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5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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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전애인에게 복수하려고…" 해병대원 죽이고 총기 뺏어간 범인의 황당한 범행 이유

강선애 기자 작성 2023.01.27 11:52 수정 2023.01.27 13:38 조회 6,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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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6일 방송된 '사라진 K2 - 2007 해병대 총기탈취범과의 일주일'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이훈, 최귀화, 그룹 앨리스 멤버 소희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차량 절도, 총기 탈취를 위한 밑그림

때는 2007년 10월.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한 중고차 매장에 한 손님이 그랜저를 타고 왔어.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손님은 "지프차를 보고 싶다"며 매장을 둘러보다가 한 대를 딱 가리켰어. 바로, 이 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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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륜구동 코란도. 당시 뭇 남성들의 로망이던 차야. 차를 시승하고 싶다는 말에 직원은 남자를 조수석에 태우고 시승을 시작했어. 남자는 본인이 직접 차를 몰아보고 싶다고 했고, 직원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운전석에서 내렸어. 그런데 바로 그 때, 남자가 잽싸게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철컥 문을 잠갔어. 그리고는 혼자 차를 몰고 사라져 버렸어. 자기가 타고 온 차는 중고차 매장에 그대로 두고 가버린 남자. 곧바로 경찰에 신고해 차적조회를 신청했어. 그런데, 그가 타고 왔던 그랜저는 이틀 전에 강남에서 도난신고가 된 차야. 훔친 그랜저를 버려두고, 또 다른 차로 코란도를 훔쳐 도망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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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훔쳐간 코란도의 번호는 '경기 나9148'.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CCTV나 목격자가 나오지 않아. 그를 만났던 중고차 매장 직원들을 통해, 그 남자는 '키가 170cm 정도이고 이국적으로 생긴 외모'였다는 증언 정도만 확보했어. 그게 전부였어. 피해자들도, 경찰도, 그땐 미처 몰랐대. 이 연쇄차량절도 사건이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일의 시작이라는 걸.

코란도 절도 사건이 일어나고 2개월이 지난 2007년 12월 6일. 이천에서 도난된 코란도 차량이 두 달 뒤에 강화도에서 발견됐어. 그런데 차에 변화가 생겼어. 이걸 봐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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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번호가 '9148'에서 '9118'로 바뀌었어. 그리고 차량 앞에 '캥거루 범퍼'라고 검은색 구조물이 장착됐어. 캥거루 범퍼는 보통 범퍼보다 충돌했을 때 9배 정도의 충격이 가해진대. 그럼 이게 단순히 차량 절도가 아니라, 뭔가를 칠 목적으로 훔쳐갔을 가능성이 높아. 차량 절도범의 진짜 목표는, 바로 이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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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5시 50분쯤 인천 강화군 초지리 어시장 앞 도로에서 괴 차량이 군 초병 2명을 치고 총기와 실탄을 탈취해 달아났습니다. 사고를 낸 차량은 구형 코란도로 도로를 따라 걷던 두 병사를 뒤에서 들이받은 다음 총기 1정과 실탄 75발 유탄 6발과 수류탄 1발을 탈취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내용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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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의 진짜 목표는 바로 이거, 총이었어. 유효사거리 600m, 최대 사거리 3,300m인 K2 소총. 그리고 실탄 75발, 유탄 6발, 거기에 살상반경이 15m인 수류탄까지 가져갔어. 군인, 그것도 해병대를 공격하고 이 많은 무기를 탈취해 간 거야. 이 무기를 가져간 사람이 민간인을 상대로 테러를 저지를 지도 모르는 일촉즉발 상황이야. 군과 경찰은 달아난 범인을 찾기 위해 총력을 쏟았어. 강화도 진출입을 다 막고 강도 높은 검문 검색을 벌였어.

