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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꼬꼬무' 소방관 6명 잃은 홍제동 화재 사고…이후 밝혀진 '충격적인 진실' 조명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2.11.11 04:31 수정 2022.11.11 09:57 조회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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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제일 먼저 들어가서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소방관들의 그날 이야기가 공개됐다.

10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First In, Last Out'라는 부제로 홍제동 화재 사고를 조명했다.

지난 2001년 3월 4일 서울 서부소방서 구조대에는 한 통의 화재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하지만 이는 오인 신고였다. 이에 복귀를 하려던 구조대에게 또 한 통의 화재 신고가 접수됐다.

이에 곧장 화재 신고가 들어온 홍제동으로 달려간 소방관들. 오인 신고로 인해 평소보다 2분 더 빨리 출동했지만 화재 현장으로 가는 길은 불법 주정차 차량들이 막고 있어 더 이상의 진입이 어려웠다.

결국 대원들은 20kg이 넘는 장비들을 들고 소방 호수 12개를 연결해가며 150m의 거리를 뛰어갔다. 하지만 이미 화재 현장은 최고조에 이른 상황. 빠르게 화재 진압을 하던 그때 화재가 난 집의 집주인 아주머니가 아들이 안에 있다며 구해달라고 애원했다.

이에 대원들은 조금의 지체도 없이 바로 현장으로 뛰어 들어가 아주머니의 아들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아들을 구해달라는 아주머니의 간절한 외침에 대원들은 또다시 수색에 돌입했다.

그리고 권영철 소방관은 지하실을 수색하고 나왔다. 그런데 그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건물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이에 수색을 위해 내부에 진입했던 대원들과 현관문 앞에 있던 대원까지 총 7명이 매몰되고 말았다.

미친 듯이 불러도 응답은 돌아오지 않고, 이에 대원들은 본격적인 구조 작업에 돌입한다. 그리고 "내 동료의 목숨은 내 손으로 구한다"라는 마음으로 동료를 구하기 위해 서울 곳곳에서 250명이 넘는 소방관들이 모였다.

중장비도 들여올 수 없는 상황에서 대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곡괭이와 망치로 잔해들에 구멍을 뚫는 일. 이들은 영하의 날씨에도 땀이 흐를 정도로 구조 작업에 집중했다.

그리고 매몰 50분 만에 현관 앞에 서있던 김철홍 대원을 구조했다. 그러나 대원들은 기뻐하거나 동료의 상태를 살필 겨를도 없었다. 남은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집중했다.

보일러실에 대피했을 것이라 생각해 보일러실 위치를 가늠해서 3군데 구멍을 뚫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확보됐다.

간절한 마음으로 바닥을 기어 다니며 동료들을 찾던 그때 이승기 소방관이 매몰 3시간 23분 만에 두 번째로 구조된다. 그리고 이어 차례대로 동료들을 찾아냈고 3시간 46분의 사투 끝에 모든 동료들을 구조하는 것에 성공했다.

같이 병원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대원들은 그대로 남아 구조 작업을 계속 이어갔다. 최초의 요구조자인 집주인의 아들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때 믿고 싶지 않은 소식들이 들려왔다. 소방 대원들이 사망했다는 소식들이 차례대로 이어진 것. 3월임에도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남은 대원들의 마음을 대신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식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화재조사관이 화재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난 현장에는 집주인의 아들이 없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화재조사관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

경악할 소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화재의 원인은 방화로 밝혀졌고 이 방화를 저지른 범인은 바로 집주인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현장의 대원들은 망연자실하게 주저앉고 말았다.

결국 이 화재로 소방대원 6명이 순직했고 동료들은 눈물 속에서 그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시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펼쳤던 이성촌 소방관은 "거기서는 소방관 하지 말고 편하고 안전한 직업 해"라는 말을 전하며 눈물을 쏟아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일주일 뒤 결혼을 앞두고 있던 예비 신랑이었던 박준우 소방관부터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자신의 일을 성직이라 여겼던 김기석 소방관까지 이들은 끝까지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이들의 죽음 앞에 배우 최영준은 "다들 너무 젊다.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았을까"라며 안타까움에 눈물을 보였다.

홍제동 화재 사건 이후 세상에는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공개됐다. 눈앞에서 동료들을 잃고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인력 부족으로 홍제동 화재 사건 다음날 바로 출동을 할 수밖에 없던 권영철 소방관. 당시 소방관 한 명이 책임져야 할 시민의 수는 2000명으로 208명을 책임지는 미국의 10배에 달했다.

소방 병원도 없어 자비로 치료 후 보상을 청구해야 했던 소방관. 특히 화상으로 인한 피부 이식에 대해서는 보상을 청구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당시 소방관들은 방화복이 아닌 방수복을 입고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15배에 달하는 가격 차이로 소방관들에게는 방화복 대신 방수복이 지급됐던 것. 이때까지 소방대원에 대한 처우는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것.

다행히도 현재는 많은 부분이 개선된 상태. 이에 소방관들은 "소방의 발전은 홍제동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고 했다.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많은 부분이 개선된 것.

이날 방송에서는 기적적으로 생존한 생존자 이승기 소방관과의 인터뷰가 공개됐다. 그는 그날의 상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며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이 든다"라며 "이 세상을 떠나 혹시라도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면 잘 지냈냐고 인사하고 싶다. 그런 걸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다"라고 했다. 또한 그는 다시 그날의 상황이 닥친다면 고민 없이 들어갈 것이라며 "소방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방 현장에서 가장 많이 쓰는 신호인 알았냐는 46과 알았다는 47. 이에 이성촌 소방관은 세상을 떠난 여섯 명의 동료들 중 단 한 명에게라도 47 응답을 받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홍제동 화재 사고로 생긴 상처 위에 문신을 하나 새겼다. First In, Last Out.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나중에 나온다. 그런 문구를 몸에 새기고 살아가는 것. 이에 이야기 친구들은 큰 감명을 받고 그들의 사명감에 존경심을 표했다.

그리고 시민들을 살리는 소방관을 위해 그들을 살리는 시민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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