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조정석 "'녹두꽃', 행운 같은 작품…울컥한 마음 공감했길"

강선애 기자 작성 2019.08.04 19:21 수정 2019.08.05 08:19 조회 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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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석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굳이 연기를 보지 않더라도, 완벽하게 캐릭터에 녹아든 눈빛만으로 공감이 가는 배우가 있다. 배우 조정석이 그렇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납득이는 의뭉스러운 눈빛에 웃음이 먼저 터져 나왔고, 드라마 '질투의 화신'의 이화신은 까칠해 보이는데 어딘지 모르게 측은한 눈빛이 여심을 자극했다.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녹두꽃'에서는 백이강의 눈만 봐도 그가 가진 울분과 미래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조정석 선배는 백만 불짜리 눈을 갖고 있어요. 만나는 인물마다 눈빛이 달라지고, 눈이 모든 감정을 말해요."

최근 인터뷰를 진행한 한 신인 배우가 함께 연기를 맞춘 조정석에 대해 설명한 말이다. 눈으로 모든 걸 말하는 배우. 눈만 봐도 진정성이 느껴져 신뢰가 가는 배우. 그래서 조정석의 연기는 긴 수식어가 필요 없다.

조정석

조정석은 '녹두꽃'(극본 정현민, 연출 신경수)에서 백이강 역을 맡아 지금껏 대중에 선보였던 캐릭터 중 가장 묵직한 연기를 소화했다. 120여 년 전 동학농민운동의 중심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참담한 현실 속 가슴 뜨거운 청년의 애환, 이를 발판으로 항일운동까지 몸담게 되는 백이강의 휘몰아치는 운명을 온몸 던져 표현해냈다.

'녹두꽃'을 끝낸 후 만난 조정석은 "아주 시원하다. 섭섭한 게 하나도 없다"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정말 일말의 아쉬움도 없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만큼 '녹두꽃'은 쉬운 작품이 아니었다. 작품 자체가 갖고 있는 묵직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슬픔과 분노가 교차하는 감정신이 많았고, 수차례의 전투신으로 인한 육체적 어려움, 또 사극이란 특수성까지 감안해야 했다. 하지만 조정석이 이토록 "시원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만큼 현장이 좋았고,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현장이 너무 좋았기에, 다 끝나고 이런 시원한 마음이 드는 거 같아요. 사극 24부작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들지 알기에, 각오를 단단히 하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녹두꽃' 현장은 생각보다 모든 게 수월했어요. 전투 장면들이 꽤 많았는데, 예상하고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힘듦이었어요. 그리고 신경수 감독님이 굉장히 빨리 찍고, 심지어 퀄리티도 좋아요. 그래서 그렇게 힘들다고는 느끼지 않았어요.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정말 좋았어요. 보통 까탈스러운 사람이 한 두 명씩은 있는데, 여긴 배우나 스태프나 그런 사람이 전혀 없었어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니 현장이 정말 좋았어요."

▲ 행운 같은 작품 '녹두꽃'

'녹두꽃'은 드라마 최초로 동학농민혁명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큰 작품이다. 신분제의 차별과 양반의 핍박 앞에 살고자 일어섰던 민초들의 봉기부터, 일본의 수탈 속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선 의병들의 목숨 건 전투까지. '녹두꽃'은 매회 뜨거웠고 매회 울컥했다.

"그 시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활자로만 봤지, 그걸 드라마로 만든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 작품의 일원으로서 책임감도 남달랐고 파이팅도 넘쳤어요. 그리고 제가 연기한 캐릭터, '거시기'가 '백이강'으로 변해가는 게 배우로서 굉장히 매력 있는 부분이라 생각했어요. 실제로 연기하다 보니 더 와 닿았고요. '녹두꽃'은 제게 행운 같은 작품이었어요."

조정석

조정석은 '녹두꽃'을 통해 잘 알지 못했던 100여 년 전 동학혁명에 대해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다는 점에 뜻 깊어했다. 또 배우로서, 그 역사적인 순간 속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재미도 컸다고 설명했다.

