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4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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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낮에는 회사, 밤에는 방화…17년간 축구장 114개 태운 '불다람쥐'

강선애 기자 작성 2022.12.16 12:00 수정 2022.12.16 12:17 조회 6,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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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5일 방송된 '봉대산 불다람쥐와의 숨바꼭질'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하이라이트 멤버 손동운, 가수 정동원, 배우 박효주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10년간 100번, 산에 계속 불을 지르는 '불다람쥐'

때는 2009년 2월 15일. 울산의 한 풋살 경기장에서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쓰러진 채 발견됐어. '밤의 제왕'이라 불리는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 수리부엉이가 왜 도심 한가운데서 발견됐을까. 전문가들은 부엉이가 도심에서 먹이를 찾다가 탈진한 거 같다고 했어. 수리부엉이는 왜 산에서 내려와야만 했을까.

이유가 있었어. 당시 산에서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어. 산불이 연쇄적으로 났는데, 3달 동안 11번이나 발생했어.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야. 울산광역시 동구에 있는 마골산, 염포산, 봉대산, 이 세개의 산에서 지난 10년동안 100번 가까이 불이 나고 있다는 거야. 급기야 2009에는 전국의 모든 산을 제치고 봉대산이 산불 발생 건수 1위에 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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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처럼 지속해서 10년 이상 산불이 난 것은 처음이죠. 이제는 큰 나무들이 없어요. 민둥산처럼 허옇게 흙이 보일 정도가 된 부분도 많거든요."

-신훈범, 산림청 산불진화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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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산들이 잿더미야. 그럼 왜, 여기서만 계속 산불이 나는 걸까. 그 이유를 하나씩 짚어 볼게.

첫번째는 자연 발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치거나, 강풍이 막 불면 나무들끼리 마찰열이 생겨서 불이 날 수 있어. 한 두번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10년간 100번이나 그렇게 불이 날 수 있겠어?

두번째 가능성은 실화, 즉 실수로 난 불이야. 대표적인 이유가 취사와 담뱃불 때문이야. 산에서는 당연히 흡연 금지인데, 몰래 피는 사람들이 실수로 불을 내는 경우가 가끔 있어. 그런데 이 가능성도 희박해. 봉대산 산불은 인적이 드문 곳에서 주로 발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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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패턴을 분석해보니까, 장소는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급경사, 기간은 11월에서 3월까지 수목이 바짝 건조돼 불이 잘 붙을 때, 새벽 1시~2시에 불이 발생하는 건, 사람이 안 다니는 데 왜 불이 나겠나 사람이 없는데. 그 때는 방화라고 봐야죠. 이 사람은 불에 대해서 많이 아는 사람이다, 아주 지능적인 거죠."
-허천석, 산불 발생 당시 출동 소방대원

누군가 일부러 산에 불을 지르는 거야. 울산 동구 지역의 산불 발생 일지를 보면, 2003년 4월 5일 식목일에도 불을 냈고, 2009년에는 1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 내내 산불이 났어. 2010년엔 30분 간격으로 여러 곳에서 불이 나기도 했어.

"저희들이 봉대산 화재 진압을 하고 있는데, 맞은편 염포산에서도 불이 나는 겁니다. 그걸 또 진압하고 있는데, 저쪽 마골산에서도 불이 나는 겁니다. 세 군데 동시에 저질렀다는 얘기죠."

-허천석, 산불 발생 당시 출동 소방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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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 방화범에 별명까지 붙였어. 몸놀림이 다람쥐처럼 빠르다고 해서, '봉대산 불다람쥐'라고.

▲ 불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

불다람쥐가 이 산 저 산 들쑤시는 바람에 겨울만 되면 울산은 초비상이야. 119 소방대원들이 뛰쳐나가고, 산림청의 진화대원들이 출동해. 산불이 나면 큰 불길은 소방헬기로 잡는데, 산불 발생 시간이 주로 밤이라 헬기가 못 떠. 야간비행은 위험해서 법으로 금지됐거든. 그렇다고 불이 났는데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잖아. 산불이 나면 비상 연락을 받는 사람들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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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을 담당하는 곳이 녹지과니까, 산불 비상 출동이 되면 녹지과가 일차적으로 끄죠. 불이 크게 나거나 하면 구청 전 직원에게 출동이 걸리죠. 그것도 안 되겠다 싶으면 울산광역시 전체 공무원 대상으로 출동이 걸리죠."
-최행선, 당시 구청 공무원.

