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30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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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북한이 납치한 여배우…'영화광' 김정일이 꿈꿨던 세계진출

강선애 기자 작성 2022.04.29 09:50 수정 2022.08.21 15:32 조회 2,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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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8일 방송된 '꼬꼬무-톱스타와 비밀테이프'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박효주, 신화 전진, 위키미키 김도연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당대 최고의 톱스타가 사라졌다

1978년 1월, 홍콩의 한 호텔에서 투숙객 여성 한 명이 실종됐어. 그녀가 소지하고 있던 모든 물건은 방 안에 그대로 남아있고, 사람만 감쪽같이 사라졌어. 이 소식이 알려지며 대한민국 전체가 발칵 뒤집혔어. 사라진 여성은 여배우 최은희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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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인기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알아? 어린 옥희가 귀여운 목소리로 "아저씨~"를 부르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여러 패러디를 만들고 있지. 그 영화에서 옥희 어머니 역할을 연기한 배우가 바로 최은희야. 제1회 대종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 정도로, 인기도 많고 연기력도 인정받은 당대 최고의 톱스타가 실종된 거야.

그런데 그녀가 사라지고,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해. 최은희의 실종이 2년 전 이혼한 전남편과 관련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기 시작했어. 그녀의 전남편도 엄청난 유명인이야. 당대 최대 영화사 '신필름'의 대표이자,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던 영화감독 신상옥이 바로 최은희의 전남편이야. 신 감독은 아이들에게 "엄마를 데려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집에 잘 있어"라는 말을 남기고 최은희를 찾기 위해 홍콩으로 날아갔어. 그리고 얼마 후, 신 감독마저 실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당대 최고의 톱스타와 영화감독이 연이어 실종된 거야.

▲ 스타 부부의 증발, 납치 배후는 북한 김정일

먼저, 최은희가 어떻게 실종됐는지 알아볼까? 당시 최은희는 초청을 받아 홍콩으로 갔어. 그런데 자신을 만나기로 한 사람이 급하게 일정이 생겼다고 며칠 기다려 달래. 대신 한 여성을 만났는데, 그 여성은 예술에 관심이 있다는 투자자와의 만남을 최은희에게 주선했어. 이에 최은희는 여성을 따라나섰고, 해변가 별장에서 만나기로 했대서 얼떨결에 보트에 올라탔어. 그런데 보트가 약속 장소와는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에 어딘가 이상함을 감지했어.

그때 배에 있던 남성은 최은희에게 "최 선생, 우리는 지금 장군님의 품으로 갑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으로 간다는 말입니다"라고 했어. 맞아. 최은희가 탄 배는 북한으로 향하고 있었어. 놀란 최은희는 "제발 돌려보내 주세요", "사람 살려요"라고 소리쳤고, 그 순간 다른 남자가 다가와 주사기 마취제로 최은희를 잠재웠어. 그렇게 최은희는, 상상도 못 했던 북한 땅을 밟게 된 거지.

배에 탄지 8일째 만에 북한 땅에 도착했어. 선착장에 내리자 한 남성이 다가와 악수를 청했어. 그 남성은 "오시느라 수고했습니다, 내 김정일입니다"라고 말했어. 김정일의 등장과 함께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지며 사진이 찍혔어. 이게 그때 찍힌 사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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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리무진 옆에 최은희를 태우고 직접 북한 시내를 돌며 가이드를 해줬어. 그 후 그는 자신의 별장으로 최은희를 데려가 "오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내 집처럼 생각하고 편히 쉬십쇼"라고 했어. 납치해서 강제로 끌고 와 놓고 편히 쉬라니. 화도 나고 무섭고 긴장됐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이후 최은희를 향한 김정일의 어필은 계속됐어. 김정일은 최은희의 환심을 사려고 농담을 서슴없이 던졌고, 최고급 음식에 술을 대접했어. 밤이면 밤마다 화려한 연회도 열었어. 그렇게 최은희의 초호화 북한 라이프가 시작됐어. 최은희는 무서웠지. '혹시 김일성한테 날 바치려고 하는 게 아닌가', '김정일이 날 어떻게 하려고 하나' 그런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 방문 앞에 사람 인기척만 나도 깜짝 놀라는, 긴장되는 나날들을 보냈어.

최은희는 매일 5시간씩 북한의 사상교육도 받았어. 밤에는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놀았어. '북한판 불금'을 보낸 거야. 최은희는 이런 삶이 좋았을까? 가장 힘든 시간은 노을이 질 무렵이었대. "남쪽 방향을 보며 한 사람씩 생각나는 대로 이름을 부르는 거야. 애들 이름, 식구 이름 다 부르고. 그땐 그냥 마음 놓고 큰 소리로 울고. 그런 생활을 했어 5년 동안."

