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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애기 아저씨가 엄마를 때렸어요"…방화살인범 잡은 '4살 아이'의 증언

강선애 기자 작성 2022.07.15 10:58 조회 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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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4일 방송된 '꼬꼬무- 네 살배기 목격자와 애기 아저씨'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정만식, 개그맨 김용명, 가수 청하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시신으로 발견된 엄마

때는 1996년 8월 23일 0시 35분, 자정을 넘은 한밤 중이야. 서울 용산소방서에 "아랫집에 불이 났는데, 집에 사람이 있는 거 같다"는 신고 전화가 접수됐어. 서울 후암동에 있는 다세대 주택 3층에 불이 났어.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해 보니, 불길이 솟구치고 연기가 자욱해. 한쪽에서는 불을 진압했고, 동시에 구조대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갔어.

구조대원이 조심조심 발을 내딛는데, 누군가의 손이 발을 꽉 잡아. 조그마한 고사리손이야. 여자 아이였어. 이마에선 피가 흘러 내리고, 온 몸에 화상을 입었어. 얼른 아이를 부둥켜 안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아이가 "엄마, 엄마" 울면서 집안을 가리켜. 엄마가 방에 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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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대원이 재빨리 방안에 들어가보니 아이의 말대로 엄마가 있었는데, 이미 숨을 거둔 후였어. 근데 뭔가 좀 이상해. 시신이 하늘을 보고 반듯하게 누워있어.

보통 화재 현장에는 시신이 출입문 쪽에서 발견되고, 발버둥 친 흔적도 남아 있대. 그런데 이 시신은 방안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어. 불이 났을 땐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는 말이지. 시신에서는 화상 뿐만 아니라 얼굴과 머리에서 큰 상처가 발견됐어. 딸도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잖아? 누군가 엄마와 딸을 살해하고 불을 질렀는데, 어린 딸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야.

▲ 범인은 누구인가

곧바로 수사팀이 꾸려지고 담당형사가 배정됐어. 담당형사는 용산경찰서 강력반의 조형근 형사였어. 15년차 베테랑 형사야. 현장감식을 해보니까 책, 이불, 커튼에서 불을 붙인 흔적이 발견됐어. 명백한 살인방화사건인 거야. 얼른 단서를 찾아야 하는데 막막해. 다 불에 타고 그 불을 끄려고 물까지 뿌렸으니 증거가 남아 있을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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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형사는 현장을 둘러보고는, 안방의 장롱문이 활짝 열려있고 서랍이란 서랍은 다 나와있는 걸 발견했어. 집안을 누가 뒤진 것처럼. 근데 귀금속도 그대로 있고, 침대에는 엔화 2만엔이 놓여 있었는데 그건 건드리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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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형사는 직감했어. 이건 누군가가 강도가 왔다 간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는 걸. 실제로 집에는 누군가 강제로 침입한 흔적도 없었어. 범인은 면식범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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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엄마는 28살 최모씨(가명), 딸은 당시 4살 하나(가명). 경찰은 최씨의 남편이자 하나의 아빠부터 의심했어. 그런데 알리바이가 확실해. 하나아빠는 일본인이야. 사업 때문에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데, 사건 당시에는 일본에 머물렀어.

그럼 그날 밤, 하나네 집에 왔을 법한 사람을 찾아야해. 요즘 같으면 CCTV나 블랙박스를 확인했겠지만, 당시는 그게 없었어. 그래서 경찰은 이웃을 상대로 탐문수사에 들어갔어. 그러다 유의미한 진술들을 확보했어. 하나네 아랫집에 살던 부부가 그날 저녁 8시반 경에 밖에서 놀던 하나를 하나엄마가 불러서 데리고 들어가는 걸 봤대. 그런데 얼마후, 윗집 하나네서 쿵쿵거리는 큰 소리를 들었대. 하나네 위층 이웃도 하나엄마가 발악하는 소리, 아이가 악쓰면서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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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들이 이상한 소리를 들은 건 밤 9시 20분경. 조 형사는 일차적으로 범행이 이 때 이뤄졌을 거라 추정했어. 그리고 불인 난 건 밤 12시 20분이니, 범인이 하나엄마를 살해하고 나서 3시간 가량 후에 불을 지른 셈이지. 그 시각, 이 집에 있었던 그 사람은 누굴까? 그 답을 알만한 사람이 한 명 있지.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생존자, 바로 하나야.

