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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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6평 물탱크 위, 198명이 팔짱 끼고 버텼다…시루섬의 기적

강선애 기자 작성 2022.11.18 11:45 수정 2022.11.18 11:52 조회 4,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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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7일 방송된 '필사의 도주-벼랑 끝에 선 사람들'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개그맨 김용명, 배우 정영주, 가수 최유정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마을 축제 분위기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때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2년 8월 19일. 최대 풍속이 60m/s나 되는 태풍 '베티'로 인해 대한민국에는 태풍 경보가 발령됐어. 다행히 태풍은 비껴갔지만, 태풍의 영향으로 비구름이 깔려서 8월 18일부터 비가 계속 내려 서울, 중부, 강원지역에 큰 물난리가 났어. 대한민국 역사상 두번째로 인명피해가 컸던 태풍이야. 이건 당시 잠겼던 서울 용산의 모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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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호우 다음날 충북 단양의 한 섬마을. 이 섬은 떡 만들 때 쓰는 둥근 그릇 '시루'와 닮았다고 해서 시루섬이라 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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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아침, 시루섬 사람들은 분주했어.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너도 나도 손에 낚시 그물과 작대기를 들고 시루섬 아래쪽 샛강으로 모였어.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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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섬의 아래쪽에는 남한강 샛강이 흐르는데, 평소에는 물이 거의 없어 주민들이 그냥 건너다닐 정도야. 그런데 비가 오면 물이 무릎 정도로 차올라 상류에서 내려온 물고기가 강 에서 파닥거려. 그물을 펼쳤다가 올리기만 하면, 물고기 40~50마리가 따라 올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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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를 낚는 재미에 다들 소리를 지르면서 신이 났어. 물고기 잡아 매운탕을 해 먹자며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야. 이 자리에는 12살 수택이도 있었어.

그런데 수택이 눈에 저 멀리 뭔가가 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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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잡을 때 저 쪽에서 물이 금방 차오르는 게 보여요. 저 맨 꼭대기부터 물이 내려오는 거야. 파도처럼 밀려왔어요. 둑이 터진 것처럼 물이 갑작스럽게 올라오는 거야. 멍석말이 물이라고 해요. 멍석말이."

-오수택, 당시 1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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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 멍석을 마는 것처럼, 커다란 파도가 밀려 들어오듯이, 강물이 돌돌 감기면서 마을로 밀려 들어오고 있어. 강에 있던 사람들이 급히 뛰기 시작했어. 일단 사람들은 고지대로 몸을 피하기 보단, 담배밭으로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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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섬 사람들은 담배농사, 뽕나무 재배로 생업 활동을 했어. 근데 물에 담배밭이 잠기면 1년 농사를 망치는 거야. 사람들은 정신없이 몰려들어 담뱃잎을 따기 시작했어. 그런데 바로 그때, 다시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해. 담배밭까지 강물이 들어왔어. 순식간에 무릎까지 차올라. 마을 초입까지 물이 들어오고, 점점 불어나. 예전엔 비가 아무리 와도 이런 적이 한번도 없었어.

"동네 사람들! 빨리 피해요! 지금 물 들어와요!"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아.

▲ 강물을 피해 위로, 또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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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택이 집은 여기야. 수택이는 별일 있겠나 싶은 마음으로, 좀 전에 잡아온 물고기를 손질 중이었어. 그런데 바로 그때, 외양간으로 쓰던 행랑채가 폭삭 주저 않았어. 수택이는 아버지와 함께 짐을 싸서 도망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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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반대편에 있는 잠업센터도 상황은 비슷했어. 잠업센터는 뽕나무를 재배하고 누에 키우는 걸 가르치는 곳이야. 누에가 뽕나무 잎을 먹는데, 시루섬이 뽕나무잎이 잘 자라는 환경이야. 당시 이 잠업을 배우려고 타지 사람들도 시루섬에 많이 와 있었어. 대부분 16~18세의 어린 소녀들. 그 중에 한 명이, 이 소녀야. 나이는 18살, 제천에서 온 신준옥. 준옥이는 그날도 여기서 뽕나무 잎을 따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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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차츰차츰 차 올라요. 교육하는 사람이 '아무래도 여기는 위험하겠다. 지대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할 거 같다'고. '아니 이게 뭐야? 저 위에 마을로 가면 거기는 괜찮겠지' 하고 올라갔죠."
-신준옥, 당시 18세

마을 위쪽에 가서 좀 기다리면 물이 빠질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었어. 집이 떠내려가고 난리가 났어.