5년이 지난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김정일에게 파티 초대 전화가 왔어. 김정일의 자택으로 초대된 최은희 앞에 누군가가 등장했는데 바로 신상옥 감독이었어. '내가 지금 귀신을 보고 있나? 왜 저 사람이 북한에 있는 거지?' 신 감독도 최은희와 똑같은 방법으로 북한 공작원에 납치됐대. 그런데 신 감독은 북한에 끌려온 직후 두 번의 탈출을 시도하다 정치범 수용소에 감금되어 5년 만에 최은희를 만나게 된 거야. 그날 찍은 사진도 있어. 최은희와 신 감독 사이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인물이 김정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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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최은희와 신 감독은 함께 지내게 됐어. 두 사람은 도청을 피해 욕실에서 대화를 나눴어. 이들은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확인했고, 같이 북한에서 탈출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어. "지금까지 우리는 남의 인생을 연출하고 연기했죠. 지금부터는 우리의 인생을 멋지게 연출하고 연기해요." 두 사람은 탈출을 위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

▲ 영화를 사랑한 독재자, 세계 진출을 위한 인재 납치

두 사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증거수집'이었어. '내가 원해서 북한에 온 게 아니라, 납치돼 끌려온 거다'를 증명할 증거가 필요했어. 당시 남한에서는 두 사람의 실종을 두고 '자진월북'이라는 소문이 퍼졌거든. 그 이유는 '검열' 때문이야.

그 시기 대한민국에서는 창작물에 대한 검열이 엄격했어. 영화를 만들려면 정부에 신고하고 검사를 받아야 했지. 신 감독은 이 검열 제도에 불만이 엄청 많았고, 그래서 정부에 미운털이 박힌 상태였어. 그러다 신 감독이 운영하던 영화사는 검열에 걸려 영화사 허가 자체가 취소됐어. 한국에서 영화감독으로서는 끝인 거야. 그래서 신 감독이 사라졌을 때, '제 발로 북한에 간 거 아니냐'는 소문이 돈 거야. 이런 상황에 말로만 '월북 아닌 납치였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 같았어. 그래서 증거가 필요했던 거야.

두 사람이 선택한 증거 수집 방법은 '녹음'이었어. 김정일의 목소리를 녹음하기로 한 거야. 녹음하다 들키면? 죽을 수도 있어. 목숨을 건 작전이야.

1984년 10월 19일, 김정일을 만나기로 한 날. 세 사람은 원탁 테이블에 앉았어. 김정일이 말을 시작하려는 찰나, 최은희가 손수건을 꺼내는 척하며 가방 속 녹음기 버튼을 눌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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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40년 전, 김정일의 육성을 녹음했던 실제 그 녹음기, 육성이 담긴 원본 테이프야. 김정일의 목소리를 몰래 녹음하는 데 성공했고, 다행히 녹음에는 꼭 필요했던 말이 담겼어.

"사회주의 한 30년 해보니까, 역시 인민들 먹이고 살리고 하려면 서방세계로 뻗쳐 나가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다", "영화 자료들 훑어보니까, 남조선에서는 누구를 제일 꼽느냐. 그러니까 신 감독이다. 좋다, 그럼 그 사람을 한 번 데려와야 하는데", "신 감독을 유인하려면 뭐가 필요한가. 그래서 슬쩍 최 선생을 이렇게 데려다 놨습니다."

신 감독을 데려오기 위한 미끼로 최은희까지 납치했다는 말이야. 그럼 김정일은 왜, 신 감독을 북한으로 데려오려 한 걸까? 그 이유도 녹음에 담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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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영화는 맨날 나오는 것이 반복하는 게 많고, 도식적으로 영화 이야깃거리가 새것으로 나가자고 하는, 지향하는 그런 게 전혀 없단 말인가", "예술 대회에 나갈 만한 작품이 없다", "영화로 서양에 진출해야겠다", "그래서 내가 신 감독에 대한 기대가 크다."

두 사람을 납치한 목적은, 세계에 진출할 만한 영화를 만들자는 거였어. 김정일은 엄청난 영화광이었대. 집에 고등학교 크기만한 홈시어터가 있었고, 세계 각국 영화를 만 편 넘게 모아놓고 그걸 혼자서 봤대. 그 정도이니, 영화 보는 눈이 엄청 높았고, 북한에서 만드는 영화는 성에 안 찼겠지. 어떻게 하면 북한에서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그 해결책이 남한에서 인재를 데려오는 거였어.

▲ 차근차근 진행되는 탈출 시나리오

녹음에 성공한 두 사람은 탈출을 위해 해외 로케를 계획했어. 촬영을 핑계로 해외에 가서 돌아오지 않으려 한 거지. 김정일은 선뜻 허락했으나 두 사람이 가고 싶었던 나라가 아닌 공산주의 국가로의 로케만 허락했어. 이에 두 사람은 몸은 탈출할 수 없었지만, 대신 녹음테이프를 해외에서 만난 지인에게 은밀히 전달하는 것에 성공했어.

