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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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장영자, 4번의 사기·33년 감옥생활…그래도 2000억 재산이 남았다?

강선애 기자 작성 2022.07.08 12:13 수정 2022.08.21 15:35 조회 7,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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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7일 방송된 '꼬꼬무-7000억 스캔들, 큰손 장 회장의 비밀'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개그맨 김해준, 그룹 오마이걸 멤버 효정, 배우 박준면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팩트가 뒤집힌다"…'7천억 신화' 회장님과의 만남

오늘은 특별히 '꼬꼬무'가 엄청난 부자 한 분을 모셨어. 7,000억원이 넘는 돈을,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주물렀던 회장님이야. 이 분을 섭외하는 과정이 정말 버라이어티 했어. 가족을 설득하고, 측근을 설득하고, 몇 번의 설득 끝에 드디어 '꼬꼬무' 카메라 앞에 모셨어. 건국 이래 최대의 스캔들 메이커, 7000억 신화의 주인공, 그 회장님을 '꼬꼬무'가 호텔 스위트룸에서 만났어.

꼬꼬무

"제 입으로 처음 밝히는 내용입니다. 폭탄, 내가 말하면 팩트가 뒤집히니까. 지금까지 수십 년간 픽스돼 왔던, 고정돼서 날 매도해 왔던, 정확한 팩트로 뒤집히니까."

무슨 이야기길래, 폭탄이고, 팩트가 뒤집힌다는 걸까. 그 내용을 알려면,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81년 5월 19일 새벽, 서울 강남 경찰서에 청담동의 한 저택에 3인조 강도가 들었다는 신고 전화가 걸려왔어. 신고자는 '동이 트면 높은 사람이 직접 오라'고 지시했고, 다음날 오전 9시가 좀 지나서 형사과장이 형사들과 그 저택을 찾아갔어.

꼬꼬무

높은 벽에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으로 둘러쳐지고 넓은 마당을 갖춘 집은 부지가 200평이 넘어. 고급 가구들로 꾸며진 내부는 더 화려해. 엄청난 부잣집이야. 완벽한 보안 시스템을 갖춘 집인데 강도를 당했다니, 믿기지가 않아. 그 때, 이 집의 주인인 회장님이 등장했어.

꼬꼬무

이 분이, 아까 '꼬꼬무' 인터뷰에 응했던 그 회장님이야. 40년 전 모습이지. 이름은 장영자, 당시 나이는 37세였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날 새벽에 스타킹을 뒤집어 쓴 3인조 강도가 들어와 싹 쓸어갔다는 거야. 피해액은 1억 2000만원 상당이었어. 당시 서민아파트 한 채 값이 1500만원이던 시절이야. 회장님은 다른 건 상관 없는데, 꼭 하나를 찾아달라고 부탁했어. 당시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었다는, 3캐럿 짜리 '물방울 다이아'였어. 가격이 최소 3000만원이야.

꼬꼬무

경찰은 비상이 걸렸고 전담팀을 꾸려 수사했어. 그리고 9개월만에 도둑을 찾았어. 물방울 다이아를 찾아 돌아가자 회장님은 경찰들에게 너무 고마워 했어. 그리고 형사 8명을 1열로 세웠어. 금일봉을 주기 위해서야. 회장님은 두당 50만원씩 금일봉을 줬어. 당시 대기업 월급이 20~30만원이던 시절인 걸 감안하면, 거의 대기업 두달치 월급을 금일봉으로 주신 거야. 정말 통이 큰 회장님이지.

꼬꼬무

당시 장 회장에게는 '큰 손'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어. 큰 손답게, 돈 좀 썼다하면 '한 장'이였어. '한 장'이면 얼마일까. 100만원? 1000만원? 아니, 1억원이었어. 조카가 결혼한다 하면 축의금으로 '한 장', 지인이 집을 산다 하면 보태 쓰라고 '한 장'을 건넸어. 당시 장 회장의 재산은, 소유 부동산만 330만평이었대. 여의도의 4.3배 규모야. 또 끌고 다니던 고급 외제차가 5대였고, 1년에 의상비로 쓴 돈만 1억원이었어. 장영자 부부의 한달 평균 생활비와 접대비는 3억 5000만원으로, 하루 평균 1200만원을 사용한 걸로 추정됐어. 서민의 상상을 초월한 호사의 극치였지.