그런데 사건 발생 5시간 후, 강화도에서 90km 떨어진 경기도 화성에서 "논에 불이 났으니 빨리 와서 꺼달라"는 신고전화가 접수됐어. 용의 차량인 코란도가 불에 탄 채로 발견된 거야. 범인이 차에 불을 지르고 도망간 거지. 전소된 차량을 정밀 수색 했는데 탈취한 무기는 하나도 없었어. 그리고 캥거루 범퍼도 떼어 갔고, 범인의 지문 하나 남아있지 않았어. 이 모든 게, 겨우 5시간만에 벌어진 일이야. 범인은 검문검색을 비웃기라도 한 듯 화성까지 넘어가서 차량을 불에 태우고 종적을 감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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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상 무기를 지닌 범인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니, 어떻게든 빨리 범인을 잡아야 해. 수도권 일대에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어. 군경은 사건 당일 코란도의 행적부터 살폈어. 사건 당일 오후 5시 40분, 범인은 강화도 초지리에서 총기를 탈취하고 2분만에 강화도를 벗어났어. 검문검색 실시 전에 이미 강화도를 떠난 거야. 그리고 6시 10분 김포시 양곡리를 지나, 7시 10분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해 도주했어. 7시 38분, 청북톨게이트를 통과한 후 10시 40분 화성시에서 전소된 코란도가 발견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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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범인의 얼굴을 확인해야해. 톨게이트 지날 때 통행료를 내잖아? 청북톨게이트 요금소 직원이 범인을 본 것 같대. 코란도 한 대가 톨게이트를 그냥 통과하려고 해서 급히 차를 세웠다는 거야. 운전석의 남자는 우비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고개를 돌리지 않고 팔만 뒤로 내밀어 돈을 전달했대. 그래서 직원이 남자의 얼굴을 못 봤다는 거야. 톨게이트엔 CCTV도 있잖아? 당장 확인했어. 그런데 남자의 코와 입, 얼굴 일부분만 찍혔어. 우비를 쓰고 햇빛 가리개를 내리고 각티슈까지 앞에 뽑아 놓아 CCTV 촬영에 대비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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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만으로 범인의 얼굴을 알기는 힘들어. 근데, 놈의 얼굴을 확실히 본 사람이 있어. 얼굴을 본 유일한 사람, 범인에게 총을 뺏긴 해병대원들이야. 총기를 탈취당한 그날, 해병대 병사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극악무도한 범인, 안타깝게 희생된 군인

사건이 일어난 곳은, 강화도 안에 소황산도라는 곳이야. 2007년 그날을 기억하는 소황산 분초 대원들이 이번에 '꼬꼬무'를 통해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어.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직접 들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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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봄쯤인가 소황산 분초로 저희가 들어간 걸로 기억해요. 그 사건이 터지면서 아주 지옥 같은 동네구나..."

-송명근, 당시 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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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당사자였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내가 나갔다면 상황이 달랐을까. 그런데 여러 번 생각해 봐도, 오히려 저는 저렇게 못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박정환, 당시 병장

이분들은 분초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었어. 분초는 인원 10명 정도의 작은 내무반이라 생각하면 돼. 강화도를 둘러싼 해안선이 길어서 군인을 소규모로 나눠 배치하는 거야. 적은 인원이다 보니 시설은 열악해. 하지만 대한민국 해병대야. 차가운 바닷바람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켰어. 사건이 터진 12월 6일 저녁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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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7개월차인 박영철 일병, 당시 20세였어. 해병대는 100% 자원입대야. 대구가 고향인 박 일병은 해병대에 오려고 두 번이나 도전했어. 해병대를 나와 훌륭한 경찰이 되는게 꿈이었대. 그리고 입대를 서두른 또 하나의 이유, 누나까지 두 사람의 등록금을 내야하는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었대. 박 일병은 군 월급마저 모아서 집에 보내던 효자였어.

박 일병과 함께, 전역 2개월 앞둔 이 병장이 근무를 나갔어. 바닷가 앞이라서 뼈가 시린 강화도. 추위에 대비해 군복 안에 내복을 껴입고 귀에는 귀마개, 온몸을 핫팩으로 무장했어. 그리고 총과 탄통을 매고 근무에 나섰어.

분초원들은 차가 없어서, 30~40분 정도 걸어서 이동해야 해. 이날 박 일병과 이 병장이 근무를 설 곳은, 제일 끝에 위치한 초소였어. 오후 5시 30분. 갯벌 위 제방도로를 두 병사가 걷고 있어. 하늘에서는 진눈깨비가 날려. 하얀 눈을 맞으며 걷는 박 일병과 이 병장. 근데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어. 바로, 코란도 그 놈이야.