▲ 4살 아이가 지목한 '애기 아저씨'

형사들은 하나가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어. 근데 하나가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 중이야. 머리도 다치고 몸 여기저기에는 화상을 입었고, 무엇보다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컸어. 이제 겨우 4살짜리 아이인데. '절대안정'이 필요하니 뭘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대신 조형사는 하나가 구조될 때 119 대원한테 "아저씨가 그랬다"라고 말했었다는 걸 들었어. 하나가 말한 그 '아저씨'는 누구일까.

조 형사는 숨진 하나 엄마의 주위에서 '남자어른'을 찾았어. 하나 엄마의 치정관계, 원한관계에서는 의심할 만한 부분이 나오지 않았어. 금전 관계를 살펴보니, 하나 엄마가 당시 아파트, 땅, 예금 다 합쳐서 7억원 정도 있었대. 당시로선 큰 돈이지. 근데 여기서도 아무 소득이 없었어. 하나엄마가 원체 알뜰하고 돈 관리가 깔끔했대.

조사를 해도 뭐 하나 나오는 게 없어 답답하던 그 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어. 하나가 일반 병실로 옮겼다는 거야. 형사들은 병원에 가서 조심스럽게 하나를 만났어. 하나한테 누가 한 짓이냐 물어봤더니, 놀라운 단어가 튀어 나왔어. '애기 아저씨'가 그랬다는 거야.

"아저씨 1개가 엄마도 때리고 나도 때렸다."

"무섭다. 엄마와 나를 때린 아저씨는 애기 아저씨다."

"집에 갔는데 애기도 있었다."

-하나의 진술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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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진술을 토대로, 조 형사는 하나네와 집을 오고가는 관계에, 아기가 있는 남자 어른이 범인일 거라 생각했어. 조 형사는 하나한테 그 애기 아저씨가 어디 사는지 아냐고 물었어. 그러니 하나는 안다고, 찾아갈 수 있다고 했어. 조 형사는 하나를 따라 애기 아저씨 집에 가보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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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지는 하나네 집 앞. 아빠의 품에 안긴 하나는 어디로 가야 할 지 손가락으로 길을 가리켰어. 갈림길이 나와도 망설이지 않고 정확히 방향을 지시했어. 여섯 번의 갈림길을 지나 하나가 지목한 한 집. 놀라운 건, 하나가 가리킨 그 집에 실제로 아기 아빠가 살고 있었어. 바로, 서른 한 살의 강씨였어. 그 순간, 옆에 있던 하나의 외할머니가 깜짝 놀랐어. 외할머니가 아는 사람인 거야. 오랫동안 이웃 사촌으로 가깝게 지내왔대. 조 형사는 바로 강씨를 불러 조사를 시작했어.

▲ 아이의 증언, 믿을 수 있나

조 형사는 피해자와의 관계부터 추궁했어. 강씨는 하나엄마에 대해 "가족끼리 몇 번 본 게 다고, 따로 만난 적도 없다"고 주장했어. 그럼 사건 당일 뭐했냐고 물으니 알리바이가 술술 막힘없이 나왔어. 강씨는 그날 집에 있다가 9시 뉴스 시작할 때쯤에 임신 중인 아내가 햄버거와 사과가 먹고 싶다고 해서 외출했대. 택시를 타고 5분 거리의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거를 샀고, 다시 택시를 타고 동네 시장으로 와서 사과를 샀고, 근처 정육점에 들려서 아기 이유식용 소고기 4000원어치를 사서 돌아왔대. 이때 시간이 9시 40분. 강씨가 집을 비운 시간은 9시부터 9시 40분까지, 약 40분이야.

