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신하균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연기가 다 되는 배우다.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느냐에 따라, 그의 눈빛은 총총 선하게 빛나기도, 벌겋게 달아올라 무섭게 충혈되기도,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광기로 가득 차기도 한다. 눈빛부터 표정, 말투, 목소리 톤까지 모든 걸 캐릭터에 맞추는 신하균의 섬세한 연기력은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오죽하면 연기를 너무 잘해서 '하균신(神)', '연기 괴물'이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연기력이 뒷받침 되니, 작품을 보는 시야도 굉장히 넓다. 그가 최근 출연한 작품들만 봐도 변화의 폭이 상당하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형사로 분한 '괴물', 극강의 하이텐션과 로우텐션이 오가는 괴짜 CEO로 활약한 '유니콘', 그리고 최근 공개된 '욘더'에서도 신하균은 변신을 거듭했다.
티빙(TVING) 오리지널 시리즈 '욘더'는 멜로를 입은 SF 드라마로 좀 독특한 작품이다. 10년 후의 근미래에,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안락사로 세상을 떠난 아내 이후(한지민 분)로부터 영상 메시지를 받은 남편 재현(신하균 분)이 그녀를 만날 수 있는 미지의 공간 '욘더'에 초대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신하균은 아내를 안락사로 보낸 슬픔, 죽은 아내가 욘더란 가상의 세계에 등장하며 겪는 혼란 등을 절제된 연기력으로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불과 몇 주 전까지 '유니콘'에서 방방 뛰는 시트콤 연기를 선보였던 신하균인지라, '욘더'의 재현을 통해 보여준 극명하게 다른 연기 온도차가 놀랍기까지 했다. 신하균이란 배우가 표현할 수 있는 연기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지 새삼 깨달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칭찬만 해도 부족할 최고의 연기력을 갖춘 신하균 자신은 스스로의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Q. SF+멜로 라는 게 낯선 장르이고, '욘더'라는 가상을 그려낸다는 것도 도전적인 일인데요. 왜 이 작품에 끌려 출연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신하균: 1년 후의 미래도 SF가 될 수 있어요. 10년 후도 마찬가지고요. 원작에선 더 먼 미래였는데, 현실적으로 그리기가 힘들어 드라마에선 10년 뒤로 설정했죠. 우선 '죽음'이란 소재에 끌렸어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럼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인지하고, 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그런 주제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질 거라 생각했어요. 죽음은 미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 이 SF 장르와 맞다고 봤고요. 또 이준익 감독님과의 작업도 기대가 많이 됐어요.
Q. 이준익 감독님과는 처음 작품을 같이 했는데, 어땠나요? '욘더'가 감독님의 첫 드라마 연출작인데, 그래서 기존과 달랐던 점이 있을까요?
신하균: 감독님과의 작업은 처음인데, 워낙 같이 했던 배우들의 만족감이 높은 감독님인 걸 알고 있었죠. 감독님이 배우들과 함께 고민하며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현장 분위기를 저도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영화가 아닌 드라마 현장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건 없었어요. 영화나 드라마나, 배우가 연기하는 마음가짐도 똑같고, 감독이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까 고민하는 지점도 같아요.
Q. 그렇게 현장에서 경험해 본 '감독 이준익'은 듣던 대로 만족도가 높던가요?
신하균: 이준익 감독님은 유쾌하고 열정적이세요. 배우들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 '오케이' 사인도 굉장히 커요. 그래서 연기 후에 감독님의 "오케이" 소리가 작으면 오히려 제가 뭘 잘못했나 싶기도 했어요.(웃음) 그만큼 감독님은 현장의 활력이 됐고, 그걸 받아 제가 나아갈 힘을 얻기도 했어요. 또 감독님은 본인이 쓴 대본인데도 '이게 맞는 표현인가', '더 좋은 게 있지 않을까', 계속 의심하세요. 배우랑 같이 그걸 찾으려 고민하고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감독님이 촬영을 빨리 끝내는 분인데, 점심 때부터 "오늘 저녁 뭐 먹을까"를 말씀하세요. 그럼 저녁에 같이 장을 봐와서 먹고, 술도 한 잔 하고, 음악도 같이 듣고. 그렇게 '욘더'는 감독님과 여행하듯 힐링하면서 촬영한 현장이었어요.