▲ 사채계의 큰 손 장영자, 남편 이철희를 만나다

그럼 장 회장은 어떻게 부자가 됐을까.

꼬꼬무

"돈을 아끼고 근검절약 해서 사는 것도 좋은 삶이지만, 근데 큰 부자는 안 되요. 큰 부자는 때를 만나야 해. '경제는 유통이다' 이건 세계적으로 내 어록으로 남아있어요."

'유통'을 강조한 장 회장이 했던 사업은 '돈의 유통', 사채였어. 1981년 사채시장의 규모는 어마어마 했어. 당시에 대한민국 전체에 돌아다니는 돈을 싹 다 긁어 모으면 4조원 정도 됐는데, 사채시장의 통화량은 무려 1조원이었대. 전체 통화량의 1/4가 사채시장에 있었던 거야. 문제는, 이 돈은 세금을 안내. 세금 신고는 고사하고, 집계 자체가 안되는 돈이야. 그래서 사채 시장을 '지하경제'라 불렀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돈을 움직인다고.

당시 사채 시장에는 '백할머니', '광화문 곰', '라이터 박' 등의 닉네임으로 불리는 큰 손들이 있었는데, 여기에 어느날 혜성처럼 등장한 라이징 스타가 바로 장 회장이었어. 장 회장은 엄청난 카리스마와 포스로 사채시장을 휘어잡았고, 10년 만에 갑부가 됐어.

당시 장 회장의 나이는 30대 후반, 어떻게 이런 카리스마를 갖출 수 있었을까. 그 원천은 바로 '결혼'이었어. 장 회장의 남편이 누구였길래?

꼬꼬무

바로 이 남자야. 나이가 좀 있어 보이지? 장 회장과는 21살 차이였어. 남편의 이름은 이철희, 결혼 당시 나이가 58세였어. 장 회장은 남편을 '장군님'이라 불렀어. 둘이 죽고 못 사는 사이였대.

꼬꼬무

"우리 이철희 장군은 한 남자로서 보면, 여자에게 자기 혼을 다해 사랑할 줄 아는 남자였어요. 그리고 또 저는,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여자였고. 내 남편과 내 사랑은 부부사랑의 원형이 아니었나 싶어요. 전 그 면에서는 행복해요."

이철희를 왜 '장군'이라 불렀냐면, 진짜 장군이었거든 별이 2개, 투스타 출신이야. 심지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군사관학교 동기래.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뒤에는 중앙정보부에서 차장까지 올라 갔어. 중정의 부장 밑 2인자가 바로 차장이야. 우리가 잘 아는 '실미도' 부대의 예산 및 작전 책임자가 바로 이철희였어. 1973년에 일본에서 김대중을 납치한 'KT공작'도 이철희가 책임자였어. 이철희는 중정을 나온 뒤에 국회의원까지 됐어.

꼬꼬무

이철희의 스펙이 장난 아니지? 근데 이 뿐만이 아니야. 장영자의 형부, 이규광이란 사람도 대단해. 원래 이규광은 처제인 장영자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던 별 볼일 없던 사람인데, 하루 아침에 벼락 출세를 하게 돼. 조카가 바로, 전두환의 아내 이순자였던 거야. 이규광에게 조카 사위가 무려 대통령이야. 이규광의 위세가 높아지며, 자연스럽게 처제였던 장영자의 위세도 높아졌어.

남편은 전 정권의 정보통, 아내는 현 정권의 친인척. 이규희와 장영자의 만남은 이후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해.

▲ 7000억원, 어떻게 벌었나

결혼 후 두 사람은 고급 호텔 건물에 '대화산업'이라는 사무실을 냈어. 대화산업의 직원은 정부 정보부 출신이었어. 심지어 밥해주는 아주머니까지도 정보부 식당 출신이야. 장영자는 이 사람들을 모아 사채 사업을 했어.

