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프로그램 리뷰

[스브스夜] '꼬꼬무' 저항 없이 사망한 무장 공비 11명…이들의 사망에 숨은 진실은?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2.07.29 04:05 수정 2022.07.29 09:58 조회 3,536
기사 인쇄하기
꼬꼬무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총상을 입고 사망한 11명의 정체는?

28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검은 돌고래와 불청객'라는 부제로 1996년의 그날을 조명했다.

지난 1996년 10월 22일, 표민정 씨는 봄에 입대한 남동생 표종욱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민정 씨는 사고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지만 부대 측은 탈영이라 주장했다.

그러자 표 씨의 가족들은 한 달 전의 그 사건을 떠올렸다. 1996년 9월 18일 새벽 1시 택시 기사는 수상한 옷을 입은 남자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곧 바다 쪽에서 이상한 기계음을 듣게 되었는데 이는 바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잠수함의 소리였다.

이에 인근 부대에는 비상이 걸렸고, UDT 대원들은 긴급 투입되어 잠수함의 내부 수색을 시작했다. 잠수함에는 상상 이상의 것들이 가득했다. 총부터 수류탄, 기관총 등 중무장이 된 상태였던 것. 그런데 침투 목적에 대한 자료가 없었다. 남은 서류를 모두 불태우고 남은 것은 쪽지 한 장이었다.

쪽지에는 "우리 영웅들은 절대로 죽지 않고 꼭 살아서 승리의 보고를 안고, 임무가 실행되어 적화통일의 그날을 기다리겠다"라는 김일성에 대한 충성 문이 적혀 있었다. 이는 바로 무장 공비들의 잠수함이었던 것이다.

이에 군부대는 대대적인 수색 작전을 펼쳤고, 인근 해안 도로에서 무장 공비들의 족적을 발견했다. 이에 강릉은 물론 전국이 공포에 빠졌고 군부대가 총출동해 무장 공비의 족적을 쫓았다.

그런데 이때 인근 야산에서 무려 11발의 총성이 들렸다. 그리고 수색조는 곧 야산에서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총상을 입은 사람들 11명이 일렬로 누워 죽어있는 현장을 발견했다. 이들은 모두 무장 공비였다.

임수를 수행하지 못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자폭 교육, 이에 무장 공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 판단됐다. 하지만 조사 결과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닌 동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었다. 동료들을 자살로 위장해 도망갈 시간을 벌었던 것이다.

이에 군은 살아있는 무장 공비를 찾기 위해 다시 추적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수상한 남자가 있단 제보를 받아 극적으로 이를 체포했다. 북에서 왔다고 순순히 자백한 그는 잠수함의 조타수 이광수. 하지만 그는 사망한 이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고 남한으로 온 무장 공비가 몇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우리 군은 그를 회유하기 위해 그에게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에 이광수는 광어회를 요구했다. 그런데 이는 남한의 경제 사정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었다. 가난한 남한에서 광어회를 공수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것.

또한 그가 체포된 이유도 집집마다 전화가 있을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던 것 때문으로 드러나 눈길을 끌었다.

총 26명이 타고 온 잠수함, 현재 남은 인원은 총 14명이었다. 이에 강릉에 통행금지령이 내려지고 다음날 새벽 곳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에 7명이 사살되었다. 그리고 우리 군도 3명이 희생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휴가를 나올 아들을 기다렸던 부모님들은 하루아침에 사망한 아들에 오열해야 했다. 이후 무장 공비들은 북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속 북으로 진출했다. 그러는 과정에 무장 공비뿐만 아니라 군인들 중에서 사상자들이 계속 발생했다.

그리고 어느 날 표민정 씨는 뉴스에서 낯익은 시계를 발견했다. 동생에게 선물한 시계가 무장 공비들의 유류품 속에서 나왔던 것. 그리고 다음 날 속옷만 입은 채로 낙엽에 덮여있던 동생의 시신이 발견됐다. 사실 표 일병은 무장 공비에게 살해당하고 군복과 물건을 빼앗겼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지 다음날 헌병대에서는 표 일병의 가족들에게 표 일병을 자수시키라는 전화가 걸려와 가족들을 더욱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수많은 사상자들이 나오고 무장 공비는 차례대로 사살되었으나 현재까지도 끝내 발견되지 못한 무장 공비 1 명. 이에 대해서는 북한으로 돌아갔을 것이라는 설과 야산에서 사망했으나 시신이 발견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정보 수집 임무 중 잠수함이 좌초된 것이 유력한 무장 공비들. 이들은 마지막 순간에도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을 드러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에 대해 북한은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주장이라며 잠수함과 승무원들 돌려보내라며 돌려보내지 않으면 배로 갚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모든 내막이 드러난 후 미국의 요구에 사과했다. 우리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며 무장 공비의 유해를 북한으로 보냈고, 이광수는 그가 원하는 대로 남한에 남았다.

그런데 14년이 지난 2010년 북한은 영화 한 편을 공개했다. 사살된 무장 공비를 자폭 영웅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선전에 이용했던 것이다.

49일간의 전쟁으로 총 27명이 부상을 당했고 18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날의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던 그날에 대해 이야기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야기 친구들은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 상황인지를 잊고 살고 있다. 희생한 군인들의 희생도 잘 모르고 무덤덤한 상태가 아니냐"라고 했다.

또한 "전쟁의 반대는 일상이라고 하는데 이런 사건이 터진 후에야 우리의 상황을 실감하게 된다. 이렇게 망각하며 사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 때문이고 그들 덕에 일상이 유지되고 있다"라며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순간 희생된 이들을 떠올리면 좋지 않을까라고 말해 공감을 자아냈다. 

광고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