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죽고 죽이고…한때 요정이었던, 배우 유진의 독한 변신

강선애 기자 작성 2021.09.20 12:28 수정 2021.09.20 16:01 조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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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요즘 Z세대는 걸그룹 S.E.S를 잘 모른다지만, 90년대 말~2000년대 초 S.E.S의 인기는 정말 어마어마했다. 발표하는 곡마다 차트 1위를 휩쓸었고, 어딜 가던 구름떼 같은 팬덤을 몰고 다녔다. 특히 '요정'이라 불렸던 S.E.S 세 멤버 가운데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던 '센터' 유진은 남녀 불문하고 큰 사랑을 받았다.

따지고 보면, 유진이 S.E.S로 활동한 기간은 약 5년, 배우로 연기를 해온 시간은 무려 20년이다. 곱절 이상의 세월을 배우로 살아왔는데도, 유진을 보면 S.E.S가 먼저 연상됐다. 유진이 배우로서 딱히 부족함이 없었는데도, 한 시대를 풍미한 걸그룹의 센터였던 만큼, '요정'의 기억을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배우 기태영과 결혼하고 육아 예능에서 딸들을 대중에 공개하면서, 유진에게는 '기태영 아내', '로희 엄마' 등의 수식어가 더 붙었다. 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안정적인 연기로 착실히 필모그래피를 쌓아 왔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수식어 속에서 '배우 유진'의 느낌은 다소 옅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이후, 배우로서 유진의 위상은 전과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 '유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S.E.S도, 귀여운 로희 얼굴도 아닌, 그녀가 '펜트하우스'에서 연기했던 '오윤희'란 이름이다.

극 중 오윤희는 초반에는 억척스러운 엄마의 모습을 그려내더니, 민설아(조수민)를 죽인 걸 은폐하기 위해 악해지기도 했다가, 잘못을 인정하고는 처절하게 참회하며 선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딸 배로나(김현수)의 죽음으로 극한의 무너짐을 경험했다가, 딸이 살아 돌아오며 다시 극적인 감정 변화를 보였다. 시즌3에 와서는 결국 자신이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인 엔딩으로 충격도 안겼다. 이전 작품에서 사랑스러운 연기를 주로 선보였던 유진이 이런 롤러코스터 인생 오윤희를 연기한 것 자체만으로, 이미 큰 도전이고 파격 변신이었다.

배우가 연기했던 캐릭터와 동일시된다는 건, 그만큼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고 해당 작품이 인기도 많았다는 이야기다. 유진은 그냥 오윤희 그 자체였다. 시즌3까지 이어지며 시청자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펜트하우스'에서, 오윤희 역할을 제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연기해냈다. "유진이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나", "유진의 재발견"이란 칭찬이 이곳저곳에서 어렵지 않게 들려왔다. 유진이 배우로서 용기를 낸 이번 독한 도전은, 아름다운 해피엔딩이다.

유진

▲ 쉽지 않았던 연기, 오윤희에 애착 가고 성취감도 있어

Q. 방송 기간만 1년, 준비기간까지 합치면 1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해온 '펜트하우스'인데요. 마무리하는 소감이 어떤지요?
유진: 상당히 긴 시간이었지만,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 거 같아요. 그만큼 즐겁게 촬영했고, 많은 사랑을 받아서 그런지 힘들지 않게 촬영했어요. 오랜 기간 촬영하면서 오윤희란 캐릭터가 쉽지 않고 행복하지 않은 캐릭터였지만, 정이 붙었어요. 보내려니 시원섭섭해요. '펜트하우스'란 드라마가 자극적이긴 했지만, 사랑을 많이 받았고, 또 제가 쏟아부은 열정이 커요. 그래서 굉장히 애착이 많이 가는 드라마예요.

Q. 유진 씨 말대로, 오윤희가 참 쉽지 않은 캐릭터였죠. 자식 때문에 남의 자식을 죽였고, 또 반대로 자기 자식이 죽는 걸 경험했어요. 극한의 감정을 쏟아내는 연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유진: 다 극한의 감정이었죠. 오윤희가 민설아를 죽이는지 모르고 시작했는데, 제가 그런 역할이라 사실 너무 힘들었어요. 초반엔 납득이 안됐죠. 연기를 하려면 저 자신이 납득을 해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작가님과 굉장히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 대화를 통해 일정 부분 이해가 갔어요. 저 또한 오윤희란 캐릭터의 이유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나중에는 오윤희에게 더 접근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오윤희를 이해하려 많이 노력했고, 그렇게 설득해서 연기했지만, 어린아이를 죽이는 감정이 실제론 공감되진 않았죠.

