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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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사라진 약혼자, 범인은 예비신부 짝사랑한 남자?…김명철 실종 사건

강선애 기자 작성 2022.12.30 13:04 수정 2022.12.30 13:38 조회 7,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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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9일 방송된 '증발한 남자와 쌍둥이 형제'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헤이즈, 개그맨 정성호, 배우 정영주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결혼을 앞두고 사라진 남자

여기, 한 남자가 있어. 이 남자는 이번 '꼬꼬무' 이야기를 위해 특별히 인터뷰에 응했어. 그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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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동안 솔직히, 제가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잠만 자면 자꾸 그때 일이 떠오르고, 불만 꺼도 자꾸 그때 일이 떠오르고 해서 많이 힘들었죠. 무섭기도 했고. 제발 아니기를 아니기를 생각했죠. 후회도 많이 되고, 평생 안고 가야 되겠죠 이 마음을."

이 남자, 왜 이런 후회를 하며 고통 속에 살고 있는 걸까.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해줄게.

때는 2010년 6월 12일 토요일.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한민국의 첫 경기가 있는 날이야. 성남에 사는 명철 씨네 집은 월드컵 분위기가 아닌, 다음주에 있을 큰아들 명철 씨의 결혼 상견례 준비때문에 들떠 있었어. 바로 이 분이 새신랑 명철 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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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32세의 김명철 씨. 기업체 연수 강사로 일하고 있어. 키가 185cm에 체대 출신으로, 운동도 잘해. 게다가 여자친구한테 완전 사랑꾼이야. 예비 신부의 이름은 박현주(가명). 두 사람은 2년동안 사귀다가 결혼하기로 약속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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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명철 씨는 중요한 미팅이 있었어. 현주 씨의 친구인 조상필(가명) 씨가 강사 자리를 소개해주기로 했거든. 예비 아내의 인맥으로 돈 벌 기회가 생긴거야. 명철 씨는 가족에게 "미팅 후 현주와 같이 축구 보고 오겠다"고 말한 후, 집을 나섰어. 오후 4시, 명철 씨는 양복을 입고 미팅 장소로 나갔어.

어느덧 시간은 밤 8시 반이 됐어. 그런데 약혼녀 현주 씨는 명철 씨가 연락이 안돼 불안하기 시작했어. 평소 하루에 수십 통의 전화를 하고, 화장실에 갈 때조차 문자를 보내는 남자친구인데. 축구가 끝날 때까지 아무 소식이 없는 거야.

밤 11시, 바로 그때 명철 씨에게 문자가 왔어. 문자를 본 현주 씨의 표정이 얼어 붙었어. 그 때 받은 문자를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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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말할게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네 과거 알고 나서 만나는 여자 있어. 너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야. 더 이상 너 못 보겠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갑자기 파혼하자고 연락이 온 거야. 그런데 잠시 후에, 명철 씨한테서 전화가 왔어.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명철 씨가 아닌, 모르는 여자였어. 그 여자는 다짜고짜 "나 명철 씨 애인인데. 같이 잠수 탈 거니까 전화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는 끊어 버렸어. 현주 씨는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어.

현주 씨는 바로 명철 씨 여동생한테 전화를 걸었어. 여동생은 오빠가 집에 아직 안 돌아왔다며, 언니랑 같이 있는 거 아니냐고 오히려 물었어. 현주 씨는 낮에 명철 씨와의 업무 미팅을 주선했던 친구 상필이를 찾아갔어. 근데 상필이는 명철 씨와 미팅 후 저녁 7시쯤 헤어졌다고 말했어. 미팅은 성공적이었대. 상필이가 소개해준 최 실장이 명철 씨를 마음에 들어 했고, 같이 일을 하기로 한 후 그 자리에서 계약금까지 주고 받았대.

그런데, 친구 상필이가 현주 씨에게 묘한 얘기를 해. 명철 씨가 핸드폰을 두 개 갖고 있었다며, 이중생활을 의심할 만한 목격담을 전했어. 명철 씨의 파혼 통보 문자, 자신이 애인이라 주장하는 여자와의 통화, 게다가 휴대폰이 두 개였다는 이야기까지. 현주 씨는 혼란스러웠어.

