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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구더기밥 먹고, 똥물에 구르고"…삼청교육대의 참혹한 실상

강선애 기자 작성 2022.06.10 11:46 조회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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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9일 방송된 '꼬꼬무-1980 불량배 소탕 작전'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개그맨 정성호, 배우 임지연, 윤균상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막무가내 끌려간 곳, 삼청교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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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가명) 씨가 인터뷰를 위해 '꼬꼬무' 카메라 앞에 섰어. 그는 주변에서 '꼬꼬무' 인터뷰를 하지 말라고 만류했대. 아무리 사회가 좋아졌어도 안 좋게 볼 텐데, 굳이 왜 나가서 그런 걸 말하려 하냐며 말렸대. 심지어 승호 씨가 '꼬꼬무'에 털어놓을 이야기를, 아내와 자녀들은 알지도 못 한대. 승호 씨가 가족들에게까지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는 뭘까. 그는 "43년동안 안 바뀌었는데, (이제 와서) 바뀌겠나?"라며 회의적으로 말했어. 43년 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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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80년 여름, 서울. 당시 18살이었던 승호는 여름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놀다가 근처 식당에 들어갔어. 식탁 위에 놓여있는 초등학교 국어책을 발견한 승호는 책 내용을 읽기 시작했는데,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이 승호 일행에게 시끄럽다고 타박을 줬어. 이 작은 소동은 순식간에 몸싸움으로 번졌고, 경찰이 출동해 결국 파출소까지 가게 됐어. 양쪽 다 다친 사람도, 파손된 물건도 없었기에, 훈방 조치로 풀려나야 맞는 건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다시 검찰청까지 가서 조사를 받았고 구치소에 수감됐어. 승호와 친구들, 시비가 붙은 상대방 일행들까지 모두가 말이야.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 이들은 모두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했어. 버스가 멈춘 곳은 어느 산 속 군부대. 주변에는 2중 3중으로 철조망이 쳐 있어. 빨간 모자를 쓴 교관들은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몽둥이 세례를 퍼부었어. 그리고 어디선가에서는 "탕! 탕! 탕!" 공포탄 소리까지 들렸어. 도망가면 사살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고개 들지 말아! 너희들은 하늘을 볼 자격도 없어!" 교관들은 이들에게 머리를 땅에 박는 원산폭격을 시켰고, 쓰러지면 군홧발로 사정없이 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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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했다. 그 순간이. '나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손주 볼 어르신부터 앳된 아이들, 거기에 여성들까지 끌려온 이 곳. 바로 '삼청교육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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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아침에 '불량배'가 된 무고한 청년들

"밝고 정의로운 사회건설에 기여하고자 우선 불량배의 일체 검거에 착수했습니다."

1980년 8월 4일, 정부는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를 발표해. 불량배들을 삼청교육대에 보내 새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거야. 취지는 좋아 보이지. 근데, 이들이 말한 '불량배'는 어떻게 선별할 수 있을까? 그 기준이 굉장히 모호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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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정한 '불량배'는 '주민의 지탄을 받는 자', '불건전한 생활 영위자', '재범 우려자' 등이야. 그럼 동네에서 수근거림을 당하는 사람은 다 잡혀가나? 건전과 불건전의 판단은 누가 하고? 재범을 할 지 안할 지 어떻게 판단해? 기준이 너무 애매하지. 이유만 갖다 붙이면 '불량배' 취급을 받았어. 싸움이 난 상황을 구경한 사람, 외상값이 있는 사람, 술을 마시고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른 사람. 이런 사람들도 이 애매한 기준에서는 다 '불량배'였어.

당시 24살이었던 박이수 씨는 형이랑 같이 사진관을 운영하는 청년이야. 야구를 굉장히 좋아해서, 그날도 야구장에 가서 입장하려고 줄을 서있는데, 갑자기 경찰이 끌고 갔어. 왜? 사람들이 많은 데서 침을 뱉었다는 거야. 이수 씨는 그렇게 삼청교육대에 끌려 갔어.

더 말도 안되는 경우도 있어. 당시 나이 23세의 한일영 씨. 바로 이 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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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영 씨는 동네 애들이랑 한강으로 물놀이를 갔어. 한창 물놀이를 하고 있다가 경찰에 끌려 갔어. 당시 경찰은 몸에 문신이 있는 사람도 잡아갔어. 일영 씨는 그 때 자신이 끌겨갔던 게, 몸에 있던 문신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럼 일영 씨 몸에 용이나 호랑이 문양 같은 어마어마한 문신이 있었을까? 바로 이 문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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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삶'이라는 글자. 이 글자에는 기구한 사연이 있어.