헬기가 뜰 때까지 사람이 막아야해. 그래서 봉대산에 불이 나면, 산림청, 소방서, 동구청 직원들까지 소집됐어. 심할 땐 울산시 공무원이 다 투입된 적도 있었대. 그 인원이 약 2천명이야.

그렇게 연락 받고 산불 현장에 도착하면, 그 때부터 진짜 공포가 시작돼. 눈 앞에서 불길이 벌겋게 치솟아. 이 불길 1미터 앞에만 가도 800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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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처음에는 걸어 다니다가, 뛰다가, 끝에는 날아요. 불이 100~200미터는 한순간에 뛰어 버리니까, 그때가 되면 걷잡을 수가 없는 거죠."
-신훈범, 산림청 산불진화대원

이 위험한 산불이 최대한 번지지 않게 하는 게 공무원들의 임무야. 1차 방화선 구축은 산림청 진화대원들이 해. 불이 더 번지지 않도록, 땅에 선을 긋는 작업을 해. 불길이 아직 번지지 않은 곳까지 최대한 다가가. 거기서 여럿이 한 줄로 서서 땅을 파고 그 땅 주변의 낙엽과 나무를 모두 제거해. 불이 붙을 만한 연료를 없애는 거야. 이게 바로, '방화선'이야. 물을 직접 뿌리기도 하지만, 산불은 규모가 워낙 커서 이건 끈다기 보단 불길을 막는 게 우선이야.

그 시각, 119 소방대원들은 2차 방화선 구축에 들어가. 산불로부터 민가를 지키는 임무야. 산길에 소방차를 세우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물을 뿌려. 숲을 미리 적셔두는 거야.

이렇게 방화선이 구축되면, 그 다음엔 구청 공무원들이 나서. 산 아래에서 이 분들은 '등짐 펌프'를 하나씩 등에 매고 물을 뿌리며 잔불을 잡아. 15kg의 등짐 펌프를 매고 물을 뿌리다가, 물이 떨어지면 다시 내려가서 물을 채워야 해. 밤새도록 산을 계속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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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이 잡히기 시작하면 또 다른 고통이 시작돼. 바로 추위. 그렇게 밤새 작업하다가 해가 뜨면, 진화 헬기가 투입되고 사방에서 소방수가 쏟아져. 이제 불길은 거의 다 잡혔어. 하지만 꺼진 불도 다시 봐야해. 어딘가에 숨어있는 불씨가 다시 산불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샅샅이 살펴야 해. 이쯤 되면, 다 비몽사몽이야. 하늘에서 쏟아지는 소방수를 맞는 일도 다반사야. 가뜩이나 추운데 그거까지 맞으니, 너무 추웠어.

그렇게 모든 작업이 끝나면 다들 몰골이 말이 아냐. 머리는 땀 범벅이고 얼굴은 숯 검정이야. 코를 풀면 검은 물이 나와. 특히 구청직원들은 민원 처리도 해야 하잖아. 낮에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밤에는 산불을 끄러 다녀. 더 화가 나는 건, 이 불다람쥐가 하필 주말에 불을 질러. 가뜩이나 연말이라 할 일 태산인데, 완전 과부하가 걸리는 거야. 이 울산 공무원들은 10년이 넘게, 겨울만 되면 이 생활을 반복한 거야.

그래서 '봉대산 불다람쥐'라 하면, 다들 지금까지도 학을 떼. 방화범 한 명 때문에 울산 공무원 전체가 괴로운 상황. 해결책은 하나야. 이 봉대산 불다람쥐를 하루 빨리 잡는 거.