그 알리바이가 맞나 확인해야지. 강씨의 가족들은 강씨 말이 다 맞다고 했어. 햄버거를 샀다는 패스트푸드점에 확인해보니, 결제를 현금으로 해서 기록이 없고, 손님도 많고 CCTV도 없던 시절이라 강씨의 방문이 확인이 안돼. 사과와 소고기를 산 상점에서는 강씨가 온 적이 있긴 한데, 그게 그날인지 아닌지는 정확하지 않다고 했어. 강씨의 알리바이는, 있다고 하기엔 가족들의 증언 뿐이고, 없다고 하기엔 증거가 없었어. 애매한 알리바이지.

고민 끝에 수사팀은 강씨와 하나를 대면시키기로 했어. 조심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직접 만나면 알 수 있을 테니까. 하나의 가족도, 강씨도 만남을 모두 동의했어.

다음날, 하나가 입원한 병실에 강씨를 데려갔어. 하나는 강씨를 보더니 고개를 팍 숙이고 덜덜 떨었어. 그리고 나가라고 소리쳤어. 서둘러 강씨를 내보내니 하나는 빨리 문을 잠그라고 난리를 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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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와 마주한 후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하나를 보고, 경찰은 확신했어. 강씨가 이 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 자리에서 강씨를 체포했어.

강씨는 펄쩍 뛰었지. 얼마전에 하나가 집에 놀러왔을 때 자기가 크게 혼낸 적이 있어서, 그거 때문에 자기를 무서워하는거 같대. 그러면서 강씨가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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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네살짜리 아기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그렇게 하라고 누가 시켰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는 태어난지 4년 6개월 된 어린 아이였어. 그런 하나의 말을 믿어도 될까? 잘못 본 건 아닐까? 보통 4살 정도 되면 말이 급속도로 느는데, 상상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대.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게 아니라, 사실과 공상을 구분 못해서 뒤섞어 말하기도 한대. 하나는 그날 정말 강씨를 본 걸까? 지금 상황에서 유일한 증거는 하나의 증언 밖에 없어. 이걸 믿냐 마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뒤바뀔 수 있어.

그럼, 하나의 말을 직접 들어볼까. 퇴원을 한 후에 사건 현장에서 아빠와 나눈 대화 녹취가 있어.

아빠: "애기 아저씨가 어디서 쾅쾅 때렸지?"

하나: "하나 방에서. 여기서 때렸어. 안돼, 안돼, 하지마!"

아빠: "아빠 있으니까 걱정마, 괜찮아."

하나: "엄마가 '살려주세요' 라고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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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하나는 어떻게 하고 있었지?"
하나: "하나는 무서워서 오줌 쌌어."
아빠: "누가 무서웠어?"
하나: "애기 아저씨."

하나는 당시 상황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했어. 아빠와 일본어로 대화했는데, 엄마가 말했다는 '살려주세요', 그리고 '애기 아저씨'란 단어만 한국어로 똑똑히 말했어. 하나의 진술은 일관적이었고 명확했어.

그런데 맥 빠지는 소식이 들려와. 긴급 체포됐던 강씨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어.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라, 네 살 짜리 아이의 말만 듣고 붙잡아 둘 수 없대. 조 형사와 하나 가족들의 마음은 타 들어갔지. 하지만 조 형사는 더욱 의지를 다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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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도 아이가 4살이었어요. 피해자 아이하고 똑 같은… 그 사건은 남다르게, 현장을 천 번도 넘게 갔을 겁니다. 모든 사건 해결은 현장에서 다 이뤄진다고. 현장이 증거라고 하듯이 '내가 어떻게든 이 사건을 해결해야겠다' 싶었어요."

▲ 수상한 용의자, 하지만 증거가 없다

조 형사가 발품을 팔고 또 판 끝에 마침내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어. 하나엄마가 쓰던 가계부에서, 강씨가 사건발생 4개월 전에 800만원을 빌려갔다는 글을 발견한 거야. 범행 동기가 될 만한 하나엄마와 강씨 사이의 '금전 관계'가 드러난 거지. 근데 강씨는 수사 초기부터 하나엄마와 금전 거래는 전혀 없었다고 거짓말을 해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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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증거를 보여주니 그제서야 강씨는 하나엄마에게 돈을 빌렸다고 인정했어. 그 사실을 왜 숨겼냐고 물으니 강씨는 "가족들이 아는 게 싫었다"며 모르게 넘어가고 싶었다고 말했어.

