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여전히 연기에 목마른, 박해진의 마흔

강선애 기자 작성 2022.06.11 14:55 조회 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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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진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나한테 잘 안 시켜줘서 그렇지, 코미디가 자신 있다. 또 그동안 이성적인 역할을 많이 해왔는데, 감성적이고 따뜻한 역할을 시켜만 주면 잘할 수 있을 거 같다."

-2017년 드라마 '맨투맨' 종영 인터뷰 中

"망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2020년 드라마 '꼰대인턴' 종영 인터뷰 中

배우 박해진의 '코미디'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다. 그 애정은 자연스럽게 작품 선택으로 이어져, 최근에는 코미디를 기반으로 유쾌한 웃음과 따뜻한 감동을 동시에 전달하는 드라마들에 연이어 출연했다.

그의 코미디 장르 도전은 뜻깊은 성과로도 이어졌다. 그가 지질한 젊은 꼰대 캐릭터를 맡아 재미를 선사했던 드라마 '꼰대인턴'의 성공에 힘입어 2020년 MBC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영예의 대상을 품에 안았다. 예전의 박해진이 조각 같은 얼굴에 세련된 느낌이 강했다면, 언제부턴가 그는 잘 생겼는데 웃기고, 그래서 더 정감가는 배우로 이미지가 달라졌다.

그런 박해진이 또 코미디에 팔을 걷어붙였다. MBC 드라마 '지금부터, 쇼타임!'을 통해서다. 귀신을 보는 신통한 능력을 지닌 마술사 차차웅 캐릭터로 코믹 판타지 장르에 도전했다.

이번 코미디의 강도는 전보다 훨씬 셌다. 각종 패러디는 기본이고, 젠틀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때론 옹졸하고 버럭 화도 잘 내는 차차웅을 귀엽고 유쾌하게 표현했다. 심지어 박해진은 엉덩이에서 나온 가스로 불이 붙는 코믹한 상황까지 능청스럽게 연기했다.

다시 한 번 제대로 코믹 연기를 선보인 박해진. 잇따라 코믹 작품을 선택해 온 그는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코미디 틀 안에 갇힐 거란 걱정은 굳이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이 이런 작품을 주로 하는 시기일 뿐이라 여기며,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중이다. 그 흐름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올해 나이 마흔이 되며, 생각이 조금은 많아지긴 했다.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생각의 전환을 맞는 시기임은 분명하다. 박해진은 지난 세월동안 자신이 겪어 온 다양한 감정들을 담아내는 연기, 깊은 감성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물론, 당장 그런 작품을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언젠가 그런 작품에서 모든 걸 쏟아내 연기해보고 싶다는 바람이다.

'마흔'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연, 박해진을 만났다.

박해진

▲ 나와 닮았던 차차웅, 표현 방식은 달라

박해진에게 연기대상을 안겨준 '꼰대인턴'의 가열찬 캐릭터처럼, '지금부터 쇼타임'의 차차웅도 말끔한 겉모습과 달리 코믹한 캐릭터였다. 그가 차차웅에게 끌렸던 이유는 시청자가 웃음지을 수 있는 유쾌함, 그리고 자신과 닮은 모습 때문이었다.

"차차웅과 실제 성격이랑 비슷한 부분도 있고, 원래 가벼운 느낌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고 대놓고 웃기는 것보단, 블랙 코미디 쪽을 좋아한다. 허를 찌르는 웃음을 좋아하는데, 우리 드라마는 좀 대놓고 웃기긴 했다.(웃음)"

차차웅과 많이 닮았다는 박해진이 그래도 다르다고 느끼는 부분은 표현 방식이다. 차차웅은 버럭 화도 잘 내고, 귀신 동료들에게 짜증 섞인 볼멘 소리도 스스럼 없이 했다. 반면 박해진은 그렇게 남들에게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차차웅과 성격적인 부분은 굉장히 흡사한데, 표현 방식이 다른 거 같다. 차차웅은 화도 내고 짜증도 내는데, 전 그런걸 잘 못한다. 큰소리 내는 성격이 아니다. 혼자서 끙끙 앓는 편이다. 그렇다고 제가 화가 없는 사람도 아니다. 저도 화가 많은데, 차차웅은 그걸 밖으로 풀고 전 속으로 삭힌다. 운동을 하거나, 그런 식으로 화를 푸는데,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 받을 때 풀 수 있을지, 나름 고민해 보고 있다."

차차웅이 코믹하다고 해서 마냥 가볍기만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죽음, 악귀와의 싸움, 전생의 슬픈 사연 등의 서사가 애잔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복잡한 상황에 놓인 차차웅을, 그래서 박해진은 더 간단하게 표현하려 했다.