▲ 불다람쥐를 잡아라

그래서 울산 광역시는 특단의 조치를 내놨어. '봉대산 불다람쥐'에 현상금 3억원을 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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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엔 3천만원이었던 현상금이 2009년도에는 1억원으로 껑충 뛰었어. 그래도 잡힐 기별이 없자, 10개월 만에 3억원으로 대폭 인상했어. 지차체가 내건 포상금으로 1등, 범죄자에게 걸린 현상금으로도 당시 최고 액수였어.

근데 왜 3억일까? 소방 헬기를 한번 띄우는데, 시간당 500만원이 든대. 2009년 한 해에만, 6억원이 공중에 뿌려진 거야. 이 지긋지긋한 연쇄 방화의 고리만 끊어낼 수 있다면, 3억원은 오히려 큰 액수가 아니야.

고액의 현상금 작전은 통했어. 봉대산에 등산객이 몰려들기 시작해. 이름하여, '화(火)파라치'. 사람들이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살펴. 수상한 사람만 보이면 바로 찍겠다는 거야. 또 밤에는 진풍경이 펼쳐져. 헤드라이트 불빛이 계속 산에 올라와. 택시 기사들이 산에 와서 다 잠복하는 거야.

당시 여기에는 현상금만 걸린 게 아니었어. 특별한 '인센티브'가 약속됐어. 민간인의 경우, 산불방화범을 직접 검거한 자는 본인이 원할 경우 청원산림보호직원 등 특채 검토 대상이 될 수 있었어. 공무원의 경우, 일반 공무원은 1호봉 승급 및 우선 승진 기회 부여. 경찰, 소방공무원은 소방위, 경위 미만 1계급 특진 이라는 포상을 걸었어. 이런 인센티브 소식에 취업을 준비하던 젊은이들도 봉대산으로 몰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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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다람쥐와의 전쟁을 선포한 구청 공무원들은 일명 '올빼미 작전'을 시작했어. 올빼미는 야행성 동물인데 다람쥐의 천적이야. 구청의 작전은, 밤마다 산 곳곳에 감시원을 매복 시키는 거야. 조를 짜서, 매일 밤 순찰하고 감시했어. 또 '24시간 목격자' CCTV를 설치했어. 적외선 촬영, 열감지 기능까지 탑재된 고성능 카메라로.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24시간 산의 상황을 살폈어. 경찰에서도 불다람쥐 검거 전담팀이 꾸려졌어.

상황이 이 정도인데, 불다람쥐가 또 나타날 수 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만반의 준비를 비웃기라도 하듯, 산불은 계속 발생했어. 산불 감시원, CCTV, 경찰, 다 뛰어들어도 이 불다람쥐 한 사람을 못 잡는 거야. 봉대산 산불은 멈추지 않았어.

해가 바뀌고 2010년 4월 7일 오후. 환경단체 회장 박 씨가 봉대산에 올랐어. 불다람쥐 때문에 입산이 통제됐지만, 박 씨네 단체 사람들만 쓰레기 줍기 봉사를 하려고 산을 올라가고 있었어. 그런데, 저 앞에 누군가 있어. 자세히 보니까, 어떤 남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어. 앉아있던 남자가 박 씨와 눈이 딱 마주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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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산 통제된 산에 외부인이라니. 박 씨는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물었어. 그 말을 들은 남자가 조용히 일어나더니, 갑자기 도망치기 시작해. 박 씨는 곧바로 쫓았지만 남자는 순식간에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어. 박 씨는 이 남자를 방화범으로 확신했어. 이 도망친 남자가 두고 간 검은 봉지 안에 착화탄, 라이터, 휴지가 발견 됐거든. 전부 방화 도구야.

박 씨 일행은 방화 용의자를 경찰에 신고하고 봉지도 같이 넘겼어. 박 씨가 목격한 남자의 외형은, 키 160cm 정도에 나이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로 보였어.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공업 점퍼'를 입고 있었대. 회사 이름이 적힌 작업복을 입고 있었으니, 이제 방화범을 찾는 게 쉬울까? 그건 아니야. 당시 울산에서 중공업 점퍼는 아주 흔한 옷이었어. 그 회사 직원만 2만 5천명이고, 협력업체까지 더하면 약 40만명이야. 그 도시 사람들 전체가 용의자가 돼. 그러니 이 작업복 만으로는 수사망을 좁힐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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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검은 봉지를 국과수에 넘겼어. 하지만 지문은 감식 불가였어. 박 씨 일행이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구청에 먼저 갔었는데, 거기서 여러 사람의 손을 타서 증거가 훼손됐대.