"어머니가 막 깨우는 거예요. 왜 그러시냐고 그러니까, 지금 집이 떠내려가고 있다는 거예요. 가보니까 정말로 집이 막 떠내려가는 거예요. 물이 빨리 불었어요. 물이 그렇게 빨리 불어나는 건 본 적이 없었어요."
-박동준, 당시 23세

동준 씨네 집은 대지가 좀 높았어. 아랫마을 사람들이 소 끌고 살림살이 싣고 피난 행렬처럼 동준 씨네 집 쪽으로 올라왔어.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져. 물이 빠르게 올라와, 순식간에 집까지 들이 닥쳤어. 동준 씨는, 마당으로 급히 뛰어가서 묶여있는 개를 풀어주고, 토끼장, 닭장의 빗장을 열어 토끼를 지붕 위로 올려줬어. 동준 씨만 그런게 아니야. 그래서 온동네 가축들이 다 집 밖으로 뛰쳐 나왔어.

이제 최대한 높은 곳으로 가야해. 시루섬에서 가장 높은 집은 27살 유상순 씨네 집이야. 마을 사람들이 전부 짐 싸 들고 상순 씨네 집으로 몰려들었어. 완전 도떼기 시장이야.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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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놀라서 애를 업고 밖을 보니까, 큰 강물이 (원래는) 안 보이는데 우리집에서 보이더라고. 집이 떡 벌어지면 먼지 풀썩 나고 없어져. 집 무너지는게, 야단스럽지도 않아요."

-유상순, 당시 2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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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꺼먼 강물이 온 마을을 집어 삼키고 있어. 강물이 빠르게 계속 밀려서 다가오고 있는 거야. 어느새 상순 씨네 집 앞까지 밀려왔어. 이제 더 높은 곳, 시루섬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가야해.

▲ 물탱크와 소나무 위에 올라간 사람들

시루섬에서 가장 높은 곳은 소나무가 40~50그루 정도 있는 마을쉼터 '윗송정'이야. 근데 윗송정까지 물이 올라오는 최악의 상황이 다가왔어. 그 순간 누군가 소리를 질렀어. "저기로 올라갑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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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탱크였어. 원통형 모양의 시멘트 구조물로, 높이 6m, 지름이 5m 정도 돼. 아파트 2층 높이에 대략 6평 정도의 공간이야. 그런데 물탱크 앞에 모인 인원은, 약 200명. 전부 다 올라가기도 힘들고, 올라가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도 몰라. 그 때 또, 누군가 소리쳤어. "널빤지를 모읍시다!"라고.

사람들이 근처에서 자재가 될만한 나무를 모으기 시작했어. 추가 대피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물이 계속 차올라 시간이 없는 급한 상황, 동네 사람들은 한마음이 되어 울타리를 부수고 자재를 끌어 모아 소나무 위에 원두막 형태의 대피소 3곳을 만들었어. 물탱크까지 총 4곳의 대피소가 생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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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물이 발목까지 차 올랐어. 시간이 없어. 빨리 물탱크 위로 올라가야 해. "아이들부터 올립시다!"라는 누군가의 외침에,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들부터 차례로 올라가기 시작했어. 이 때가 오후 2시경이야.