"저는 최대한 간단하게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복잡한 서사에 집중하고 감정선을 계속 갖고 가려 하지 않았다. 초반에는 그걸 고민하며 연기했는데, 오히려 감정들이 섞여 들어오니까 더 연기하기 힘들더라. 그럼 깨끗하게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을 거 같아서, 더 솔직하고, 더 심플하게 연기하기 위해 노력했다."

박해진

▲ 마술과 귀신, 그리고 코미디

차차웅 캐릭터는 마술사다. 극 중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들의 도움을 받아 마술쇼를 펼치지만, 이를 연기로 표현하기 위해 박해진은 기본적으로 마술 연습을 해야만 했다.

"마술은 일루셔니스트 이은결 씨에게 배웠는데 하루아침에 되는게 아니었다. 마술이라는 게, 그런 척 하는게 아니라, 움직임 하나하나가 정말 일상이 되어야 하더라. 배운다고 배웠지만 많이 부족했다. 은결 씨가 제가 잘 못 따라가는 부분은,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초급자용 도구를 제작해 줬고, 마술처럼 그럴싸하게 보일 수 있도록 콘티를 짜줬다. 어떻게 하면 무대에서 제스처가 멋있어 보이는지 동작 같은 것도 잘 알려줬다. 항상 잘한다고 칭찬하고 응원 많이 해줘서 감사했다."

극 중 차차웅은 공중부양도 하고 물 속 수조에 묶인 채 들어가 탈출하는 등의 스펙터클한 마술을 선보였다. 해당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박해진은 와이어에 매달려 액션연기도 하고, 실제로 물 속에 들어가기도 했다. 와이어 연기를 하다가 어깨 부상을 입기도 했는데, 박해진은 "촬영하다가 누구나 다칠 수 있다. 대단한 건 아니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주연배우의 책임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은 '귀신'이다. 주인공 차차웅과 고슬해(진기주 분)를 제외하고, 웬만한 주요 캐릭터들이 귀신이거나 귀신과 소통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차차웅은 귀신을 보는 것을 넘어, 귀신을 부하 직원으로 부리는 캐릭터라, 박해진은 CG의 힘을 빌려 귀신과 함께 하는 장면의 연기를 상당수 소화했다.

"귀신과 함께 하는 연기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일반 사람처럼 봐도 되는 귀신들이라, 그냥 평소와 똑같이 연기하면 됐다. 귀신이 있는 경우를 먼저 찍으며 행동이나 리액션을 기억하고, 귀신이 빠진 후에 똑같이 연기를 해서 두 장면을 붙였다. 귀신이 빠진 후 허공에 대고 혼자 연기하는게 처음엔 어색하기도 했지만, 같이 하는 배우들이 많이 도와줬다. 전 시선의 높이, 동작의 연결 등을 잘 체크하려 했다."

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CG 장면 촬영도 수월하게 넘어갔다는 박해진이지만, 유독 '현타'가 세게 왔던 장면이 있다. 마술을 하다가 엉덩이에 불이 붙어 혼비백산하는 차차웅을 표현하는 장면이다.

"마술 무대에서 엉덩이로 불을 뿜는 장면은 현타가 왔다. 실제로 불을 붙일 수 없으니 불이 붙은 척 사방을 뛰어다니는 연기를 하고 나중에 CG로 불을 추가한 장면이다. 배우나 스태프끼리만 있어도 창피할 거 같은데, 마술쇼 장면이라 관객 역할로 온 보조출연자분들까지 계셔서 현타라는 게 오더라.(웃음)"

박해진

코미디에 진심인 박해진은 이렇게 온 몸을 던졌다. 그러면서 고민했던 지점은 '이게 우리만 재미있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코미디 장르의 작품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매일 같이 그 지점을 고민했다. 그래서 집에서 드라마를 시청하며 늘 가족들의 반응을 살펴 보곤 했다. 촬영하면서 재미있었다고 해도, 그게 재미가 있느냐 우스워지느냐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다. 조금 부족한가 싶어 더하면, 오히려 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게 늘 어렵다. 그래서 희극연기 하시는 분들, 개그맨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 함께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좋았다

다행히 '지금부터 쇼타임'에는 정준호, 정석용, 고규필 등 믿을만한 코미디 달인들이 포진해 있어 박해진이 혼자 짐을 떠안을 필요는 없었다.

"워낙 베테랑이고 코미디 연기를 많이 하신 분들이라,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편하고 좋았다. 혼자 낑낑대며 끌고 가는 작품도 해봤는데, 그런 작품도 나름 성취감이나 매력이 있지만, 이번 작품처럼 동료들과 같이 한 신 한 신을 만들어 간다는 느낌이 좋았다."

'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 등의 작품으로 한국 코미디 장르에 한 획을 그은 정준호는 이번 작품에서 2천년을 버텨온 장군신 최검 역을 맡아 다시 한 번 개성 강한 코미디 연기를 선보였다.