그 시각, 명철 씨의 어머니도 이상한 문자를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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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죄송합니다. 일이 생겨서 당분간 집에 못 들어갑니다. 혹시 빚쟁이들이 집으로 찾아오면 어린 자식이 철이 없어 그렇다 죄송하단 말씀만 해주세요. 진작에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 정리되는 대로 찾아뵐게요."

아들 명철 씨가 빚 때문에 당분간 잠적하겠다는 문자였어. 다음주에 상견례 하기로 한 아들이 갑자기 잠적한다? 이상하지. 가족들은 바로 경찰서를 찾아가 명철 씨를 찾아달라 했어. 그런데 도와줄 수가 없대. 명철 씨는 성인이잖아. 뚜렷한 범죄 혐의점이 없으면 가출인으로 분류된다는 거야. 경찰은 명철 씨가 진짜 여자랑 같이 잠수탔을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니냐며, 일단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말했어. 위치 추적이라도 해달라고 했지만, 그것도 개인정보라 안 된대.

가족들은 명철 씨에게 계속 전화만 걸 수 밖에 없었어. 그런데 신호만 가고 받지를 않아. 며칠 뒤에는 명철 씨를 봤다는 목격자도 나타났어. 미팅 장소 근처에서 어떤 여자랑 차에 있는 걸 봤대. 명철 씨, 어디로 간 걸까?

▲ 드러나는 진실

주변 사람들은 명철 씨의 실종에 충격을 받았어. 돈이나 여자 문제로 속을 썩일 사람이 아니고, 굉장히 반듯한 청년이라는 거야. 오죽하면 별명이 '김목사'였대. 또 직장 동료들은 명철 씨가 최 실장에게 계약금을 먼저 받았다는 것도 이상하다고 지목했어. 교육 일정이 끝나고 나서 나중에 돈을 받는게 통상적인데, 첫 미팅에서 최 실장과 안면을 트자 마자 계약금을 주고 받았다? 직장 동료들은 이 부분이 말이 안 된다고 했어.

이상한 건 또 있어. 명철 씨가 현주 씨와 어머니한테 보냈다는 문자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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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명철 씨가 평소에 썼던 문자 메시지야. 띄어쓰기가 다 되어 있어. 예전 문자에는 단어마다 띄어쓰기가 되어 있는데, 잠적을 통보한 문자들에는 빽빽하게 빈칸이 하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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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어머니'라는 호칭. 명철 씨는 어머니가 아닌 '엄마'라고 불렀대. 명철 씨가 보낸 문자들이 평소의 말투, 스타일이 전혀 달라. 너무 이상하지.

현주 씨는 한 사람을 의심했어. 현주 씨의 미니홈피에 글을 남긴 사람들 중에, 명철 씨가 보낸 문자처럼 띄어쓰기를 전혀 안 하면서 글을 쓰던 사람이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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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조상필. 명철 씨의 실종 전 마지막 행선지였던 미팅을 주선한 사람, 현주 씨의 친구라는 바로 그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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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 씨는 다시 조상필을 찾아가 물었어. 그랬더니, 자신은 진짜 7시에 헤어졌고 그 뒤로 못 봤다고, 같은 말을 반복했어. 현주 씨는 다시 경찰을 찾아가 조상필이 의심스럽다고 말했어. 이번에도 경찰은 기다리면 연락이 올 테니 집에 가서 기다리라는 같은 말만 했어. 그럼 최 실장이라도 수사해달라 했는데, 최 실장과는 연락이 안 된대. 현주 씨와 가족들은 답답한 마음만 커져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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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이야기는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찾고는 싶은데 벽에 갇힌 기분, 날이 갈수록 계속 초조해지고 불안해지고. 차라리 여자 문제, 돈 문제로 잠적한 거였다면, 그런 이유가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으니까."
-김유미(가명), 명철 씨 여동생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만 흘러가. 그런데 갑자기, 경찰서가 발칵 뒤집혔어. 명철 씨가 실종된 지 22일째 되던 날, 미팅 자리에 같이 있었던 최 실장이 제 발로 경찰서에 나타난 거야. 그러더니 다짜고짜 자백을 하겠대. 최 실장이 들려준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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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꼬꼬무'를 만나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던 남자. 그 남자가 바로 최 실장이야. 그의 입으로 그날 이야기를 들었어.

