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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연기 그만둘까 고민도"…김재영, 절실한 마음이 만든 성장

강선애 기자 작성 2021.12.17 18:06 조회 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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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은 극으로 치닿는 정희주와 구해원, 두 여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들의 연대와 배신, 복수와 용서를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풀어낸, 요즘 TV에서 보기 힘든 치정 멜로 장르의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정희주를 연기하는 고현정과 구해원 역 신현빈의 역할이 중요한 건 당연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두 여자들 사이에서 갈등의 씨앗이 되어줄 남자, 서우재 캐릭터를 어떤 배우가 얼마나 매력적으로 살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가정이 있는 정희주가 모든 걸 버리고 사랑했을 만큼, 구해원이 자기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매달릴 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갖춘 남자. 그게 서우재였고, 그걸 연기해낸 배우가 바로 김재영이었다.

김재영은 더할나위 없이 완벽하게 서우재로 거듭났다. 잘생긴 외모를 바탕으로 자유롭고 신비로운 분위기에 요즘 말하는 '퇴폐미'까지 풍기며, 예술가 서우재를 매혹적으로 풀어냈다. 기억을 잃고 두 여자의 대립 안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서우재를 섬세하게 표현했고, 잃었던 기억을 되찾은 후 정희주에 대한 집착이 광기로 번지는 서우재의 변화를 섬뜩하게 그려내며, 극의 결말을 더욱 비극적으로 장식했다.

김재영은 이 작품에 들어가기 전, 연기를 그만둘까 하는 깊은 고민을 품었다고 한다. 내적 방황 끝에 돌아온 촬영장에서 그는 더 절실했고, 그런 마음은 전보다 더 흡인력 높은 연기로 발현돼 매혹적인 서우재를 탄생시켰다. 이번 작품을 통해 김재영은 스스로도 인정할 만큼 배우로서 성장했고, 자신만이 갖고 있는 매력을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다른 직업을 해볼까 고민했다는 김재영. 어쩔 뻔 했나, 정말 그가 연기를 그만 뒀으면. 아까운 배우 하나를 잃지 않아 다행스럽다.

김재영

▲ 연기 그만둘까 생각했지만…성장이 불러온 자신감

"'너를 닮은 사람'은 진한 드라마였던 거 같아요. 좋은 감독님, 선배님들이랑 함께 작품 해서 감사하고, 연기자로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좋은 평도 들었고. 제가 더 성장한 시간이었어요."

'너를 닮은 사람'을 끝낸 김재영은 '자신감'을 언급했다. 이번 작품을 하기 전, 스스로 위축돼 있던 시간이 엿보이는 말이었다. 그래서 바로, 그 '자신감'이 어떤 부분인지 구체적으로 물었다.

"쉬는 동안, 배우의 길이 맞나, 내가 이걸 해도 되나, 내게 가능성이 있나. 그런 고민을 하며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예전에는 성공에 대한 꿈은 컸는데, 배우로서 어떻게 잘 해야하는지 막연하게 느껴졌거든요. 이번 작품에 절실한 마음으로 몰입했고, 감독님과 선배 배우님들이 많이 도와주신 덕에, '나도 성장하는구나'를 느꼈어요. 그러면서 자신감이 생겼고요."

김재영이 배우로서 고민의 시간을 가졌던 건, 전작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을 끝낸 후다. 주말드라마에 오랫동안 임하며 마치 회사에 출퇴근을 하듯 안정된 생활에 적응해버렸다는 그는 나태해진 자신을 꾸짖었다.

"예전부터 혹독한 다이어트를 통해 모델 생활을 했었고, 긴장이 풀리면 바로 살이 찌는 몸이에요. 그 때 나태해지며 살도 찌고, 연기적으로도 게을러진 게 느껴졌어요. 그러다보니 저에 대한 평가들도 안 좋은 게 많았죠. 다시 절 돌아보게 됐어요. 내가 잘하고 있나, 연기는 왜 시작했나, 성공에 대한 꿈만 컸지 정작 연기에 대한 생각은 그렇지 못했던 건 아닌가. 그런 걸 되물으며, 제 자신이 작아지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조금 쉬어야겠다 생각해, 1년 정도 공백기를 가지게 됐어요."

김재영

그 공백기 동안 김재영은 연기가 아닌 다른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겁이 났다. 사회생활이라고는 모델, 배우 일만 했던 그가 한순간에 이걸 내려놓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러 고민들 속에는 '행복이 뭔가'라는 쉽지 않은 질문도 있었다.

"제 꿈이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가족들과 같이 희로애락을 느끼며 사는 거예요. 진짜 행복이란 건 뭘까를 생각하다가, 제 꿈을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하고, 그러려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럼 또 사랑은 뭘까. 이런 생각들을 연달아 하게 됐어요. 그러던 중에 '너를 닮은 사람' 대본을 받았어요. 두 여자의 치정, 배신, 멜로가 펼쳐지는데 인물들이 선도 없고 악도 없이, 다 원하는 걸 적나라하게 드러내더라고요. 이걸 나한테 대입해서, 원하는 거 하나만을 위해 달려가는 걸 상상해볼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서우재는 사랑이 1순위이고, 그 사랑만 위해 직진하는 캐릭터였죠. 이 작품을 통해 느끼는 것들이, 제가 힘들었던 시기에 고민했던 것과 맞닿아 있단 생각이었어요."

