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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그알' 故변희수 전 하사가 죽음을 택한 이유…그가 겪은 '혐오와 차별' 조명

김효정 에디터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1.04.04 02:26 조회 3,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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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변희수 하사, 그는 왜 죽음을 택했나?

3일에 방송된 SBS 에서는 '오롯한 당신에게 - 故변희수 전 하사가 남긴 이야기'라는 부제로 변희수 하사를 포함한 성소수자들이 이 땅 위에서 겪었을 차별과 혐오에 대해 조명했다.

지난 3월 3일 군 복무 도중 성전환 수술을 받고 강제 전역한 변희수 하사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군으로부터 강제전역을 당한 지 1년 여만의 일이었고 이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군의 강제전역 처분을 받았던 변희수 하사는 이 결정에 대해 다시 심사를 해달라는 인사소청을 육군 본부에 제기했다. 이에 대중들의 의견은 군 복무 중 자신의 의사로 수술을 받고 군 복무를 계속하겠다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과 군의 강제전역 처분은 성 소수자를 향한 차별이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그렇다면 변희수 하사가 트랜스젠더가 된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일 일까? 변 하사는 어느 날부터 자신의 몸을 보며 자신이 밉고 추하다는 생각을 했고, 병원을 찾아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알게 됐다. 변희수 하사가 자신이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정체성은 여성인 트랜스젠더 임을 알았을 때 그는 이미 대한민국 육군의 하사였던 것이다.

보통 트랜스젠더에 대해 성전환 수술을 한 이들을 일컫는 말이라 알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실제로 트랜스젠더 중 수술을 한 것은 일부일 뿐이며 수술 유무와 관계없이 태어날 때 가진 외형적인 성별과 스스로 느끼는 성별이 다른 모든 이들을 트랜스젠더라 부른다.

그리고 트랜스젠더들은 모두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고 했다. 또한 스스로 평범하지 않은 것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선택하지 않았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까 이렇게 된 것뿐이다"라고 답했다.

취재에 응한 트랜스젠더는 "사람들은 내가 트랜스젠더가 된 것이 내가 좋아서 고른 것처럼 말하는데 고르고 싶어서 고른 게 아니다. 사실 내가 트랜스젠더야 라고 정하면 그때부터 무서운 거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날 싫어하고 멀어질 것 같았지만 이대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라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트랜스젠더의 대부분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이를 숨기고 살아가는데 하늘 씨의 경우에는 40대 중반까지 남성으로 평범하게 살며 결혼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현재 수술 후 트랜스젠더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평생 남자로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성범죄자로 신고를 받게 되면서 이러한 결정을 했던 것.

하늘 씨는 "난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이라는 생각에 남자 화장실에 갈 수 없었다. 그날도 인적이 드문 여자 화장실을 사용했는데 진단서도 없고 호르몬 치료도 받지 않던 상황에서 누군가가 날 신고했다. 왜 여자 화장실을 갔냐고 묻는데 거기서 나는 트랜스젠더다'라고 공식적인 첫 커밍아웃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으로 하늘 씨는 병원을 찾아 호르몬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트랜스젠더들에게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몸과 마음의 성별이 달라서 겪게 되는 성별 위화감, 이에 어떤 이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으로 괴로워하기도 하고 병을 얻기도 했다. 이러한 성별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 하는 것이 호르몬 치료와 트랜스젠더 수술인 것.

이에 전문가는 "호르몬 치료와 성전환 수술은 굉장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아무렇지 않은데 일상생활에서 더 나은 만족감을 얻기 위한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변희수 하사가 수술을 결정한 것도 이와 같았다. 변희수 하사는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우울증은 극복했으나 성별 위화감은 줄어들지 않았고 결국 국군 수도병원 주치의로부터 수술적인 치료가 꼭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결정했다.

이후 변희수 하사는 태국에서의 성전환 수술을 위해 한 달간 장기 휴가를 받아 태국으로 떠났다. 이에 당시 변희수 하사와 같은 대화방에 있던 지인은 이런 그의 결정이 무척 갑작스러웠다고 했다. 실제로 수술을 결정하고 실행하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당시 대화방의 지인들은 특히 군인 신분이었던 변희수 하사의 수술을 만류했지만 본인의 생각이 확고해 말릴 수 없었다고 했다. 이에 변희수 하사의 동료는 "군에서 성전환 수술을 한 최초의 여군이 되도록 밀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상사들의 허락을 받고 수술을 결정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장성급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장기 휴가. 특히 변희수 하사의 선임들은 그의 수술을 위한 휴가 허락은 물론 응원과 지지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변희수 하사와 그들의 상사들의 대화를 통해 장성들이 그의 수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특히 가장 높은 직속상관 군단장은 직접 메일까지 보내 그를 응원하고 지지했다.

