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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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꼬꼬무2' 이현이, "어떻게 동반자살이냐, 살인이지" 격분…카빈 강도 사건의 숨겨진 이야기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1.07.16 02:10 조회 3,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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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동반자살'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본 적 있나요?

15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그날 이야기 시즌2'(이하 '꼬꼬무2')에서는 '공포의 17시간 : 2인조 카빈 강도'라는 부제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개그맨 정성호, 모델 이현이, 아나운서 김선재가 이야기 친구로 찾아와 그날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오늘의 이야기는 1974년 7월 25일 저녁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병훈 기자는 5분 대기조로 사무실에서 대기하다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개봉동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

이에 급히 달려간 그는 끔찍한 현장을 맞이했다. 2층 집의 계단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핏자국을 따라간 곳에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사망한 한 남성이 눈길을 끌었다. 사망한 남성은 33세의 문도석.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자 가슴에 총상을 입은 7세 남자아이가 이미 숨을 거둔 후였고, 이 아이는 문도석의 아들이었다.

참혹한 현장의 모습이 쉬이 잊히지 않는 와중 이병훈 기자는 또 한 통의 전화를 더 받았다. 인천에서 인질극이 벌어졌다는 것.

정신없이 달려간 현장에는 방탄조끼에 중무장한 경찰 수백 명이 인질범과 대치중이었다. 인질범의 정체는 전과 12범의 40세 이종대. 그는 여자 1명과 어린이 2명을 인질로 붙잡고 경찰과 대치했다.

그리고 경찰은 그에게 끊임없이 다른 범행에 대해 추궁했다. 또한 그에게 자수를 권했다. 그러자 이종재는 "절대 자수하지 않아. 어차피 난 죽은 목숨이다. 지은 죄가 너무 많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얼마 전 렌터카 운전기사를 살해했다며 암수 살인을 자백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기사가 달린 렌터카를 빌려 지방으로 향하던 중, 자신을 수상하게 여기는 운전기사에 격분해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것.

경찰은 그의 증언대로 운전기사를 수소문했고, 그는 4일 전 연락 두절 상태인 것으로 확인했다. 이에 시신이 있는 곳을 이종대에게 추궁했고, 그는 경남 산청에 묻었다며 암매장 위치의 약도를 그려 넘겨줬다. 경찰은 그가 준 약도로 시신을 찾아 나섰고, 그의 말대로 그곳에는 운전기사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었다.

이어 이종대는 또 다른 살인을 고백했다. 이번에는 용인의 한 장소를 가리켰고, 그가 가리킨 곳에서 찾아낸 시신의 정체를 확인한 경찰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시신의 정체는 경찰 3만 명이 동원되어 2년 동안 찾고 있었던 2인조 카빈 강도 사건의 실종자 박현우였던 것.

그렇다면 2인조 카빈 강도 사건은 어떤 사건일까? 1972년 서울 아현동에서 동업자에게 돈을 부쳐야 하는 돈을 가지고 가던 박현우 씨를 경찰복을 입은 남자들이 서울 관으로 시작되는 번호판이 붙은 코티나 차량에 태워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를 납치한 차량을 조회하자 가짜 번호판으로 밝혀졌고 이에 경찰은 납치범들에 대한 수배령을 내렸다. 이에 첩보가 들어왔다. 공덕동에서 달리는 차 안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것. 특히 길을 가다 이들이 쏜 총에 맞은 여성도 있었다. 그리고 이 차량은 관 자 번호에 코티나 차량, 박현우를 납치한 차량과 동일했다.

이에 경찰은 총기 분석을 의뢰했고, 총탄 분석 결과 카빈 소총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김신조의 등장으로 조직됐던 향토예비군. 이는 250만 명의 어마어마한 규모였고, 예비군 무기고에서 총기 도난은 비일비재했다.

이들은 바로 예비군 무기고에서 총기와 실탄을 훔쳤던 것. 그리고 이들은 활동성이 떨어지는 총의 개머리판을 잘라내고 개조했고, 경찰을 사칭하며 관용차를 타고 다니며 강도 행각을 벌였다.

대낮에 활동한 탓에 많은 목격자가 있었고 이에 경찰은 몽타주를 작성해 전국에 수배전단지 6만 장을 뿌렸다. 그리고 22만 원의 현상금도 걸었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의 가격이 60원이니 엄청난 금액.

얼마 후 이들이 범행에 사용한 차량이 발견됐다. 유리창이 깨져있고 시트에 총알 자국이 나있고 보조석 발판은 온통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는 박현우 씨가 총에 맞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이들은 이후 잠적했고 1년 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로공단에서 사원들의 월급 380여만 원(현재의 가치로 4억 원가량)을 훔쳐 달아났던 것. 그리고 이후 성산동에서 도난당한 코티나 차량을 발견됐고, 차량 수색 도중 노트에 쓰인 메모가 눈길을 끌었다. 메모 속에서 범인들은 "지문 채취 열심히 해보세요"라며 경찰들을 조롱했던 것.