반대로 자식이 죽는 연기는, 아무래도 실제 제가 자식이 있는 입장이니 더 몰입하기 쉬웠고 너무 슬펐어요. 절대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죠. 자식이 죽는다는 건 상상 자체가 극한 감정일 거예요. 연기하면서 진도 많이 빠지고 힘들었어요. 오윤희를 연기하며 남의 자식을 죽이고 내 자식이 죽는, 극한의 감정을 경험해봤어요. 해보지 못했던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한 도전, 그걸 끝냈을 때의 성취감은 분명 있었어요.

Q. 시즌3까지 이어진 긴 흐름의 드라마라,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요. 시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자 한 포인트가 있다면요?
유진: 매 시즌 변화를 주려 했어요. 외모도 오윤희의 심경 변화에 맞추고자 했죠. 그래서 오윤희가 내적으로 강해질 때, 화려한 스타일링이나 빨강 머리로 변화를 주고자 했어요. 시즌3에서는, 감정적인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앞선 시즌 1, 2에서 심수련(이지아)에게 용서를 받고 회개가 이뤄진 이후라, 시즌3에서는 좀 정리된 느낌의 오윤희가 되고자 했어요. 시즌1, 2에서 오윤희가 감정이 날뛰고 즉흥적이었다면, 시즌3에서는 좀 더 차분하게 연기하고자 했어요.

Q. 오윤희가 시즌3 중간에 사망하며 다른 인물들보다 일찍 작품에서 하차했는데요. 아쉽진 않았나요?

유진: 아쉬운 부분도 당연히 있긴 한데, 오윤희가 먼저 죽은 건 작가님이 정한 순서이고, 작품에 있어서 드라마틱한 죽음이라 생각해요. 그 죽음에 천서진(김소연)이 개입하며 비밀이 또 생겼으니까요. 제가 아쉬웠던 건, 일찍 하차하는 것이 아닌, 딸을 두고 먼저 죽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어요. 로나가 너무 불쌍해서요. 오윤희의 죽음보다 그게 더 슬펐어요. 오윤희가 시체 안치실에 누워있고 로나가 죽은 엄마를 부둥켜안고 우는 신이 있었는데, 제가 너무 슬퍼서 계속 눈물을 흘렸어요. 시체가 눈물을 흘리면 안 되는데 계속 울었어요. 그만큼 너무 슬픈 신이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유진

▲ 어떤 새로운 캐릭터라도, 도전할 용기 생겼다

Q. 김순옥 작가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고 했는데요, 작가님이 따로 칭찬해줬다던가, 해준 말이 있는지 궁금해요.
유진: 김 작가님이 굉장히 칭찬에 후하세요. 제가 큰 신을 끝내거나 방송을 본 후에는 "윤희야, 이 신 너무 좋았다, 잘했다"고 문자메시지를 주시곤 했어요. 항상 감사했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면 촬영에 앞서서는 "대본 봤지? 그 신은 윤희가 이런 감정으로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미리 설명도 해주셨고요. 굉장히 소통을 잘해주시는 작가님이셨어요.

Q. 같이 연기를 맞춘 김소연, 이지아, 엄기준 등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유진: 연기 호흡은 너무 좋았어요. 다들 너무 멋진 배우들이에요. 배우로서, 한 인간으로서, 다들 너무 좋았고 서로 배려도 잘했어요. 그래서 함께 연기하며 어려운 점이 없었고, 다들 열정적이라 제가 많이 배웠어요. 한 분 한 분 다 기억나고, 감사했어요. 즐거운 현장이었죠.

Q. 모녀 연기 호흡을 맞춘 배로나 역 김현수 배우와의 촬영 후기도 궁금한데요. 극 중 상황이긴 하지만 모성애도 많이 생겼을 것 같아요.
유진: 연기를 오래 같이 하니 진짜 딸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로나랑 함께 하는 촬영들은, 어려운 감정의 신들이 많았는데도 감정이입이 쉽게 됐어요. 호흡도 잘 맞았고요. 또 김현수 양이 너무 착해요. 진짜 딸 같았어요.

Q. '펜트하우스', 그리고 오윤희란 역할이 유진의 배우 인생에서 어떤 분기점이 될까요?

유진: 개인적으로 오윤희란 캐릭터는 제게 도전의 의미가 컸어요. 저와 너무 다른 인물이었고, 감정 기복도 심하고 극한의 감정을 갖고 있는 캐릭터였으니까요. 처음에는 진짜, 제가 잘 소화하지 못할 거 같아 출연을 마다했어요. 그래도 도전의 마음으로 하게 됐는데, 정말 하기 잘했단 생각이에요. 이걸 계기로 제가 조금 더 도전정신이 있는 배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앞으로 어떤 새로운 캐릭터가 와도 도전할 용기가 생겼어요. 오윤희는 저랑 달라서 더 많이 연구했고,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캐릭터예요. 애증의 느낌도 있고요.

