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힘 빼도, 무서울 수 있다"…진서연, 악역의 진화

강선애 기자 작성 2021.11.11 18:21 수정 2021.11.12 09:34 조회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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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서연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악(惡)을 연기하는데도 치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나쁜 역할이라고 해서 무조건 화내고 소리치는 게 아니라, 어떨 땐 웃으면서, 어떨 땐 순진하게도 표현하며 오히려 악함을 더 극대화시킨다. 대중은 배우가 새롭게 표현하는 악인 연기에 매력을 느끼고, 때론 주인공보다 그 악역에 더 환호하기도 한다.

배우 진서연은 지난 6일 종영한 SBS 금토드라마 '원 더 우먼'에서 최고의 빌런 한성혜 캐릭터를 연기했다. 한성혜가 딱 그랬다. 쉽게 분노하지 않고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며, 느리게 힘을 뺀 목소리로 말하는데도 섬뜩한 카리스마를 지녔던 악인. 진서연이 그린 한성혜는 기존에 본 적 없는 악인의 모습이라 신선했고 매력적이었다.

이런 진서연의 힘을 뺀 악인 연기가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영화 '독전'에서 선보였던 보령 캐릭터와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보령은 스크린을 씹어먹을 듯 압도적인 강렬함으로, 진서연의 필모그래피에 굵직한 한 획을 그었다. 한성혜와 보령, 악역이란 큰 틀은 같은데 진서연을 만나 전혀 다른 색의 악인으로 탄생했다. 진서연이 얼마나 캐릭터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을지, 전과 다른 연기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진서연표 한성혜 연기는 최고 시청률 20%를 넘긴 '원 더 우먼'의 인기에 한몫했다. 주인공 조연주(이하늬 분)를 계속 압박하며 극의 긴장감을 높였고, 반면 조연주에게 시원하게 당할 때에는 역으로 쾌감을 안겼다. 여주인공 원톱 드라마인 '원 더 우먼'에서 진서연이 묵직하게 반대쪽 균형을 잡아주지 못했다면, 드라마의 재미는 반감됐을 것이다.

실제의 진서연은 솔직하고 시원시원한 화법이 매력적이고, 소소한 일에도 반달눈을 하며 잘 웃는 사람이다. 코로나19로 화상 인터뷰로 만났지만, 화면 너머 그녀의 모습에서 한성혜나 보령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진서연

▲ '원 더 우먼'을 무사히 끝낸 소감부터 말해주세요.

너무 즐겁게, 행복하게 촬영했어요. 팀워크도 좋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하고, 감독님도 배우들도 다들 착하고 좋았어요. 게다가 시청률까지 잘 나왔잖아요. 제가 했던 작품들 중 모든 게 가장 완벽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좋았어요.

▲ '원 더 우먼'이 시청자의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시청자가 어떤 점에 열광했다고 보나요?

이하늬 씨가 연기한 조연주의 사이다 캐릭터에 열광해주신 거 같아요. 할 말을 다 하고, 모든 걸 두루두루 갖춘 사이다 캐릭터였잖아요. 또 한편으로는 한성혜의 여자이지만 수위를 넘었던 야망들, 자기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을 쟁취하려 하는 그런 욕망들이 대리만족을 주지 않았나 싶어요.

▲ 한성혜를 연기하며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꼭 잡고 가야겠다 생각한 건, '감정을 드러내지 말자' 였어요. 차분하게 우아한 빌런의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죠. 그래서 대본에 드러나있는 1차원적으로 화를 낼 수 있는 부분들을 의도적으로 안 하려 했어요. 대신 뉘앙스나 눈빛으로 차분하게 표현하려 했죠. 실제로도 그런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걸 느꼈거든요. 주변에 화내고 언성 높이는 분들 보면 그렇게 나쁜 분들은 별로 없더라고요. 그런데 감정을 별로 드러내지 않으며 차분하게 거절하는 분들이 더 무서워요. 한성혜를 그렇게 표현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진서연

▲ 힘 빠진 듯 나른한 목소리 톤의 악역이 새로웠어요.

제가 원래 말을 그렇게 해요. 힘 빠진 듯 느리게 말을 하는데, 평소엔 그게 제 단점이라 생각했어요. '왜 난 말을 빨리 못할까', '톤을 높여 말하지 못할까' 했죠. 이번에 한성혜 캐릭터를 그렇게 설정한 후, 본래의 저처럼 말하면 되니 어렵지 않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 재벌 3세로서 스타일링은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요?

