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수)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박은빈을 좋아하세요?

강선애 기자 작성 2020.10.30 14:13 수정 2020.10.30 15:07 조회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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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빈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연기하는' 박은빈의 모습은 오랫동안 봐왔다. 지난 96년 아역배우로 데뷔했으니, 무려 24년 넘게 그녀의 연기를 시청했다. 그래서 TV 속 박은빈의 모습은 낯설지가 않다.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 자리에 굳건하게 서 있을 것이란 믿음이 왠지 모르게 가는 배우다.

그런데 요즘에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녀가 20년 넘게 해 온 연기이고, 그 세월만큼 대중에게도 익숙한 배우인데, 최근 들어 뭔가 더 착착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다. 일찌감치 안정궤도에 올라 보기 편안했던 그녀의 연기가, 최근 출연작들에서 한층 더 물이 올랐다.

박은빈이 달리 보인 건, 2016년 방송됐던 JTBC 드라마 '청춘시대'부터다. 짧은 단발머리에 왈가닥 성격의 송지원 캐릭터를 통통 튀는 매력으로 소화하는 박은빈을 보며, 정제된 연기의 틀을 깨고 나온 그녀의 도전에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올해 초 인기리에 방송된 SBS '스토브리그'에서 걸크러쉬 이세영 팀장으로 완벽하게 거듭난 박은빈의 변신은 다시 한번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다. 이세영 팀장이 "선은 네가 넘었어!"라고 소리치는 신이 이 드라마의 명장면이었다면, 배우로서 다시 한번 스스로의 '선을 넘은' 박은빈의 도전은 박수받기에 충분했다.

송지원과 이세영 캐릭터가 박은빈에게 큰 도전이었던 이유는, 실제 박은빈의 성격은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채송아 캐릭터에 가깝기 때문이다. 극 중 채송아는 여리여리한 외모에 내성적이고 소심해 보이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는 과감하게 도전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 하나로 경영학과에 다니면서 4수를 한 끝에 음대에 신입생으로 입학했고, 박준영(김민재 분)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먼저 고백하기도 했다.

박은빈

박은빈도 채송아처럼 잔잔한 성격의 소유자다. 하지만 채송아가 바이올린에 그러했듯, 자신이 좋아하는 '연기'에 한해서는 용기 있게 행동할 줄 아는 배우다. 그래서 자신과 전혀 다른 송지원, 이세영 캐릭터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 그 도전은 기분 좋은 성공으로 이어졌고, 배우 박은빈의 스펙트럼은 더욱 확장됐다.

그리고 박은빈이 오랜만에 제 몸에 딱 맞는 캐릭터인 채송아로 돌아왔다. 제 장점을 십분 발휘했으니, 연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다만, 20년이 넘는 연기 경력이지만 처음 경험해보는, 감성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극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이 역시 박은빈에게는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 주연의 무거운 책임감 딛고, 진짜 바이올리니스트처럼

보통의 배우들은 한 작품을 끝내고 나면 '시원섭섭'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끝낸 박은빈은 섭섭함도 있긴 하지만 그보다 '시원함'이 더 큰 느낌이었다. 그만큼 주연으로서 책임감이 막중했기에, 무사히 이번 작품을 끝냈다는 안도감이 크게 다가왔다.

"지난 6개월 동안 송아로 살면서 바이올린도 열심히 했고, 송아처럼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던 거 같아요. 끝난 게 실감이 안 나지만, 이제 송아를 잘 보내줘야겠죠. 촬영 내내 인상 찌푸리는 것 없이, 좋은 분들과 함께 많이 웃을 수 있는 현장이었어요. 헤어질 때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막상 끝나니 눈물이 나오진 않더라고요. 오히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아무도 아프지 않고 무사히 잘 끝냈다는 후련함이 컸어요. 또 제가 주연으로서 은연중에 책임감을 많이 갖고 있었구나, 그만큼 긴장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 긴장감이 풀리면, 한동안 집에만 머물러야 할 거 같아요."

올해 초 방영된 '스토브리그'의 이세영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채송아는 180도 다른 성향의 캐릭터였다. 박은빈은 "비슷한 결의 캐릭터라면 고민했을 텐데, 완전히 다른 성향이라 오히려 편했다"며 작품 결정에 어려움은 없었다고 밝혔다. 또 "제 본연이 가지고 있는 성질은 채송아랑 더 비슷한 면이 많다"며 "오랜만에 편한 옷을 입었다. 그래서 채송아 캐릭터를 잡기 위해 특별히 제 외향적인 걸 바꾸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박은빈