그런데 그 방화범이 박 씨와 맞닥뜨린 후, 한동안 봉대산에는 산불이 나지 않았어. 그러다 시간이 흘러 다시 겨울이 찾아왔고, 12월이 되자마자 다시 산불이 치솟기 시작했어. 시작은 염포산이었어. 그리고 이틀 뒤 마골산, 다시 열흘 뒤엔 봉대산에 불이 났어. 아침, 점심, 저녁, 시간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산불이 났어.

그런데 그 전과 달라진 점이 있어. 산불의 발화지점이 바뀌었어. 원래는 산 위쪽이었는데, 이젠 산 아래쪽에서 불이 났어. 산 위쪽 CCTV 감시를 피하려고 사각지대로 내려온 거야. 문제는 이렇게 되다 보니, 아파트 뒷산까지 불길이 번지는 거야. 그동안은 다행히 인명피해가 없었는데, 이젠 주민들까지 위험해졌어. 불이 산 밑까지 내려왔다는 건, 불다람쥐가 그만큼 가까이 와있다는 뜻이기도 해.

▲ 드디어 잡힌 불다람쥐

2011년 3월 12일 토요일 저녁, 아파트 관리소장 이승목 씨는,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다가 아파트 뒷산에 불이 났다는 연락을 받았어. 아파트 주차장 바로 뒤편 마골산에서 불이 났다는 거야. 소장님은 숟가락을 놓고 바로 뛰쳐 나갔어. 경비원이 주민들과 합심해 신속하게 진화했고, 다행이 불길은 20분만에 잡혔어. 이승목 소장은 화재현장인 아파트 주차장을 비추던 CCTV를 바로 확인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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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녹화기가 2대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한대가 전원이 안 들어왔어요. 그게 화재현장일 비추고 있던 CCTV였어요. 화재가 발생하면서 전선을 태우게 됐고 누전이 된 거죠. 제가 빨리 복구하려고 노력했지만 복구가 안 되더라고요."
-이승목, 당시 화재 피해 아파트 관리소장

언제 정전됐느냐에 따라 아예 녹화가 안 됐을 수도 있는 상황. 이 소장은 포기하지 않고 복구를 시도했어. 다행히 복구가 됐고, 발화 순간이 담긴 영상을 볼 수 있게 됐어. 그럼, 그 영상 속에 불다람쥐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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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는 한 남자가 빙 돌아서 주차장 뒤쪽으로 가는 게 찍혔어. 그 남자가 거기서 나오고 4분 후, 남자가 있던 자리에서 순식간에 불길이 치솟았어. 이 소장은 바로 경찰에 신고했어. CCTV를 확인한 형사들은 그 남자가 불다람쥐라는 걸 직감했어. 곧바로 불이 난 아파트 주변의 CCTV를 싹 뒤지기 시작했어. 범행시간 전후로, 용의자와 비슷한 사람이 찍혔는지 눈이 빠져라 봤어. 고맙게도 눈에 띄는 특징이 하나 있었어. 바로 걸음걸이. 범인은 다리를 벌리고 걷던 특징이 있었어.

그리고 일주일 만에 드디어 남자의 정체가 담긴 CCTV를 확보했어. 그 남자는 아파트에서 나간 후, 놀이터를 지나, 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 탔어. 그 남자는 놀랍게도, 방화 지점에서 500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어. 봉대산과도 아주 가까운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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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입고 있던 옷은, 이번에도 '중공업 점퍼'였어. 이 남자, 알고보니 해당 중공업에 다니고 있었어.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던 사람이야. 경찰은 곧바로 용의자 김 씨를 체포했어. 남자의 집과 회사에서 방화도구가 잔뜩 나왔어. 그리고 순순히 자백했어. 자신이 방화범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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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불다람쥐 검거에 성공했어. 10년이 넘게 울산을 공포로 떨게 한 불다람쥐와의 전쟁이 마침내 막을 내렸어. 그동안 고생했던 동구청 공무원, 소방대원, 산림청 진화 대원들 모두가 기뻐했어.