제가 잡은 한성혜 캐릭터는 일에 미쳐 있고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화려하고 패셔너블한 재벌 캐릭터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중성적인 느낌에 부티가 나고 우아한 느낌을 표현하려 했어요. 스타일리스트랑 상의한 게, 화이트 아니면 블랙이었어요. 빌런이라고 비주얼적으로 의상 색을 세게 할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순백색의 느낌이 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대부분의 의상이 화이트였어요. 그렇게 깨끗하고 단아하고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느낌이 나는 사람이 눈빛이나 호흡, 대사로 악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어 의상톤을 모노톤으로 잡았어요.

▲ 한성혜는 살해를 지시하고도 죄의식이 없는 악인이었는데요. 반대로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하는 모습에서는 안타깝기도 했어요. 한성혜의 감정들에는 어떻게 공감했나요?

물론 한성혜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라 지시하는 것들은 감정이입할 수 없었죠. 캐릭터적으로 접근하면서 '이 캐릭터는 죄의식이 없으니 그럴 수 있어' 했지만, 공감할 수는 없었어요. 반면, 성혜가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은 중요 포인트였어요. 성혜는 한주그룹을 갖고 싶다는 야망보단,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감정이 전부인 친구예요. 그 감정을 아버지한테 표현하지 못하고, 내면에 꽁꽁 싸맨 걸 욕망으로 분출했죠. '아버지 사랑받고 싶어요' 라고 한 번도 감정표현을 못 한 성혜가 좀 짠하고 안타까웠어요.

진서연

▲ 이하늬(조연주/강미나 역), 이상윤(한승욱 역) 등 다른 배우들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요?

하늬는 연주 그 자체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저만 잘하면 됐어요. 연주의 높은 텐션이 불도저처럼 다가오면, 제가 그걸 확 끌어내리고, 다시 또 연주가 텐션을 높이면 제가 끌어내리고, 그렇게 서로 텐션을 유지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상윤 오빠는 붙는 신이 많지 않아서, 초반에는 절 어려워하더라고요. 저와 하늬랑 동갑인데, 오빠가 하늬한테는 반말하는데, 저한테는 존댓말 했어요.(웃음) 나중에는 붙는 신들이 많아서 오빠랑도 친해졌고, 제가 장난도 치고 그러니 점점 편하게 대해주더라고요.

배우들과 다 호흡이 좋았어요. 다들 맡은 캐릭터 준비를 잘 해왔죠. 제가 한성혜로서 묵직하게 쭉 밀고 나가면, 다른 분들이 와서 퐁당퐁당 재미있게 연기하고 갔어요. 현장이 정말 재미있고 유쾌했어요. 저만 동떨어지게 안 웃고 진지한 캐릭터라, 다른 배우들과 같이 퐁당퐁당을 못해 좀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세트장에서 가족들과 밥 먹는 장면 같은 걸 찍으면, 그렇게 반갑고 좋더라고요.

▲ 이번 한성혜도 그렇고, '독전'의 보령도 그렇고. 주로 '센캐'라 불리는 무서운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잖아요. 가볍고 풀어지는 연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궁금해요.

코미디를 정말 너무 하고 싶어요. 그런데 저한테 그런 면이 있다는 걸 잘 모르시는 거 같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트레이닝복 한 벌만 입는 백수, 화장도 안하고 머리는 산발하고. 그런 캐릭터도 좋으니 코미디 정말 하고 싶어요.

▲ 강한 캐릭터 제의만 들어오는 게, 센 이미지 때문인 거 같은데요. 그럼 본인이 생각하는, '인간 진서연'은 어떤 사람인가요?

남들은 제가 외향적이고 친구도 많고 셀 거라 생각하는데, 제가 생각하는 전, 혼자 있는 거 좋아하고 차분해요. 집에서 그냥 책 보고 영화 보는 거 제일 좋아하고요.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맛있는 음식 먹는 것에 행복해해요. 엄청 소소한 사람인 거 같아요.

진서연

▲ 진서연 하면, 짧은 커트 머리부터 떠올라요. 지금 이 짧은 머리는 언제부터 해오고 있는지, 고수하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요.