이에 이 사건에 3만 명의 경찰이 동원됐고 현상금은 200만 원으로 무려 10배가 올랐다. 그리고 이때 경찰서의 수사본부장에게 엽서 한 장이 날아왔다. 이번에도 범인들이 남긴 것이었다. 그들은 "필적 감정 열심히 해보세요. X 빠지게 됐구나"라며 또 한 번 경찰들을 조롱했던 것.

그러자 경찰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됐다. 하지만 1년 동안 어떤 성과도 거두지 못했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꼬리가 잡혔다.

1974년 오산역 인근 주차장에서 등산복을 입은 한 남성이 택시 기사에게 서울까지 가자고 했던 것. 그리고 차가 고장이 났다며 친구를 태워 가야 한다며 죽미 고개로 가달라고 했다. 엄청 외지고 길도 험해서 인적도 드문 곳으로 가자는 남자의 요청에 택시 기사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고, 이에 다른 기사 한 명을 더 데려가자고 제안하자 등산복의 남성은 이를 거절하고 다른 택시를 찾아 나섰다.

차량이 고장 났는데 차를 두고 서울로 가자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택시 기사를 그를 이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특별한 문제가 없다며 인적 사항만 체크하고 그를 풀어주었다.

이후 등산복 남성은 또 다른 택시기사에게 똑같은 제안을 했고, 이번 기사는 그가 가자는 곳으로 함께 갔다. 그런데 죽미 고개에서 만난 문제의 차량에 탄 남자는 매서운 눈빛으로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무언가 의심스러웠던 기사는 연장을 놓고 왔다고 기다려 달라며 그곳을 떠나 곧바로 파출소로 달려갔다.

앞서 다른 택시 기사가 신고했던 파출소에 또다시 신고를 한 기사. 이에 순경들은 죽미 고개에 도착해 이들에게 트렁크를 열어 달라고 했다. 의심스러운 것을 찾을 수 없던 그때 뒷좌석에 옷으로 감춘 무언가를 발견했고, 이를 확인하자 개머리판이 없는 카빈 소총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놀란 경찰은 뒷걸음질 쳤고 바로 그때 운전석에 있던 남자는 총을 장전하고 경찰과 택시 기사를 향해 난사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총상은 없었고, 카빈 강도 사건의 범인들은 그대로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앞서 인적 사항을 확보했던 경찰, 이에 처음으로 카빈 강도 사건의 범인들의 실체가 공개됐다. 등산복을 입은 남성은 문도석, 그는 개봉동 2층 집 살인 사건의 피해자였다. 그리고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성은 이종대, 인질극을 벌인 장본인이었다.

이 둘은 교도소에서 처음 만나 출소 후에도 인연이 이어갔고, 카빈 강도 사건을 계획하며 카빈 소총 3자루, 실탄 60발을 예비군 무기고에서 훔쳐 그때부터 범행을 저질렀다.

이제 모든 것이 발각된 상황. 경찰 포위망이 좁혀오니 두 사람은 더 이상 집에 머물 수 없었다. 이에 이종대의 여동생 집으로 은신했다. 그곳이 바로 개봉동 2층 집.

문도석은 이종대에게 사나이답게 죽자고 했다. 특히 그는 혼자 안 죽고 아이와 같이 죽겠다며 2층 집으로 아내와 아들을 불러들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종대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2층 집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곧 2층 집에 도착한 문도석의 아내와 아들. 아들은 오랜만에 만난 아빠를 보고 신이 나서 팔에 매달리며 애교를 부렸고, 문도석은 그런 아들을 데리고 2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아들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했던 것.

그 시각 이종대는 큰 아들 6세 태양, 둘째 아들 3세 큰 별, 그리고 아내와 함께 집에 남아있었다. 그러던 새벽 2시 30분 경찰 200명이 그의 집을 포위했고 이종대는 카빈총을 장전했다. 자수를 하면 목숨을 보장해준다는 경찰의 회유에도 그는 "어차피 죽은 목숨, 내 목숨은 내가 정한다"라고 버텼고, 그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들을 인질로 붙잡았다.

무려 17시간을 대치. 이종대는 지난 범행들을 모두 자백했다. 그리고 집 안에서 여러 발의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놀란 경찰은 "뭐야 가족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라며 그를 추궁했고, 이종대는 "가족 이야기는 꺼내지 마라. 내 마누라, 내 새끼들 죽이고 살리는 건 내가 결정한다"라고 말했다.

해가 지고 쥐 죽은 듯 조용하던 그때 또다시 총성이 울렸다. 이에 경찰들은 다시 이종대를 찾았고, 이종대는 "영구차를 준비해라. 두 아들을 죽였다"라고 했다. 그리고 또다시 들린 한 발의 총성.

