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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이렇게 오래 못 만날 줄은…" 30년이 지나도 그리운, 남북 최초 단일팀의 기적

강선애 기자 작성 2022.06.03 11:28 수정 2022.06.06 01:28 조회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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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일 방송된 '꼬꼬무-마녀를 잡아라:1991 적과의 동거'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쇼트트랙 전 국가대표 박승희, 개그맨 김진수, 그룹 더보이즈 멤버 주학년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지독한 라이벌 남한과 북한, 갑자기 결성된 단일팀

때는 1986년 10월, 김포공항. 중국에서 돌아온 17살 정화가 입국장을 나서려는데, 누군가가 정화를 멈춰 세웠어. 공항 직원이 싸늘하게 노려보며 다짜고짜 정화에게 따졌어. "왜 졌어요?"라며. 17살 이 소녀, 누군지 알겠어? '탁구여제' 현정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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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화는 17살에 86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 19살에 88서울올림픽 복식 금메달을 딴 대한민국 탁구의 간판스타야. 탁구 실력만 뛰어난 게 아니라 '원조 스포츠 얼짱'으로 운동선수 중 최초로 화장품 CF 모델로도 활약했어. 이런 천하의 현정화 선수가 공항에서 왜 그런 대접을 받았을까? 한 소녀 때문이야. 바로 이 소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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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리분희. 북한의 탁구선수야. 이 해맑은 소녀의 별명은 '한국팀 킬러'야. 특기는 스카이서브. 서브를 할 때 공을 무려 4미터 높이로 던져. 우리나라 선수들이 이 선수한테 당한거야. 입국 전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 0대 1으로 완패했어. 그러니 분위기가 어땠겠어? 반공 국시였던 1980년대. 우리가 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나라가 두 곳 있었어. 일본, 그리고 북한이야.

당시에 대해 현정화 감독은 "북한에 지고 오면 공항에 들어올 때부터 공기가 쌔하다. '이번에 왜 졌냐'고 물어보는 분도 있고. 총, 칼만 안 들었지, 전쟁같이 경기를 치르는 거 같았다"고 말해. 당시 우리 선수들은 경기 상대로 북한을 만나면 무조건 이겨야만 했어.

현정화가 리분희를 다시 만날 날을 벼르며 연습에 매진하던 중,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냉전시대가 끝났어. 한일 관계보다 더 냉랭하던 남북은 변화를 꿈꿨고, 화해와 화합을 위해 최초의 남북단일팀 결성에 합의했어. 국제대회에 남북이 한 팀을 이뤄 같이 나가자는 거야. 종목은 탁구. 두 달 뒤에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나가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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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색한 첫 만남

곧바로 대표팀 선수단이 꾸려졌어. 남한대표 11명, 북한대표 11명, 여기에 남북 코치진과 체육관계자들. 그리고 이들의 감시를 위해 북한에서는 보위부, 남한에서는 안기부 요원들이 합류했어. 선수들은 사전에 "서로의 정상에 대한 언급은 하지 말라", "사상적인 건 건드리지 말아라"는 특별 교육도 받았대.

1991년 3월 25일, 일본 나리타 공항. 드디어 단일팀이 처음 만나는 날. 취재열기가 뜨거워. 이게 그때 찍은 사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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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만 봐도 어색하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해. 현정화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자 먼저 리분희에게 "잘 지냈어요?"라고 말을 건넸어. 돌아온 대답은 "일 없습니다."