영화 '반창고'를 할 때 미국 뉴욕에 오래 있었어요. 뉴욕 거리에는 패셔너블한 친구들이 많아, 지나가다가 막 사진도 찍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패션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그때 제 머리가 길었어요. 저만 아무도 안 찍더라고요.(웃음) 뭔가 변화를 줘야겠다 싶었어요. 또 그때 '반창고'에 출연하는 한효주 씨가 머리가 길었는데, 효주 씨랑 붙는 장면에서 대비를 줘야겠다 싶어, 머리를 커트로 잘랐어요. 그리고 감독님한테 보여드렸더니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머리를 자른 후 뉴욕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멋있다며 제게 사진을 찍자고 하더라고요. '아, 이 머리가 나한테 잘 어울리는구나' 느꼈어요. 그 후 한국에 돌아와 '반창고'를 찍었고, 계속 작품들을 이어하며 머리를 기를 새가 없었어요. 그렇게 짧은 머리를 유지하게 됐어요.

▲ 예전 인터뷰를 보니, 비건(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적극적인 개념의 채식주의) 식단을 한다고 했는데, 여전한가요? 자기 관리는 어떻게 해요?

비건 식단은 계속 하고 있어요. 고기를 안 먹은 지 벌써 4년째인데, 별 불편함은 못 느끼고 살아요. 제 몸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껴요. 몸이 나빠지면 안 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비건 하고, 영양소, 비타민 같은 몸에 좋다는 거 잘 챙겨 먹고, 물 많이 마시고, 운동하고. 건강과 피부가 나빠질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아니에요.

▲ 어느덧 11월,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올해 진서연 배우가 한 선택 중, 가장 잘한 일을 꼽아본다면요? 또 올 한 해를 돌아보면 만족스러운가요?

'원 더 우먼'을 한 게, 제일 잘한 일 같아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했던 작품인데 하기로 결정한 건, 너무 잘한 일이죠. 그 덕에 좋은 인연들을 만났고, 결과도 좋고. 감사하고 영광스럽고 그래요. '원 더 우먼'은 기억에 많이 남을 거 같아요. 제가 기존에 하지 않았던 연기, 감정을 감추고 눈빛이나 호흡으로만 표현하려고 했던 작품이라. 이런 식으로도 감정이 전달되는구나를 알게 된 계기가 됐어요. 연기적으로도 많이 공부할 수 있었죠. 제 필모그래피에 있어서 한 단계 나아가는 발판이 되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 개인적으로 다른 연기톤을 알게 된 작품이라 더 뜻깊어요.

▲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은, 왜 가졌던 건가요?

'시청자들이 날 좋아해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어요. 제가 TV에 나올 때 호감 캐릭터가 아닌데, 또 미운털이 박히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그럼에도 출연을 결심한 건, '기존의 빌런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거야' 하는 믿음 때문이었어요.

진서연

▲ 그래서 시청자가 한성혜의 매력을 알아줬을 때, 더 기뻤을 거 같네요. 기존과 다른 빌런을 보여주려 했는데, 그걸 시청자가 인정해준 거니까요.

그렇죠. 처음 빌런 역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사람들이 날 또 미워하겠지' '그럼 속상하긴 할 거야', '그래도 악역이니 어쩔 수 없어' 라는 생각들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성혜로서 우아하고 차분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기존과 다른 빌런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연기를 했는데, 시청자들이 '기존에 못 봤던 빌런이다', '이런 빌런은 처음 본다' 이런 반응들을 보여줘서,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알아봐 주셔서 감사하고 뿌듯했어요.

▲ 이제 '원 더 우먼'이 끝났는데, 어떤 계획이 있나요?

6개월을 달려왔으니, 일단 쉬고 싶어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차근차근 배울 생각이에요.

▲ 새로 배우고 싶은 것들은 어떤 건가요?

제가 드라마 끝내고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바이크 면허 따기라, 거기에 도전할 생각이고요. 검술이나 공중돌기, 파쿠르도 배우고 싶어요. 연기를 하며 몸을 쓰는 장면들에서, 제가 직접 할 수 있어야 더 잘 살릴 수 있는게 많더라고요. 제가 그걸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한다는 것에 한계가 느껴져서, 직접 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배우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영어도 배우고 싶고요.

▲앞으로 대중에게 어떤 배우로 인식되고 싶은가요. 또 배우로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저 캐릭터는 진서연 말고는 대체할 배우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대체불가능한 배우, 그건 모든 배우가 꿈꾸지 않을까 싶어요. 대체불가능한 배우가 되고 싶고, 대체불가능한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싶어요. 배우보다는, 그 캐릭터 자체가 기억에 남았으면 해요. '독전'의 보령이 기억나 듯, '원 더 우먼'의 한성혜가 기억나 듯이요. 이렇게 캐릭터가 쌓여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 연기하면, 30대의 보령, 40대의 한성혜, 50대, 60대에 또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겠죠. 모든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대체불가능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게 제 목표예요.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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