코란도가 천천히 움직여 두 병사들과 점점 가까워져. 그러더니 코란도가 두 병사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해. 순식간에 박 일병을 치고 곧바로 조금 앞에 있던 이 병장까지, 두 병사를 뒤에서 들이 받았어. '캥거루 범퍼'를 단 차량에 치인 두 사람은 붕 떠서 길바닥에 나가 떨어졌어. 박 일병은 의식을 잃었고, 이 병장은 몸을 못 가눠. 이때까지만 해도, 단순한 교통사고라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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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색 모자를 눌러쓰고, 베이지색 사파리를 입은 남자가 차에서 내리더니 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채로 이 병장에게 다가와. 그리곤 "죄송합니다. 어디 다친데 없어요?"라고 말을 걸었어. 이 병장은 그 남자가 자기를 부축하러 온 줄 알았어. 이 병장을 살펴보던 남자가 주머니에서 한쪽 손을 쓱 빼는데, 뭐가 번쩍해. 25cm 정도 길이의 칼이었어. 안심시키는 척 하면서, 그 칼로 공격한 거야. 범인은 이 병장의 총을 뺏으려고 손과 허벅지를 마구 공격하기 시작해. 이 병장은 칼에 찔리면서도 총을 지키기 위해 계속 막아섰어. 개머리판으로 놈의 머리를 내리쳤어. 그 바람에 놈이 쓰고 있던 모자가 날아갔어. 이 병장의 눈에, 범인의 얼굴이 들어왔어. 그런데 그 순간, 놈이 칼로 이 병장의 얼굴을 공격했어. 그리고 이 병장을 발로 차서 길 아래 갯벌로 밀어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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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이 아니야. 놈은 쓰러진 박 일병에게 다가갔어. 소총을 뺏으려는데, 소총 끈이 박 일병의 손목과 팔에 칭칭 감겨있어. 순간 의식이 돌아온 박 일병이 총을 뺏기지 않으려고 소총 끈을 잡고 버틴거야. 계속 총을 잡고 버티니까, 놈은 다른 쪽 주머니에 있던 두번째 칼도 꺼냈어. 박 일병의 등, 허벅지, 옆구리 등 무려 7군데를 찔렀어. 그렇게 범인은 이 병장에게서 소총, 박 일병에게서 탄통을 빼앗아 도망갔어.

아까부터 내리던 눈은 비로 바뀌고, 두 병사는 그 빗속에서 의식이 흐려졌어. 얼마 후, 인근 주민이 두 사람을 발견해 신고했어. 그리고 분초 대원들이 현장으로 출동했어. 그 독한 훈련을 해 온 해병대원들도 도무지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동료들을 눈 앞에서 보고 충격에 빠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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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일병과 이 병장은 인근 병원으로 급히 후송됐어. 이 병장은 수술을 받고 다행히 목숨을 건졌어. 그런데 7군데나 찔린 박 일병은 끝내 숨을 거뒀어.

"강화병원 가기 한 10분 전인가. (영철이가) 누워있었는데, 손이 떨어지더라고요."
-박정환, 당시 병장

"영철이가 하늘에 먼저 갔다. 먼저 갔다고 그 얘기를 들었어요."
-송명근, 당시 상병

피를 흘리면서도 마지막까지 총 끈을 놓지 않았던 박영철 일병. 20살 너무 어린 나이에 그렇게 희생됐어. 차로 뒤에서 치고, 칼까지 휘둘러 총을 빼앗아 간 범인.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한 걸까?

▲ 되찾은 무기

며칠 뒤 경찰 조사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어. 범인의 코란도가 사건 2주 전에 강화도에 수차례 다녀간 게 확인된 거야. 진짜 치밀하게 준비한 범행이란 말이지. 특히나 끝에 있는 초소는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인데. 범행 수법이나 행적을 봤을 때, 경찰은 범인이 이 부대 전역자일 것이라 추측했어. 그런데 이 부대를 전역한 사람은 만명도 넘었어. 그걸 다 수사하기엔 시간이 부족해.