박은빈이 채송아를 연기하는 데 있어 더 중점을 둔 건 인물의 감정 표현이었다. 채송아의 눈물 그렁그렁한 눈, 상처 가득한 표정만 봐도 시청자는 그녀의 마음이 느껴져 안타까웠다. 잔잔한 클래식 멜로드라마 속 말수 적은 주인공인 채송아는 자신의 감정을 그렇게 눈빛과 표정으로 드러냈다. 대사 없이 그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는 게 배우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감정선이 중요한 드라마였어요. 인물들이 대사를 통해서 감정을 쏟아내는 게 아니라, 침묵을 통해 전달하는 게 많았죠. 그런 부분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특히 송아는,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시점으로 끌어오는 화자이기도 하고, 다른 인물들을 바라보는 관찰자이기도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청자이기도 했죠. 송아가 느낄 감정들을 시청자분들께 생생하게 전달해야만, 송아란 캐릭터에 감정 이입하고 잘 따라오실 수 있을 거란 사명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최대한 그 감정을 쪼개서 잘 표현하고자 노력을 많이 했어요."

바이올린 전공 음대생인 채송아로 거듭나기 위해 박은빈이 꼭 익혀야만 했던 건 바이올린 연주였다. 박은빈은 드라마 촬영 한 달 전쯤부터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촬영을 진행하면서도 틈틈이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릴 적 잠깐 배웠던 바이올린은 운지법부터 새로 익혀야 했지만, 박은빈의 피나는 노력과 타고난 습득력은 단기간에 그녀를 어색함 없는 바이올리니스트로 만들었다.

"첫 촬영 때와 마지막 촬영 때를 비교하면, 바이올린 실력 차이가 상당해요.(웃음) 어릴 적에 잠깐 바이올린을 배웠었지만, 오랜만에 하니 운지법도 다 잊은 상태였어요. 처음 자세부터 다시 잡아야 했죠. 다행히 제가 습득력이 빠른 편이라, 3개월 레슨 받고 혼자라도 최대한 틈틈이 연습하니,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처음에는 저 스스로도 '소음공해를 일으키고 있다'라고 느꼈는데, 뒤로 갈수록 소리가 좋아졌어요. 스태프들도 나중에는 '어색한 부분을 찾을 수가 없다'라고 칭찬해 줬고, 대역 없이 직접 연주한 장면들도 있어요."

15회에서 채송아와 박준영이 함께 브람스의 F-A-E 소나타를 합주했던 장면은 이 드라마의 명장면으로 남았다.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 위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느끼며 합을 맞추고, 완벽한 호흡으로 곡을 완성하는 모습은 따뜻한 감동을 안겼다. 박은빈은 이 장면에서 대역 없이 직접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지난 수개월간 열심히 연습했던 바이올린. 드라마가 끝났다고 한 순간에 내려놓기엔 아깝다. 박은빈은 앞으로도 바이올린을 꾸준히 연주해 볼 생각이다.

"그만두기 아쉽긴 하죠. 송아가 썼던 악기는 대여라 이미 반납했고, 얼마 전에 집에 잠들어있던 제 바이올린을 꺼냈어요. 방치됐던 터라 소리가 먹먹해졌더라고요. 그 바이올린을 만지면서 '앞으로 널 다시 키워줄게'라고 말했어요. 가끔씩, 바이올린이 생각날 때, 한번씩 켜 볼 생각이에요."

박은빈

▲ 20대의 마지막을 함께, '선물' 같았던 시간

박은빈과 채송아의 비슷한 점은 성격뿐만이 아니다. 채송아의 극 중 나이는 29세, 박은빈의 실제 나이와 같았다. 자신의 행복을 찾아 끊임없이 나아가고자 노력하는 동갑내기 캐릭터를 만나 박은빈도 느낀 점이 많았다.

"스물아홉 살에 스물아홉 살의 역할을 한다는 게 굉장한 희박한 확률이 아닐까 싶어요. 송아의 나이가 저랑 같아서 끌린 건 아니지만, 나중에는 '내가 이걸 안 했으면 어쩔 뻔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송아의 스물아홉을 보내며, 저의 스물아홉을 정리하고 되돌아볼 수 있었어요. 선물 같은 시간이었죠. 또 송아가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걷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인물인데, 저도 행복이란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 동질감을 많이 느꼈어요. 송아에 감정 이입하면서, 저의 스물아홉도 잘 보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클래식을 전공하는 20대 젊은 청춘들의 사랑과 우정, 꿈을 다루는 멜로드라마인 만큼 박은빈과 남자 주인공 김민재의 연기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들은 심장을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썸부터 시작해 달달한 연애, 오해와 실망이 쌓인 이별, 다시 서로를 응원하며 굳건한 사랑을 완성하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민재는 이번 드라마를 통해 처음 만났는데, 갖고 있는 기본이 너무 좋은 친구였어요. 목소리도 좋고, 다재다능한 면이 많더라고요. 특히 박준영 캐릭터가 갖추고 있는 남을 배려하는 젠틀한 모습들이, 민재 본인에게도 있어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왔죠. 박준영이랑 너무 잘 맞는 파트너를 만났다고 생각했어요. 함께 연기할 때도 호흡이 잘 맞아서 '이 장면이 재미있게 잘 만들어지고 있구나' 느꼈던 순간들도 많았고요. 민재 덕분에 재미있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2020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박은빈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20대 마지막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그녀에게 의미가 더 남다르다.