첫 훈련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어. 남북의 훈련 방식이 달라 일주일씩 돌아가며 코치하기로 했어. 스타트를 끊은 건 남한 방식이었어. 남한 코치가 "자, 서브 연습을 시작한다"라며 연습을 주도했어. 그런데 북한 선수들이 꼼짝도 안해. 왜냐고?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거야. '서브(serve)', 영어잖아. 북한의 탁구 용어는 남한과 달랐어. '서브'는 '쳐넣기', '스매싱'은 '때려넣기'로 불렀어. 이 용어들을 종이에 써서 체육관 벽에 붙어놨어. 의사소통도 안 되는데, 훈련이 되겠어? 시간이 더 걸릴 수 밖에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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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가 현정화와 리분희를 따로 불렀어. 두 사람이 단체전 복식 파트너로 나가래. 남북의 에이스가 한 팀이 된다니, 일단 그림은 좋지. 근데 현정화가 88올림픽 때 복식 파트너 양영자 선수와 3년간 호흡을 맞추고 대회에 나갔는데, 리분희와 한달 연습해서 복식에 나가라니. 이게 말이 돼? 복식이라 해도 각자 개인의 실력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그렇게 어색한 첫 훈련이 끝나고 남북 선수들이 숙소로 돌아왔어. 같은 호텔이지만 다른 층을 썼대. 서로간의 접촉을 차단하려고. 복도에서는 보위부, 안기부 요원들이 지켰어. 혹여 북한선수들과 대화할 땐 안기부 요원의 시선이 느껴졌어. 북한 선수들의 방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전화도 도청이 되니 하지 말라고 했어. '원팀'이 됐지만, 이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선이 그어져 있었어.

▲ 서로에게 스며들다

딱 한군데, 감시의 눈길을 벗어날 수 있는 곳이 있어. 바로 선수들끼리 탔던 버스야. 매일 체육관을 오가며, 버스 안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어. 남한 선수들은 드라마 '서울뚝배기'의 주현 유행어를 따라하며 장난을 쳤고, 북한 선수들은 처음에는 못들은 척 하다가 같이 따라 웃었어. 이어폰을 나눠 끼고 카세트 테이프의 음악을 같이 듣기도 했어. 장난기도 많고 호기심도 많은 20대 초반의 남북 청춘들은,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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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만난지 1주일째. 모두가 잠든 깊은 밤 누군가가 호텔 비상계단을 올랐어. 남한 선수들 중 막내, 20세 이철승이야. 철승이는 품에 뭔가를 감추고 이 야심한 밤에 어딘가로 향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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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승이가 간 곳은 북한 선수들의 방. 그가 품에 숨겨온 것은 맥주였어. 철승이는 북한 형들과 술잔을 기울였어. 철승이는 자신을 귀여워해주는 형들과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화들짝 놀랐어. 날이 밝은 거야.

알고보니 철승이만 그런 게 아니야. 나중에는 북한 선수들도 남한 선수들의 방에 놀러왔어. 낮에는 같이 땀 흘리며 운동하고 밤에는 같이 한 잔 하며, 20대 청춘 남녀들이 그렇게 44일을 보냈어. 그런데 선수들만 그랬을까? 아니. 코치들도 밤마다 남북이 어울렸고, 심지어 안기부와 보위부까지도 친목을 나누며 남북 대화합의 장이 펼쳐졌어. 남과 북은 모두가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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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대회는 3주 앞으로 다가왔어. 본격적인 실전 훈련이 시작됐는데 문제가 생겼어. 복식 파트너 리분희가 간염에 걸린 거야. 리분희는 거의 훈련에 참여를 못했어. 그나마 하루 한시간 정도 훈련하면, 간염은 피로도가 빨리 와서 휴식과 회복하는 시간을 항상 가져야 했어. 중요한 대회가 바로 코앞인데 파트너가 간염이라니. 이대로라면 경기는 해보나 마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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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정화는 분희를 비상계단으로 불러냈어. 정화는 말없이 불쑥 뭔가를 내밀었어. 김치, 참치, 김... 자기가 먹으려고 서울에서 챙겨온 음식을 분희에게 건네며 힘내라고 전했어. "잘 먹갔소 정화"라며 돌아서는 분희의 뒷모습을 보고, 정화는 가슴 한 쪽이 저릿함을 느꼈어. 정화는 당시에 대해 "마음이 쓰여서 뭐든 잘 해주고 싶었다"고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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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남북 단일팀

드디어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막이 올랐어. 분단 46년만에 남북이 단일팀으로 출전한 경기를 보기 위해 재일 교포들도 경기장을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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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단체전의 예선 첫 경기 상대는 프랑스야. 정화와 분희가 나선 환상의 복식조는 게임 스코어 3대0으로 가볍게 이겼어. 두번째 상대는 루마니아. 분희가 단식 첫번째 주자로 나섰어. 근데 걱정하던 일이 일어났어. 시작부터 분희의 움직임이 둔하고 공도 파워가 떨어져서 경기에서 패했어. 분희의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그럼 부담이 정화한테 쏠리지. 정화는 이를 꽉 깨물고 라켓을 휘둘러 초인적인 힘으로 게임을 승리로 이끌었어. 분희도 아픈 몸을 이끌고 최선을 다했어. 단식은 부진했지만 정화와 함께 뛴 복식에선 단 한번도 지지 않았어. 예선전 경기 결과는 7전 7승. 남북 단일팀은 전승으로 16강에 진출했어.