▲ 최 실장의 자백

'최 실장'이라 불린 최대상(가명) 씨는 당시 서른 살의 나이에 야식집에서 배달 일을 하고 있었대. 강사 자리를 알아봐 준다던 최 실장이란 신분은 거짓말이었어. 최 씨는 배달을 하다가 조상필을 알게 됐고, 실종 사건 2주 전쯤에 조상필에게서 부탁 하나를 받았대. 조상필이 최 씨에게 시킨 건, 수면제 대리 처방이었어. 최 씨는 돈을 준다니까 조상필의 부탁을 수락했고, 수면제를 대리 처방받아 갖다 줬어.

근데 이게 끝이 아니었어. 조상필은 최 씨에게 "양복 입고 내가 오라는 대로 와"라고 부탁했어. 며칠 후 최 씨는 양복을 입고 약속 장소를 나갔는데, 대낮에 유흥업소였어. 그 곳에서 최 씨는 '최실장'이 되어 명철 씨를 만났어. 최 씨는 당시 명철 씨가 맥주 한 잔에 눈이 풀렸고, 10분도 안 돼 쓰러졌다고 말했어. 조상필이 명철 씨의 술에 수면제를 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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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수면제를 탄 줄) 알았죠. 너무 무서웠어요."
-최대상(가명), 사건 당시 최 실장

조상필은 최 씨에게 쓰러진 명철 씨를 같이 옮기자고 했어. 최 씨는 조상필이 시키는 대로 명철 씨를 업고 근처 인테리어 가게로 갔어. 가게 앞에 도착한 조상필은 열쇠로 문을 열었고, 가게 안에 있는 긴 소파에 명철 씨를 눕혔어. 조상필은 최 씨에게 이제 그만 가보라고 했고, 최 씨는 바로 그 곳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 탔어. 근데 휴대폰을 가게에 두고 온 걸 깨달았어. 최 씨는 다시 가게로 돌아갔고, 문을 두드렸어. 잠시 후 조상필은 가게 문을 조금만 열고 최 씨에게 '핸드폰은 이따가 찾아서 갖다 줄게'라 말하더니, 다시 문을 닫아 버렸어. 결국 최 씨는 휴대폰을 못 찾고 발길을 돌렸어. 그리고 다음날, 명철 씨가 실종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야.

"저는 그 분이 쓰러진 것도 봤고 옮겨지는 것까지 봤잖아요. 그때는 많은 생각이 머리에 왔다갔다 하죠. 안 좋은 생각도 들고. (명철 씨가) 실종됐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제가 강박관념이 좀 심하게 왔었나 봐요. 비슷한 사람만 보면, '어? 김명철 씨와 닮았는데?' 이렇게 되는 거에요."
-최대상(가명), 사건 당시 최 실장

명철 씨가 실종된 후에, 미팅 장소 근처에서 명철 씨를 봤다는 사람도 최 씨였어. 조상필은 최 씨가 명철 씨와 비슷한 사람을 봤다고 말하자, 그 목격담을 경찰에 말하도록 했어. 조상필이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유도했던 거야.

최 씨는 명철 씨와 그 가족들에게 죄책감이 들었대. 그래서 늦었지만 자백을 하게 됐다고 했어.

▲ 범인 잡았지만 살인죄로 처벌 못해

최 씨의 자백으로 수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해. 경찰은 조상필을 긴급 체포했어. 조상필은 여전히 명철 씨와는 미팅이 끝나고 헤어졌다며 범행을 부인했어. 형사들은 주변 탐문에 들어갔어. 인근 상인들한테 그날 업혀간 사람을 봤는지 물었어. 그랬더니 길 건너 식당 주인이 기억을 해. 당시 월드컵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었는데 누군가 축 처진 채로 업혀가는 걸 봤다며 '아직 축구는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술에 취했구나' 했다는 거야. 식당 주인은 그 사람들이 인테리어 집으로 들어갔다고 했어. 최 씨의 자백과 일치해.

