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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꼬꼬무' 강신성 前대사, "통일되면 꼭 다시 만나고파"…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모가디슈 탈출기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1.11.12 02:22 수정 2021.11.12 09:35 조회 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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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영화보다 더 극적인 모가디슈 탈출기가 공개됐다.

11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지옥에서 탈출하라 1991 모가디슈'라는 부제로 영화 '모가디슈'의 모티브가 된 그날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지난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는 일순간 아비규환이 됐다. 군부 독재자 '시아드 바레'에 맞선 반군과 정부군의 내전이 시작됐던 것.

이에 당시 소말리아의 한국 대사관 직원과 교민 총 7명은 본격적인 탈출을 도모했다. 소말리아 초대 대사 강신성 대사는 직원들과 교민들은 자신의 집으로 불러 모았다. 당시 무장 경비 여섯 명이 지키고 있던 관저, 이에 대사는 다른 곳보다 자신의 집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무장강도는 호시탐탐 관저를 노렸고, 이에 하루빨리 소말리아를 탈출해야 했다. 그런데 모가디슈를 탈출할 방법은 오로지 비행기뿐.

본국에 연락을 해 구조 요청을 해야 하지만 당시 연락할 수단은 없었다. 모가디슈의 모든 통신이 두절됐던 것. 이에 대사를 비롯한 교민들은 안전하게 탈출할 방법을 모색했고, 이에 모가디슈 공항의 관제탑을 통해 케냐 공항 관제탑을 거쳐 한국 대사관으로 연락할 방법을 생각해냈다. 비교적 관저와 가까웠던 공항으로 가서 관계자에 통사정을 했고, 이에 내일 중으로 구조기가 도착할 것이라는 회신을 받고 안도했다.

다음날 떠날 준비를 하고 공항에 도착한 교민들. 오후 2시 30분, 남쪽 하늘에서 구조기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교민들은 드디어 탈출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하며 출입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리 두드리고 밀어도 문은 열리지 않고, 끝내 문이 열리지 않은 사이 비행기는 이륙해버렸다.

이에 대사와 교민들은 공항 관계자에게 자신들을 오도 가도 못하게 발을 묶은 것은 반인도적 행위라며 거칠게 항의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이 목격한 비행기는 한국의 구조기가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되어 충격을 안겼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구조기를 보내 교민들과 협력자를 탈출시켰던 미라클 작전, 그러나 30년 전에는 국내에서 교민들을 구조하기 위한 비행기를 보낼 형편이 안됐던 것이었다.

망연자실해 다시 대사의 관저로 발길을 돌리는 그때 어디선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 웃음소리의 출처는 바로 북한 대사와 교민들이었다.

당시 UN 가입 문제로 갈등을 겪었던 남과 북은 외교전쟁을 펼치며 최악의 대치 관계에 놓여있었다. 이에 남과 북의 사람들은 긴장을 풀지 못하고 서로를 견제했다. 그런데 이때 북한 사람들의 몰골이 심상찮음을 감지했다. 사실 이들은 무장강도에 털려 피해를 입고 공항으로 피신했던 것.

어느 곳보다 안전하지 못한 공항에서 머물고 있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에 강 대사는 모두 함께 자신의 관저로 갈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는 "공항은 사지이다. 그래도 우리 집은 무장 경비가 있기 때문에 신변이 안전하다"라며 함께 공동으로 탈출할 방법을 모색해보자고 설득했다. 이에 북한 사람들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차를 내어달라고 했고, 이후 이들은 쌀 3포대와 부식을 갖고 강 대사의 관저로 찾아왔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북한 대사관 땅에 묻어뒀던 것을 가지고 온 것.

이들은 그제야 긴장을 풀며 함께 음식을 만들어먹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탈리아 대사관에 도움을 청할 것을 결정했다.

그런데 한국 대사관에서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향하는 길에 모가디슈 최대 격전지인 대통령 궁을 반드시 지나가야 했던 것.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강 대사는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갈 것을 자청했다.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없던 그는 큰 결단을 내렸던 것.

위험을 뚫고 겨우 이탈리아 대사관에 도착한 강 대사는 이탈리아 대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이탈리아 대사는 적십자 비행기를 준비했다고 알렸다. 그러나 여분의 좌석은 겨우 7-8석뿐, 이에 이탈리아 대사는 강 대사에게 한국 사람들 먼저 대피하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강 대사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북한 사람들을 두고 갈 수 없었던 것. 강 대사는 "절망적이었다. 우리라도 태워 달라, 나중에 이 사람들도 잘 태워 달라 하고 먼저 떠날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없었다"라며 "나만 믿고 우리 집에 오라는 사람들을 두고 떠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결국 적십자 비행기에 오르는 것을 포기한 강 대사. 그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 이탈리아 대사에게 "죽든 살든 일단 관저로 돌아가서 어떻게든 해보겠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죽음에 직면했다는 것을 실감한 그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다시 한번 강 대사는 이탈리아 대사에게 "제발 우리 모두 다 같이 나가게 해 달라"라고 간절하게 빌었다. 말없이 2층으로 올라간 이탈리아 대사, 그는 1시간 후 돌아와 "어려운 교섭 끝에 군 수송기 한 대를 더 마련했다"라며 모두 함께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모두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데려오라 일렀다.