용의자를 좁힐 만한 단서를 찾았어. 하나는 격투 중 현장에 떨어진 범인의 모자. 또 이 병장이 휘두른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은 범인도 부상을 입었으니, 어딘가 혈흔이 묻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 병사의 소지품을 정밀 감식했어. 감식결과, 딱 한 군데에서 다른 사람의 DNA가 발견됐어. 바로 박 일병의 귀마개. 박 일병이 범인과 몸싸움 할 때 혈흔이 묻은 거야. 이 귀마개와 이 병장의 기억을 토대로, 범인의 신상이 좁혀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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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의 혈액형은 AB형, 키는 170~175cm 사이의 30대 남자. 용의자 몽타주를 만들어 전국에 수배했어. 이후 제보전화가 계속 들어오는데 범인은 나오지 않아. 무기를 갖고 있는 범인이 계속 안 잡히고 있으니, 국민들은 불안하지. 게다가 이때 2007년 12월에는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어. 총기탈취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태안 앞바다에서 기름 유출 사고가 있었고, 또 17대 대통령 선거가 코 앞이야.

당시 이명박 후보 측이 이 사건에 바짝 긴장했어. 사건 3일 전에 유세하다가 계란을 맞는 일이 있었는데, 한나라당 사무실로 이런 협박전화가 걸려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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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총기탈취범이라 하면서, 이명박 후보와 김종필 전 총재를 보면 위해를 가하겠다고…"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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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후보는 야외 유세를 전부 취소하고, 인근 건물 옥상에 저격수까지 배치했어. 이 후보 본인은 방탄복까지 입었대.

사건발생 6일째, 범인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해. 경찰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안 나와. 그런데 이날, 아주 의외의 곳에서 끊겼던 범인의 흔적이 발견돼. 바로 부산에서 이런 편지가 발견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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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 보내주세요. 총기탈치범입니다'라고 쓰여있는 편지가 부산 연제구의 한 우체통에 들어 있었어. 맞춤법도 틀리고, 어린 아이가 쓴 글씨 같은 느낌이야. 게다가 편지 내용도 희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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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번 총기사건의 주범입니다. 먼저 저의 잘못으로 희생된 일병의 죽음에 큰 사죄를 드립니다. 이에 책임을 지고 자수를 하고자 결심했습니다. 먼저 총기는 고속도로 백양사 휴게소 지나자마자 옆 가에 버렸습니다. 민간인으로부터 모자 혈액 등 구입, 범행현장에 방치 수사망을 돌림. 이로 인해 선량한 시민에게 피해를 준 점 사과드립니다. 군의 민간범죄참여로 삼권 분립의 의미를 무색케 했으며, 한국식 민주주의가 또 다시 5.18 광주사태와 같은 일, 또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살인을 범했지만 최소한의 인권을 존중해 주시길 바라며…"
-범인이 보낸 편지 내용 中

자기가 범인이고, 총을 버렸다는 내용. 그리고 경찰이 찾은 단서는 자기 것이 아니라는 얘기야. 어려운 말을 쓰며 횡설수설하는 부분도 많아. 이 편지, 진짜일까? 확인은 해봐야지. 군경이 장성의 백양사 휴게소로 출동했어. 천여명이 투입돼 주변을 샅샅이 뒤졌어. 과연, 총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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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연제구 우체통에서 '총기 탈취범입니다'라는 편지를 발견하여, 전일 20시경부터 수색을 시작하여 금일 8시 40분경 백양사 휴게소 200미터 부근 수로 내에서 K2 소총 1정, 실탄 75발, 유탄 6발, 수류탄 1발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로써 강취 피해품 전부를 회수하였습니다."
-김철주, 당시 인천지방경찰청장

범인이 쓴 편지가 맞았어. 그럼 편지를 보낸 진짜 이유는 뭘까? 알 수 없는 범인의 행동. 근데 사건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풀리기 시작해.

▲ 어이없는 범행의 이유

편지에서 범인의 지문이 나온 거야. 채취한 지문에 의해서 피해자 인적 사항이 특정됐어. 국과수에서 대조한 결과, 용산구에 거주하는 한 남성의 지문과 일치해. 남자는 35세 조 모 씨. 주민등록정보에서 조씨의 얼굴 사진도 확인했어. 곧장 용산서에 용의자 검거 지시가 떨어졌고, 경찰들은 조씨 검거 작전을 준비했어.