▲ 연쇄 산불 방화범의 정체

검거된 '봉대산 불다람쥐' 김 씨에게 언제부터 불을 질렀냐고 물었어. "북한 김일성이 죽은 해였던 거 같다"고 대답했어. 김일성이 죽은 해는 1994년이야. 그러니까 무려, 17년동안 방화를 저질렀다는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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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의 시작은, 담배를 피우다 생긴 호기심이었어. 담배꽁초를 버렸는데 불이 나지 않았고, 호기심에 라이터로 다시 불을 붙여봤어. 그러자 불이 붙었고, 김 씨는 겁이 나서 도망갔어. 그 불은 순식간에 번져 큰 산불이 됐어.

김 씨는 보통 사람과 달랐어. 연기가 치솟고 불길이 번지는 걸 보니 가슴이 막 뛰어. 걱정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져. 소방차가 몰려오고 헬기가 뜨는 걸 보고, 김 씨는 오히려 쾌감을 느꼈대. 그 후에도 그 흥분과 쾌감이 자꾸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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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는 안 된다고 하는데, 자꾸 충동이 들어서… 머리나 정신은 안 해야 한다고 하는데, 금방 산을 다시 올라가고 싶고. 우연히 (방화를) 하게 되어서 마약에 중독되듯이 빠져드는… 불을 보면 희열이 느껴지고 기분도 좋아지고..."
-연쇄 방화범 김 씨

한마디로 방화에 중독된 거야. 그게 어느 정도였냐. 낮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퇴근 후 집에 가기 전이나 주말에 불을 질렀어. 그래서 봉대산이었던 거야. 회사와 집 사이에 봉대산이 있었거든. 방화 충동이 느껴지면 언제든 범행을 했어야 하니까. 집 가는 길에 있었던 봉대산이 타겟이었어. 시간이 갈수록 방화 수법도 진화했어. 점점 불 지르고 도망가는 시간을 벌려고, 직접 방화도구까지 개발했대. 나중에는 아주 대범해졌어. 산에 올랐다가 산불 감시원을 만나면 "아이고 수고가 많으십니다" 인사하면서 접근해 감시원들한테 잠복 정보도 얻었어.

그렇게 35살에 시작한 방화는 52살까지 계속 됐어. 수사 결과 그는 17년동안 혼자서 93건의 산불 방화를 한 것으로 자백했어. 확인된 것만 이 정도야. 연쇄 산불 방화로는 국내 최다 횟수이고, 무려 82헥타르, 축구장으로 치면, 114개 면적의 산림을 훼손한 거야.

이 사실을 듣고 가장 놀랄 사람은 김 씨의 가족, 아내와 아들은 완전 충격을 받았어. 집에는 회사에서 받은 상장들이 즐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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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안 되는 게, 가정도 원만하고.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진짜 귀신 장난 같아요."
-김 씨의 아내
"꿈에도 몰랐죠. 제가 친구와 농담으로 '네가 불 질러라, 내가 옆에서 사진 찍을게' 현상금이 3억원이잖아요. 그런 농담까지 했는데… 알고봤더니 우리 아버지라니까."
-김 씨의 아들

▲ 불다람쥐는 왜 방화 중독에 빠졌나

김 씨는 왜 방화중독에 빠졌을까? 보통 방화범이 불을 지르는 이유는, 사회에 불만이 있어서래. 숭례문 화재나, 대구 지하철 참사처럼 열등감이나 복수심이 작용한 거지. 김씨도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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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한 이십년 전부터 가정적인 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울화를 울화병이 생겨서. 울화를 소화하지 못해서 처음 방화를 시작한 것이 이렇게 됐습니다."
-연쇄 방화범 김 씨

20년 전부터 가정에 우환이 생겼고, 일하다가 다쳐서 본인이 병상에 1년을 누워 있었고, 하필 그 시기에 가족상이 겹쳤대. 그래서 화병이 생겼대. 그런데, 가정사 괴로운 사람이 한 둘이야? 울화가 치민다고 다들 불을 지르지는 않아.