일영 씨는 10대 때는 선감학원에, 20대 때는 삼청교육대에 끌려 갔어. 선감학원은 선감도라는 섬에 있던 부랑아 교화시설로, '소년판 삼청교육대'라 불리는 곳이야. 일영 씨는 남들은 한 번도 겪지 못할 시간을 두 번이나 겪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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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영 씨는 가족과 함께 살던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친척집에 놀러가던 길에 옷이 허름하다는 이유로 끌려가 선감학원에 수용됐어. 선감학원은 어린 소년들을 데려다가 염전, 농사, 산 개간 등의 강제 노역을 시켰어. 아이들을 밤낮없이 구타하고 죽은 아이들을 뒷산에 암매장했어. 지금까지도 그 자리에서는 어린 아이들의 유골이 계속 나오고 있어. 현재도 땅 속에 150구 이상의 유해가 있을 걸로 추정되고 있어.

이런 곳에서 어린 일영이는 3년의 시간을 보냈어. 그러던 어느 날 일영이는 청소를 하다가 벽에 걸린 액자를 보고 얼어붙었어. 그 액자에는 시가 적혀 있었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뎌 나가노라면 곧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살고 모든 것은 순간이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곧 그리워하느니라

액자에 적힌 푸시킨의 '삶'이라는 시를 보고 감명 받은 일영이는 눈물을 뚝뚝 흘렸어. 그 시는 지옥 같은 그 곳에서 희망이 됐고 버티는 힘이 됐어. 일영이는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연탄으로 팔뚝에 '삶'이라는 글자를 새겼어. 힘들 때마다 그것을 보고 버텼고, 직접 희망을 찾아 목숨을 걸고 선감학원을 탈출하기로 마음 먹었어.

일영이는 그날부터 1년 가까이 수영 연습을 했고, 밀물 썰물 시간도 빠삭하게 공부했어. 그리고 운명의 그날. 물이 빠진 갯벌을 기어 가고,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쳐서, 2시간여 만에 그 섬에서 빠져나왔어.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게 18세 때. 근데 불과 5년만에 일영이가 다시 삼청교육대로 끌려간 거야. 바로 그 '삶'이라는 문신, 선감학원에서 새긴 희망 때문에.

▲ 구더기밥 먹고 똥물에 구르고..참혹했던 현장

식당에서 끌려간 승호, 야구장에서 침을 뱉었다고 끌려간 이수, 작은 문신 때문에 끌려간 일영. 이렇게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을 막무가내로 끌고 간 이유는 뭘까. 여기엔 비밀이 있어. '할당량' 때문이야. 당시 삼청교육 대상자 검거 인원을 책정한 공문이 경찰서별로 내려왔는데, 250~300명을 검거해야 한다는 거야. 그걸 맞추느라, 아무나 잡아서 죄를 만들어 끼워 맞춘 셈이야. 물론 끌려온 사람 중엔 진짜 불량배도 있었어.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무차별적으로 끌고 가도 되는 걸까.

이렇게 삼청교육대에 입소한 사람은, 무려 4만명에 이르러. 이 중에 전과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40%야. 최고령은 73세, 최연소는 14세. 중학생이 17명이었어. 또 319명의 여자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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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삼청교육대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돌아갔을까?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하루 16시간의 일과 중 가장 힘든 건 총 8시간의 '훈련'이었어. 이들은 매일 PT체조, 유격훈련, 최대 300kg의 전봇대 같은 목봉을 들고 움직이는 목봉체조 등의 혹독한 훈련을 소화하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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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시간에는 먹기 전에 구호부터 외쳐야해. "돼지보다 못하면, 돼지고기를 먹지 말자", "소보다 못하면, 소고기를 먹지 말자" 등을 복명복창 했어. 스스로를 짐승만도 못한 존재라고 외치게 한 거야. 그리고 준 밥을 10초 만에 먹도록 했어. 먹는 게 아니라 입에 그냥 넣는 거지. 거기다 이들에게 지급된 음식양은 극히 적었어. 이렇게 음식을 적게 준 이유가 뭔지 알아? 그 이유를 적은 문서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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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급식 이유. 공복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육체적인 반발과 저항력을 감소시키고 질서 유지에 필요한 복종심을 키우고. 본인의 과오에 대한 회개 속도를 증가시킴으로써 성공적인 순화교육에 기여토록 함."