마을 제일 꼭대기에 살던 유상순 씨. 막 돌이 지난 막내가 있어서 제일 먼저 물탱크 위로 올라갔어. 높이 6m 높이를 올라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야. 급조한 사다리 자체도 부실하고, 아기까지 업었어. 그래도 어떡해 올라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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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물탱크 위에 올라갔어. 그 순간, 물탱크 꼭대기에서 눈에 들어온 광경이 충격과 공포 그 자체야. 마을이 다 사라졌고 사방이 물바다야. 온갖 쓰레기와 집채가 막 휩쓸려 내려가는데, 저기 지붕 위에 뭔가 있어.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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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이 안 부서지고 떠내려가는데 거기에 사람이 올라섰어. 너무너무 무서웠어. 50년 지났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몸이 떨리고 마음이 떨려 얘기를 못했어요."
-유상순, 당시 27세

상순 씨 다음으로 33세 최옥희 씨가 사다리에 올랐어. 등에는 백일 된 아기를 업고, 한쪽 팔로는 사다리를 잡고, 다른 한 팔로는 3살 아들까지 안고 있어. 그렇게 노인들과 아이들이 차례대로 올라갔어. 물은 무릎까지 잠겼어. 아직 못 올라간 사람이 훨씬 많아. 한쪽 구석에서 누가 "엄마"를 부르며 울고 있어. 바로, 잠업센터 소녀들이야. 취직해서 집안 살림에 도움이 되고자 여기에 왔는데,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어. 얼마나 무섭겠어.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 외쳤어.

"자, 이제 타지 사람들부터 올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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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잠업센터 소녀들은 마을 주민들보다 먼저 물탱크 위로 올라갔어. 이제 물탱크 위에는 자리가 없어. 남은 건 임시로 지은 원두막 세 개 뿐이야. 수택이 가족이 8명인데, 다 제2원두막 위로 올라갔어. 이때 수택이 아버지가 애들한테 밧줄을 줬어. "얘들아 무슨 일이 있어도 이걸 꼭 잡고 있어야해"라며. 밧줄 한 쪽을 나무에 묶고, 혹시라도 물에 떠내려가면 이걸 잡고 버티라고 했어.

동네 반장이었던 현수 씨 부부도, 5남매를 데리고 원두막에 올랐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다가 늦게 왔거든. 가축을 풀어주던 동준 씨도 너무 늦게 도착해서 마지막 남은 제3원두막에 올라갔어.

그런데 5남매의 아버지 현수 씨가 갑자기 나무 밑으로 뛰러 내려갔어. 수택이 아버지도 뛰어 내렸어. 이들은 허벅지까지 물에 잠긴 상태로 힘겹게 물탱크 쪽으로 가더니, 사람들이 끌고 온 소를 풀어줬어. 물탱크 주변에 묶여 있던 소들을 그냥 놔두면 익사할까봐, 하나하나 고삐를 다 풀어준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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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때 참 묘한 장면을 보게 돼. 소들이 어딜 안 가고, 큰 눈을 꿈벅이면서 계속 헤엄을 치며 물탱크 주변만 빙빙 돌았대. 소들도 사람들 곁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

현수 씨와 수택이 아버지는 소들의 고삐를 풀어주고 다시 원두막으로 돌아가지 못했어. 그 짧은 사이에 물이 이미 허리까지 차 올라 결국 물탱크에 올라갈 수 밖에 없었어. 빽빽한 사람들 사이를 겨우 비집고 들어갔어. 그리고 건너편 소나무 위 원두막을 향해 외쳤어. "얘들아 조심해라! 나무 잘 잡고 있어! 이따 봐!"라고. 졸지에 가족들과는 이산가족이 됐어. 그땐 아무도 몰랐어. 이게 어떤 운명을 불러올지.

▲ 살아남으려면 버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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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대피소에 올라왔어. 제1원두막에 8명, 제2원두막에 24명, 제3원두막에 2명이 자리했어. 물탱크 위에는 무려, 198명이 올라왔어. 물탱크 위 지름이 5m, 면적 6평이야. 이런 공간에 198명이 있을 수 있을까.