정신 감정을 했더니 김 씨는 '충동조절장애', 순간적 욕구가 지나치게 강해 통제하지 못하고 자신 또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정신장애 진단을 받았어.

그리고 김 씨는 불에 대한, 아주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었어. 혹시 '화전민(火田民)'이라고 들어봤어? 산에 불을 지펴 잡목을 태운 뒤 그 곳에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말해. 한국전쟁이 끝나고, 가난한 유랑민들이 깊은 산 속을 찾아서 화전을 했어. 자기 땅이 없으니까. 김 씨 부모님도 화전민이었어.

"아버님이 옆에 산에서 화전 밭을 많이 일궜거든요. 그땐 어려서 '아, 불 잘 탄다. 아, 뜨겁다'하고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아들이 저밖에 없어서, 어머니 아버지에게 사랑도 받았고. 그 이후로 행복했던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연쇄 산불 방화범 김 씨

화전민의 아들로 자라면서, 산불을 수없이 봐 왔고, 불을 질러야 농사를 짓고 먹을게 생긴다.. 불이 두렵다기 보단 좀 설렜을 수도 있어. 김 씨는 그때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대.

그렇다고 우리가 김 씨를 이해할 수는 없어. 법원은 희대의 연쇄 산불 방화범 김 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어. 그리고 1년 후, 김 씨는 또 다시 법정에 섰어. 왜? 동구청이 김 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거든. 10년간 헬기 운영, 인력낭비, CCTV 설치에 대한 배상 등 손해배상 액 5억원을 청구했어. 판결은 김 씨가 4억 2천만원을 배상하라고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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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이렇게 마무리가 됐어. 그럼, 현상금 3억원은 누구에게 돌아갔을까?

3억원을 받은 사람은 없었어. 직접 검거자가 없었으니까. 논의 끝에, 현상금 2억원을 범인 검거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나눠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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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컴에서는 제가 결정적인 CCTV를 제공한 것으로 나왔으니까. 제가 포상금을 받은 걸로 알 텐데, 결론적으로는 열여덟분하고 나누었죠. 포상금 자문 위원회를 개최해서 기여도를 따져서 나눠 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승목, 산불 방화범이 찍힌 CCTV 최초 제공

범인 신원 확인에 도움을 준 아파트 주민들, 범인 이동경로가 담긴 CCTV를 제공한 시민들 등, 이 소장님을 포함해 모두 19팀이 포상금 2억원을 나눠 가졌어.

이 소장님은 받은 포상금으로 부모님께 작은 선물을 해드리고, 대출금 좀 갚고, 기부도 했대. 이 소장님은 말해. "포상금 보다는 제가 관여가 되어서 범인 검거에 일조했다고 하니 너무 뿌듯하다"라고.

이 사건을 들여다 보며, 꼭 이야기 할 부분이 있어. 바로 이 사건의 가장 피해자, 봉대산이야. 봉대산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꼬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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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시민들은 봉대산에 다시 나무를 심었어. 풋살장에 쓰러졌던 수리부엉이도 원래 집으로 돌려보냈어. 봉대산을 지켜줄 장승도 세우고, 맨발로 산을 밟아주며 봉대산이 다시 푸르르길 기원했어.

그리고 오늘의 봉대산. 10년이 지나 예전처럼 다시 생명력을 되찾았어.

꼬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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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범의 절반 이상이 화 때문에 범행을 한대. 지난 10년간 매년 481건의 산불이 발생하고 있어. 매해 여의도 면적의 3배가 되는 산림이 사라지고 있대. 실화든 방화든, 대부분의 화재는 사람의 부주의 때문이야.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우리의 산림을 지키는 일에, 더 신경을 써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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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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