배가 고파야 저항을 못하고 말도 잘 듣는다는 말이야. "제발 먹을 것 좀 달라"고 사정하면, 교관들이 한 쪽으로 데려갔어. 조교들이 먹다 남은 음식들을 한군데에 모아둔 '짬통' 앞이었어. 날이 더운 여름이면 구더기가 바글댔던 그 짬통을 가리키며, 배고프면 그걸 먹으라고 했대. 너무 배고팠던 피해자들은 그거라도 먹었어.

"손으로 그걸, 구더기가 있던 말던 먹었다. 그거라도 안 먹으면, 죽을 거 같았다."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지키려 하는 존엄. 삼청교육대는 그걸 스스로 깨트리게 만들었어. 가혹하고 잔인하게.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야. 이보다 더 최악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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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갈 때는 허락 받고 단체로 가서 볼일을 봤는데, 그나마 이렇게 가면 다행이야. 야외에 웅덩이가 있는데 거기에 빙 둘러서서 소변을 보게 했어. 이 오물 웅덩이를 사람들은 '지옥탕'이라 불렀대. 왜일까? 거길 들어가게 했으니까.

교관들이 개구리를 잡아다가 지옥탕에 집어넣은 후 그 더러운 오물 속에 들어가 잡게 했어. 심지어 잠수도 시켰어. 숨이 턱 막히고 구역질이 올라와 고개를 들라 치면, 교관이 머리를 꾹 눌러 못 올라오게 했어. 그 더러운 오물이 온 몸으로 들이 켜졌어.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이 입 모아 하는 말이 있어. "거기서 살아나가려면 인간이길 포기해야 했다"고. 이렇게 4주를 그 곳에서 견뎌야 해. 견디다 못해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었어. 인간답지 못한 대우를 받으며 그 곳에서 죽은 사람들은 공식적인 집계로 54명이야. 그 중 10명은 맞아 죽었어.

▲ 완전히 망가진 삶,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

그곳에서 돌아온 후에는 후유증이 생기거나 삼청교육대 출신이라는 낙인이 찍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어.

야구장에서 침을 뱉었다는 이유로 끌려갔던 이수 씨는 집으로 돌아온 후 극심한 후유증으로 형 광수 씨를 알아보지도 못했어. 시도때도 없이 비명을 지르고, 벽에다 머리를 부딪치고, 자기 자신을 할퀴고. 말리면 발로 차고 툭하면 집 밖으로 뛰쳐나갔어. 삼청교육대에서 한달을 보낸 그의 인생은 완전히 망가졌어. 이수 씨는 결국 요양원에 보내졌어.

국어책 때문에 시비가 붙었던 승호는 4주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동네 분위기가 달라졌어. 집 밖에 나서면 "쟤 깡패래", "삼청교육대 다녀왔대"라며 수근거려. 동네에 안 좋은 소문이 퍼지고 다니던 학교는 이미 퇴학 처리가 됐어. "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피해를 당한 건데"라며 괴로워하던 승호는 세상을 원망하며 엇나갔어. 방황하는 아들을 보며 승호 어머니는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냈어. "엄마가 미안해. 우리 아들 못 지켜줘서 미안해." 승호의 어머니는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어머니의 죽음 이후, 승호는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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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시를 좋아했던 일영 씨는 삼청교육대를 나오는 일 마저 힘들었어. 그는 삼청교육대에서 4주간의 순화교육을 받은 후, 근로봉사자로 배치됐어. 6개월간 근로봉사를 하던 일영 씨는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란 생각으로 다시 한 번 탈출을 감행했어. 선감학원 때처럼.

하지만 이번 탈출은 실패였어. 겨우겨우 기차까지 탑승했는데, 거기서 헌병대에 발각돼 군사재판에 회부됐어. 그러나 일영 씨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본인은 죄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재판 결과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았고, 그의 믿음과 희망은 그렇게 꺾였어.

공주교도소에 수감된 일영 씨는 1년 후 출소했어. 출소 후 그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뭐였을까? 팔뚝에 새긴 '삶'이라는 문신을 지우는 일이었어. 그는 글씨를 지우기 위해 굵은 소금으로 살이 찢어지도록 문질렀고 그 위에 세제 가루를 뿌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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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시가 좋아서 했을 뿐인데. 그 것 때문에…"

이후 어렵게 공장에 취직한 일영 씨. 하지만 경찰이 걸핏하면 찾아왔어. 동네에 무슨 일만 생기면 일영 씨를 무조건 용의선상에 올리고 추궁하는 거야. 경찰은 삼청교육대 정보를 전산화해 10년 가까이 수사에 활용했어.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에게 지울 수 없는 낙인이자 주홍글씨가 새겨진 거지.

