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김소연이 기다린 천서진의 파멸

강선애 기자 작성 2021.09.14 17:35 수정 2021.09.14 17:59 조회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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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악역이라도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이 그랬고 '스카이캐슬'의 김주영이 그랬다. 악역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려면 캐릭터의 강렬한 서사도 중요하지만, 이를 소화하는 배우의 연기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캐릭터에 잡아 먹히지 않으며, 자유자재로 악을 다룰 수 있는 탄탄한 연기 내공이 필요하다.

김소연이 연기한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극본 김순옥, 연출 주동민)의 천서진은 지금껏 보아온 어느 작품 속 악녀들보다 한 수 위였다. 비뚤어진 욕망과 어긋난 모성애로 인해 살인도, 배신도, 아무렇지 않게 몇 번이고 저질렀다. 천서진 캐릭터 자체만 본다면 절대 용서받지 못할 천하의 악녀다. 하지만 대중은 천서진에게 호의적이었다. 천서진을 욕하면서도, 그녀의 말투를 따라 하고, 표정을 패러디했다. 천서진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온전히, 이를 매력적으로 연기한 김소연 때문이었다.

'이브의 모든 것' 이후 무려 20년 만에 악역으로 돌아온 김소연은 연기 경력 27년의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김소연의 압도적인 연기력이 곧 설득력이었다. '펜트하우스'가 아무리 파격적인 전개로 내달려도, 천서진이 상상초월의 악행을 일삼아도, 김소연이 연기하기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화려한 의상, 짙은 화장, 레이저가 나올 것 같은 강한 눈빛, 서늘한 표정, 고래고래 지르는 고함 등 천서진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미지들이 있다. 반면, 실제 김소연은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착한 성품의 순둥이다. 이런 김소연의 본모습은 여러 예능프로그램 출연, 드라마 메이킹 영상 등을 통해 이제 대중도 잘 아는 바다. 그래서 착한 김소연이 천하의 악녀 천서진을 소름 끼치게 연기해낸 것이 더 신기할 따름이다.

김소연은 천서진을 연기하는 동안에는, 전 국민이 욕할지언정 자신만은 그녀를 이해하고 싶었다고 한다. 빛이 돋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어둠 같은 존재로 천서진을 표현하고자 했고, 극악무도한 행동에 서사를 주고자 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결국 천서진이 맞을 파멸을 기다렸다. 그 파멸의 완성을 위해 김소연은 '펜트하우스3' 엔딩에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직접 자르는 연기투혼까지 발휘했다.

세기의 악녀 천서진은 모든 것을 잃고 죽음을 맞았다. 시즌3까지 이어진 '펜트하우스' 천서진의 서사는 그렇게 끝났고, 김소연은 제 역할을 더할 나위 없이 완수했다. 이제 김소연은 웃으며 말한다. "드라마가 끝났으니, 저도 시청자가 되어 천서진을 미워할 수 있게 됐어요"라고.

김소연

▲ 극악무도한 천서진, 처참한 파멸 원했다

지난해 10월 첫 방송을 시작한 '펜트하우스'는 시즌3까지 방영하는데 1년이 걸렸다. 준비 시간까지 더해 1년 반 가량을 천서진으로 달려온 김소연. 끝나면 그 어느 때보다 후련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벌써 '펜트하우스'가 그리워 스스로 놀라고 있다고 한다. 특히 마지막 회에서 직접 머리카락을 잘랐던 만큼, 숏컷이 된 자신을 마주할 때면 더 짙은 여운이 남는다.

"'펜트하우스3' 마지막에 무기징역을 받은 천서진이 3년 후 후두암 말기 환자로 짧은 귀휴를 받아요. 대본에는 '짧은 머리로 교도소를 나선다'고 쓰여 있어 처음에는 당연히 가발을 이용하려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결정한 후로 잠이 안 오더라고요. 일주일 동안 고민했어요. '네가 천서진한테 그렇게 많은 걸 받아놓고, 머리카락 하나 못 잘라서 가발을 쓴다고? 천서진을 그렇게 보낼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 (이)상우 오빠한테 말하니 '자르면 멋있을 거 같다'고 용기를 줬고, 고민 끝에 직접 머리카락을 자르기로 결심할 수 있었어요."

천하의 악녀 천서진은 결국 죗값을 치르며 비참한 마지막을 맞았다. 딸 은별이(최예빈 분)의 폭로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교도소에 있으며 후두암으로 목소리마저 잃었다. 어렵게 딸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나, 딸에게 가까지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며 홀로 죽어갔다. 김소연은 이런 천서진의 파멸을 기다려왔다고 했다.