근처 부동산 중개인도 조상필을 기억했어. 굉장히 급하게 가게를 알아보며 이상한 조건을 내걸었대. 그 조건은 '첫째, 비싸도 좋으니 물이 꼭 나와야 한다', '둘째, 늦은 시간까지 아무리 시끄러워도 괜찮아야 한다' 였어. 그래서 부동산 중개인은 그 인테리어 가게를 소개시켜 준거야. 가게 옆은 비어 있었고, 위층은 창고였고, 아래층은 댄스 교습소였거든. 조상필은 이 조건을 보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했대. 그가 얻은 이 인테리어 가게,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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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들은 급히 인테리어 가게 내부로 들어갔어. 가게 안은 텅 비어있어. 그런데 빈 가게 바닥에 물이 고여 있어. 누군가가 물청소를 한 거야. 근처 상가 사람들은 그 가게가 최근 이상했다고 입 모아 말했어. 가게 안에 물이 발목까지 찬 걸 봤다는 사람, 가게 안에서 밖으로 물이 흘러 내리는 걸 봤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이어졌어. 당시 이 건물 수도 사용량도 같은 걸 말했어.

4월에는 40톤, 5월에는 44톤이었던 이 건물의 수도 사용량이 6월에는 무려 89톤으로, 전달에 비해 두배나 많은 수도를 쓴 거야. 40톤이나 물을 더 쓰려면, 가게 안 작은 수도꼭지로 88시간동안 물을 계속 틀어놔야 한대. 이렇게 엄청난 물을 사용해서 조상필이 지우려고 했던 건 뭘까. 곧바로 과학수사대가 출동해서 바닥부터 천장까지, 혈흔을 찾는 루미놀 검사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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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아주 소량이긴 하지만, 가게 안에서 명철 씨의 혈흔과 모발이 발견됐어. 근데 혈흔이 나오니까, 조상필은 말을 바꿨어. 명철 씨를 가게로 데려온 건 맞는데, 잠에서 깬 명철 씨가 '내 약혼녀와 무슨 사이냐'며 갑자기 자기한테 시비를 걸어 몸싸움을 했다는 거야. 그러다 명철 씨를 밀쳤는데 넘어지며 벽에 머리를 부딪쳐 피가 났다고 주장했어. 그렇게 명철 씨와 싸우고 잠시 밖에 나갔다 왔는데, 명철 씨는 이미 가게에서 사라지고 없었다는 거야.

그런데 가게에서 발견된 혈흔은 조상필의 주장과는 다른 걸 말해주고 있었어. 명철 씨의 키는 185cm인데, 약 170cm높이의 벽에서 명철 씨의 피묻은 머리카락이 발견됐어. 이것만 보면, 조상필의 말대로 정말 몸싸움을 하다가 넘어지며 벽에 머리를 부딪쳤을 수도 있어. 그런데 벽 아래쪽에 발견된 혈흔 3점을 보면, 피가 방울처럼 튄 형태야. 조상필의 말대로 서서 몸싸움이 있었다면, 혈흔은 밑으로 흐르는 형태였을 거야. 그런데 이 혈흔들은 흘러내린 자국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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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람이 누운 상태에서 수평으로 피가 튀었다는 거야. 즉, 수면제를 먹고 정신을 잃은 명철 씨가, 누워있는 상태에서 무슨 일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지. 경찰이 또 한번 추궁했지만, 조상필의 대답은 똑같았어.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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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필은 명철 씨가 실종되기 6일 전에 업무 미팅을 제안했고, 3일 전에는 급하게 인테리어 가게를 계약했어. 그리고 다음날, 최 씨를 시켜 수면제를 구입하고, 바로 이틀 뒤에 명철 씨가 실종됐어. 도대체 조상필은 왜 이렇게 급하게, 또 치밀하게 준비했을까?

범행의 이유는 치정이었어. 명철 씨가 실종되기 9일 전에 약혼녀 현주 씨와 조상필이 만났어. 그리고 이때, 현주 씨는 곧 결혼한다고 얘기했대. 그동안 조상필이 현주 씨를 짝사랑하고 있었던 거야. 알고보니, 현주 씨에게 걸려왔던 낯선 여자의 전화, 명철 씨가 두 개의 핸드폰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모두 조상필이 꾸며낸 거야.