탈출할 날만 꿈꾸며 1년에 10편씩 많은 영화를 찍은 두 사람.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어졌어. 우리 돈으로 300억원을 들여 스튜디오, 녹음실, 시사실 등 각종 방이 300개가 넘는 촬영소를 만들어줬고, 엑스트라가 필요하다면 천 명도 동원해 줬어. 기차를 폭발하는 장면을 찍는다면, 진짜 기차를 폭발해 버리라 지시하기도 했지. 이런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신 감독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만들었고, 이는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하며 김정일을 크게 만족시켰어. 영화로 세계 진출하는 것이 꿈이었던 김정일의 바람이 이뤄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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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두 사람에게 포상을 했어. 엄청난 포상이 이어져도, 두 사람은 오로지 가족들 품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었어. 신 감독은 "북한에서 나는 치약이다. 나는 다 짜고 나면 버려진다"라며 다 짜이기 전에 탈출하는 것이 목표였대.

가족이 너무 그리웠던 두 사람은 김정일에게 남한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김정일은 이를 허락했어. 두 사람은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참고 음성을 녹음해 남한 가족들에게 전했어. 그런데 이 녹음테이프는 안기부로 넘어갔고, 정부는 최은희-신상옥이 북에 억류돼 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발표했어. 이에 남한에서는 두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요구가 빗발쳤어.

그러자 김정일은 두 사람이 납치된 걸로 보이지 않게, 자신의 이미지가 더 나빠지지 않게, 오히려 두 사람을 풀어줬어. 해외 로케 촬영이 공산국가만 됐는데, 이제 자유주의 국가나 중립 국가도 가도 된다고 허락한 거야. 오히려 호재를 맞은 두 사람은 중립 국가인 오스트리아로 향했어. 그리고 이들은 떠나기 전 김정일에게 삼엄한 경호 때문에 의심을 받을 수 있다며 기자들 앞에서만이라도 경호원들이 붙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김정일은 이마저 수락했어.

▲ 8년 만에 탈출 성공, 그럼에도 한국에 돌아오지 않은 이유

그렇게 북한에 온 지 8년 만에 오스트리아에 간 두 사람은 경호원들을 따돌릴 시나리오를 짰어. 다음 날 인터뷰 계획이 있던 일본 기자에게 전화해 택시를 미리 불러달라고 부탁했어. 인터뷰 당일, 두 사람은 뒤따르는 경호원들에게 '김정일이 허락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자신들을 따라오지 못하게 했어. 그렇게 이들은 경호원 없이 일본 기자와 함께 택시에 올라탔고, "우리를 제발 미국 대사관으로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했어.

그런데 이들이 탄 택시를 하얀 택시 한 대가 쫓아왔어. 기회를 엿봐 이를 따돌리는 데 성공했는데, 미 대사관으로 향하던 그때 택시의 무전기가 울렸어. 무전 내용은 '택시에 탑승한 동양인 3명의 목적지가 어디냐'는 것. 두 사람은 택시 기사에게 간절하게 "반대 방향으로 간다고 말해달라"고 빌었어. 그리고 일본 기자도 자신이 갖고 있던 돈을 다 꺼내 주며 함께 부탁했어. 택시 기사는 이들의 간절한 요청을 들어줬고, 그렇게 두 사람은 미 대사관 앞에 무사히 도착했어. 이들은 미친 듯이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미 대사관의 보호 조치를 받을 수 있었어.

앞서 이들이 지인에게 넘겼던 녹음테이프가 사전에 미국 정부에 전달됐던 거야. CIA도 김정일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는데, 이 두 사람이 최고급 정보를 보내준 거였어. 이에 미 정부는 전 세계의 미국 대사관에 두 사람이 혹시 찾아오거든 보호 조치를 취하라는 지령을 미리 내렸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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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겨우 숨을 돌리고 있던 그때, 영사가 연분홍 장미 하나를 최은희에게 건네며 환영한다고 했어. 그제서야 최은희는 주저앉아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어. 이날을 위해, 지난 8년 동안 연기했고,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 거야.

그럼, 두 사람은 한국에 돌아왔을까? 아니. 그 후 두 사람은 고국으로의 귀국이 아닌 미국 망명을 택했어. 북한의 전제왕조도 싫지만 남한의 군사정권 역시 싫다며 "반공 나팔수는 하고 싶지 않다"라는 입장을 밝혔어. 한국에 돌아오면 본인들이 온갖 반공 선전에 동원될 게 뻔한 거야. 실제로 두 사람의 탈출 직후 국내에서 만든 문서를 살펴보면, 두 사람을 활용할 계획이 정리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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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미국 망명을 한 두 사람은 미국의 신변보호 조치에 따라 이름과 국적을 위장한 채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었대. 그리고 15년이 지나 한국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2006년과 2018년 차례로 세상을 떠났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어때?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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