'꼬꼬무' 제작진은 단양군청과 단양고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이를 직접 실험했어. 당시 물탱크 크기로 세트를 만들어 학생들이 차례차례 그 위로 올라갔어. 빈틈 없이 꽉 차게 서니 198명이 겨우 그 위에 올랐어. 이 상태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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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이 대피완료한 시각은 오후 3시경. 협소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몸이 완전히 밀착돼 움직이기도 힘들고 답답해. 비는 계속 내리고 물은 계속 차올라. 그때 15살 기홍이도, 물탱크 가장자리에 서 있었어.

"한쪽으로 조금 밀리면 잘못하면 바깥 사람이 떨어질 수 있으니, 제발 밀지 말라고 안으로 소리 지르고. 제발 안에 조용히 하라고 어른들이 소리 지르고, 우왕좌왕 하지 말라고. 출렁거리는 물을 보니 현기증도 나고. 만약 물탱크가 넘어간다면 내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하고…"
-김기홍, 당시 15세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어. 기홍이가 힘겹게 버티는데, 갑자기 팔 안쪽으로 뭐가 쑥 들어왔어. "팔짱 끼세요! 팔짱!" 서로서로 팔짱을 끼고 안 밀려 나가게 하자고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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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쪽 사람들이 팔짱을 끼기 시작했어. 서로가 서로에게 '인간 울타리'가 되어 준 거야.

실험에서 이 상황을 그대로 재현했어. 떨어지지 않도록 바깥쪽 사람들은 팔짱으로 고정하고, 안쪽은 손을 들어 밀착했어. 팔짱을 끼니 조금은 안정감이 생겼어. 그럼 이 상태로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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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만하자" 외치면 실험을 종료하는 걸로 하고 실험을 진행했어. 학생들은 "와 이거 어떻게 버텼지?", "말이 안 나온다"라고 힘들어 하면서도, "조금만 버텨!"라고 서로를 독려하며 실험에 집중했어. 그렇게 버틴 시간은 3분 5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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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협소한 공간 안에서 버티는 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몸소 깨달았어요."

-신윤서, 단양고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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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바깥 쪽에서 안 쪽에 있는 사람들을 버티다 보니까, 벼랑 끝에 있는 느낌이 들어서 심리적으로도 압박감이 들었습니다."
-이수재, 단양고 2학년

▲ 벼랑 끝에 선 사람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날은 어두워지고 있어. 물탱크에 제일 먼저 올라간 상순 씨는 물탱크 한복판에 있었어. 등에는 한 살배기 아기, 양손엔 9살, 6살 아이들을 붙잡고 있어. 몇 시간째 비를 맞으면서도 얼굴 한번 닦을 수가 없어. 손을 놓치면 안되니. 게다가 온몸이 덜덜 떨려. 힘든 게 또 있었어. 바로 생리현상. 어느 순간 사람들이 선채로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시작했어.

어느새 물탱크에 올라온 지 6시간째야. 사방이 캄캄한 암흑상태야. 강물은 이제 물탱크 코 앞까지 올라왔어. 조금 더 차오르면 그대로 완전히 잠겨버릴 거 같았어. "이제는 죽었구나"는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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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물탱크 옆 원두막 상황은 어땠을까. 물탱크보단 사람이 적어서, 그래도 앉아있을 수 있는 상황인데 물탱크보다 높이가 낮아서 강물과 훨씬 가까워. 그 물소리가 너무나 공포스러웠대. 신기한건 그 상황에도 잠이 막 쏟아져. 수택이를 포함해서 애들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해. 이 상태로 밤 12시가 됐어. 물탱크 위에서 9시간이 지나고 있어.

