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프로그램 리뷰

[스브스夜] '꼬꼬무2' 삼풍백화점 붕괴, 그 뒤의 충격적 진실…생존자, "참사는 사람 가려서 오지 않아"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1.06.11 02:55 수정 2021.06.11 09:20 조회 1,831
기사 인쇄하기
꼬꼬무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의 원인은?

10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이하 '꼬꼬무2')에서는 '핑크빛 욕망의 몰락 :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라는 부제로 1995년 6월 29일 끔찍했던 그날을 조명했다.

1995년 6월 29일, 강남의 유명 백화점 지하 1층 주방 용품 매장에서 일하는 지환이는 에어컨 고장으로 느껴지는 찜통더위에 힘들어했다. 그리고 같은 지하 1층 물품보관소에서 알바를 하던 산만이는 손님이 없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같은 시각, 백화점 5층 식당가 주방 막내 병호는 식당가 절반이 폐점인데 병호네는 정상영업을 하기로 해서 짜증이 폭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빨리 밖으로 나가라는 주방장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고, 병호는 얼떨결에 등이 떠밀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비상계단으로 급히 내려갔다.

바로 그 순간 천둥 치는 소리가 들리고 몸이 휘청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계단 아래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천장의 전구는 모두 터지며 일순 백화점은 암전이 됐다.

산만이와 지환이가 있던 지하 1층도 난리가 났다. 갑자기 모래 바람이 불며 집기들이 날아다녔고 이에 지환이는 무작정 출구 방향으로 달려갔지만 몇 걸음 못 가고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날은 바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났던 그날이었던 것. 건물 붕괴 당시 내부에는 손님과 직원이 1500명 정도 있었다. 지상 5층 지하 4층의 총 9개 층의 건물이 무너지는데 걸린 시간은 단 10초, 삼풍 백화점의 A동은 완벽하게 무너졌다.

그리고 이 붕괴 사고에서 비상계단에 있던 병호는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산만이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는 "누가 불러서 가는 도중에 뒤에서 무너졌다. 순식간에 천장하고 바닥이 붙었고 업소용 냉장고가 15센티미터가 됐다"라며 "그날 나랑 이야기했던 사람들이 다 사망자 명단에 올랐다"라고 충격적인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데 지하 1층 주방용품 매장의 지환이는 붕괴된 구조물 더미 속에 갇히고 말았다.

충격적인 사건의 속보를 보고 현장으로 달려온 실종자 가족들, 그곳에는 28살의 여동생 종분 씨를 찾기 위해 온 조종규 씨도 있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서 그런 처참한 건 처음 봤다. 어떻게 뭐부터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며 "다들 발만 동동 굴러가며 껴안고 울고 그랬다. 한마디로 처참한 상황이었다"라고 끔찍했던 그날에 대해 말했다.

사실 종규 씨의 동생 종분 씨는 삼풍 백화점의 아동복 매장에서 일하다가 열흘 전 결혼을 하며 일을 그만뒀다. 그런데 하필 이날 퇴직금을 받기 위해 백화점을 찾았다가 끔찍한 사고를 당했던 것.

사상 최악의 사고로 현장에는 헬리콥터, 굴삭기 등의 중장비와 구급차 100여 대, 소방대원, 경찰, 군인 4천여 명 이상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2차 붕괴의 위험 때문에 현장에는 어느 누구 하나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이에 결국 이들이 택한 것은 수작업 인명구조. 사람들은 콘크리트 더미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치우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장마와 화재, 유독가스 유출로 현장은 최악의 구조 환경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노력을 하늘도 아는 것인지 붕괴 16시간 만에 지하 1층에 있던 5명이 구조됐다. 250명 이상의 실종자들 발생한 상황에서 실종자 가족들은 실종자를 찾기 위해 병원이란 병원은 다 찾아갔다. 그러나 시스템이 엉망이라 시신과 부상자들의 신상을 확인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대책반에서 준 이송 명단에는 병원 이름과 숫자만 기록되어있을 뿐 신상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곳에 컨트롤 타워는 없었던 것.

현장은 더욱 가관이었다. '악마의 미소'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옷을 들고 웃고 있는 한 여성의 사진은 당시 참혹했던 현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 현장에는 자원봉사자인 것처럼 몰래 들어와 명품을 주우러 다닌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당시 절도로 입건된 사람만 400여 명, 현장 통제가 엉망이었다. 우리나라의 재난 시스템이 구축된 것은 삼풍백화점 사고가 일어난 후였다.