▲ 불량배 소탕? '명분'으로 이용된 삼청교육대

삼청교육대, 대체 왜 만든 걸까? 삼청교육대를 처음 만든 곳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야. 국보위 위원장은 대통령이 되기 전의 전두환이었어. 12.12로 권력을 잡고 5.18을 유혈 진압한 그의 다음 목표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어. 그러기 위해선 '명분'이 필요했고, 그 명분으로 '정의사회 구현'을 외쳤어. 전국의 불량배를 싹 소탕하겠며 삼청교육대를 탄생시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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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어. 신문 방송에서는 "뒷골목이 밝아졌다"며 삼청교육대를 칭찬하는 기사들이 쏟아졌어. 삼청교육대를 홍보하는 '새 삶의 길'이라는 영상도 있었어. 이것만 보면, 삼청교육대는 사회 정화에 꼭 필요한 곳으로 미화돼 있어. 그럼 국민들 반응이 어땠겠어? 실상을 모르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깡패들은 삼청교육대 보내야 한다"며 전두환이 잘한 일이라고 박수를 쳤어.

그렇게 대통령이 된 전두환, 시간이 흘러 그가 물러난 뒤 제5공화국 청문회가 열렸어. 전두환은 삼청교육대 문제에 뭐라고 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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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은 고질적인 상습 범죄에 대하여 예방적 차원에서 특별 교육을 통해 교정함으로써 민생안정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시행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없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 바, 이는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어. '유감'이지만 끝까지 사과는 하지 않았어.

▲ 우리는 여러분과 똑같은 평범한 이웃이었다

삼청교육대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 397명, 정신장애 등 상이자 2,768명. 이것이 공식적으로 드러난 삼청교육대의 피해자 수치야. 살아남은 자들은 43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고 있어.

승호 씨는 트라우마 때문에 수면제를 40여년간 먹고 있어. 항상 쫓기는 꿈을 꾼대. 돌아가신 어머니를 꿈 속에서라도 보고 싶은데,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어 속상한 마음이야.

야구를 좋아했던 이수 씨는 아직도 요양원에 있어. 이건 삼청교육대에 가기 전 이수 씨의 모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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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던 이수 씨가,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형과 영상통화를 한 그는, 자기 자신도, 가족도, 여전히 못 알아보고 있어. 다만 자신이 야구를 좋아한다는 거는 기억해. 또 그가 또렷이 말하는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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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안 뱉었어요."

모든 기억이 사라졌지만, 이수 씨는 그날의 그 순간만큼은 지우지 못했어. 24살의 청춘은 그날에 멈춰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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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영 씨는 하루는 딸이 "우리집은 왜 이렇게 가난하냐"고 물어와 숨이 턱 막히더래. 딸한테 삼청교육대 이야기는 도저히 꺼낼 수 없었는데, 그 때 아내가 이렇게 말했대. "당신이 죄인은 아니지 않냐. 가해자는 대한민국 국가인데, 왜 당신이 숨냐. 떳떳해져라"고. 일영 씨는 아내의 응원에 용기를 냈고, 40여 년 만에 징역 1년 형을 받았던 것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어. 재심 결과는 무죄. 일영 씨는 법정에서 나오며 눈물만 흘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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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이 힘든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꼬꼬무' 방송에 나온 이유는, 세상 사람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야. "난 깡패도, 불량배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여러분과 똑 같은 평범한 이웃이었다" 그 말을 하고 싶었대.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어. 삼청교육대에서 당한 일만큼, 세상 사람들의 눈빛이 고통스러웠다고. 나도 모르는 사이 그들에게 어떤 낙인을 찍지는 않았는지, 또 그들의 이야기를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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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진화위)는 삼청교육을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발생한 대규모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하고 사망, 상이 피해 뿐만 아니라 강제 입소자 모두를 피해자로 인정, 국가가 적극적으로 피해구제에 나설 것을 권고했어.

진화위에서 삼청교육대 피해 접수를 받고 있어. 정확한 피해 사실을 알아야 법도 바꾸고 배상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때의 기억이 너무 고통스럽겠지만, 용기를 내줬으면 좋겠어. 누군가가 용기를 내야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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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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