그러나 이렇게 지지와 응원을 보낸 상관들 조차 변 하사의 강제 전역을 막을 수는 없었다. 긍정적인 소속 부대와 달리 국방부와 육군본부는 다른 생각을 가졌던 걸까. 이에 취재진은 국방부와 육군본부에 답변을 부탁했지만 구체적인 답변은 주지 않았다.

대신 군은 한 달간 휴가는 부사관이 쓸 수 있는 휴가를 보장한 것뿐이고, 군이 허락한 것은 국외 여행일 뿐 수술이 아니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렇게 강제전역을 당하고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결국 군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은 변희수 하사는 안타까운 결정을 내렸다. 그의 지인은 "2월 27일 우울하다면서 '이게 이제 마지막 시도가 될 것 같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때 내가 신고를 했으면 좋은데 그러지 못한 내 탓이다"라고 자책했다.

변희수 하사의 SNS에는 지인이 밝힌 시기 '마지막 용기'라는 글이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글과 메시지를 전한 다음날인 28일은 그의 단기 전역 예정일이었다.

이에 군 인권 센터 사무국장은 "그게 가장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라며 "장기복무 신청이 가능한 날 이전에 강제 전역을 당하면서 장기복무 신청 기회가 박탈당했다. 그런데 2월 28일 자가 단기 전역 예정일이었다. 이 날을 기점으로 승소를 하더라도 복직이 안 되는 것이 확정된 것이다"라고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추측했다.

실제로 2월이 되면서 부쩍 우울해했던 변희수 하사에 대해 주변인들은 "왜 알아채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몇 번의 자살 시도도 있었다"라며 "호신용 총을 가지고 다닐 정도로 불안해했다. 복직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너무 우울해했다"라고 설명했다.

군 인권 센터 사무국장은 "군대도 하나의 직업이다. 보통은 준비 기간을 준다. 이직도 준비해야 하고 주거도 알아봐야 한다"라며 "그런데 준비 기간도 없이 강제 전역이 결정되고 머물던 관사에서 바로 쫓겨났다. 이것은 정말 드문 일이다. 변희수가 군에 발도 붙이지 말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라고 분노했다.

그리고 취재 기자는 변희수 하사가 당시 기자회견을 한 것이 군을 너무도 사랑했던 그가 갖게 된 배신감 때문이라 밝혀 안타까움을 더했다.

군은 변하사를 왜 받아들일 수 없었을까? 문건에 따르면 군의 인사 규칙상 고환 결손과 음경 상실은 심신 장애 전역 사유에 해당되며 변희수 하사의 경우 고의성이 인정되어 강제 전역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 이에 변호사는 "신체장애로 판단한 이유가 성기 절단이다. 그런데 치료 목적의 경우에 일반적인 성기 절단과 자해 행위와 동일하게 해석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라고 했다.

또한 전문의는 "고의에 의한 신체 훼손을 병원에서 해줄 수 없다. 의학적으로 인정이 되는 치료의 범주이다"라며 변희수 하사의 성기 절단을 고의적인 훼손으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12월 변하사의 전역은 부당하다며, 이를 취소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이후 군은 여군 측이 변 하사의 복무를 반대한다는 내용을 보도하고 여군이 겪을 불편과 형평성을 주장하며 여군에 복무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나 변희수의 동료는 "여군에서 반대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여군에서는 지지하고 빨리 오라고 했다더라"라는 입장을 전했다. 또한 군 인권 센터 관계자도 여자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군대에서 여군의 불편을 걱정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말했다.

방송은 변희수 하사의 지인들이 아닌 일반인들은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는지 다양한 이들을 모아 토론을 진행했다. 역시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되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변희수 하사의 지인은 여군으로 재입대를 하면 되지 않냐는 일각의 의견에 대해 "여군으로 재입대가 안 된다. 여군도 생식기능이 정상이어야만 입대가 된다. 그것도 모르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데 진퇴양난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군에 따르면 현재 트랜스젠더는 수술 여부와 상관없이 현역병이나 간부가 될 수 없는 것이 군의 원칙이었다. 병무청 관계자는 "성별 불일치라고 해서 6개월 이상 치료를 해도 불구하고 몇 가지 증상이 있어 군 복무 지장이 초래된다고 판단되면 5급을 전시근로역 처분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라고 설명했다.

트랜스젠더는 군 복무에 부적합할까? 미 국방부는 한 연구소에 조사를 의뢰했고 조사 결과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또한 이들을 지도하는 미국 장성들 조차 아무 문제가 없다며 그들의 복무 욕구를 존중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군은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는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 사안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지난 2006년부터 일정 요건을 갖추면 소송 없이 성별 정정이 가능하게 된 우리나라. 그러나 당시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외부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는지의 여부와 생식능력의 상실이 성별 정정 요건이 포함되어 있어 의아함을 자아냈다.

이에 이한결 씨는 남성기라고 불리는 페니스 재건술을 받지 않은 것 때문에 서울에서는 기각, 군산에서는 인정받았다. 당시 군산의 판사님은 "신청자 본인이 이미 충분히 남성으로 살고 있는데 이런 것을 요하는 것은 국가의 무리한 요구다라고 판단했다"라고 판단했던 것.