대화산업의 주거래 대상은,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이었어. 장 회장은 50억원이 든 돈가방을 내밀며, 시중 은행금리보다 싸게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어. 그녀는 돈을 싸게 빌려줄 수 있는 이유가, 그 돈이 정치권의 검은돈 '비자금'이기 때문이라 했어. 비자금이라 드러내놓고 쓸 수가 없으니, 이 돈을 건실한 기업들에게 지원해주며 양성화 하겠다는 거야. 기업은 도움을 받고, 장 회장은 비자금을 돈세탁을 한다는 거지. 당장 돈이 급한 사장님 눈 앞에 50억원이 있고, 빌려준다는 사람은 대통령의 친인척이야.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지.

장 회장은 50억원 중에서 수수료 1~2% 정도를 떼고, 나머지를 사장님한테 건넸어. 그리고 지불 각서로 '약속 어음'을 받았어. 어음은 빌려준 사람이 보관하고, 돈을 빌린 사람은 지급기일까지 해당은행에 빌린 돈을 입금하면 돼. 근데 문제는 지금부터야. 장 회장은 이 50억원 짜리 어음을 두 장 더 써달라고 했어. 두 장을 더 써주면, 어음은 총 150억원이 돼. 그 당시 사채 시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어음을 몇 장 더 써주는 게 관행이었대. '상호간에 이 정도의 믿음은 있어야 한다, 이건 담보로만 보관할 거다'라면서.

꼬꼬무

장 회장은 이런 식의 안전장치 명목으로 3배에서 9배까지 어음을 받았어. 사장님들은 의심하지 않고 어음을 써줬어. 50억원을 빌리면서 150억원짜리 어음을 써준 거야.

장회장은 이제 어떻게 할까? 보관만 한다던 이 어음 3장을 들고 사채 시장으로 가. 그리고 사채 시장에 이 어음을 유통시켜. 심지어 엄청 싸게 할인까지 하면서. 속된 용어로 '현금깡'을 하는 거야. 50억짜리 20% 할인하면 40억이야. 3장이면 120억이지. 장회장이 처음에 투자한 돈은 50억원인데 그게 하루 아침에 120억원으로 불어나. 거기다가 매달 따박따박 이자가 들어와. 장회장은 이 돈을 들고 또 다른 회사를 찾아가. 또 똑 같은 방식으로 어음을 받고, 현금깡을 해. 이런 식으로 남의 회사 빚을 유통해서 자기 돈을 불린 거야.

그럼 어음 써준 기업들은 어떻게 됐을까? 지급 기일까지 돈을 못 갚은 회사가 한 두개가 아니야. 줄줄이 부도를 맞았어. 결국 '건국 이래 최대의 사기 사건'이라는 폭탄이 터졌어. 연 어음 액면 합계는 무려 7111억원었어.

그 중에서 장회장이 실제로 가져간 금액은 얼마일까? 당시 검찰이 파악한 바로는, 현금 주식 귀금속 골동품 금괴 부동산 등 재산을 다 합쳐서 321억원이야. 그리고 나머지는 없대. 왜? 다 썼기 때문에.

'비자금'이라면서 돈을 유통했으니 정치권으로 돈이 흘러들어간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어. 이에 당시 수사 기관은 정치 자금으로 유입된 증거는 일절 없다며 "장영자와 청와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고 선을 그었어.

정부는 장영자-이철희 부부를 포함해 수십명을 속전속결로 처벌했어. 제일 먼저 처벌 받은 건, 물방울 다이아를 찾아주고 금일봉 50만원을 받은 경찰들이었어. 사건이 터지고 1주일만에 경찰 8명이 파면됐어. 연루된 은행장, 기업 대표 등 32명이 구속됐고, 이순자의 작은아버지이자 장영자의 형부인 이규광도 구속됐어. 장영자-이철희 부부는 징역 15년형을 받았어. 경제사범에게 15년형은 엄청 큰 양형으로, 흔치 않은 일이래.

그럼, 장영자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동안 할말이 정말 많았대.

꼬꼬무

"지금까지 말할 수 없었던 폭탄 발언은, 제가 이순자하고 사돈이 아니었으면 일어나지 못 했을 사건이에요. 저희를 감히 칠 수도 없었고 일어날 수도 없는 사건이에요. 그런데 제가 이순자하고 사돈관계란 거 때문에, 전두환이 하나회 사람들과 권력 암투를 하면서 전두환 압박하기 위해 이순자 친정을 압박한 거지. 그리고 우리가 '돈을 벌겠다' '사업을 하겠다' 이런 건 아니었고. 국가 권력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말(馬)이라고 할까. 제가 주는 돈이 아니에요. 절 통해서 나갈 뿐이지."