더 이상 이종대의 답이 없자 경찰은 조심스럽게 집으로 들어갔고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좁은 방 안에 이종대와 그의 아내, 그의 두 아들인 태양이와 큰 별이가 누워있던 것. 특히 큰 아들 가슴에는 장난감 기타가 안겨있고 둘째 큰 별이 가슴에는 장난감 자동차를 안겨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리고 방송에서는 이종대가 달력 뒷면에 남긴 유서를 공개했다. 이에 정성호는 "값어치 없는 유서를 내가 왜 읽어야 되냐"라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종대는 "태양아 큰 별아 미안하다. 여보 당신도 용감했소. 너희들 뒤를 따라간다. 황천에 가서 집을 마련해서 호화롭게 살자. 이 냉혹한 세상 미련 없다"라며 마치 아이들과 아내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처럼 말하는 뻔뻔스러움을 보였다. 그리고 세상은 이 사건을 동반자살이라 불렀다.

이에 이현이의 정성호는 "이게 어떻게 동반자살이냐, 살인이지"라며 격분했다. 당시 실제 보도된 한 기사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사랑하는 자식들을 고생시킬 수 없다고 어린것들을 데리고 동반 자살한 잔혹성도 어찌 보면 잔혹하다고만 나무랄 수 없는 개운찮은 뒷맛을 두고두고 남겼다"라고 마치 아이들을 살해한 문도식과 이종대를 이해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김선재 아나운서는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입장에 이입하면 안 되는 것 같다. 태양이, 큰 별이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지 않냐"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이현이는 "같이 동의를 하고 행동해야 동반이지, 이건 살인이다"라고 어른의 관점에서만 이야기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는 반영되지 않는 세상의 시선에 분통을 터뜨렸다.

또한 이현이는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는 세상의 전부다"라며 사랑하는 부모의 손에 죽임을 당한 아이들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방송은 우리가 무심코 사용했던 '동반자살'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동반자살이라는 것은 부모의 시각을 대변하는 단어였던 것. 그런데 법은 더 했다. 형법 제250조에 의하면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것은 패륜 범죄로 가중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을 죽이면 가중 처벌은 없다. 오히려 정상참작으로 감형까지 가능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실제로 동반자살에 대한 처벌은 불우한 어린 시절, 육아 스트레스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20년 동안 국내에서 발생한 동반자살은 총 247건. 1년에 15건 정도가 일어나는 꼴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피해자는 9살 이하의 아이들. 저항이라고는 할 수 없는 나이였다.

동반자살이 아닌 사실은 부모에게 살해당한 것인데 세상은 부모의 입장에서만 이해하려 드는 대목이 여러 군데서 드러났다. 심지어 한 사건에서 부모는 아이들이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는데도 괜찮다며 달랜 후 창 밖으로 아이를 던져 살해하기도 해 충격을 안겼다.

그렇게 부모의 입장에서만 이해되는 동반자살 프레임. 이에 정성호는 "이 단어 없애야 되겠다. 이게 어떻게 동반 자살이냐"라며 "얘네가 의지가 있었어? 아빠 엄마 우리 어려우니까 같이 가고 싶어요 그랬어? 이 단어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부모가 죽였구나 생각한 적이 없는데 이 사건을 보니 정말 소름 끼친다"라고 치를 떨었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 '동반자살'에 대한 시선. 그리고 방송에서는 동반자살 사건을 재판했던 한 판사의 판결문을 공개했다.

판사는 "우리는 살해된 아이들의 진술을 들을 수 없다. 동반자살을 가해 부모의 언어다. 아이의 언어로 말한다면 이는 피살이다. 법의 언어로 말하더라도 이는 명백한 살인이다. 동반자살이 아니다. 동반자살이라는 단어에 숨겨진 우리 사회의 자롯된 인식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라며 "참담한 심정으로 애통하게 숨져간 아이의 이름을 다시 부른다. 이 이름이 동반자살이라는 명목으로 숨져간 마지막 이름이기를 희망한다.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죽어야만 그런 세상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살해되어야 하는가. 아직도 숫자가 부족한가. 세상을 일깨우기 위한 희생은 최초의 한 아이로도 이미 충분했다. 부족한 건 언제나 행동뿐이다"라고 동반자살이라는 단어에 숨겨진 끔찍한 진실을 지적했다.

김선재는 "동반자살이라는 단어로 수많은 복잡한 상황을 쉽게 표현하는 것 같다"라며 아나운서로서 뉴스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겠다고 했다. 이에 장항준은 "동반자살은 우리나라와 일본만 쓰는 단어다. 보통 서양에서는 살해 후 자살이라는 표현을 쓴다"라며 동반자살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었다.

그리고 김선재는 "사랑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할 것 같다. 가해 부모는 책임감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사랑이다"라고 말했다.

아버지이기도 한 정성호는 "동반자살이라는 단어가 뉴스에 나오면 안 돼. 동반자살이 아니야"라며 "부모로서 꼭 알아야 하는 단어를 배웠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현이는 "아이를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아직도 있고 과거에는 더 심했다"라며 "아이들이 사회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데 의지대로 살지도 못하고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부모라는 사람에게 당하는 거다. 그 어떤 사건 사고 보다도 부모에게 당하는 아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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