당시 강씨는 수입이 일정치 않았고, 빚이 점점 늘어가던 상황이었어. 그걸 메우려 마이너스 통장, 신용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다가 하나엄마한테도 돈을 빌린 거야. 연체된 대출금이 2000만원이 넘어. 은행에서는 빚 독촉이 이어졌고, 대출 변제 마감일이 닥쳐왔어. 그 마감일이 언제였냐? 바로 하나 엄마가 죽던 바로 그날이었어. 이게 우연의 일치일까?

하루는 취조실에서 조사를 하는데 강씨가 땀을 뻘뻘 흘려. 8월의 더운 날씨에 강씨는 긴팔 와이셔츠에 단추를 목 끝까지 다 채운 차림이었어. 수상해서 강씨가 옷을 벗도록 했는데, 몸 여기저기가 다 상처투성이야. 목, 왼팔, 왼쪽 겨드랑이, 오른쪽 팔꿈치, 앞가슴, 그리고 머리까지. 전부 다 여기저기 부딪치고 긁힌 상처들이야. 이정도로 상처가 났다는 건 보통일이 아니지. 피해자와 벌인 몸싸움 때문일 수도 있다고 경찰은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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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는 아이와 놀아주다가, TV 안테나를 고치려 옥상에 올라갔다가, 대추나무에 걸려서 등, 상처마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고 해명했어. 경찰은 만약 하나엄마와 강씨가 몸싸움을 했다면 하나엄마의 손톱에도 흔적이 남아있을 거라 생각해서 국과수에 분석을 의뢰했어. 그 결과, 하나엄마 손톱에서 희미한 혈흔이 발견됐어. 하지만 당시 기술로는 DNA 검출이 안됐어. 그나마 혈흔에서 나온 혈액형은 A형으로 확인됐지만, 강씨도 하나엄마도 모두 A형이었어. 그래서 누구의 혈흔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었어.

경찰은 거짓말 탐지기도 실시했어. 강씨의 진술은 다 '거짓'으로 나왔어. 하지만 거짓말 탐지기는 법적 효력이 없어.

정황상 강씨에게서 수상한 점이 많았지만 전부 간접 증거 뿐이었어. 유일한 직접 증거는 여전히, 4살배기 아이의 진술 밖에 없어. 이 아이의 기억이 정확하다는 걸 어떻게 하면 입증할 수 있을까? 이제 거기에 승부를 걸 수 밖에 없는 거야.

▲ 우여곡절 끝에, 2년만에 법정으로

조 형사는 하나의 진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녹화하기로 했어. 조사 과정에서 진술이 왜곡되거나 오염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지금은 영상녹화를 많이 하지만 그땐 이런 방식이 획기적이었대. 하나를 카메라 앞에 앉혔어. 조형사도 가슴이 아파. 그 공포 상황을 다시 떠올려야 하니까. 그러나 수사하는 입장에서는 유일하게 현장에서 살아남은 아이의 증언이 꼭 필요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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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애기 아저씨' 이야기를 하며 무섭다고 울음을 터뜨렸어. 근데 처음 듣는 이야기가 나왔어. 하나가 그 아저씨가 이렇게 했다며,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한 거야. 너무 어린 나이라 '목을 조르다'는 표현조차 몰랐던 하나는, 손으로 목을 잡는 행동을 보여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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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엄마의 국과수 부검 결과에는 '다발성 뇌좌상, 두개골 골절 등의 두부 손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되고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이라고 명시됐어. 경부압박, 하나의 진술과 일치해.

그리고 또 한가지, 형사가 '애기 아저씨'의 사진을 보여주려 했을 때 하나는 무섭다며 울음을 터뜨렸어. 사진인데도 무서워 피하는 거야. 이런 게 바로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전형적인 증상이래. 하나처럼 회피하는 거. 앞서 하나가 애기 아저씨의 집을 찾아가던 때도, 그날 출발하기 전부터 하나는 애기 아저씨 집에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대. 아저씨는 집에 없다고 안심시키며 겨우 달래서 진행했던 거야. 이런 하나의 행동도 회피 반응이야. 직접 경험한 게 아니라면, 이런 반응이 나올까?