사건 발생 일주일째인 12월 12일. 조씨가 종로에 나타날 거란 정보를 입수한 경찰은 휴대폰 실시간 위치를 확인해 주변을 포위하다시피 둘러쌌어. 오후 3시, 조씨가 나타날 시간이야. 바로 그때, 한 남자가 귀금속 상가에서 걸어나와. 살펴보니까, 사진 속 그 남자야. 경찰이 다가가 조씨 본인이 맞냐고 물으니, 남자가 도망가기 시작해. 경찰들이 쫓아가 그를 잡았어. 강화도 해병대 총기탈취 용의자 조씨는 일주일만에 그렇게 서울 한 복판에서 검거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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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를 공격해 총기를 탈취한 범인은 예상 외로 체격이 왜소했어. 범인은 북에서 침투한 간첩도, 해병대 전역자도, 특수부대 출신도 아니었어. 조씨는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했고 대학원을 졸업한 후 보석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어. 평소엔 온순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주변 사람들도 조씨가 총기 탈취범일거라 상상도 못 했대. 그런데 조씨의 방에서, 아무도 몰랐던 진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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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의 수첩에서는 캥거루 범퍼 설계도가 나왔어. 금속공예를 전공한 조씨가 직접 만들어 코란도에 설치했던 거야. 그리고 차량 번호판도 본인이 직접 위조를 했어. 근데, 더 충격적인 게 있었어.

"우라늄 235, 24만명 폭약, 16시간 불바다, 6천도 태양 겉 온도, 30만명 리틀보이, 우주전쟁, 수소폭탄, 원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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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의 메모에는 북한 관련 내용이나 원자폭탄 같은 무기에 관련된 내용이 수두룩 했어. 전문가들은 조씨가 과대망상적인 사고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어. 또 조씨의 집에서 공기총과 전기충격기 등 다양한 무기들이 발견됐어.

조씨의 인터넷 블로그에서는 스스로 다중인격이라고 주장하면서 적개심과 두려움을 토로한 글들이 나왔어. "때때로 느끼는 이 기분은 뭘까. 적개심. 그 속에 내재된 방어본능", "목적 달성에 대한 강력한 본능적 욕구 그런 걸까. 아니면 또 다른 내면의 자아일까? 난 다중인격일까?" 등의 글을 적으며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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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는 범행을 인정했지만, 총기 탈취 이유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어. 그냥 충동적인 범행이라고 주장했어. 궂은 날씨에 강도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흉기를 갖고 강화도를 배회했다며,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했어.

전문가들은 조씨가 정상적인 심리상태가 아니거나, 평소에 상당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어. 경찰은 계속 조씨를 추궁했고, 결국 조씨가 이유를 털어놨어. 조씨가 총기를 탈취한 진짜 이유는, 애인과 헤어진 뒤 세상이 주목할 범죄를 저질러 보겠다고 꾸민 단독 범행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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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보도될 수 있을 만한 대형 사고를 일으켜서 그것으로 인해 자신이 파멸하는 모습을 전애인에게 보여줌으로써 전애인이 고통을 받는 복수를 하기 위해 범행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전병창, 당시 해병대 헌병단장

범행 장소를 강화도로 택한 건, 조씨가 평소 그 쪽으로 자주 낚시를 다녔는데, 병사들이 총을 들고 도보로 이동하는 걸 봐 왔거든. 코란도가 불탄 화성에는 조씨의 개인창고가 있었어. 도주 후 창고에 숨어서 범퍼도 떼고 총기도 숨겼어. 그리고 인근 논으로 코란도를 끌고 가서 불을 지르고 도망간 거야. 이후 뉴스를 계속 보며 상황을 파악한 조씨는 범인의 DNA가 확보됐단 소식을 듣고 총을 버리기로 결심했대. 그리고 자가용, 버스, 기차 등을 갈아타며 총을 들고 전남 장성까지 간 거야. 황당하게도 단 한 번도 검문검색에 걸린 적이 없대. 총을 버리고 난 뒤 수사에 혼란을 주기 위해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었어. 편지를 쓰면서도 단서를 남기지 않기 위해 장갑을 끼고 왼손으로 썼어. 그런데 편지를 부칠 때 맨손으로 만지며 지문이 남은 거야.