16강, 8강, 4강을 넘어 마침내 결승에 도착했어. 그런데 코리아팀 앞에는 '넘사벽'이 기다리고 있었어. 결승전에서 중국과 만나게 된 거야. 안타깝지만 아무도 코리아팀의 우승을 기대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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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등록된 탁구 선수만 우리나라 인구 정도야. 1975년부터 세계선수권 8회 연속 우승해 왔어. 현정화가 "중국이랑 하면 벽에다 대고 탁구 치는 거 같다"고 말할 정도야. 그 넘사벽 중국팀에 '마녀'라 불리는 선수가 있어. 18세의 덩야핑. 탁구공이 안 보일 정도 빠르고 힘도 좋은, 중국 최고의 탁구선수야. 정화도 덩야핑 트라우마가 있었어. 1대1로 붙어 이긴 적이 없었대. 이 마녀 때문에 탁구를 그만 둘 생각까지 했다니까.

여기에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어. 분희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거 같은 얼굴로 더 이상 못 뛰겠다고 한거야. 결국 분희는 그날 복식만 집중하기로 했어. 문제는 단식이야. 단식에 분희 대신 내보낼 선수로 코리아 여자 단체팀의 막내, 21세 유순복이 발탁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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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진은 1번 단식에서 유순복이 덩야핑에 지더라도, 2번 단식 현정화와 3번 복식 경기에 기대를 걸며 버리는 카드로 유순복을 내보냈어. 그렇게 결승전 1게임 유순복 대 덩야핑의 단식 경기가 시작됐어. 첫 세트에서 21대 7로, 14점 차이의 압도적 스코어로 순복이가 이겼어. 천하의 덩야핑을 꺾은거야.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라 다들 어리둥절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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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트가 시작하자마자 덩야핑이 무섭게 몰아붙여. 독이 바짝 올랐어. 결국 두번째 세트는 내어주고 말았어. 세트 스코어 1대 1. 마지막 3세트가 시작됐고, 유순복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덩야핑을 격파했어. 유순복의 기적 같은 경기력에 선수들은 "그 님이 왔다"며 감탄했대.

▲ 기적처럼 만리장성을 넘은 코리아

포기했던 첫 단식을 따내고, 두번째 경기는 현정화 대 가오준. 가오준도 만만치 않은 상대야. 1년 전 아시안게임에서 맞붙었는데 정화가 졌었어. 막내 순복이의 기운을 이어 받아 시종일간 몰아붙였고, 결국 정화가 이겼어. 이제 한 판만 이기면 만리장성을 넘는 거야.

세번째 경기는 복식이야. 정화와 분희, 두 사람이 탁구대 앞에 섰어. 이 두 사람은 쌍둥이 자매처럼 움직이기 시작했어. 첫 세트 21대 16로 코리아팀이 이겼어. 이어진 두번째 세트에서 중국도 결사항전이야. 한점 따라가면 한 점 도망가고, 막상막하 경기력을 펼쳤어. 16대 16 동점 상황에서 분희의 서브차례. 그런데 갑자기 심판이 경기를 중지시켜. 분희가 공을 띄울 때 손으로 회전을 줬다며 반칙이래. 심판이 흐름을 끊으며 분위기가 중국에 넘어갔고, 결국 2세트를 내주고 말았어. 그 때부터였어. 잘 버티던 분희가 무너지기 시작해. 지친 기색이 역력하고 공을 못 따라가. 세번째 세트도 내어주며, 믿었던 복식에서 코리아팀이 패했어.

게임 스코어는 2대1로 우리가 앞서고 있지만,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았어. 4번째 게임은 현정화 대 덩야핑. 정화가 한번도 이겨본 적 없다는 덩야핑을 이번에도 넘지 못했어. 이제 게임 스코어는 2대2, 경기는 다시 원점이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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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단식게임 한 판으로 승부가 결정돼.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진 선수는 막내 유순복이야. 유순복 대 가오준의 마지막 단식 경기가 시작됐어.

