 문철한 대원의 실제 헬맷이야. 깨진 헬맷만 봐도, 당시 눈사태가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이 가지?

결국 두 사람은 안나푸르나를 뒤로하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어. 그래도 포기는 몰랐어. 어떻게든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2010년 여름, 김재수 대장은 또 다른 8,000m인 가셔브룸 1봉, 2봉 정상에 올랐어.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고미영의 사진을 묻었어. 혼자가 아닌 함께 정상에 올랐다는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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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산은 하나, 뼈아픈 실패를 맛봤던 안나푸르나야. 두 사람의 약속을 완성하는 종착지였어.

2011년 봄. 김재수 대장은 다시 한 번 안나푸르나에 도전해. 밤새 내린 눈 때문에 한걸음을 내딛는 것도 천근 만근 무겁게 느껴져.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지만 멈출 수 없어. 한 걸음은 고통, 한 걸음은 희망. 그렇게 주문을 외우면서 걸음을 옮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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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저 앞에, 정상이 보여. 김재수 대장은 그 자리에 멈췄어. 그동안 함께 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 생각에 눈물이 울컥 차올라서 앞이 잘 보이지 않더래. 잠시 후 다시 걸음을 내걸었고,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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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 대원 안나푸르나 정상에 섰습니다. 많이 성원해주고 도와준 많은 분들 고맙게 생각하고… 약속을 지키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김재수, 원정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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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m 14좌 완등. 그녀의 못다한 꿈은 김재수 대장이 이어받았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게 된 거야.

김재수 대장은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14좌를 완등한 인물로 이름을 올리게 됐어. 비록 고미영은 11번째 봉우리에서 멈춰 섰지만, 그녀의 꿈을 이어 받아 마침표를 찍게 된 거야. 모든 여정을 마친 김재수 대장은, 뭔가를 유족들에게 돌려줬어. 바로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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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영의 목걸이야. 고미영이 사랑했던 산 Mountain의 M,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 Mi young의 M. 언젠가 고미영은, "왜 산에 오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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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제가 좋으니까 가는 거고. 그리고 제가 잘할 수 있는 거니까 가는 거고. 산에 가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드냐, 전 엄마의 품속 같다고 이야기 합니다. 거기 안겨 있으면 떠나고 싶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고 싶고. 언제든 다른 데 열심히 다니다가 안겨도 언제든 안아주는 그런 엄마의 품 속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고미영 씨와 김재수 대장의 관계는, 처음에는 원정대장과 대원, 그 후에는 14좌 도전자와 매니저, 그리고 같은 꿈을 꾸는 동반자였어. 이들 사이에는 그 무엇보다도 단단한 유대감이 있었어. 김재수 대장은 말해, 고미영 씨를 잊고 싶지 않다고.

"잊고 싶지는 않아요. 기억하고 싶어요. 하지만 슬프게 기억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평상시에 웃던 모습, 후배들에게 씩씩하던 모습, 그리고 자신있어 하던 모습. 그런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어요."

8,000m의 높은 산은 보통의 사람이라면 발 디뎌볼 수도 없는 곳이야. 모두들 각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잖아? 어쩌면 그것이 모두가 오르고 싶은 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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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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