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8일 방송된 '불타는 뭄바이-테러에 갇힌 한국인들'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올데이 프로젝트의 영서, 펜타곤의 후이, 배우 문성현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혼돈의 뭄바이
때는 2008년 11월 26일. 이곳은 인도 뭄바이야. 일단 사진을 하나 보여줄게.
뭄바이는 무려 1,300만이 거주하는 인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야. 인도 중앙은행, 인도증권거래소가 있는 인도 경제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야. 미국으로 치면 뉴욕과 비슷한 느낌이지. 그래서 이 뭄바이를 찾는 여행객만 연간 수백만 명이 넘어.
당시 스위스에서 살고 있었던 다라 황은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인도에 처음으로 방문했어.
그녀는 인도에서의 마지막 날을 남자친구와 함께 보내고 있었어. 바로 이곳에서.
1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뭄바이의 명소이자 최고급 호텔. 타지마할 호텔이야. 그 명성에 걸맞게 비틀즈, 마이크 잭슨, 버락 오바마 등 수많은 셀럽과 정치인이 방문했대. 뭄바이의 랜드마크 같은 곳으로 외국인 여행객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곳이야.
다라 황 커플은 인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기기 위해서 호텔 근처에 있는 레오폴드라는 카페로 향했어. 이곳은 뭄바이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중 하나야. 여기 또한 외국인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래. 이날도 손님들이 꽉 차서 떠들썩하고 활기 넘치는 분위기였다고 해.
다라 황 커플이 주문한 음식을 막 먹으려던 때야. 뭔가 쨍하고 깨지는 것 같은 날카롭고 요란한 소리가 들렸어. 카페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가, 금방 사람들이 다시 웃고 떠들기 시작해. 무슨 소리가 들려서 갑자기 긴장했다가 별일 아닌 것 같으니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어. 그런데 잠시 후,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져. 그녀에게 직접 들어볼게.
"떠들썩하던 실내가 몇 초간 조용해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탕, 탕, 탕, 탕, 탕' 소리가 연달아 들렸고, 그제야 '아, 뭔가 일이 일어났구나' 싶었죠. 저는 그대로 얼어붙었고, 존(남자친구)이 의자에 앉아있던 저를 바닥으로 밀쳤어요. 완전히 아수라장이었어요. 총격을 당하는 순간에 소지품을 챙길 생각은 아예 안 들더라고요."
-다라 황, 당시 26세 여행객
괴한 두 명이 카페에 들어와서 총을 쏜 거야. 다라 황과 남자친구는 황급히 테이블 밑에 엎드렸어. 엎드린 채 보니 남자친구 다리에서 피가 흘러. 아무래도 파편을 맞은 것 같아. 근데 더 무서운 건, 그 순간에도 괴한들이 계속 총을 쏘고 있다는 거야. 그 순간 다라 황은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해'라는 생각뿐이었대.
"그때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아요.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했죠. 그야말로 공황 상태였어요."
-다라 황, 여행객
다라 황 커플이 앉은 테이블은 다행히도 출입문에서 가까운 곳이었어. 다라 황과 남자친구는 일어나서 무조건 밖으로 달렸어.
"거리로 뛰어나가는데 신발이 벗겨졌어요. 그래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죠. 맨발로 달렸어요. 계속 달릴 수 밖에 없었어요. 길에 유리조각이 있어서 밟았다고 해도 그냥 계속 달렸을 거예요. '안전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생각뿐이었어요. 계속 달려야 할지, 낯선 도시라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호텔로 돌아가야 할지…"
-다라 황, 여행객
다라 황 커플은 우선 자신들이 묻고 있는 타지마할 호텔로 뛰어갔어. 정신없이 호텔에 도착하자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만신창이가 된 다라 황 커플을 의아하게 쳐다봐. 다행히 이곳 타지마할 호텔에는 아무 일이 없는 것 같아. '하, 살았다' 안심하며 다라 황 커플이 로비에서 턱까지 차오른 숨을 돌리던 그때, 갑자기! 카페에서 들었던 그 총소리가 지금 호텔에서도 들려. 총격을 피해 도망쳐 왔는데 호텔에서도 총격이 벌어졌어. 평범한 하루가 끝나갈 시간. 지금 이곳 뭄바이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해.