▲ 작품에 폐가 되지 않기 위해 매달렸던 서우재

개인적으로 고민하던 것들의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작품이라 선택한 '너를 닮은 사람'. 김재영은 이 작품에 들어가며 다른 배우들의 이름의 무게에 어쩔 수 없이 느꼈던 부담감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 드라마에 들어갈 때 부담이 컸어요. 고현정 선배님은 워낙 대단한 배우고, 신현빈 누나도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입지를 다졌고, 최원영 선배님도 연기적으로 뛰어나시니까요. 제가 이 작품에 폐가 되면 안 된다는 부담이 컸어요."

김재영은 서우재로 거듭나기 위해 한 번도 길러본 적 없는 머리를 길렀고, 그동안 모델 특기를 살려 몸에 딱 맞는 핏한 옷을 입었던 것과 달리 이번엔 루즈하고 빈티지한 의상을 골랐다. "예전에 김재영이 보여주던 색깔과 달랐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요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들에 도전했다.

김재영

김재영표 서우재가 '너를 닮은 사람'에 처음 등장하던 장면은 임팩트가 강했다. 해원과 웨딩촬영을 하던 과거 신에서 처음 시청자 앞에 등장하던 2부, 현재 시점에서 전시회의 주인공으로 희주 앞에 처음 등장하던 4부, 두 종류의 '첫 등장'에서 모두 서우재는 신비로웠고, 무엇보다 '멋'스러웠다. 서우재의 멋진 등장은 그만큼 제작진이 공들인 결과물이었다.

"첫 등장 신들은 감독님이 공을 많이 들였어요. 우재가 두 여자의 갈등을 유발하는 인물이니까, 첫 등장 때는 진짜 멋있어야 하고 예술가적인 모습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찍고 나서 감독님이 진짜 멋있게 나왔다고, 인정한다고 하셔서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본 방송 때도 예쁘게 나왔더라고요.(웃음)"

극 중 서우재는 표면적으로 보면 '나쁜 남자'다. 순수하게 자신만을 좋아해 준 여자친구 구해원을 버리고, 구해원의 친한 언니인 유부녀 정희주와 눈이 맞아 함께 아일랜드로 떠난다. 그런데 아일랜드에서 정희주에게 버림을 받고,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채 한국에 돌아와 다시 정희주, 구해원과 얽힌다. 돌아온 서우재를 이용해 정희주에게 복수하려는 구해원, 과오에 발목 잡히기 싫어 발버둥 치는 정희주, 돌아온 기억과 정희주에 대한 집착으로 자멸하는 서우재까지, 극으로 치닿는 이들의 촘촘한 감정선이 '너를 닮은 사람'의 주된 이야기다.

김재영은 연기하며 가장 어려웠던 부분으로 기억을 잃은 서우재를 표현하는 것을 꼽았다.

"기억을 잃었을 때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많이 찾아보긴 했는데, 그게 또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고. 서우재가 남자다운 성격에, 혼자 많이 고민한 후에 정리된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타입이라, 그런 사람이 기억을 잃는다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어려웠어요. 감독님이 기억을 잃은 서우재가 초점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해서, 연기할 때 상대방의 눈을 본 적이 없어요. 인물의 뒤를 보며 연기했죠. 이런 연기가 시청자가 봤을 땐 '로봇 같다', '왜 그리 멍하냐' 할까봐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어요. 1년의 공백기 후에 연기하는 거라, 어쩔 수 없이 저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일 까봐, 그런 고민을 더 했던 거 같아요. 오히려 우재가 기억을 되찾고 흑화된 후의 연기는 편했어요. 이기적이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 찾는 우재의 모습은, 제가 마음껏 표출하면 되는 부분이니까요."

김재영

▲ 고현정과 신현빈

김재영은 어려운 서우재의 감정 연기를 그래도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건, 상대역들의 힘이 컸다고 밝혔다. 고현정과 함께 하는 연기에서 자신은 "얹혀 갔다"라고 말한다.

"고현정 선배님과 감정신이 많았는데, 선배님이 진짜 편하게, '어떻게 하면 좋겠니'라 물으며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선배님의 에너지가 저에게도 와 닿아서 놀라곤 했어요. 선배님과 연기하면 자동으로 그 감정이 생기고 리액션이 나왔어요. 선배님과의 감정신에서는, 선배님이 이끌어주는 대로 제가 업혀가면 됐죠."