다행히 비가 잦아들기 시작해. 바로 그때, 옥희 씨의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어. 이제 막 100일이 된 아기가 어른도 힘든데 얼마나 힘들겠어. 아침에 젖을 먹이고 여태 굶었으니. 옥희 씨가 젖을 물리려고 힘겹게 포대기를 풀고 애를 안았어. 그때였어. 밀착해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 어느 순간, 아주 작은 공간이 생겼어. 아기를 위해 공간을 만들어준 사람들. 옥희 씨는 쪼그려 앉아 젖을 물렸어. 배가 부른 지 애도 이제 방긋 웃어. 그 와중에도 옥희 씨는 순간적으로 고통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대.

그런데 그 순간, 물탱크가 한번 휘청하는 거 같더니 사람들이 옥희 씨 쪽으로 넘어졌어. 옥희 씨는 애를 안은 상태로 그대로 눌렸어. 잠시 후 사람들이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어. 옥희 씨도 간신히 일어났어.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해. 애가 안 울어. 만져도 움직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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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비가 그치고 나오길래, (아기를) 내려다보니까 자는 것 같아요. 우리 동네 아줌마한테 '아줌마야, 아기 숨이 있나 없나 좀 봐' 했더니, 만지더니 '아기 숨이 없어' 라고. 아우성칠 생각 있지 왜 없겠어요. 그런데 그래봤자 아무 소용 없잖아요. 우리 아기는 죽어서 살아올 거 아니잖아. 아무리 야단을 쳐도... 그 또래를 보면 '우리 애도 지금 저만했을 텐데'하고 생각나지요. 어리나 크나 자식은 죽어야 잊지, (살아서) 잊지는 못해요."
-최옥희, 당시 33세

넘어질 때 충격으로, 아기가 죽은 옥희 씨. 밤새 아무말도 못하고 아기를 끌어 안고만 있었대.

그런데 잠시 후, 제2원두막이 무너졌어. 원두막을 지탱하던 나무 하나가 뽑히면서 원두막이 붕괴됐고, 21명이 물에 빠졌어. 순식간에 사람들이 물에 휩쓸려 갔어. 물탱크 위에 있던 현수 씨와 수택이 아버지는 아내와 애들이 물에 빠진걸 보고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어. 그럼 물탱크가 무너질 수 있으니까. 그 짧은 순간, 애들의 비명 소리가 점점 멀어져. 물탱크 위에선 적막이 흐르고 있어. 들리는 건 물소리 뿐. 21명 모두 떠내려갔어.

그 시각 물에 빠진 수택이는 물살에 휩쓸려 허우적 거리고 있어. 원두막에서 깜박 잠이 들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물 속이야. 정신없이 허우적대던 그 순간에, 나뭇가지를 잡았어. 물이 빠지면 살 수 있다는 희망에, 그저 물이 줄어들기만을 바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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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물탱크 위. 사람들이 떠내려가고 2시간 정도 지난 새벽 3시경. 사방은 여전히 어두운데,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해.

"저기 소 좀 봐요. 물이 빠지는 거 같아요."

밤새 헤엄치던 소들이 가만히 서있어. 물에 잠기긴 했지만, 소가 서있는 걸 보고 이제 물이 빠지는구나 싶었어. 새벽 4시, 물탱크 바깥쪽 사람들부터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어. 물탱크에 오른 시간은 오후 2시야. 무려 14시간 가까이 그 위에서 버틴 거야. 마을 사람들은 "이제 살았구나"하며 드디어 안도했어.

근데 사람들이 다 내려온 줄 알았는데, 물탱크 위에서 누군가가 울고 있어. 올라가보니 옥희 씨가 그제서야 아기를 끌어안고 흐느껴 울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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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남은 사람들, 시루섬의 기적

시간이 지나 물이 어느 정도 빠진 시루섬. 물 빠진 후의 마을 풍경은 어땠을까. 그냥 물안개만 자욱한 허허벌판이야. 다 떠내려가서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어. 하지만,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실종된 21명을 빨리 찾아야해.

마을 청년들이 배를 타고 다니면서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어. 잠시 후 어디선가 희미한 소리가 들려.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나무 위에 걸려있어. 깜짝 놀란 청년들이 급하게 올라가서 그 아주머니를 끌어내렸지.