"그동안 천서진의 악행을 보면, 더 처참한 결말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런 결말도 전 만족스러워요. 천서진은 모든 걸 다 잃었어요. 청아재단도 뺏기고, 목소리도 잃고, 딸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제가 마지막에 머리카락을 잘라야겠다고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그렇게 천서진이 머리카락까지 잃어야 파멸이 완성될 거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천서진을 연기하며, 저도 그녀의 파멸을 기다렸어요. 천서진이 극악무도했던 만큼, 그로 인한 파멸은 처참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천서진의 파멸을 고대했지만, 김소연은 천서진을 연기하는 동안만큼은 그녀를 이해하고자 했다.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어도, 천서진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았다. 적어도 '펜트하우스' 안에서는 김소연이 곧 천서진이었으니까.

"전 악역이니까, 처음부터 각오를 단단히 했어요. 선이 빛나려면 더 악해야 한다, 그게 악역의 덕목이라 생각했죠. 전 국민이 천서진을 욕할지언정, 연기하는 저만은 천서진을 안타깝게 바라보려 했어요. 말도 안 되고 공감도 안되고 이해할 수 없지만, 천서진은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 행동했을 테니, 저 스스로도 '이게 맞아' 마인드컨트롤을 하며 그 순간만큼은 진심을 담아 연기했어요. '펜트하우스' 종영 이후에는 저도 천서진을 미워할 거예요. 배우로서 원 없이 연기할 수 있는 장을 펼쳐줘 너무 고맙지만, 저도 시청자로 돌아가면 천서진을 미워해도 되잖아요? 천서진처럼 그렇게 살면 안 돼요.(웃음)"

김소연

▲ 특별했던 시즌제 드라마의 경험

'펜트하우스'는 1년 동안 시즌 3개를 그려냈다. 긴 시간인 만큼 변화화 다른 호흡이 필요했다. 김소연은 시즌별로 보여주고자 한 게 확실했다.

"시즌1에서는 열등감으로 똘똘 뭉치고 비뚤어진 자기애에 빠진 천서진의 서사를 잘 살려보고 싶었어요. 작가님이 서사를 잘 써주시기도 했는데, 제가 거기에 '사랑한다는 말을 못 듣고 자란 천서진'이란 설정을 더해 캐릭터 구축의 큰 틀을 잡았어요. 어릴 때부터 1등을 해도 아빠한테 '사랑한다'는 말 대신 '더 잘해라'는 말을 듣고 자란 천서진의 과거를 상상했죠. 그런 배경에서 천서진의 애정결핍, 잘못된 자아가 형성됐다고 생각했어요. 시즌2에서는 비뚤어진 모성애에 중점을 뒀어요. 그래서 천서진은 딸 은별이(최예빈 분)의 죄를 남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악행을 저질렀죠. 시즌3에서는 극악무도한 천서진이 어디까지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로 인한 파멸이 얼마나 처참할지 제대로 보여드리자 생각했어요."

김소연은 '펜트하우스'가 시즌제 드라마였기에 천서진 캐릭터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천서진으로 살아온 만큼, 나중에는 특별한 노력 없이도 역할 몰입이 쉬워 연기가 수월했다는 설명이다.

"청아아트센터가 개관하는 장면에서 천서진이 '아버지 드디어 제가 해냈어요'라고 하는데, 제 기분이 이상했어요. 리허설만 하는데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렇게 몰입이 잘 되는 건 배우로서 장점이죠. 시즌제 드라마는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은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왕좌의 게임'의 애청자인데, 배우들이 시즌을 거듭할수록 연기가 진화하는 걸 보고 희열과 부러움을 느낀 적이 있어요. 저도 시즌제 '펜트하우스'를 하며, 조금은 늘지 않았을까 싶어요."

1년이 넘는 긴 마라톤이었지만, 크게 힘든 건 없었다. 김소연은 체력적으로도 수월했고, 천서진이 자신과 너무 달라 정서적으로도 부침을 겪지 않았다고 밝혔다.

"'펜트하우스'를 하면서 잠도 충분히 잤고, 제가 체력이 은근히 좋아 육체적으로도 힘든 게 없었어요. 또 이번 작품은 유난히 천서진과 김소연의 분리가 쉬웠어요. 너무 다르니까요. 그래서 정서적으로, 촬영 쉬는 날에 힘들다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김소연

'펜트하우스' 총 48부작 가운데 단 하나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시즌1 15부 엔딩에 등장했던 천서진의 광기 어린 피아노 연주 장면을 언급한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아버지를 구하지 않고 돌아와 눈물과 웃음이 범벅된 표정으로 피아노를 치던 천서진. 이 장면에서 보여준 김소연의 신들린 연기에 찬사가 쏟아졌다. 이 명장면의 탄생은 의외로 김소연의 부담감에서 출발했다.