▲ 납득하기 어려운 감형, 우리가 기억해야 할 희생

전애인에게 자신이 파멸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죄 없는 병사를 해치고 온나라를 혼란에 빠뜨렸어. 대한민국 전체가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박영철 일병의 영결식이 치러졌어. 사건 당일, 대구에서 올라온 박일병의 부모님은 변변한 상복도 못 챙겨 입으시고 아들의 장례를 치러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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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죽었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진눈깨비가 오고 비가 오고 이랬으니까.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몇키로를 달려 갔는데. 마지막 모습은 눈 감은 거 밖에 못 봤습니다."

-박종영, 故박영철 일병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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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 유가족과 해병대 동료들의 눈물 속에 박일병의 영결식이 거행됐어.

조씨는 민간인 신분이지만 군 무기를 탈취하고 군인을 해쳤기 때문에 군사법정으로 넘겨졌어. 군 형법상 군인을 공격하는 건 무기징역에서 사형까지 내려질 수 있는, 국가안보를 흔드는 중대한 범죄야. 조씨는 초병 살해 및 상해, 총기 탈취 혐의로 사형이 선고됐어. 법정 최고형이야.

그런데 조씨가 항소했어. 2심에선 조씨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됐어. 판결문엔 이렇게 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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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의 근무 장소가 민간 횟집과 숙박업소가 산재하고, 민간인의 통행이 자유로운 곳인 점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이 피해자들이 초병인지 인식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또한, 피고인이 처음부터 칼을 쓰지 않았다는 점 등을 비추어보면 살해할 고의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상당하다. 편지를 써서 총기가 회수될 수 있도록 조치했고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나 병역 의무를 이행하고, 고등교육을 이수하여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피고인이 교화, 개선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에 원심의 사형 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을 징역 15년에 처한다."

초병, 즉 근무중인 군인이 범행 당한 위치가 민간인도 통행하는 길이라서 초병살인죄가 아닌, 일반살인죄가 적용됐어. 박일병 유족이 선처하거나 합의한 적도 없는데, 조씨의 15년형은 대법원에서 확정이 났어.

사건 후, 무사히 대통령 선거도 치러졌고, 기름으로 뒤덮였던 태안 앞바다도 국민들 노력 덕분에 예전 모습을 되찾아 갔어. 두 병사가 겪은 피해는 적군과 싸우다가 벌어진 일이 아니란 이유로 조금 더 조용히 묻힌 게 사실이야. 당시 다른 큰 이슈 때문에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이때 가장 비수가 된 말이 뭔 줄 알아? "어떻게 해병대가 총을 뺏기냐"며 피해 병사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이야. 박일병 가족들은 지난 16년간, 재심을 신청하거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도 전혀 못 했대. 내 아들이지만, 나라에 맡긴 군인이니까. 박일병과 우리 군의 명예에 조금이라도 누가 될 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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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 병장이 '이제는 총을 놔도 된다' 그 말을 듣고 영철이가 줄을 놨다고 하더라고요. 자기 목숨 같은 병기를 정말 목숨을 잃어가면서까지 지킨 사람이다. 대단한 사람이다..."

-송면근, 당시 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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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무서웠을 거잖아요. 그 상황 자체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걱정하지 말고 좀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 모든 분초원들이 다 같은 생각이지만, 너는 충분히 잘했고. 진정한 해병이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박정환, 당시 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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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안 좋으면 아들 생각이 나요. 만약에 듣는다면.. 너 자랑스럽다. 죽었지만, 자랑스럽다…말해주고 싶어요."

-박종영, 故박영철 일병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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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취된 무기는 전부 돌아왔지만, 한 명의 군인이자 한 명의 아들이었던 박영철 일병만은 돌아오지 못했어. 박영철 일병은 사망 후 한 계급 추서되어 지금은 고 박영철 상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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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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