▲ 인도판 9.11 테러
그날 상황을 보여줄게.
"인도 뭄바이 중심가가 괴한들의 공격으로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우리 시각으로 오늘(27일) 새벽 2시 반쯤 뭄바이 시내 철도역 대합실과 호텔, 식당 등지에 괴한들이 난입해 시민과 관광객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자동 소총 등으로 무장한 테러범들은 고급 호텔, 식당 등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가해 지금까지 80여 명이 숨지고 250여 명이 다쳤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중
2008년 11월 26일, 인도 뭄바이에서 충격적인 테러가 일어났어. 혹시 인도 뭄바이 테러 들어봤어? 아니면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는 들어봤지? 이날 테러를 '인도판 9.11'이라고 얘기해. 무려 60시간이나 이어진 무차별 공격. 그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생사에 갈림길에 서게 돼. 그리고 그중에는 다수의 한국인도 있었어.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게.
"주 뭄바이 총영사관 영사 강기택입니다. 원래 제 소속은 경찰청이고요. (경찰청에서) 전 세계의 재외 공관 대사관이나 총영사관 등에 사건 사고, 대테러 등을 담당하는 영사를 파견하게 됩니다. 그때 선발이 돼서 인도의 뭄바이로 파견을 간 상태였습니다. 그날 저희가 한-인도 기업인 친선협회를 출범했습니다. 당시에 인도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 공관 차원에서 그런 모임을 만들어주고, 네트워킹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행사를 개최했었죠. 타지마할 호텔이 뭄바이의 해변가에 있는 5성급 호텔 중에서 가장 명망이 있는 호텔이었고, 그 행사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공관원의 한 명으로 참석했던 겁니다."
-강기택, 당시 주 뭄바이 총영사관 영사
테러가 발생한 날, 행사에 참석한 한국인들과 다라 황이 같은 장소에 있었던 거야. 바로 타지마할 호텔에. 호텔은 '팰리스 윙'이라고 불리는 구관과 '타워 윙'이라고 불리는 신관으로 이루어져 있어. 두 건물은 안에서 서로 오갈 수 있게 되어 있어.
호텔의 객실 수는 500개가 훌쩍 넘어. 그러니까 투숙객, 방문객, 직원까지 더하면 천여명이 넘는 사람이 지금 이 호텔에 있는 거야. 뭄바이 테러가 발생한 시간 밤 9시 30분경. 카페에 이어 호텔에서도 총격에 휘말린 다라 황 커플은 일단 눈앞에 보이는 아무 문으로 뛰어들어갔어. 바로 여기.
로비가 있는 G층, 이곳에 위치한 레스토랑이었어. 그러면 다라 황 커플이 뛰어들어간 그 레스토랑 안에 상황은 어땠을까? 레스토랑 안에선, 어떤 남녀가 프로포즈 중이었어. 아직 호텔에서 벌어진 총격 상황을 몰랐던 거지.
"그때 어떤 커플이 있었는데 장미 꽃잎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놓은 거예요. 사람들이 전부 멈춘 채 저희를 쳐다봤어요."
-다라 황, 여행객
다라 황 커플의 모습에 어리둥절해 하던 레스토랑 손님들도 곧 사태를 알게 돼. 다들 여기저기 숨고 난리가 나.
"총성은 계속 들리는데 얼마나 가까운지, 누군지, 몇 명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어요. '여기서 죽는 건가? 이게 끝인가?' 싶었어요."