"제가 제일 부담을 느꼈던 게 시즌1의 15회였어요. 저희 드라마가 처음부터 관심을 받았지만, 그 기세가 더 올라간 게 시즌1의 12, 13부쯤이었던 거 같아요. 그때부터 패러디도 많아지고, 체감하는 인기가 달라졌어요. 그리고 15부가 천서진의 이야기가 많은 신이었는데, 혹시라도 여기서 주춤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있었어요. 제가 이 드라마에 폐를 끼칠까 봐요. 15회차를 찍고 방송이 되기 전까지, 부담도 컸고 고민도 많았어요. 그래서 그 피아노 신을 더 죽기살기로 연습했던 거 같아요."

▲ 천서진 지우기, 부담보다는 기쁜 도전

출연 배우는 많은데 촬영 기간마저 길었다. '펜트하우스'의 구성원 중 누구 하나 엇나갔다면, 작품 완주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펜트하우스' 배우들은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고 1년 반을 달려왔다. 김소연은 특히 '맏언니' 신은경과 '맏오빠' 엄기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1년 반이란 시간 동안 어떻게 이렇게 트러블 없이 지낼 수 있었는지 신기해요. 사람인지라 아쉬움이 없을 수가 없는데, 누구 하나 그런 아쉬움을 내색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특히 신은경 언니와 엄기준 오빠가 현장에서 솔선수범하고 항상 웃는 모습을 보이니, 좋은 촬영장이 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신은경 언니는 촬영 의상 색깔이 비슷해 누구 하나가 갈아입어야 한다면, 언니가 먼저 '내가 갔다 올게' 하며 뛰어가서 갈아입고 그랬어요. 그런 언니가 있어서 항상 촬영장이 즐거웠던 거 같아요. 코로나19 때문에 다 같이 쫑파티를 못하고 헤어져 너무 아쉬워요."

김소연

김소연은 천서진의 딸 하은별 역을 소화한 최예빈을 비롯해 제 몫을 다 한 '펜트하우스 키즈들'의 활약에도 박수를 보냈다.

"어떻게 이런 친구들을 섭외했는지, 너무 감탄했어요. 제가 최예빈 양한테 '난 은별이 연기의 반도 못 한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공중파 연기가 처음인 친구인데, 정말 대단해요. 이 친구들이 시즌이 가면 갈수록 진화했어요. 연기도 잘하고, 스킬도 늘어가고, 그러면서 감정선도 훌륭했죠. 우리 '펜트하우스' 키즈들이 앞으로 다른 드라마에서 진짜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 같아요. 기대가 많이 되는 친구들이에요."

이번 작품을 통해 악역이면서도 미움보다는 대중의 사랑을 받은 김소연. 앞서 말한 광기의 피아노 신을 통해 '코리안 조커'라는 별명도 얻었다. 김소연은 이제 이 별명을 입을 찢으면서까지 악행을 이어갔던 주단태 역 엄기준에게 넘겨줘야 할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대신, 자신을 감동시킨 또 다른 칭찬을 소개했다.

"제가 '놀면 뭐하니'에 나가서 '코리안 조커'란 별명이 좋다고 했는데, 그건 이제 주단태한테 넘겨줘야 할 거 같아요. 엄기준 오빠야말로 진짜 코리안 조커죠.(웃음) 너무 감사한 칭찬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 '어렸을 때부터 김소연을 봐 왔는데, 예쁘려고만 하던 김소연이 배우가 됐네'라는 글이 기억에 남아요. 너무 감사해서 그 문장을 캡처해 놨어요. 그래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열심히 부지런을 떨고 노력했던 걸 조금이나마 알아주신 거 같아서 뿌듯했어요."

'펜트하우스'와 천서진을 통해 김소연은 얻은 게 많다. 배우로서 연기력 극찬을 받았고, 높아진 인기는 각종 CF 러브콜로 이어졌다. 배우 필모그래피에 있어서 절대 잊지 못할 굵은 한 줄을 추가했다. 하지만 깊이 새긴 자국은 지우기가 힘들다. 김소연은 앞으로의 작품에서 천서진의 강렬했던 이미지를 떨쳐야 하는 또 다른 숙제를 안았다.

"전 그걸 부담보다는, 하나의 큰 도전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려 해요. 그런 부담 때문에 '펜트하우스'를 놓쳤다면, 지금 이 순간도 없었을 테니까요. 다음 역할도 이런 마음으로 뭐든 해보려고요. 그때 가서 매를 맞더라도, 일단은 천서진을 지워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하나의 도전으로 여기려고요.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코미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시트콤 장르도 해보고 싶고, 제 나이에 욕심일 수도 있지만 로맨틱 코미디도 하고 싶어요. 악역 대본이 다시 와도, 기쁜 마음으로 읽을 생각이에요. '펜트하우스'는 도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게 해 준 작품이에요. 이걸 계기로 또 다른 도전을 할 용기를 얻었어요. 어떤 작품이든 좋으니,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보려고요."

김소연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펜트하우스' 방송 캡처]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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