"어릴 적에 잠깐 바이올린을 접한 기억 때문인지 언젠가는 클래식을 다루는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때마침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란 작품이 나타나 흥미가 생겼고, 시기적으로도 다른 결의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는 개인적 욕심에도 딱 맞아떨어졌죠. 저 스스로 '내가 뭘 해낼 수 있을까' 확신이 필요할 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팀이 절 기다려주셔서 감사한 마음도 있었고요. 이세영 다음에 채송아를 연기할 수 있었단 게, 배우로서 매력적인 과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은 저한테 '20대의 마지막 작품이지만, 선물 같았던 작품'으로 남을 거 같아요."

박은빈

▲ 25년 차 배우 박은빈의 정체성 찾아가기

96년 데뷔 이후 박은빈은 계속 연기를 해왔고, 어느덧 25년 차 배우가 됐다. 오랜 경력에 대해 박은빈은 "경력이 많다고 으스대고 싶진 않다"라고 겸손하게 말하면서도 "공백기 없이 계속 일을 해왔다는 건 저 자신에게 칭찬해주고 싶다"라며 스스로를 토닥였다. 충분히 대견해할 만하고 오롯이 박수받을 일이다.

이제 20대의 끝자락. 배우 박은빈으로서, 인간 박은빈으로서 모두 생각이 많을 시기다. 박은빈에게 20대의 지난 10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열심히 살았던 거 같아요. '청춘'이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기라고 하는데, 저도 치열하게 고민했던 거 같고요. 아직 전 청춘이잖아요? 매 순간 저 스스로 확신을 갖고 결정하기 위해, 나름 치열하게 고민하며 지내고 있는 거 같아요. 저의 20대를 돌아보면, 여러모로 견뎌야 할 게 많았지만 잘 견뎠고 열심히 살았다,라고 정의하고 싶네요."

박은빈에게 "견뎌야 할 게 많았다"는 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온 내적 혼란이었다.

"몰랐던 저 자신과 마주하는 것, 그게 어찌 보면 힘든 순간들이었던 거 같아요. 저에 대해 이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의 새로운 모습, 새로운 내면을 발견하고, 저 스스로와 직면해야만 하는 순간이 왔을 때. 그게 감당하기 좀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있었기에 제가 좀 더 단단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저란 사람이 이런 사람이구나, 이걸 불편해하고 이걸 좋아하는구나, 그런 걸 알아나가다 보니 저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도 하고요. 또 송아랑 비슷한 면인데, 전 남에게 상처주기 싫어 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었어요. 이젠 남에게도 저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며 폭넓게 생각하는 여유가 생긴 거 같아요."

박은빈

박은빈은 30대가 되어도 지금과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거 같다고 말했다. 미리 그려보는 '박은빈의 30대'도 우선순위는 무조건 '연기'였다. 지금처럼 어떤 작품을 만나 재미있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거 같다고 했다. 배우 박은빈의 행복은 인간 박은빈의 행복으로 이어졌다.

"물론 저도 연기가 재미없었던 시절이 있어요. 송아가 느낀 것처럼, 좋아한들 성격과 적성에 안 맞을 수도 있잖아요? 연기가 제 성격에 맞는 걸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죠. 그렇지만 지금껏 연기를 해오고 있는 걸 보면, 잘 맞는 거라 생각해요. 계속 연기를 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솔직히 책임감이었어요. 제가 해야 할 것을 먼저 생각하며 책임감 있게 임하면, 거기서 성취감을 얻고, 그럼 자존감이 채워지고, 그게 다음으로 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죠. 제가 세운 기대치에 합당하지 않은 결과에는 '이게 정말 나의 최선이었나' 스스로 의문을 품었던 게, 또 다음 스테이지로 향할 수 있게 절 채찍질해줬던 거 같고요. 이런 과정들이 차근차근 절 성장시켰다고 생각해요."

도전과 안정을 적절하게 고민하며 똑똑하게 배우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박은빈. 지난 25년간 수많은 작품에 출연해온 그녀에게 아직 안 해본, 그래서 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는지 묻자 '인성 빼고 다 가진 역할'이라는 생각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랑 다른 성향의 캐릭터를 연기할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어요. 인성 빼고 다 가진 역할, 그런 역할들을 도전해 보고 싶어요. 누군가에겐 분명한 악역일 수 있지만 그 악역이 나름 이유가 있다면, 입체적인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요? 배우로서 입체적인 연기를 하는 게, 상상의 나래를 풍부하게 펼칠 수 있어서 좋아요. 여러모로 사연을 가진, 인성 빼고 다 가진 캐릭터를 언젠가 해보고 싶어요."

[사진제공=나무엑터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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