Q. 한지민 배우와는 20년만에 한 작품에서 재회했는데요. 과거와 비교해 같은 점과 달라진 점이 궁금합니다.
신하균: 사실 과거의 기억이 별로 없어요.(웃음) 그 땐 잠도 못 자고 정신없이 촬영하던 현장이었고 지민 씨도 저도 말이 없는 편이라 서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다시 만난 지민 씨는 사람을 참 편하게 해주는 친구더라고요. 지민 씨가 가지고 있는 평소의 배려심이나, 건강하고 밝은 에너지가 저한테 많은 힘이 됐어요. 그래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Q. 정진영 배우와도 드라마 '브레인' 이후 10년 만에 재회한 거잖아요. 오랜만에 연기 호흡을 맞추니 어땠나요?
신하균: '브레인'에서는 서로 앙숙 캐릭터라, 제가 선배님의 멱살을 잡고 소리지르고 그랬어요. 그래서 다음에 다시 만나면 반대 역할을 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이번에 그 정도까진 아니었어요. 10년만에 다시 만나 너무 좋았어요. 선배님이 이번 작품에 닥터K 장진호 역할을 해주셔서, 욘더라는 세계가 구현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Q. 세이렌 역할을 연기한 이정은 배우와는 연극할 때부터 친한 사이죠?
신하균: 20대때 연극할 때 만난 선배님이자, 저한테 개인적으로 포근한 누나예요. 연기에 대해 고민도 많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던 시기에 따뜻하게 감싸주던 누나였어요. 연극 공연하던 그 때도 좋은 누나였고, 지금도 누나는 변하지 않았어요. 여전히 따뜻하고, 그 존재만으로 현장을 다 아우르죠. 이번에 같이 작품 해서 너무 좋았고, 또 작품에서 만나고 싶어요.
Q. 평소 작품을 선택할 때 '새로움', '다양성', 캐릭터에 대한 '연민'을 고려한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요. 이번 작품을 선택할 때도 그랬나요?
신하균: 새로움, 다양성, 캐릭터에 대한 연민, 다 중요한 부분이죠. 항상 새로운 걸 하고 싶어요. 모든 이야기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같은 이야기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거고요. 안 해봤던 캐릭터를 하고, 그걸 통해서 우리가 던지고자 하는 이야기가 관객에게 재미를 주면 좋겠어요. 저도 그러면서 많이 배우기도 하고요. 모르는 부분, 궁금한 부분을 같이 이야기하고 배우는 게, 제 인생에도, 연기자로서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Q. 전작 '유니콘'과 비교해 180도 변신을 했는데요. '유니콘'이 끝나자 마자 '욘더'를 보는 게 느낌이 남달랐을 거 같아요.
신하균: '욘더'는 작년에 촬영해서, '유니콘'보다 먼저 찍었어요. '유니콘' 방송이 끝나갈 무렵, '욘더'가 공개됐고요. '유니콘'의 스티브에 익숙해있다가 '욘더'를 접하고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전혀 다른 모습이라서. '저렇게 분위기가 있었어?' 싶기도 하고.(웃음)
Q. 실제 성격은 조용한 편인데, '유니콘'처럼 외향적으로 발산해야 하는 연기를 할 때 어떻게 몰입을 하나요?
신하균: '유니콘'은 장르가 시트콤이다 보니 표현해야 하는 톤 자체가 높았어요. 물론 제 실제 성격과 다르지만, 연기를 실제 성격으로 하는 건 아니니까요. 배우들은 캐릭터에 맞춰 제 몸과 소리를 쓸 줄 알아야 하고, 그렇게 훈련이 돼 있죠. '이 캐릭터는 표현을 어느 정도로 할까', '어떻게 말을 할까', 그런 걸 하나씩 찾아 나가는 거예요.
Q. 배우 신하균의 캐릭터 접근 방법이 궁금해요.
신하균: 배우는 표현하는 사람이에요. 혼자 느끼는게 아니라, 어떻게 표현해야 효과적일지 고민하는 게 배우죠. 그래서 접근방법을 항상 고민하고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해요. 그게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추상적이고 모호해요. 현장에서 그 정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연기라고 생각해요. 제가 말로 뭔가를 표현할 줄도 모르고, 말주변도 없어요. 그래서 주변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에요. 그걸 나름대로 해석하고 좋은 건 받아들여서 연기해보려 하고요. 그렇게 찾아가는 편이에요.