그럼 도대체, 명철 씨는 어디에 있는 걸까? 경찰은 조상필의 행적을 살펴봤고, 물청소 다음날 근처에 있는 폐기물 처리장을 방문한 사실을 확인했어. 경찰은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서 폐기물 처리장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아무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어. 결국 검찰에선 살인이 아닌 감금 폭행죄로 조상필과 최대상을 기소했어. 명철 씨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생사를 확인할 수 없어. 그래서 살인죄로 기소하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될 수도 있어서.

재판 결과, 1심에서 조상필은 징역 15년, 최대상은 징역 1년을 선고 받았어. 그런데 조상필이 살인도 아니고 고의로 실종되게 한 것도 아닌데 형량이 과하다며 항소했어. 2심에서 조상필은 징역 7년으로 감형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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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죠. 생명 하나를 너무 계획적으로 한 대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판결이었던 것 같아요. 너무 공포였었죠. 제 동생도 정신과나 심리치료 이런 거 받으러 다니고, 아빠도 쓰러지고. 우리를 도와줄 만한 것도 의지할 데도 없고."
-김유미(가명), 명철 씨 여동생

고스란히 가족의 몫으로 남은 아픔. 세상 사람들도 이 사건에 공분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잊혔어.

▲ 또 다른 연결고리, 17억 보험 살인 사건

그러던 어느 날, 경기경찰청 광수대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어. 전화를 받은 사람은 '보험범죄 수사의 달인'이라 불리는 20년차 베테랑 형사 정창호 형사야. 전화를 건 사람은 보험회사 조사관으로 일하는 전직 경찰 선배였어. 선배는 정 형사에게 보험사기로 의심되는 골치 아픈 사건이 하나 있는데, 수사를 해줄 수 있냐고 부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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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 폭력배들이 운영하는 사무실에서 젊은 남자가 죽었는데, 보험금 17억원 정도를 지급 청구했대. 일정한 수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죽으면 17억원의 사망보험금이 지급된다는 사실, 그리고 사망시 그 수익자가 가족이 아닌 제3자로 돼 있다는 점이 의심을 살만 했어. 보험사에서 심사 결과 이런 의심스러운 부분들을 포착했고, 그걸 수사해 달라고 정 형사에게 연락을 한 거야.

정 형사의 촉이 바로 발동했어. 보험금을 받는 수익자가 누구냐 물으니, 죽은 남자와 동거하던 형이래. 그의 보험 수익자 이름은 조재필(가명). 바로, 조상필의 쌍둥이 형이야.

1993년 12월 20일 신문에 난 기사 하나를 보여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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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경찰서는 20일, 시비 끝에 체육사 주인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중학교 3학년 쌍둥이 형제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형제는 소지하고 있던 등산용 칼로 체육사 주인 김 씨의 목을 찔러 숨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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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나온 쌍둥이 형제, 조상필과 조재필 형제야. 17년 전 중3 때 살인을 저지른 전적이 있는 거야. 정 형사는 고민에 빠졌어. 보통 사건이 아닐 거 같았거든.

"얘들이 보통 애들이 아니거든요. 상당히 범법자이고 그리고 그 애들이 또 김명철 씨 사건에 연관된 놈들이니까. 형사로서 감이 오잖아요.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한 살인범은 형사가 있는 한 정말 끝까지 추적해서 법의 심판대에 올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창호 형사, 당시 경기지방결찰청 광수대 소속

정 형사는 막내 김지만 형사와 함께 사건을 처음부터 들여다보기 시작했어. 사건이 일어난 건, 김명철 씨가 실종되기 1년 전. 2009년 5월 22일, 새벽 4시반이야. 119 상황실에 신고전화가 접수됐어. 상가 3층 화장실에 한 남자가 알몸으로 쓰러져 있대. 남자는 30세 박민수(가명). 이미 사망한 상태였어. 새벽에 샤워한다고 갔는데 한참 지나도 안 와서 가봤더니 민수 씨가 쓰러져 있었대. 신고자는 같이 동거하던 선배들. 그중 한 명이 조상필이었어.