유진

▲ 가족 건강, 행복 기원하는 '엄마' 김유진

Q. S.E.S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유진 씨가 부모 연기를 이렇게 능숙하게 소화한다는 것에 놀라워하는데요. 아이돌 가수 출신 배우 중에 가장 시간과 함께 가는 배우가 아닐까 싶어요. 이런 자연스러운 변화의 배경은 뭘까요?
유진: 사실 제가 결혼 전에도 엄마 역할을 꽤 많이 했었어요. 미혼모 역할도 했었고요. 로나처럼 큰 아이의 엄마 역할은 이번이 처음인데, 확실히 진짜 엄마가 되고 난 후에는 엄마로서 감정이입이 쉽고 편해졌어요. 아무래도 경험을 하고 안하고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부모 연기가 능숙하게 잘 이뤄졌다니 다행인데, 그런 자연스러운 변화의 배경은 실제 엄마가 됐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Q. 2001년 단막극을 통해 연기를 처음 시작하고, 벌써 연기를 한 지 20년이 됐네요. 처음 연기할 때와 20년이 지난 지금,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유진: 처음엔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연기를 한 거 같아요. 그냥 '재미있을 거 같다'는 생각으로요. 솔직히 어렸을 적엔 가수보다 배우의 꿈을 먼저 꿨어요. 어쩌다 보니 가수를 먼저 했는데, 그러다 연기의 기회가 왔을 때 흔쾌히 그 기회를 잡았죠. 지금은 연기자라는 제 직업이 당연한 게 됐고, 이렇게 꾸준히 연기를 해올 수 있었단 것이 감사해요. 예전에 비해 연기 자체를 더 많이 즐기게 된 거 같고요.

Q. 두 아이의 양육을 위해, 남편 기태영 씨와 동시에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렇게 두 배우가 의견을 모은 배경이 궁금해요.
유진: 아무래도 같이 일을 하면 아이들을 볼 사람이 없으니까요. 아이들을 다른 사람한테 맡겨야 하는 상황을 저희 둘 다 동의하지 않았어요. 생각이 같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명이 일을 들어가면 다른 한 명은 아이를 보기 위해 출연을 고사할 수밖에 없었죠. 어쩔 수 없는, 저희의 딜레마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크면 상황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지만, 지금 이 시기에는 엄마든 아빠든 한 명은 아이들 곁에 있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저희 둘은 암묵적 합의가 돼있어요.

Q. 그럼 '펜트하우스'가 끝났으니, 기태영 씨의 연기 복귀를 기대해도 되는 건가요?

유진: 저도 기대하고 있는데, 작품은 인연이 닿아야 하는 거라서 남편에게 좋은 작품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아무래도 남편이 작품을 하게 되면 전 육아를 해야겠지요. 저도 빨리 남편이 좋은 작품 만나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유진

Q. '펜트하우스'에서 절절한 모성애 연기를 보여줬는데요, 실제 엄마로서 유진 씨는 어떤 모습인가요?
유진: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건 모든 엄마의 마음이겠죠. 전 그냥 친구같고 재미있는 엄마가 되고 싶은데, 늘 그렇지는 못 하는 거 같아요. 아이와 있다 보면 인내심이 필요할 때가 많은데, 인내심은 저보다 아빠가 훨씬 더 많고, 전 자주 욱하고 소리도 지르고, 그리고 나서 반성하는 엄마예요. 교육열이 막 높지는 않아요. 전 그냥 아이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지금부터 공부에 찌들어 살게 하고 싶지 않아요. 대신 아이가 좋아하는걸 많이 시키려 해요. 공부에 열중할 나이는 아니라, 예체능 쪽으로 많이 시키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배우 유진, 인간 김유진으로서 각각의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듣고 싶어요.
유진: 배우 유진으로서는 꾸준히 이렇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바람이 있다면, 또 다른 캐릭터나 장르로 인사드리고 싶어요. 요즘엔 장르물도 많고 흥미로운 작품들도 많더라고요. 그런 흥미로운, 즐겁게 할 수 있는 작품에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간 김유진으로서는, 가족 모두 건강하고 잘 사는 거. 전 목표나 꿈이 거창한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큰 이변 없이 무난하게 잘 사는 게 꿈이에요. 아이 낳고 살아보니까, 가족의 행복과 건강, 그거만큼 중요한 게 없더라고요.

[사진제공=인컴퍼니]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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