Q. '욘더'의 재현은 감정을 꾹꾹 담아 절제하며 표현하는 캐릭터라,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연기할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었을까요?
신하균: 재현의 감정선은 표현해야 될 절대치가 있는데, 또 그걸 넘어서는 안 됐어요. 그 수위조절을 하는 게 어려웠어요. 표현하지 않지만 표현해야하는 것들도 있었고, 또 난해한 대사도 많았죠. 그런 건 감독님과 상의하고,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찾아 나갔어요. 표현을 많이 하는 인물이면 1차원적으로 표현하면 되는데, 재현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게 없었어요. 대본을 봤을 때, 더 담담하고 건조했어요. 오히려 대본보다는 조금 더 제 감정이 나오게 연기한 거 같아요.
Q. '하균신', '연기 괴물'이라 불릴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 받는 배우잖아요.
신하균: 쑥스럽고 민망하죠. 그럴만한 사람도 안되고, 연기를 잘 한다는 생각도 안 드는데요. 좋게 봐주시는 건 감사한데, 부끄러울 뿐이에요.
Q. 그럼 남들의 칭찬과는 별개로, 자신의 연기에 대해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신하균: 모자란 부분이 너무 많죠. 계속 뭔가 더 깨우치고 깨어나가야 할 게 있다고 생각해요. 전 연기에 절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작품 만날 때마다 그 안에서 제가 해야 될 표현들에 대해서만 생각하는데, 그걸 계속해서 잘 해나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대단한 연기를 보여드린다 라기 보단, 그 이야기 안에서 무리 없이 잘 표현해서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들을 적당하게 잘 표현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근데 그게 생각과 다르게 잘 안 될 때가 더 많아요. 모자랄 때도, 과할 때도 많죠. 계속 고쳐 나가야죠.
Q. 늘 새로운 작품, 새로운 캐릭터를 선택하는데, 새로움을 찾고자 하는 이유는 뭔가요?
신하균: 본능인 거 같아요. 똑 같은 인물, 똑 같은 이야기는 없어요. 다 새롭다고 생각해요. 그런 새로움, 가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갈망도 있고, 도전의식도 있어요. 또 보시는 분들도 그래야 재밌게 보시지 않을까요? 늘 새롭게 다가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Q. 한 인터뷰에서 작품을 하는 과정이 힘들고 괴롭다고 말했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 하는 원동력은 뭔가요?
신하균: 완성된 뒤에 오는 보람이 커요. 제가 연기를 하게 된 건, 저한테 없는 부분들 때문이었어요. 어릴 때 말 잘하는 사람이 너무 부러웠죠. 전 말주변도 없고 쑥스러움도 많이 탔거든요. 정해진 대본의 이야기를 저라는 사람이 전달하고, 그걸 봐주시는 분들이 좋아한다면, 저란 사람한테는 큰 보람이에요. 현실에선 잘 못하는 부분이라서요. 저 역시도 어릴 때 영화를 보는 게, 그 세계에 들어가는 게 너무 좋았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누군가 제 영화에 자기 인생의 2시간을 투자했는데, 그 시간을 즐겁게 해드릴 수 있다면 그거만큼 보람찬 게 없죠. 그게 원동력이 되는 거 같아요.
Q. 74년 호랑이띠 대표 연예인인데요. 날이 쌀쌀해지고 어느덧 연말이 다가오고 있어요. 올 한해 어떻게 보낸 것 같은지요?
신하균: 1월 초에 '욘더' 촬영을 끝냈고, '유니콘' 촬영해서 공개가 됐고, 이제 '욘더'가 공개가 됐어요. 나름 바쁘게 지냈죠. 보람찬 한 해 였던 거 같아요.
Q. 만약 '욘더'처럼 죽을 때 기억을 남길 수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남기고 싶은 기억은 무엇인가요?
신하균: 제가 남긴다고 그들이 좋게 기억할 지는 모르겠네요.(웃음) 각자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거니, 좋은 기억이면 좋겠어요. 그런데 전 기억보단, 작품을 계속 남기고 있잖아요? 그걸로 계속 존재하면 좋겠어요.
[사진제공=티빙(TVING)]
강선애 기자 sak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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