함께 살 수 있다고 기뻐하는 것도 잠시,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총 21명 차량 총 4대, 남북 동반 탈출 작전이 시작된 것. 이들은 목숨을 걸고 최대 격전지를 지나야 했다. 이에 생각해낸 것이 이슬람교 예배시간을 노리기로 했다. 그 시간만은 반군도 정부군도 총을 내려놓고 기도를 했기에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총 4대의 차량에 나눠 탄 사람들, 승합차 운전은 한국 대사관 직원 박용운 씨가 맡게 됐다. 그런데 출발 직전 북한의 무전수가 자신의 가족들이 타고 있으니 자신이 운전을 하겠다며 운전석에 올랐다.

계획대로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향하는 사람들, 10분 정도 지났을 때 대통령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전방에서 총알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대통령궁을 지키고 있던 정부군이 반군으로 착각해 총을 쏘았던 것.

그리고 얼마 후 필사적인 운전으로 이탈리아 대사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과 동시에 승합차가 앞차를 들이받고 멈췄다. 이에 사람들은 곧바로 운전석으로 달려갔다. 운전석에는 북한의 무전수가 창백해진 얼굴로 왼쪽 가슴의 총상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 당시 무장강도와 정부군의 타깃이 됐던 승합차, 특히 운전석은 차량을 강탈하려는 이들이 가장 노렸는데 예상대로 승합차의 운전석에 올라탔던 북한의 무전수가 타깃이 된 것이었다.

위급한 상황에 이탈리아 대사관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뒤에서는 총격이 계속 이어지는 상황에 강 대사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차량에 꽂혀있던 태극기를 빼들고 흔들며 "우리는 코리아의 외교관이다. 제발 문을 열어달라"라고 외쳤다. 하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릴 줄 몰랐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강 대사의 태극기를 빼앗았다. 이는 바로 북한의 외교관이었다. 그는 태극기를 흔들며 "우리는 코리아 외교관이다. 제발 문을 열어달라"라고 외쳤다. 살기 위해 이념도 국가도 모두 잊은 간절한 외침이었던 것.

그 순간 문이 열리고 의료진이 달려와 북한의 무전 수부터 살폈지만 이미 손을 쓸 수 없었다. 그의 희생과 헌신으로 많은 이들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그는 사진 한 장도 남기지 못하고 먼 아프리카 대륙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남북의 사람들은 이탈리아 대사관 화단에 무전수를 한반도 방향으로 묻었다. 죽어서라도 조국에 돌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며칠의 시간이 지나고 약속했던 비행기가 도착했다. 이에 비행기에 오르기만 하면 탈출에 성공이었다. 비행기를 향해 달려가던 그 순간, 갑자기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곳곳에 숨어있던 소말리아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구조기를 타려고 달려온 것.

모가디슈 공항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다. 이는 최근 아프간 카불 공항에서도 벌어진 일과 별반 다르지 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20명 전원 중 낙오자 한 명 없이 전원 비행기 탑승에 성공했고, 14일 만에 무사히 탈출했다.

케냐 공항에 도착한 사람들은 탈출의 기쁨을 함께 나누지도 못했다. 허가 없이 남북이 만나면 국가보안법 위반의 상황에서 북한의 대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그동안 감사했다며 "이제는 우리의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라며 안녕을 고했다. 하룻밤만 더 같이 지내며 회포를 풀자는 강 대사에 북한의 대사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때 강 대사는 그의 생각을 알아챘다. 강 대사는 "한국 측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평양에서 알게 되면 질책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들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이 도움을 주는 것이라 생각해 빨리 가시라고 했다"라며 당시를 설명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포옹과 악수를 나눈 이들은 "통일이 되면 꼭 다시 만납시다"라는 약속과 함께 5분도 채 걸리지 않은 이별을 했다.

이후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온 이들은 백방으로 북한 사람들의 소식을 알아봤지만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궁금했던 소식을 꼬꼬무가 전해줬다.

전 북한 대사는 "외무성 안에서는 그 정도는 다 안다. 처벌받았다는 소리가 없었다"라며 "북한도 사람부터 살려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니 승인을 했던 거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북한에 와서 외무성에 출근하는 것을 봤다"라고 걱정했던 이들의 무사 귀환을 알렸다. 또한 당시 모가디슈에서 숨을 거둔 무전수의 아내는 이후 외교부에 취직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올해 85세가 된 강신성 대사, 그는 문득문득 그날이 떠오르고 점점 기억은 선명해진다고 했다. 그는 "북한 사람들이 보고 싶다. 대사는 살아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이제 30대가 됐을 텐데 용돈이나 선물이라도 주고 싶다"라며 "만약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할 일은 그 사람들을 만나는 거다. 그동안 어떻게 잘 지냈는지 일상적인 것들이 궁금하다. 그런 날이 꼭 한번 오면 좋겠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런데 그런 날이 언제 올지"라고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장현성은 "이 모든 비극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전쟁이다. 소말리아 내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라며 "우리나라도 아직 휴전 중이다. 언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에 사는 우리에게 전쟁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라고 생각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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