하루하루 시간은 흐르고, 결국 생존자들을 구하는 것은 시간과의 싸움. 이에 중장비 투입이 결정됐다. 하지만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고 시간만 흘렀다. 붕괴 열흘째 결국 자원봉사단들의 해단식이 진행됐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기적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생존자가 등장했던 것. 사고 11일째였다. 그리고 붕괴 13일째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중장비로 구조를 진행하던 도중 구조대원이 어떤 공간을 발견했고, 이 곳에서 생존자 지환이를 구조해낸 것.

지환 씨는 "딱 그 순간에 드는 생각은 발견됐다였다. 살았다가 아니라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었다"라며 엄마가 자신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붕괴 사고 377시간(17일) 만에 생존자 박 양을 구조했다. 이는 국내 매몰 사고 사상 최장시간 생존 기록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의 기적은 없었다.

종규 씨는 여전히 동생 종분 씨를 찾아다녔고, 동생을 찾기 위해 그는 당시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난지도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종규 씨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가족의 시신이나 유품이 폐기물 더미에 휩쓸려 갔을까 봐 호미 하나 달랑 들고 쓰레기장을 이 잡듯 뒤진 것.

다행히 종규 씨는 오랜 시간이 걸려 동생 종분 씨의 시신을 찾았다. 하지만 시신도 찾지 못한 실종자가 무려 31명이었다. 가족들은 생사 여부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었으면 했지만 쉽지 않았다.

사망자 502명, 매몰되었다 구조된 게 40명. 특히 구조된 사람들은 모두 지하에 있던 사람들이었고 1층부터 5층 지상층에서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방송은 그 이유가 숨어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마치 샌드위치처럼 겹겹이 쌓여있는 삼풍백화점의 무너진 모습은 다들 붕괴 사고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였다.

손님의 생명과 자신의 재산 손실을 같은 가치로 여기는 발언으로 분노를 자아낸 삼풍백화점의 소유주 이준 회장. 삼풍백화점 비극의 중심에는 그가 있었고, 그 시작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사실 이준 회장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중앙정보부 창설 멤버로 미군 군납 사업을 담당했다. 중정을 나오고 그는 건설 사업에 뛰어들었고, 그렇게 만든 것이 삼풍 건설이었다. 삼풍건설은 불과 3년 만에 스타트업에서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준 회장의 비밀 병기는 바로 부동산이었다. 그는 1974년 서초동의 미군 숙소 부지를 사들였다. 그리고 이는 훗날 삼풍 백화점 자리였다. 당시 평당 2,30만 원 하던 땅을 그는 통 5만 7천 평을 사들였고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그가 땅을 구매한 후 강남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이에 1995년 이 땅의 평당 가격은 2500만 원으로 매입 당시와 비교해 100배로 가격이 상승했다. 삼풍 사고 당시 그의 소유 부동산만 2500억에서 3000억 원으로 추정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당시 대벌들의 사업 아이템이었던 백화점, 이에 이준 회장도 백화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아파트 용도로 사들인 땅의 용도 변경을 서울시로부터 쉽게 허가받았다. 그리고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삼풍백화점은 수시로 도면을 변경했고, 기둥의 굵기와 철근 숫자를 줄이고 천장과 기둥을 연결하는 지판의 두께를 줄이는 등 줄일 수 있는 것은 다 줄였다.

또한 원래 롤러스케이트장으로 설계했던 5층은 식당가로 교체했다. 이는 원래 용도에 비해 최대 하중이 2415톤(봉고차 1200대의 무게) 상승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리고 옥상에 137톤의 냉각탑을 설치했고, 아파트 주민들의 소음에 대한 불만으로 무리하게 냉각탑을 롤러에 올려서 끌어 이동했다. 이에 건물 전체에 균열이 시작됐고 이는 삼풍백화점에 치명타였다.

이준 회장은 인허가를 담당하는 말단 공무원부터 구청장까지 수시로 떡값을 쥐어주고 불법으로 용도 변경을 하고 사후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1989년 드디어 오픈한 삼풍 백화점. 당시 매장 규모가 전국 2위였던 삼풍백화점은 개점 이후 승승장구했고 개점 3년 만에 매출 937억, 다음 해는 1188억, 그다음 해는 1646억의 매출을 올렸다.

또한 백화점은 영업 중에도 수시로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했다. 돈에 대한 욕심으로 백화점이 잘 나갈수록 건물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붕괴 10일 전, 5층 식당가는 지진이 난 것처럼 테이블이 흔들렸다. 그리고 붕괴 5일 전에는 천장에 생긴 구멍으로 손님 머리 위로 물벼락이 쏟아졌다. 붕괴 하루 전, 폭 1미터 깊이 20센티미터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그리고 붕괴 당일 이 사실은 긴급하게 보고됐다. 이에 시설보수 직원들이 백화점을 둘러보고 경영진에게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에 경영진의 첫 번째 지시는 입조심하라는 것. 절대로 기자나 고객들에 알려지지 않게 보안유지를 철저히 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상태가 심각한 곳만 휴업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정상 영업을 고수했다.