장영자는 정권 통치자금으로 어려운 기업들을 도왔고, 자신은 전두환 정권 내 권력투쟁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해. 물론, 확인은 불가능하지. 다만 확실한 건, 이 사건으로 건실했던 중견기업이 무너지고 수많은 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는 거야.

▲ 4번의 감옥행, 형량만 33년

15년형을 받은 장영자는 9년 10개월 만에 가석방으로 풀려났어. 큰 손의 귀환에 사람들은 또 부부 곁에 몰렸어. 이철희 생일날 별장에서 호화 파티를 열었는데, 문전성시를 이뤘고 축하 화환도 선물도 넘쳐났대. 비결은? 역시 '돈'이었어.

꼬꼬무

장영자의 재산 321억원이 감옥에 있던 10년 사이 천억대로 뛰었어. 부동산이 폭등했거든. 장영자 사건이 단군 이래 최대 사기 사건이라고 떠들썩 했지만, 정작 재산몰수나 추징은 없었대. 그래서 수감 생활 중에 그 재산이 증식 된거야.

"세상을 움직이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돈 아닙니까? 돈이 곧 언어 아니에요?"

꼬꼬무

돈이 있으니 그 주변으로 사람이 또 모여 들었어. 근데 장영자는 출소 1년 반만에 또 구속됐어. 2차 어음 사기 사건의 규모는 250억원. 이 두번째 사건으로 장영자는 또 징역 4년형을 선고 받았고, 1998년에 출소했어. 그리고 2년 후인 2000년, 구권화폐 사기 혐의로 15년형을 받으며 장영자는 또 다시 구속됐어.

그렇게 장회장은 감옥에서 환갑을 지내고 2015년, 칠순 노인이 돼서 출소했어. 근데 여기서 끝이었을까? 사람들은 또 속았어. 3년 후인 2018년, 장영자는 위조 유가증권행사 사기 혐의로 4년형을 선고받고 4번째로 구속됐어.

팔십 평생 중 받은 형량만 33년. 장영자는 올해 1월에 출소했어. 그리고 '꼬꼬무' 카메라 앞에 선 거야.

꼬꼬무

"억울하고 원통하고 사건이 그게 아니고, 그걸 호소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피해자분들에게 머리 숙여 죄송하다고 속죄하고 도움을 드릴 방법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고 행할 용의도 있고."

"이런 것들이 좀 더 빨랐다면 좋았겠죠. 더 늦지 않고 이런 얘기를 실토할 수 있어서, 그게 고맙고 다행입니다."

▲ 여전히 2천억 이상 재산을 주장하는 장영자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경제 사범 장영자,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우리나라 경제에 기여한 것이 있어. 당시 차명 거래로 인한 검은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에 '금융 실명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거야.

그랬더니 정계와 재계에서 절대 안된다고 난리가 났어. 재계에서 반대하는 이유는, 실명제를 하는 순간 금융대란이 일어나고 우리나라 경제는 망할 거래. 그럼 정치권은? 당장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실명제가 도입되면 정치자금을 어떻게 모으냐는 거야. 그렇게 금융실명제 논의는 없던 일이 됐고, 전두환 노태우가 지나 김영삼 정권이 돼서야 시행됐어.

꼬꼬무

도입하면 나라 망한다던 금융실명제. 근데 실제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이게 문제가 될 만한 사람은, 돈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숨기려 하거나, 검은돈이 필요했던 사람들이 아닐까.

장영자에게 지금 갖고 있는 재산을 물었어.

꼬꼬무

"유체동산으로 골드바 정도가 있으니까. 하나에 1kg인데 팔면 8000만원에서 8200만원 정도로 올라가더라고요. 그거 하나 팔면 서너 달은 사니까. 그리고 또? 골동품이죠. 한 2천 점은 여전히 있습니다. 아주 보수적으로 계산을 한다고 해도 한 2000억 원 정도 되지 않을까요?"

꼬꼬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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