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한 번 그만둬 봤기에, 다시는 포기 안 해"…한지은, 연기열정의 이유

강선애 기자 작성 2020.07.10 10:33 수정 2020.07.10 11:35 조회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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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은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배우 한지은(33)은 간절했다. 연예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간절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만은, 한지은의 그 마음은 더 깊고 크다. 그녀가 그토록 간절한 이유, 한 번 '포기'해봤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영화 '귀'로 데뷔한 한지은은 무명의 시간이 길었다. 그 힘든 시기를 버티지 못한 20대 초반의 한지은은 연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연기가 아닌 다른 일을 하며 3년의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그 방황의 시간을 거친 후 한지은은 다시 연기를 선택했다.

돌아온 한지은은 달라졌다. 여전히 단역을 전전하고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시며 연기를 그만두기 전과 상황이 바뀐 건 없었지만, 한지은은 포기를 몰랐다. 좌절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그렇게 한지은은 느리지만 차근차근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 인고 끝에 한지은의 꽃길 인생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로 생애 첫 드라마 주연 자리를 꿰찬 한지은은 그 작품을 통해 연기력과 주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기세를 몰아 한지은은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꼰대인턴'에서 다시 한번 주연으로 맹활약했다.

한지은은 '꼰대인턴'에서 준수기업 인턴사원 이태리 역을 맡아, 독특한데 귀엽고, 열정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매력의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시원시원 할 말은 다 하고 정의로운 이태리로 사이다 같은 쾌감을 안기는가 하면, 인턴에서 정직원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으로 애잔한 느낌을 선사하기도 했다.

한지은

▲ 시원하게 망가지고 시원하게 할 말 했던 이태리

이태리는 그동안 한국 드라마에서 그려온 여성 캐릭터와는 결이 완전히 달랐다. 주변 눈치를 보고 가식적으로 자신을 치장하기보단, 스스로 맞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거짓 없는 성격이다 보니 인턴인데도 상사에게 할 말은 했다. 이런 시원시원한 성격은 사랑에서도 마찬가지. 한때 자신도 호감을 느꼈던 남자가 고백해 오자 "꼰대 같아 싫다"라며 단박에 차 버렸고, 오너의 아들이 사귀자고 매달려도 대차게 거절했다. '을'의 입장인데도 주눅 들지 않고 자기중심을 정확히 잡고 있는 이태리는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제가 본 태리는 굉장히 자유로운 발상을 할 줄 알고, 꾸밈없는 친구였어요. 단순하기도, 순수하기도 해서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는 걸 솔직하게 드러냈죠. 어떻게 하면 그 친구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연기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그래서 노력했던 게, '현장에서도 최대한 태리 같은 모습으로 있어보자' 였어요. 슛이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태리라면 어떻게 할까', '태리는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 생각을 계속했죠. 기술적인 고민은 최소로 하고, 태리가 갖고 있는 생각, 사상 같은 거에만 집중했어요. 거기에 촬영장에서 제가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표현해보자 했죠"

현장에서 느끼는 바를 연기로 바로 표현하려면 굉장한 순발력이 요구된다. 미리 대본을 보고 연기를 구상하는 배우가 하기에게는 부담스러운 작업이다. 그래서 한지은에게도 '즉석 연기'는 큰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었다.

"물론 준비를 해 가긴 하지만, 현장에서 추가적으로 저한테 맡기는 건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연기를 하면 서도 '이렇게 해도 되나? 이게 맞나?' 그런 혼자만의 질문을 계속 던졌어요. 어려운 부분이지만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건, 현장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감독님, 촬영감독님, 동료 배우분들이 모두 제가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태리처럼 더 막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더 용기 낼 수 있었죠."

한지은

좌충우돌 코믹한 이태리를 연기하며 한지은은 사정없이 망가졌다. 하지만 그 모습이 사랑스럽게 보였다. 극곱슬 머리카락 때문에 물에 젖어 폭탄머리가 되어도, '먹깨비' 설정으로 두 볼 가득 음식을 채워놓고 우걱우걱 먹어도, 한지은이 표현한 이태리는 미워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 내려놔야 할 것인가도 제 고민 중에 하나였어요. 태리가 또 할 건 확실하게 하는 친구잖아요. '여기서 이렇게 하면 미워 보이지 않을까', '못생겨 보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태리와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이왕 하는 거 확실하게 내려놓자 싶었죠."

말도 행동도,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성향의 이태리는 '본캐' 한지은에게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줬다.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로 인해 실제 삶이 즐거워지는 것만큼 좋은 시너지도 없다.

"태리는 실제 제 일상에도 힘을 많이 줬어요. 저도 그동안 사회생활하며 여러 가지 힘든 것들이 있었을 텐데, 태리 역할을 하면서 해소되는 부분이 분명 있었어요. 항상 업(UP)되어 있고, 엉뚱할지언정 표현을 많이 하는 스타일의 태리를 연기하면서, 제가 일상으로 돌아와 힘들어 축 처져있을 때 태리의 에너지가 절 무너지지 않게 지켜줬던 거 같아요."

▲ 실제 내 모습과 비슷했던 캐릭터... 일상의 소소한 재미 알아가는 중

한지은과 이태리가 '찰떡' 같은 싱크로율을 보였던 이유는, 실제 한지은과 비슷한 면이 많아서다.