"어릴 적에 국사 과목을 좋아했는데, 촬영하면서 저 또한 공부가 많이 됐죠. 전봉준 장군이 흥선대원군의 식객 중 하나였다는 걸, 그런 연결고리가 있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그런 점들이 마치 역사공부하듯 재밌었어요. 또 드라마의 주인공이 동학농민혁명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전봉준 장군이 아닌, 백이강 백이현 송자인 같은 가상의 인물이라는 게, 그 시대에 살았던 인물의 시점에서 드라마가 흘러간다는 것 또한 제게 매력적으로 와 닿았어요. 가상의 인물을 연기하다 보니,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이것저것 표현할 수 있었던 것도 재밌었고요."

특히 조정석은 정현민 작가의 글과 신경수 감독의 연출에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철저하게 자기가 맡은 캐릭터에 대해 분석해온 배우들의 준비성도 높이 평가했다. 누구 하나 삐거덕거리는 사람이 없었기에, '녹두꽃'의 촬영장은 더없이 좋았다.

"작가님의 글도, 감독님의 연출도 너무 좋았어요. 거기에 배우들도 모두 현장에 오기 전에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와요. '녹두꽃'이 빠르게 찍으면서도 좋은 퀄리티를 낼 수 있었던 건, 이 모든 게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죠. 스태프들이 촬영 준비를 굉장히 빨리 해주고, 그 속에서 배우들도 순간 집중해서 연기를 탁 해내고 나와요. '녹두꽃'은 그런 현장이었어요."

▲ "내가 느낀 울컥한 마음, 시청자도 공감했길"

'녹두꽃'에서 조정석이 연기한 백이강은 백성들을 몽둥이질하고 수탈하던 악랄한 '거시기'에서, 전봉준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봉기하는 동학농민군 별동대장 '백이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 인물이다. 수많은 사건을 겪고 동료들의 희생을 바라보며 점차 성숙해져 간 백이강의 변화를, 조정석은 공감 가는 연기로 표현해냈다.

"제가 느끼는 울컥한 마음들이 제 입을 통해서 제 몸을 통해서 연기로 구현될 때, 보는 분들이 같이 공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거시기에서 백이강으로 거듭나면서 책임감이 커졌는데, 그걸 제가 충분히 느끼고 이해하니 자연스럽게 연기로 이어졌던 거 같아요. 연기로 누군가한테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연기하는 본인이 먼저 확실하게 공감해야 해요. '녹두꽃'은 작가님이 써준 글 자체가 제게 와 닿았고 이해하는데 수월했어요. 그래서 제가 느끼는 대로 그 지점들을 열심히 파고들어 연기할 수 있었죠. 제가 그랬기에, 시청자 분들도 백이강의 변화에 당위성을 느끼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을 거라 생각해요."

조정석

조정석은 백이강의 수많은 명대사 중, 농민군이 해체할지 계속 싸울지를 두고 혼란스러워할 때 그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던 장면을 최고로 꼽았다.

"백이강이 농민들 앞에서 연설한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겨우 몇 달이였지만 사람이 동등하니 대접하는 세상에서 살다 보니 다른 세상에서 못 살겠더라구. 그래서 난 싸운다고. 찰나를 살아도 사람처럼 살다가 사람처럼 죽는다 이 말이여'라는 대사였는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울컥울컥 해요. 백이강이란 역할과 그의 이야기가 주는 힘이 있었어요. 그게 저라는 사람, 배우 조정석한테도 전달이 많이 된 거 같아요."

'녹두꽃'의 배경이 전라도인만큼 출연진 대부분이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했다. 조정석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출신의 그가 전라도 사투리 연기를 하는 건 쉽지 않았을 터. 하지만 조정석은 "원래 전라도 출신 아닌가?"라는 오해(?)를 살 만큼 사투리 연기를 안정적으로 소화했다.

"전라도 사투리가 생각만큼 억양이나 높낮이가 심하지 않다고 여겼던 게 좋은 접근이었던 거 같아요. 감독님이 전라도 출신이라 모니터 하면서 도움 많이 주셨고, 또 황영희 선배님처럼 같이 출연한 배우들 중에도 전라도 출신이 많아 그런 분들께 자문을 구하기도 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전라도 사투리의 뉘앙스가 나오더라고요. 한 후배 배우는 제게 원래 전라도 출신이냐고 묻기도 했어요. 제 사투리 연기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보였다니 기분은 좋더라고요.(웃음)"

조정석

조정석은 연기 호흡을 맞춘 배우들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자신과 함께 이 작품의 중심을 탄탄하게 잡아준 백이현 역 윤시윤, 송자인 역 한예리, 전봉준 역 최무성에 대한 칭찬과 존경 어린 말들을 쏟아냈다.