전문가는 생식기 재건술에 대해 "합병증이 높다. 요도가 막힌다든지 요도의 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아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아갈 확률이 있다"라며 쉽게 수술을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지적했다.

이러한 요건 때문에 성별 정정 신청에 있어 판사의 무리한 요구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법원 직원에게 직접 생식기를 확인받으라,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 등의 요구였다.

이 같은 문제로 성별 정정 가능성을 높이려면 수술 후 신청하는 것이 유리하나 국내에는 수술할 곳도 별로 없고 성형 수술로 취급돼 보험 적용도 안 되며 국외로 나가도 그 비용이 엄청나 쉽게 수술을 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이에 일부는 대부업체를 통해 대출까지 받아 수술을 했으나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취업도 어려워 또 다른 문제가 또 발생하는 것.

변희수 하사 또한 대출까지 받아 수술을 했다. 이에 지인은 그가 군대에서 강제전역되지 않을 거란 믿음으로 대출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강제 전역을 당한 후 그는 대출을 갚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려고 했으나 트랜스젠더임이 알려진 탓에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해 편의점 알바 조차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그가 SNS에 취업을 간절히 바라는 글들을 통해 짐작케 했다. 이에 변희수 하사는 지인과 결국 사업 준비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소수자들 중에는 변희수 하사뿐 아니라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에 한 트랜스젠더는 "우리에게는 경사는 없고 오랜만에 모이는 곳은 늘 장례식이다"라고 했다. 또 다른 이는 "곱게 죽는 일이 없다. 수술하고 나면 합병증으로 죽거나 패혈증으로 죽거나 수술 중에 죽거나 한다. 우리 같은 소수자들은 인생의 끝이 자살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실제로 한 조사를 통해 성 소수자들은 일반인 대비 19배 이상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그 시도는 10배 이상 높게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한결 씨는 국민을 위한다는 나라가 국민을 향해 거침없는 혐오를 쏟아내는 나라에서 살 자신이 없다고 생각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우리나라 곳곳에서는 성 소수자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차별을 당연히 여기고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자신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이에 제작진은 앞서 진행한 토론에서 트랜스젠더들을 함께 토론해 합류시킨 후 그들의 존재를 알기 전과 알고 난 후 어떤 변화를 생기는지 확인했다.

이에 토론 참여자들은 "평등해야 하지만 혜택은 줘선 안 된다, 성 소수자들을 존중하지만 타인들에게 존중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등 성 소수자에 대한 평소의 생각들을 가감 없이 밝혔다. 그러나 3명의 트랜스젠더의 갑작스러운 커밍아웃에 토론자들은 놀라고 당혹스러워했다.

한 토론자는 트랜스젠더에게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는지 물었다. 이에 트랜스젠더는 "후회를 할 수 있는 영역이 없었다. 이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성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은 토론자들. 이들은 "토론을 하다 보니까 내가 생각이 틀렸었구나 하는 마음의 변화가 만났다"라고 달라진 마음가짐을 밝혔다. 또 다른 이도 "솔직히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라도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다.

성 소수자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을 안 순간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잘 알게 된 이들은 그들의 부모들이었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자책했다는 한 어머니는 "의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냐면서 울었다. 그런데 의사가 하는 말이 '저 아이는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면 끝끝내 죽는다'라고 하더라. 머리에 커다란 돌을 맞은 것 같았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라며 이제는 자식을 아들이나 딸이 아닌 한 사람으로 본다고 했다.

또 다른 부모도 "바꿀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우선 애부터 살려야겠다는 마음이었다"라고 자식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이들은 아이들이 겪는 혐오와 편견에 맞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가족에게도 외면당하는 성 소수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이들을 위해 사회는 혐오와 편견 대신 희망과 위로를 전해야만 했다. 이에 무엇보다 차별 금지법의 제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법은 지난 14년간 가장 차별받으며 국회를 떠돌고 있었다.

이에 한 국회의원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 정당의 정치적 생명을 우선에 두고 결정해왔기 때문에 법이 제정되지 않았던 것이다"라며 "차별의 문제는 기본적인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이는 비타협적인 권리로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이제라도 차별 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번번이 국민적 합의, 사회적 합의를 주장하는 이들. 그러나 이미 국민의 91.1%가 나도 차별받거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차별 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과반수 이상이었다. 이는 이미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한 전문가는 "변희수 하사의 죽음은 성전환자가 성전환을 한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나 위치, 직업적 가치를 지켜줄 수 있는 사회적 제도도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 같다"라고 했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지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인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인권 문제는 사회적 합의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줘야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방송은 성 소수자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사회는 성 소수자들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회가 아닌 성 소수자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 사회, 사람을 대할 때 성별이나 외모가 아닌 오롯한 당신으로 대하는 사회라며 그것이 변희수 하사가 살고 싶었던 오롯한 나라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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