"제가 원래 밝고 활달한 편이에요. 실제로 태리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어 태리를 표현하는 게 크게 어렵진 않았어요. 감독님도 절 캐스팅 한 이유가 '태리 같아서' 였대요. 제가 평소에 장난기가 많고 몸으로 망가지는 장난들을 많이 쳐요. 그동안 주변인들 앞에서만 하던 장난과 망가짐을 시청자 분들께 보여드리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런 생각을 했죠. 드라마를 본 지인들은 '그냥 너 보는 거 같아'라고 하더라고요. 한편으론 '내가 저렇다고?' 인정하기 싫으면서도 기분이 좋았어요.(웃음)"

극 중 이태리에게는 든든한 세 명의 남자들이 있다. 시니어 인턴으로 정규직 자리를 둔 경쟁관계였는데 알고 보니 친아빠였던 이만식 역의 김응수, 젊고 능력 있고 동료들을 챙기는 인성 좋은 부장인 듯 보였는데 속에 '젊은 꼰대'의 기질이 다분했던 가열찬 역의 박해진, 오너의 아들로 회사를 차지하기 위해 악행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으나 의외로 순수하고 백치미가 있던 남궁준수 역의 박기웅이다. 한지은은 세 사람에게 "배운 게 많다"며 애정 가득한 이야기를 꺼냈다.

한지은

"응수 선배님은 하루 종일 현장에서 이만식으로 계세요. 지금 이 모습이 이만식인지, 응수 선배님인지 헷갈릴 정도예요. 그렇게 내내 캐릭터에 집중하시더라고요.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를 봤어요. 선배님의 연기력이나 내공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너무 존경스럽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해진 오빠는 엄청 섬세하고 전체를 볼 줄 알아요. 본인의 연기를 하면서도, 상대방의 연기와 호흡을 이끌어주는 게 굉장히 부드러워요. 절제 있는 연기를 잘하고, 본인이 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잘 받쳐주는 리더형이에요. 제가 확신을 못 가질 땐 조언도 편안하게 잘해주고요. 기웅 오빠는 친구처럼 편했어요. 장난도 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편안하게 분위기를 풀어줬죠. 분석력도 진짜 뛰어나요. 같이 하는 신들은 오빠와 대화를 많이 나누며 신을 만들어 나갔어요. 세 분 모두 다른 색깔인데, 저한텐 정말 고마운 분들이죠. 의지가 많이 됐어요."

이태리는 가열찬과 남궁준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실제 한지은은 두 남자 중 누구에게 더 매력을 느꼈을까.

"제가 어렸다면 친구 같은 준수 성향을 더 좋아했을 거 같아요. 근데 지금 선택을 하라면, 가열찬 같은 사람이 좀 더 좋아요. 표현에 인색하지 않으면서도, 묵묵하고 절제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요. 전 가열찬도 순수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순수함도, 절제미도 갖고 있는, 그런 가열찬 같은 사람이 지금은 더 좋아요."

한지은은 이런 이상형의 변화가 나이 듦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라 설명했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재미를 좋아했던 과거와 달리, 평범하지만 소소하게 느끼는 재미의 소중함을 이제 아는 나이라고 했다. 사회초년생 이태리를 연기한 동안 외모지만, 실제 한지은은 87년생으로 올해 만 33세다.

"어릴 땐 그저 재미있는 게 중요했다면, 지금은 꾸준한 게 더 중요해요. 예전에는 액티브하고 스릴 있는 걸 좋아했는데, 이제는 오늘 하루의 소소한 재미들, 그걸 꾸준하고 잔잔하게 가져가는 것의 재미를 알아가고 있어요.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가치관도, 이상형도 바뀌는 거죠."

▲ 한 번 그만둬 봤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는 연기

한지은은 데뷔 이후 11년이 지나서야 배우로서 인정받고 빛을 보기 시작했다.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달려온 그녀는 힘들었던 지난 세월 또한 소중하게 여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한 해 한 해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그동안 잘 버텨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제가 지내왔던 그 시간들이 저한테 큰 힘이 되어 줄거라 생각해요. 무명을 오래 지낸 것이 저한텐 더 큰 재산일 수 있겠다, 앞으로 배우 활동을 하는데 분명히 좋은 경험이 될 거 라고 믿어요."

한지은

한지은이 오랜 무명 생활에도 연기에 대한 꿈을 접지 않은 이유는, 아이러니하게 한 번 '포기'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포기의 시간은 이후 그녀가 꿈을 향해 달려가는 원동력이 됐다.

"스물둘에서 스물다섯 살 정도까지, 3년 정도 연기 공백이 있었어요. 그 시간 동안 정서적으로 방황도 하고 다른 일도 해보려 했죠.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선택한 게 '연기'였어요. 그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한 번 그만둬 봤기에, 다시는 그만 둘 생각은 안 했죠. 연기를 다시 해야겠다고 결심하며, 스스로 다짐하고 마음먹은 바가 있으니까요. 아무리 힘들어도 이걸 어떻게 하면 해쳐나갈 수 있을까, 돌파구를 찾으려는 집중도가 높아졌어요."

나이가 들어가며 넓어진 시각과 그 세월 동안 쌓인 값진 경험들을 통해 '멘탈'이 단단해진 한지은은 이제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법까지 터득했다. 방법은 단순하다. 무작정 걷는 거다.

"예전에는 제가 심적으로 힘들면 무기력해지고 멍하니 방에 누워서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게 절 쉬게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절 더 밑으로 다운시키고 힘이 안 났죠. 요새는 제가 해결법을 찾았어요. 억지로 나가 걷는 거예요. 그게 육체적으로 힘들 거라 생각되지만,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지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웬만한 데는 걸어 다녔어요. 걸으면 생각도 정리되고, 없던 힘도 생겨요. 지금은 조금 마음이 힘들 것 같다, 싶으면 바로 나가서 걸어요. 걷는 게 정말 좋아요."

[사진=HB엔터테인먼트]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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