첫 세트를 우리가 따냈어. 두번째 세트에서 13대 17로 순복이가 밀리고 있어. 바로 그 순간,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어. 순복이가 무섭게 4점차를 따라붙었어.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순복이는 점수 날 때마다 팡팡 점프를 해. 순복이의 스매싱에 밀린 가오준은 자꾸 탁구대에서 멀어졌어. 19대 19 드디어 동점. 관중석의 재일동포들은 난리가 났어. 그 기세에 눌린 걸까. 가오준이 친 공이 네트에 걸렸어. 20대 19 역전이야. 함성은 더 뜨거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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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대결 끝에 유순복이 승리했어. 코리아팀이 만리장성을 넘은 거야.

▲ 44일간의 동행, 그리고 헤어진 30년

코리아팀의 기적 같은 승리에 기자들이 몰려 들었어. 선수들은 라커룸으로 피신했고, 거기서 선수들은 펑펑 울었어. 현정화는 "30년도 더 지났는데 지금도 생생하다"라며 눈시울을 붉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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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오는 눈물의 의미가 뭔지 몰랐다. '잘했다', '수고했다'는 말도 안했다. '우리가 해냈네' 그런 느낌이었다. '우승을 해서 기뻤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느낌이다. 우리가 함께 해서 값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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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경기가 끝나고 시상식에서는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가 올라갔고, 애국가 대신 아리랑이 울려 퍼졌어. 현정화는 "그곳의 모두가 아리랑을 함께 부르는데 너무 먹먹했다"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당시를 떠올렸어.

그날 밤, 정화가 처음으로 분희의 방을 찾아갔어. 그리고 날이 밝을 때까지 수다를 떨었어. 그 때 찍은 사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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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반만에 이렇게 가까워졌어. 헤어질 땐 농담처럼 "다음에 만날 땐 친한 척 하지마. 상대 선수로 만나야 하니"라고 했대. 그렇게 44일간의 동행은 끝이 났어. 분희와 헤어지며 정화는 할 말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더래.

"'잘가, 건강해'. 그러고 할 말이 없었다. 우리 친구들과 헤어질 땐, '전화할게' '편지쓸게' 하는데. 우린 그 말을 할 수가 없으니. 서로 쳐다보다가 얼굴 한 번 만져주고 포옹 한 번 해주고.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그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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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코치들도 서로 붙들고 대성통곡 했대. 혹시라도 누가 보면 문제 될까봐 화장실에서. 그 화장실에는 보위부 안기부 사람들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대. 그 정도로 남북의 구분은 없었고, 그저 '한민족'이었대.

정화는 분희에게 선물을 건넸어. 정화와 분희의 이름이 새겨진 반지야. '날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는 뜻을 담은 선물이야. 정화와 분희는 2년 뒤에 다시 경기장에서 상대팀으로 만났어. 준결승전에서 붙었는데 정화가 졌어. 예전처럼 전의가 불타오르지 않았대. 그리고 그 후로는 한 번도 못 만났어. 28년이 다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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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번 만날 기회가 있긴 했어.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는데, 그때 정화가 특별수행원으로 북한을 방문하게 된 거야. 혹시나 분희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마지막 날에 갑자기 백두산에 가는 일정이 생겨 분희와 엇갈렸어. 돌아와서 북한 안내원이 "리분희 선수가 현정화 감독 만나려고 기다리다가 돌아갔다"고 말해줬대.

그리고 당시 분희는 한 외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 "정화가 많이 보고싶다. 그녀가 준 반지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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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도 분희에게 편지를 썼어. 아직 전달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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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분희언니. 그 동안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또 어떤 모습일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전 건강히 잘 지내고 있고 요즘은 후배들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되어 있습니다.

순복이는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세월이 참 빠르게 흘러가죠? 이제 우리는 만날 수 없을까요?

전 희망을 잃지 않고 있어요. 분명 언니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있을 테니까요.

언제나 건강하시고 그날이 꼭 돌아오기를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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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단일팀에 참가했던 선수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어. "그렇게 빨리 친해질지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오래 못 만날지 몰랐다"고. 그리고 "보고 싶다"고.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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