부검 결과 민수 씨의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이었어. 가스 온수기에서 나온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사망했다는 거야. 그런데 부검 과정에서 특이한 게 발견됐어. 사망한 민수 씨의 몸에서 수면제 성분이 나온 거야. 명철 씨 사건에서도 수면제가 이용됐잖아? 당연히 의심이 가는 부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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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만 형사는 사건이 일어난 화장실로 갔어.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소름이 끼쳤어. 가장 이상한 건, 화장실의 창문, 문틈을 다 실리콘으로 막아 밀폐를 해둔 거야. 더 이상한 건, 가스 온수기 안에 감춰져 있었어. 밸브가 날카롭게 잘린 흔적을 발견했어. 온수기에 문제가 생기면 일산화탄소 발생을 막아주는 안전장치인데, 이게 이렇게 잘려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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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직후 경찰은 쌍둥이 형제를 불러 조사했어. 그런데, 이들은 모든 질문에 "민수가 그랬다"고 대답했어. 보험가입도 민수 씨가, 가스 온수기 설치도 민수 씨가, 보험금 수익자를 조재필로 한 것도 전부 민수 씨가 그렇게 했대. 모든 질문에 죽은 민수 씨가 그랬다고 대답하니, 수사는 더 이상 진척되지 못했어. 보험 살인이 의심은 가지만, 쌍둥이 형제가 민수 씨를 죽였다는 직접 증거는 없었어. 결국 민수 씨가 수면제를 먹고 샤워하다가 질식사 한 걸로 결론이 내려졌어.

▲ 마침내 법정에 세운 쌍둥이 형제

정 형사와 김 형사는 포기하지 않고 아예 처음부터 다시 재수사를 시작했어. 일단 박민수 보험 내역부터 살펴봤어.

민수 씨는 한 달 수입이 100만원 정도인데, 월 보험료로 158만원을 내고 있었어. 그리고 사고 10개월 전부터 사망 보험을 3개나 들었는데, 죽으면 많이 나올 수 있는 사망보험에만 가입돼 있었어. 기록을 살펴보니, 누군가가 민수 씨의 보험료를 대신 내주고 있었어. 바로 조상필이었어.

정 형사는 또 하나의 단서를 찾아냈어. 민수 씨가 사망하고 3일 뒤, 보험사 상담원과 전화 통화를 하며 자신이 계약자 박민수라며 밝힌 사람이 있었어. 죽은 사람이 어떻게 전화해?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조상필이었어. 심지어 민수 씨가 마지막에 가입한 보험은, 조상필이 전화로 박민수를 사칭해서 보험에 가입한 거야. '박민수가 직접 보험에 가입했다'는 쌍둥이의 진술이 거짓으로 드러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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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험 관계는 살해를 목적으로 계약된 보험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렸어요. 이 살인에 이용된 도구, 순간 온수기를 누가 설치했느냐, 살인에 대한 증거 수집에 몰입하게 된 거죠."
-정창호 형사, 당시 경기지방결찰청 광수대 소속

김 형사는, 가스 온수기의 구입 경로를 알아봤어. 박민수의 통화기록을 검토했는데, 가수 온수기와 관련된 번호는 없었어. 쌍둥이의 핸드폰 통화내역도 살펴봤지만 여기서도 발견되지 않았어. 김 형사는 쌍둥이 형제의 사무실 전화통화 내역을 살펴봤어. 그 가운데 031로 시작하는 유선 전화 번호를 발견해 바로 전화를 걸었어. 가스 온수기 판매점이었어. 드디어 가스 온수기 판매점을 찾아냈어.

김 형사는 바로 온수기 판매점을 찾아가 성남 중동에 온수기를 판 적 있냐고 물었어. 근데 사장은 배달을 하도 많이 다녀서 기억이 안 난다고 했어. 김 형사는 쌍둥이 형제의 사진을 보여줬어. 그랬더니, 이 사람은 기억이 난대. 왜냐하면, 보통은 온수기 설치까지 같이 해주는데, 유독 이 사람만 직접 설치하겠다고 해서 기억이 난 거야. 온수기 판매점 사장은 온수기의 안전장치를 절단한 사실도 없고, 절단한 걸 팔 수도 없다고 말했어. 결국 온수기를 산 건 민수 씨가 아닌 쌍둥이 형제였다는 증거가 나왔어.