"정준호 선배님은 제일 뵙고 싶었던 선배 중에 한 분이었다. 저희 세대를 관통한 코미디 연기의 달인이지 않나. 선배님의 작품을 봐왔기에, 실제로 뵈었을 땐 연예인을 보는 느낌이었다. 비주얼도 멋지시고 같이 연기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연기 호흡도 너무 잘 맞았다. 선배님과 애드립을 따로 맟추지 않았는데도, 서로 던지는 것들을 잘 받아 주면서 연기가 처음인데도 호흡이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진기주는 열혈 파출소 순경 고슬해 역을 맡아, 차차웅과 콤비 수사를 펼쳤다. 티격태격하던 이들은 온갖 역경을 함께 하며 사랑을 싹 틔웠고, 전생에서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이 2천년만에 결실을 맺으며 귀여운 커플로 거듭났다.

"진기주 씨와도 너무 편했고, 호흡도 좋았다. 후반엔 너무 친해져서 '시청자가 우릴 보고 안 설레면 어떡하지'란 생각을 할 정도로, 너무 편한 사이가 됐다. 그만큼 배우들끼리 다 친해졌다.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친구라서, 같이 연기하면서 상황에 집중하다 보니 설레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런 모습들이 슬해와 차웅이로 잘 살아난 거 같다."

박해진

박해진은 '귀신 3인방' 정석용, 고규필, 박서연에 대한 언급도 빼먹지 않았다. 이들은 차차웅의 마술회사 직원으로 일하는 귀신 남상군, 마동철, 강아름 역을 각각 연기했다.

"정석용 선배님이 실제로도 재미있는 분이다. 평소에는 무뚝뚝해 보이는데, 한마디 한마디가 재미있다. 고규필 씨는 저보다 한 살 형인데, 연기도 잘 하고, 실제로도 저와 친구처럼 아주 잘 지내고 있다. 막내 박서연은 주눅 들지 않고 너무 잘해줬다. 현장에서 받는 디렉션을 스펀지처럼 다 흡수하더라. 한 작품 안에서 성장해 가는 모습이 보여, 저희가 볼 때마다 칭찬했다."

▲ 나이 마흔, 배우로서 고민

1983년생인 박해진은 한국 나이로 올해 딱 마흔이 됐다. '지금부터 쇼타임'은 박해진이 마흔이 된 후 만난 첫 작품이다. 박해진은 "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 체감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체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느낌에 '더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거나 '건강식을 챙겨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든다고 한다.

마흔이 됐다고 개인의 가치관이나 생활이 달라진 건 없지만, 배우로서는 생각이 많은 듯 했다.

"제가 나이를 거스르는 캐릭터를 많이 맡아 왔다. 30대에 대학생 역할도 했었고, 이번에 연기한 차웅이도 나이 설정은 서른 정도다. 물론 이런 작품도 감사하지만, 제가 40년을 살아온 감성이 제 안에 있지 않나. 그런 것들에 맞는 작품을 한 번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과거에 느꼈던 감정을 한참 끄집어 내서 리마인드 해야하는 작품이 아니라, 지금 제 감성에 맞는 작품, 제가 겪어오고 쌓아온 것들을 지금의 감성으로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 장르는 상관 없다."

박해진

박해진은 배우로서 연기로 평가 받고 싶다는 목마름이 있었다. 20대 때부터 훤칠한 키와 조각 같은 외모로 주목 받았지만, 지난 16년동안 필모그래피를 차근차근 쌓아오며 배우로서도 인정받고 연기대상까지 수상한 그인데, 스스로는 아직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떤 평가도 감사하게 받아들이지만, 아직까지 연기보다 외모로 더 평가받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일부러 어떤 강한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 건 아니다. 연기라는 게 누군가의 평가를 받는 직업이긴 하지만, 자기만족적인 부분도 있다. 지금 제 연기에 불만이 있다는 건 아니다. 다만 '깊은 감정선을 보여줄 만한 뭔가가 없을까', '그런 걸 한번 해보고 싶다' 하는, 작은 아쉬움이다."

'지금부터 쇼타임'을 끝낸 박해진은 '좀 게으르게' 현재를 살고 있다고 했다. 원래 쉴 때 자기관리로 더 바쁜 박해진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자신을 옭아매지 않고 온전히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좀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다. 쉴 때 스케줄을 더 빡빡하게 잡는 편이다. 뭐 배우고, 관리도 받고, 운동하고, 계획대로 사는 편이다. MBTI가 ISFJ인데, 그래서 그런지 항상 계획을 세워두고 다음날을 맞이했다. 지금은 눈 떠서 그날 뭐 할지를 생각한다. 그동안 너무 쫓겨 왔기에 한 번 게으르게 살아보고 있다. 그런데 너무 나태해지고 있는 거 같다.(웃음) 그래서 조금씩 제 루틴을 찾으려 한다."

[사진제공=마운틴무브먼트]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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