그런데 이 영상 녹화 기록도 힘을 내지 못했어. 4살 아이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그렇게 지지부진 세월은 2년이나 흘렀어. 그 사이에 담당 검사만 4번이 교체됐고, 하나는 아빠와 일본으로 떠났어. 남아있는 조 형사는 속이 타들어갔어. 범인이 두 눈 멀쩡히 뜨고 돌아다니는데 잡지 못한다는 사실에, 형사로서 자존심이 무너졌어. 한 사건에 매달리는 조 형사에게 주변 동료들마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어. 하지만 조 형사는 끝까지 사건을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강씨를 구속기소하는데 성공했어. 사건 발생 2년 2개월만이었어. 이제 모든 판단은 법원의 몫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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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한을 풀어준 어린 딸

재판을 앞둔 1999년 1월 김포공항. 한 아이가 모습을 드러냈어. 하나는 이제 6살이 됐어. 그 사이 키도 꽤 크고, 응석도 줄었어. 그래도 재판에 출석하는 건 쉽지 않았어. 그 끔찍한 기억을 이 어린 아이가 다시 떠올려야 하니. 근데 하나가 가겠다고 했대. 엄마를 죽인 나쁜 사람을 벌 줘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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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나가 법정에 들어섰어. 총총 걸어와 증인석에 의젓하게 앉았어. 하나의 기억은 그대로일까? 2년도 더 지난 일인데. 애기 아저씨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조마조마해.

드디어 재판이 시작됐어. 하나는 자신과 엄마를 때리고 불을 지른 사람이 '애기 아저씨'라고 대답했어. 다행히 그 기억은 2년 전 그대로야. 근데 문제는, 하나가 다른 질문에는 모두 "모르겠어요"라고 말했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거, 형사한테 진술했던 거, 다 모르겠고 기억이 안 난대. 피고측 변호인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어.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아이의 증언을 어떻게 신뢰하냐고, 증거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어. 심지어 하나는 재판장이 "지금 몇살이죠?"라고 묻는 질문에도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어. 자기 나이조차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의 말을 믿어도 되나, 법정이 술렁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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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법정 문이 열리더니 강씨가 걸어 들어왔어. 하나에게 "저기 저 사람이 애기아저씨인가요?"라고 물었어. 하나는 대답 대신, 기겁을 하며 탁자 아래로 숨었어. 2년이 지났는데도 공포가 그대로 남아있는 거야.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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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판결문의 일부야.

"피해 아동이 경험한 사실 자체가 중대하고 충격적인 사실일 뿐 아니라 모든 상황을 바로 옆에서 똑똑히 목격하였음이 명백하므로 단지 나이 어린 유아라 하여 자신이 경험하지 아니한 사실을 외부의 영향에 의하여 기억, 진술한 것이라고 볼 여지는 더욱 없다. 진술의 핵심적 부분에 있어 일관성이 있고 이 사건의 공소사실에 부합하므로 다른 증거들과 종합하여 범죄사실을 증명할 충분한 증명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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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가 하나의 진술을 인정한 거야. 피고인 강씨에게는 무기징역이 선고됐어. 강씨는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지만, 2심 3심도 판결은 같았어. 길고 긴 후암동 방화살인사건은 드디어 이렇게 끝을 맺었고, 비로소 조 형사도 이 사건을 마음에서 떠나 보낼 수 있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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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했다. 그렇게 유죄판결을 받고, 피해자의 한을, 아이의 한을 풀어줬구나, 형사로서 할 일을 마무리했다 싶었다. 그리고 그날, 소주 한잔 했다."

하나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어. 하마터면 묻힐 뻔한 사건을, 어린 아이가 해결했어. 어쩌면 엄마의 한을 아이가 대신 풀어준 게 아닐까.

이 사건이 의미있는 이유는, 이전에는 어린 아이들의 증언이 인정된 경우가 거의 없었대. 이 판결을 계기로 증언 능력이 있냐 없냐를 나이로만 판단하지 않게 됐어. 유아증언에 대한 인식 개선에 큰 역할을 한 사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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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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