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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장일이가 너무 싫었다” [인터뷰]

작성 2012.06.04 09:07 조회 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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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이 이토록 큰 사랑을 받았던 적이 있었을까.

최근 종영한 KBS 2TV '적도의 남자'(이하 적도)에서 성공에 대한 욕망 때문에 둘도 없는 친구를 벼랑으로 굴리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장일(이준혁)은 분명 악역이었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선우(엄태웅)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일을 좋아할 이유는 충분치 않았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장일을 미워하고 욕하기보다는 장일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공감하고 그에게 연민을 느끼며 장일에게 빠져들었다.

시청자들은 '멘붕 연기'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키며 장일을 온몸으로 연기한 이준혁에게 열광했고, 이준혁은 '적도'를 통해 데뷔 6년 만에 명실상부한 인기스타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이같은 높은 인기에도 불구, 최근 OSEN과 만난 이준혁은 사실 '멘붕 연기'라는 건 없지 않느냐며 시청자 분들이 장일 캐릭터에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끔 여론 몰이를 좋게 해 주신 것 같다고 겸손해했다.

“드라마가 사랑 받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시청자 여러분 덕분이었다. 시청자들이 더 솔직해 지고 보는 눈이 높아지신 것 같다. 우리 드라마는 어쩌면 굉장히 불쾌한 드라마다. 인간 욕망의 어두운 부분을 족집게처럼 집어내고 권선징악이 나뉘지도 않는다. 욕할 수도 없고 욕 안하기도 뭐하고... 멀리 할 수 있는 감정들을 동일시하고 공감하며 자신의 욕망에 대해 솔직하게 바라보니 치유가 있었던 것 아닐까.”

시청자들은 출세에 대한 욕망과 아버지에 대한 애증, 성공을 위해 친구까지 해치는 비정함으로 똘똘 뭉친 장일에게 수많은 별칭을 붙여줬다. '꽃개'(꽃미모에 개같은 성격), '야누스 리', '장일코패스'(장일과 사이코패스의 합성어), 수트발의 본좌라는 의미의 '수트 장일'이 그것. 이 중에서 이준혁은 가장 마음에 드는 애칭으로 '꽃개'를 꼽았다.

“'꽃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마음에 든다. 그렇게 충격적인 별명은 이제껏 없었던 것 같다. 또 짧으니까 함축적이고...(웃음) 이 모든 게 드라마를 재밌게 봐주셨다는 뜻이지 않나. 너무 통쾌하다. 다른 사람에게 재밌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리액션을 잘 해주면 더 신나지 않나. 잘했다고 까지 해주시니 연기자로서 너무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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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에게 장일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이준혁은 처음 장일 캐릭터 제의를 받았을 때 거절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장일 캐릭터가 너무 싫었고 정신적으로 고통을 많이 받을 것 같아 우려한 것. 하지만 그는 대본을 본 뒤 생각을 바꿨다.

“원래는 다른 작품을 하려고 준비했었는데 불발됐다. 그래서 타이밍 상 입대해야겠구나 생각했는데 '적도' 감독님께 장일 역을 제의받았다. 처음에는 못하겠다고 했다. 장일이가 너무 싫었다. 그런데 나중에 대본을 1,2부까지 보고 나서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시놉시스를 읽었을 때 러프한 느낌과는 많이 달랐다. 두 신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장일이가 선우에게 '내가 공부를 가르쳐 줄테니 네가 나를 도와라'고 말하는 부분과 수미가 부경화학 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태도를 달리 하는 부분에서 캐릭터가 명확하게 느껴졌다. 해도 괜찮겠구나 생각했다.”

이준혁의 선택은 옳았다. 이준혁은 '적도'를 통해 '이준혁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듣게 됐고, '적도'의 최대 수혜자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이준혁은 재발견이라는 말이 조금은 부담스럽다는 기색을 비쳤다.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얻었다고 해서 편해지지는 않는다. 더 열심히 해야 된다는 것을 아니까... 예전에는 이번에 잘 되면 다음은 좀 편하겠지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사실 드라마 '시티헌터' 때도 그런 말(재발견)이 잠깐 있었다.(웃음)”

이준혁이 '적도'를 통해 '재발견'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배우 엄태웅과의 시너지 효과가 컸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엄태웅은 전작들에서 선굵은 연기로 '엄포스'라 불리며 연기파 배우로 입지를 다진 상황이었고, 그런 선배 연기자와 호흡을 맞추는 것이 이준혁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엄태웅이 그만큼 프로고 '엄포스'라 불릴 정도로 완벽하다는 말이니 부담보다는 오히려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또 배우는 혼자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연기자들 뿐 아니라 팀 전체의 화합을 강조했다.

“함께 하는 연기자는 중요하다. 어떤 식으로는 영향을 주고 받으니까... 좋은 형(엄태웅) 만나서 믿고 편하게 연기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는 배우는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이라는 걸 많이 느꼈다. 한 작품이 잘 되려면 같이 일하는 연기자가 좋아야 하고, 대본이 좋아야하고, 감독님이 잘 이끌어주셔야 하고, 방송 시기가 잘 맞아야 하고, 또 언론의 평가까지 좋아야하니까...”