고현정을 실제로 만나기 전, 김재영은 일반 대중과 다를 바 없는 어느 정도의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워낙 톱배우이다 보니 대하기 어려울 것 같고, 말도 잘 안 하고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이 앞으로 잘 맞춰나갈 수 있을 지에 대한 부담이 앞섰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은 고현정과의 첫 만남에서 바로 깨져버렸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과 배우들이 먼저 만났어요. 물론 전 얼어 있었죠. 고현정 선배님이 본인의 얘기를 먼저 다 해 주시더라고요. 제 작품을 어떻게 봤는지, 뭘 좋게 봤는지, 또 제가 서우재 같다는 말도 해주셨어요. 같이 리딩도 하고 식사도 하며, 그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 드라마는 여자 둘이 주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재가 살아야 잘 될 수 있다고. 두 여자가 다 좋아하는 캐릭터이니, 우재가 매력있어야 한다고. 여기에 모두가 공감해서, 현장에서 모든 배우들이 절 챙겨줬어요. 제가 상태가 좋아야 하니까요.(웃음)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는 고현정 선배님이었던 거 같아요."

서우재와 구해원은 억지로 결혼까지 하나 삐쩍 마른 나뭇가지처럼 메마른 관계였다. 극 중에서는 건조한 커플이었지만, 실제로 김재영과 신현빈은 화기애애한 분이기였다고 한다.

"현빈누나는 제게 친구처럼 다가오려 했어요. 제가 연기가 마음에 안 들어 다시 하고 싶어도 말을 못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현빈누나가 다시 가자고 대신 말해주며 절 많이 챙겨줬어요. 해원과 우재는 처음부터 사랑이 보이지 않고 집착 같은 관계라 서로 상반된 연기를 했는데, 현빈누나랑은 재미있는 대화를 진짜 많이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어요. 누나가 촬영 할 때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을 했던 거 같아요."

김재영

▲ 더 커진 절실함, 더 커진 진정성

오랜만의 연기라 부담이 컸고, 어려운 캐릭터라 힘들었지만, 김재영은 서우재로 완벽히 거듭났고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는 "'김재영은 서우재를 위해 태어났다'라는 반응을 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만큼 서우재랑 나랑 싱크로율이 맞았구나, 내가 열심히 하긴 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기뻤어요"라며 벅찬 마음을 전했다.

반면 김재영은 서우재의 집착과 나쁜 모습들 때문에 시청자가 "서우재 나오는 거 너무 싫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악담했던 일도 떠올리며 내심 상처받은 마음을 내비쳤다. 배우가 아닌 캐릭터를 욕하는 것인데, 오히려 배우가 해당 캐릭터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는 반증인데, 김재영은 나름 속앓이를 한 듯 했다. 그가 보기와 달리 얼마나 여린 사람인지, 내심 느껴졌다.

그동안 김재영은 날렵한 눈매의 얼굴, 모델 피지컬로 과묵하고 멋있는 남성 캐릭터를 주로 맡아 왔다. 실제의 김재영은 수다 떠는 걸 좋아하고, 밝고 유한 성격이다. 아직 자신의 본모습과 닮은 캐릭터를 만나본 적이 없다는 김재영은 그런 연기를 하고 싶다는 솔직한 바람을 보였다.

"제가 말하는 걸 좋아해서 별명이 '아줌마'예요. 어딜 가도 많이 떠들고, 하이텐션이죠. 그런데 맡는 역할은 주로 안에 숨기고, 사연이 있고, 남자답고, 그런 캐릭터였어요. 제 눈매와, 좀 세게 생긴 외모, 모델 출신이라 그런지 계속 그런 쪽으로 캐릭터가 잡히더라고요. 원래 성격은 밝고 유해요. 앞으로 계속 연기를 할 텐데, 제 원래 모습들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자꾸 무겁고 어두운 역할을 하다 보니, 제가 원래는 그런 사람인가, 혼란이 오기도 해요. 밝고 가볍고 장난기 있는 캐릭터를 연기해보면 재미있을 거 같아요."

모델로 활동하다가 2013년 연기를 시작한 김재영은 자신만의 속도로 계속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다. 이번 '너를 닮은 사람' 속 그의 연기가 전보다 더 좋게 느껴졌던 건, 불과 몇 개월 전 배우를 그만둘까 고민할 만큼 치열하게 연기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연기생활을 돌아보면, 후회가 더 남아요. 성공에 대한 꿈, 조급함만 컸던 거 같아요. 내가 하는 이 직업에 대해 더 깊게 들여다 봤어야 했는데, 운이 좋아 모델하다가 연기를 하게 되며 연기에 대해 진정성 있게 접근하지 못 한 거 같아요. 물론 저 나름대로 노력은 많이 했지만, 좀 더 집중했다면 더 나은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번 '너를 닮은 사람'은 진짜 처음 연기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어요. 그러다 보니 더 몰입할 수 있었죠. 이번에 절실함이 정말 컸어요. 배우에게 제일 중요한 건 연기력이니, 앞으로 작품 할 때도 그걸 항상 염두하고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죠."

[사진제공=HB엔터테인먼트]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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