"(윤)시윤이는 한마디로 '최고'였죠. 저희는 극 중 이현이가 마지막에 죽는다는 걸 알고 시작해서, 거기까지 가는 서사가 굉장히 어려울 거라 예상했어요. 근데 시윤이가 그걸 정말 훌륭하게 잘 해내더라고요. (한)예리는 전부터 좋아했던 배우인데, 이렇게 만나서 같이 연기해보니 감정의 폭이 큰 배우라는 걸 느꼈어요. 내재된 에너지를 드러내야 할 때는 정말 폭발적으로 쏟아내고, 꾹 참아야 할 땐 또 섬세하게 참아내요. 디테일이 좋은 배우예요. 최무성 선배님은 짧은 대사만으로도 가슴을 후비는 묵직함을 느끼게 했어요. 너무 좋았어요. 나름 저와의 코미디 합도 좋았다고 생각하고요.

▲ 여전히 연기가 너무 좋은 배우

조정석은 그동안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폭넓은 소화력을 보여 왔다. 영화 '건축학개론'과 '관상'에선 익살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질투의 화신'에서는 매력적인 로맨스물 남자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영화 '마약왕', '뺑반'의 카리스마와, 현재 개봉해서 절찬 상영 중인 영화 '엑시트'의 다채로운 모습까지, 조정석의 배우로서 매력은 한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없다.

"개인적으로 '변주'를 많이 하고 싶어요. '녹두꽃'은 배우로서 그런 변주의 장을 더 다양하게 열어준 작품이라 생각해요. 앞으로 제가 어떤 작품을 할지 모르겠는데, 계속 변주를 많이 해보고 싶어요."

조정석

변주를 좋아한다는 조정석은 단순히 장르적 변주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뮤지컬까지, 배우로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분야에서 긴 공백 없이 활약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쉼 없이 연기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은 "연기가 너무 좋아서"라는 가장 기본적이지만 확실한 이유 때문이었다.

"다행인 게, 전 연기가 여전히 너무 재밌어요. 일상에서도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상황 재연하며 연기하는 게 습관이에요. 그런 성격 탓인지 연기를 일로 삼아서도 열심히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연기를 하며 캐릭터에 대해 고민하고 분석하고, 전혀 예상지 못한 호흡들을 찾아낼 때의 희열도 좋고요."

배우 조정석의 1호 팬은 단연 '아내' 가수 거미다. 조정석이 작품을 할 때마다 재밌게 보고 어느 장면이 좋았는지, 슬펐는지, 그에게 이야기해주는 존재다. 조정석은 거미와 결혼한 후 전보다 편해진 느낌을 받는다며 마음의 안정감을 전했다.

"결혼 후 확실히 편해진 느낌은 있어요. 제가 원래 예민한 성격은 아니지만, 날이 서있거나 민감하거나 그런 부분들이 유해졌어요. 전보다 안정적인 느낌이 생긴 거 같아요."

조정석

'녹두꽃'을 마친 조정석은 영화 '엑시트'를 개봉하며 또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을 만나고 있다. '엑시트'가 개봉 4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청신호를 밝힌 가운데, 조정석은 이후 '응답하라 시리즈' 신원호 사단의 tvN 새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출연을 확정했다. 쉬지 않고 '열일'하는 조정석은 또다시 달릴 일만 남았다.

"남들한테는 짧은 시간일 수 있는데, 작품 사이사이 짧은 휴식기가 저한테는 충분히 쉬는 거예요.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끝나면, 그땐 좀 진지하게 여유 있게 쉬어볼까 생각하고 있긴 해요. 근데 그렇게 마음먹다가도 또 재밌는 작품이 들어오면 '다시 해볼까' 하는 게 배우라서, 모르죠. 그때가 되면 쉴 수 있을지 없을지.(웃음)"

[사진제공=잼엔터테인먼트]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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