붕괴 6시간 전, 주방 기구가 쓰러지고 천장에서 물이 새고, 에스컬레이터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이에 직원들도 불안해졌다. 그러나 이준 회장의 아들 이한상 사장은 문제가 되는 식당가는 문을 닫고 칸막이로 가려 손님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붕괴 5시간 전, 사람이 아닌 귀금속과 고가의 상품들의 대피를 지시했다. 붕괴 4시간 전, 이준 회장까지 도착해 긴급 임원 회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들은 오늘 영업을 마친 후 보수 공사에 들어갈 것을 결정했다. 하루만 쉬어도 매출 5,6억이 날아가는 탓에 이를 포기하지 못했던 것.

붕괴 30분 전, 임원들은 다급한 직원들의 외침에도 이를 무시했고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고 회의만 진행했다. 붕괴 10분 전 건물 여기저기서 균열이 생기는 소음이 들려왔지만 안내 방송도 없었다. 그리고 붕괴 5분 전 비상벨이 울렸고, 손님들과 직원들 1500명은 비상구로 뛰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경영진은 회의만 진행했고, 결국 오후 5시 57분 5층 식당가에서 붕괴가 시작되고 단 10초 만에 삼풍백화점의 A동이 완전히 붕괴됐다. 그리고 당시 회의를 진행 중이던 경영진들은 B동 건물에서 회의를 진행해 모두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그들은 회의만 하며 참사를 막을 수 있던 골든타임을 다 놓친 것. 이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으나 이준 회장 부자는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 등만 적용받아 이준 회장은 징역 7년 6개월, 이한상 사장은 징역 7년형을 받았다. 그리고 삼풍백화점을 지을 당시 뇌물을 받아먹은 공무원들은 줄줄이 조사를 받았고 30여 명이 사법 처리됐다.

현재 삼풍백화점이 있던 자리에는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주상 복합 건물이 들어서 있다. 사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그곳에 위령탑을 세우고 싶어 했다. 이에 서울시도 위령탑 건축을 약속했다. 그러나 2년 만에 약속을 뒤집었다.

그 땅을 팔아서 피해자 보상금을 마련하겠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사실은 위령탑이 들어서면 땅값이 떨어진다는 반대 여론에 이러한 결정을 내렸던 것. 911 테러 이후 쌍둥이 빌딩 자리에 추모공원을 만들어 여전히 그날을 기억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후 서울시는 사고지점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양재 시민의 숲에 위령탑을 세우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초구에서 반대했다. 당시 서초구 의원은 "위령탑 부지는 서울시가 유가족들과 합의한 곳이다. 야유회도 즐기고 웨딩촬영도 하는 그런 곳에 굳이 위령탑을 세워야 하는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라며 "우면산 자락만 좋으냐, 그것 말고 좋은 데가 천지니까 거기 가면 될 거 아니냐. 위령탑을 세우면 그건 위령공원이지 시민의 휴식공간이 될 수 없다"라며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펼치며 위령탑 건립을 반대했다.

이에 유가족과 피해자들은 거리로 나와 위령탑 건립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에도 몇 번의 파행이 거듭되고 결국 양재 시민의 숲에 위령탑이 세워졌다. 가장 안 쪽 구석진 곳에.

잊어선 안 되는 그날 이야기에 장항준은 "돈 때문에 벌어진 비극인데 돈 때문에 위령탑도 그 자리에 세우지 못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그날의 생존자인 지환 씨는 "지금의 사람들은 모른다. 되풀이되는 역사인데, 그 역사를 내 일이 아니라고 너무 쉽게 넘어가지 않나"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한 강승윤은 "돈이 생명 위에 있으면 안 되는 건데 돈보다 사람이 먼저여야 하는데"라며 무엇보다 돈이 먼저였던 이들 때문에 벌어진 참극을 슬퍼했다.

그리고 생존자 산만 씨는 "참사는 사람을 가려서 오지 않는다. 오늘 아침 손 흔들고 나간 내 아이가 당할 수 있는 일이고 내 배우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라며 "저도 제가 겪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었다"라고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모두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문세윤은 "상식적으로 살면 되는데 상식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더 큰 피해자들이 생기는 것 같다"라며 기본을 지키는 세상이 되길 빌어 눈길을 끌었다.

광고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