방송 초반 언론은 엄태웅의 연기에 찬사를 보냈다. 엄태웅은 '동공연기'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신들린 듯한 연기력으로 언론과 시청자들의 호평세례를 받았다. '시각장애인 연기는 엄태웅 전과 후로 나뉜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였다. 드라마 속에서 엄태웅과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이준혁의 입장에서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이준혁은 초반부터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왔다면 그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장일이를 처음부터 좋아하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지 않나?(웃음) 태웅 형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받았다면 잘못된 거다. 선우가 눈이 멀면서 겪는 끔찍한 상황들을 장일이 잘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열심히 하다보니 장일에게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을 기회가 온 것이다.”

그는 장일에게 처음부터 몰입하기는 쉽지는 않았다고 털어놨다. 장일은 아버지의 죄를 감추고자 세상에 하나 뿐인 친구를 죽이려 했다. 살인 미수죄를 안고 있으면서도 그 죄를 끝까지 부인하고 어떻게든 숨기려하는 장일의 모습을 이준혁은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었을까.

“4회에서 장일이 선우의 뒤통수 때린 일은 거의 살인이라고 볼 수 있다. 장일이의 죄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랬기 때문에 처음부터 차갑게 접근했다. 장일은 지은 죄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가 죽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모습이 마치 동물같이 느껴졌다. 마치 도마 위의 생선 같은 느낌. 시청자들도 드라마가 비극이 되리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고 또 그렇게 보고 계실 테니 생명체에 대한 측은지심이 느껴졌으면 했다. 절대 용서 받을 수 없는 행동을 했지만 인간의 욕망 그 자체로 바라봤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준혁은 도마 위의 생선 같은 장일의 처절함, 비극을 완벽하게 표현해낼 수 있었던 비결로 감독의 연출력을 꼽았다. 카메라 블록킹이 치밀해 감정을 섬세하게 가져갈 수 있었고, 큰 행동을 하지 않아도 카메라가 인물을 따라 줬기 때문에 행동을 신경 쓰지 않아도 표정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는 것. 그는 감독님이 좋은 그림을 그리시면 그 안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는 말로 제작진과의 찰떡 호흡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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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신으로는 옥상신을 꼽았다. 장일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안 선우가 그를 옥상 난간으로 밀며 목숨을 위협하는 장면이다.

“그 때 정말 죽을 뻔 했다. 안전장치도 없었다. 태웅 형에게 100% 의지했다. '그 때 널 확실히 죽였어야했다 선우야...'라고 하는 대사가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선우야'는 작가님께 말씀 안 드리고 추가했다. 그 정도(대사 추가)는 무리가 안 되는 선이라고 생각했다. 대사로 표현되지 않는 미묘한 마음 속 대사들 같은 게 있지 않나.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선우야'가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시청자들이 보고 느끼는거니 내가 말하는 건 무의미하지만 그 미묘한 의도가 잘 전달됐으면 했다.”

'로맨틱 코미디'가 대세인 요즘, 이준혁에게 달달한 로맨스 연기를 하고 싶진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장르적인 것인 유행이고 또 시청자들의 취향도 끊임없이 변하니 장르에 개의치 않고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속내를 비쳤다.

“각자의 영역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어떤 역할이든 분명 노력은 해야겠지만 아이돌 출신 연기자나 예쁜 동안 연기자들도 많은데 내가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휴그랜트와 크리스찬 베일 모두 좋은 배우지만 두 배우가 가는 길은 매우 다르다. 내 영역을 구축하고 싶다. '로코'가 대세라고들 하지만 나는 인간 내면에 대한 이야기가 좋다. 멜로도 드라마 '연애시대'처럼 현실적인 게 좋다. 시청들이 너무 멋진 사람들이 나오는 멜로물을 보면서 판타지를 갖고 현실에 실망하는 것 보다는 현실적인 것을 보고 치유가 됐으면 좋겠다. '연애시대'를 보고서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준혁은 곧 입대를 앞두고 있다. 엄태웅은 얼마전 방송 인터뷰에서 “이준혁은 어리고 잘생겼지만 드라마 끝나면 군대에 간다”는 짓궂은 멘트로 이준혁에게 입대 축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이준혁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그는 “저 군대 갔다 오면 태웅이 형은 불혹인데...”라는 농담을 던지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의 미소에서는 입대에 대한 불안함이나 아쉬움보다는 자신을 오랜 기간 응원해준 팬들에 대한 미안함이 엿보였다.

“나는 시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돈으로 시간을 사고 싶을 정도로 내게는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쪼개 20시간(20부작) 가까이 '적도'를 봐주셨다. 어떤 이야기를 20시간 기다리며 들어주기란 쉽지 않다. '적도'가 아닌 기존의 제 작품을 봐주셨던 분들이라면 더 많은 시간 할애하셔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신 거겠지. 그런 부분에 대해 너무 감사하고 신난다. 정말 기쁘고 감사하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OSEN 제공)
※위 기사는 SBS의 제휴기사로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OSEN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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