그 시각, 현수 씨도 정신없이 가족을 찾았어.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를 먼저 찾았어. 떠내려가다가 철조망에 옷이 걸려 다행히 목숨을 건졌어. 15살 첫째와 12살 둘째도 찾았어. 휩쓸려 가다가 간신히 나무를 붙잡고 버틴 거야. 그런데 아무리 찾아 헤매도, 나머지 세 아이는 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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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 셋이 다 떠내려가고 두 명만 남았더라고요. 기가 막히고 손에 안고 있던 애도 없어졌지 말도 못해요."
-김현수 씨 아내 권순이 씨
"물에 애들 떠내려 보내고.. 물을 안 먹으려고 해도 물을 또 먹게 되더라고. 그 물에 아이들을 셋이나 떠내려 보내고도. 그렇게 사람이 독한 거야."
-김현수 씨

물에 빠진 21명 중에, 3명이 사망한 채로 발견됐고 4명은 시신조차 찾지 못했어. 그 중엔 수택이의 7살 막내 여동생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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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섬 밭에서 놀던 여동생 얼굴이 지금도 선명해요. 귀엽고 앙증맞고. 마음이 그때는 좀 이상했지. 시신도 못 찾았으니까. 어린 나이니까 어떻게 표현을 못해도. 감정이 좀 그렇더라고요."
-오수택, 당시 12세

이 시루섬 쪽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이런 대홍수가 난 걸까. 상류 쪽인 영월 지역에 집중호우가 내리긴 했어. 그런데 시루섬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은 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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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섬 상류에는 상진대교라는 다리가 있어. 이 당시 수해 때 상진대교가 무너졌어. 시루섬 주민들은 이 일 때문에 엄청난 물난리가 났다고 생각해. 다리가 무너진 거랑 물난리랑 무슨 상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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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 영춘면 이쪽 지역 주변에 벌채했던 나무들이 산더미처럼 강가에 쌓여 있었습니다. 강물이 불으니까 (나무들이) 동시에 막 떠내려와서, 상진대교가 (지탱할 수 있는) 힘이 한계가 있으니까 견디다 견디다 못해서 댐이 무너진 것처럼 강물이 일시에 쏟아지면서 시루섬 최악의 상황이 일어났던 것이 아닌가…"
-김문근 단양군수

당시 시루섬 상류 쪽에서 벌목을 많이 했는데, 옮기려고 쌓아둔 통나무들이 물에 떠내려오면서 상진대교 아래에 쌓인 거야. 그게 물길을 막아서 마치 댐처럼 돼 버렸는데, 상진대교가 무너지면서 댐이 무너진 것처럼 강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큰 피해를 입게 됐다는 분석이지.

그날 이후 마을 사람들은 "우리는 모두 다시 태어난 거니까, 이 날을 기억했다가 언젠가 시루섬에 모여서 다같이 생일파티를 하자고" 말했어. 하지만 그 약속은 그 이후로 한번도 지켜지지 않았어. 시루섬에 모일 수 없었거든. 1985년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이 마을은 수몰됐어.

그런데 2022년 8월 19일, 그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루섬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어. 무려 50년만에. 그 특별한 생일잔치를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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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9일, 단양의 한 호텔.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하는 사람들. 서로 부등켜안고 울었어. "우리 모두 생일이 같다"는 사람들은 배를 타고 사라져버린 시루섬으로 향했어. 지금은 물 속에 가라앉은 내고향 시루섬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었어. 하늘에 먼저 간 사람들의 명복도 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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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난리 속에서도 질서를 지키고 서로를 배려했던 시루섬 사람들. 그 분들은 지금도 말해. 살아난 게 기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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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참 기적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살아난 게 기적이에요."
-박동준, 당시 23세
"생에 그런 일이 한 번 더 있어도 안되겠지만, 그런 일은 참 기적이구나…"
-김기홍, 당시 15세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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