이뿐만이 아니었어. 쌍둥이가 주변인들한테 "조만간에 한번 터뜨릴 거 있다", "곧 나올 보험금이 큰 건이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진술도 확보했어. 쌍둥이 형제가 가스 온수기를 구입해 설치하고, 민수 씨에게 수면제 먹여 재운 후에, 샤워하다가 질식사 한 것처럼 위장했다는 살해 모의 정황이 전부 확인됐어.

더 소름 끼치는 건, 연고가 없는 민수 씨를 위해 쌍둥이 형제가 직접 장례를 치르고 뼛가루도 뿌려줬다는 거야. 지인들은 이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어. 그 가운데에는 민수 씨 친구였던, 최대상 씨도 있었어.

꼬꼬무

"민수가 자기 아파트에서 샤워하다고 죽었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알고 봤더니 쌍둥이 사무실 화장실에서 죽었다는 거예요. 그 얘기 듣고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진짜 사람이 아니죠. 사람들이 다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다음 차례는 너였네'라고."

-최대상(가명)

꼬꼬무

검찰은 마침내 살인죄로 쌍둥이 형제를 기소했어. 쌍둥이 형제는 재판에서도 범행을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조상필에게 무기징역을, 조재필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어. 정 형사와 김 형사가 꼼꼼히 수집한 증거와 진술들이 법원에서도 받아들여진 거야.

꼬꼬무

"너무 좋았어요. 그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수사 기간을) 1년 6개월 정도로 기억하고 있는데,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에요."

-김지만 형사, 쌍둥이 보험 살인 재수사 담당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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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든 강력범죄 사건에서 예외가 없다는 걸 보여줘서 보람을 느껴요."
-정창호 형사, 쌍둥이 보험 살인 재수사 담당 형사

▲ 1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찾지 못한 명철씨

보험 살인 사건은 해결했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어. 명철 씨 실종 사건이 해결된 게 아니니까. 소식을 듣고 찾아온 명철 씨 가족은 그 사건도 해결해 달라 부탁했어. 그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던 김 형사는 제보가 들어올 때마다 따로 시간을 빼서 찾으러 다녔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어.

"미안하고 답답한 심정이 컸던 거 같아요. 이미 (다른 서에서) 사건을 하고 확정판결까지 받은 상황이기 때문에, 경찰 단계에서는 재수사할 수 없었어요. 정식으로는. 중요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그 사건을 다시 조사할 수는 없는 거죠. 그래서 그 단서라도 찾아보려고 다녔던 거예요."
-김지만 형사, 쌍둥이 보험 살인 재수사 담당 형사

그렇게 12년이 흘렀어. 12년동안 가족들은 아무도 명철 씨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어. 너무 아프니까. 각자 가슴 속에 묻어두고 살아야 했어.

"저희 가족들이 오빠 실종되고 나서, 서로 오빠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았거든요 일부러. 오빠를 제일 많이 사랑했었고 의지했던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그거를 가족이 받아들이기가 서로 힘들어서. 한번도, 생일 때조차 얘기 나눠본 적도 없었고."
-김유미(가명), 명철 씨 여동생

생사도 알 수 없는 실종 상태. 그래도 명철 씨 가족들은 아직 희망을 갖고 있어. 혹시나, 아들의 소식이, 오빠의 이야기가 들려오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명철 씨의 부모님은 아들의 생사라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이번 '꼬꼬무'의 이야기를 허락해주셨어. 마지막으로 명철 씨 아버지가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대.

"명철이는 우리 가족의 자랑이었습니다. 키가 185cm라서 저 멀리서도 금방 발견하곤 했습니다. 아직도 길을 걷다가 키가 큰 젊은 애들을 보면 명철이가 아닌가 하면서 한번씩 다시 보곤 합니다. 이 방송을 통해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명철이를 만나는 겁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직 모르니, 방송을 통해서 무엇이든 간에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작은 제보라도 들어오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봅니다."

꼬꼬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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