-다라 황, 여행객
로비가 있는 G층에는 몇 개의 레스토랑, 그리고 바가 있었거든. '꼬꼬무'는 당시 바에 있었던 사람도 어렵게 찾을 수 있었어. 어쩌면 이 호텔에서 일어난 테러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일 거야.
"저는 앙쿠르 차블라입니다. 저는 2008년에 타지마할 호텔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하버' 바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소리가 들려서 무슨 일인지 보려고 '하버' 바 밖으로 나갔어요. 그런데 밖으로 나가보니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총을 쏘고 있었고, 로비 바닥에 사람이 쓰러져 있던 것도 어렴풋이 기억나요. 배낭을 메고 총을 든 사람이 뛰어가는 것도 봤어요."
-앙쿠르 차블라, 당시 타지마할 호텔 직원
당시 차블라는 4개월 차 새내기 호텔리어였어. 쉬는 날임에도 휴무를 반납하고 일을 하다가 테러에 휘말리게 된 거야. 차블라는 급히 손님들을 일단 이동시켰어. 바 안에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거든. 로비 쪽이 공격당하고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안전한 위층으로 가려고 한 거야. 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위층에 있는 '와사비'라는 일식 레스토랑으로 올라갔어. 저 호텔 상황 어땠을지 상상이 돼? 당시 CCTV를 보여줄게.
호텔에 들어온 테러범은 두 명이었어. 평범한 여행객처럼 자연스럽게 들어왔다가, 갑자기 총을 꺼내서 쏘기 시작한 거야. 그리고 이 시각, 호텔에 또 누가 있지? 행사에 참석한 한국인들. 총 몇 명쯤 됐을까?
"당시에 총영사관하고 저희 코트라가 같이 첫 창립총회를 개최를 했고요. 현지에 계시는 한국 기업인들 30~40명하고 인도 기업인들 80여 명들 목표로 창립총회 개설을 하는 행사였어요. 9시 정도에는 이미 식사가 거의 다 끝나고 계속 환담을 나누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전체 인원 중 식사하시고 먼저 출발하신 분들이 한 15분 정도 됐습니다."
-김정현, 당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직원
행사가 끝나갈 무렵이라 대략 20명 정도의 한국인이 호텔에 남아 있었던 상황이야. 바로 이곳 신관 19층에.
연회장에 있는 한국인들이 처음 이상함을 느낀 건 창 밖에서 '팡, 팡' 하는 소리가 들렸을 때였다고 해. 정현 씨는 처음엔 '또 폭죽 터뜨리나 보네'라고 생각했대. 인도는 결혼식, 축제 등 행사 때마다 폭죽을 그렇게 많이 터뜨린대. 그런데, 몇 사람이 행사장으로 다급히 뛰어들어와.
"There was a shooting! 총격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얼마 후, 연회장 안 사람들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가 빗발치듯 들어와. 이런 문자였어.
"테러범이 호텔 로비를 공격했대."
"뭄바이 여기저기에서 총을 쏘고 난리야."
"사람들을 무차별로 죽이고 다닌대!"
긴급 속보를 본 지인들, 총영사관에 남아있는 직원 등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소식을 전한 거야. 사람들은 너도나도 전화를 하기 시작해.
"어 여보, 난데! 당신 괜찮아? 거기 문제없어? 애들은?"
"밖에 나가지 말고 안전하게 있어야 돼! 알겠지?"
자신들의 상황보다 인도에 함께 온 가족이 먼저였던 거지.
"대부분 가족이랑 인도에 와서 현지에 있으니까 가족의 안부를 먼저 묻는 거죠, 나보다. 나의 안전보다 가족의 안전을 챙기려고 전화를 돌리시는 모습이 좀 기억나요."
-강기택, 당시 주 뭄바이 총영사관 영사
하지만 강기택 영사는 가족에게 전화를 못했다고 해. 아니, 하지 않았다고 해. 총영사관 영사로서 더 급한 일이 있는 거야. 강 형사는 정보 파악을 하기 위해서 이곳저곳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어. 총영사관과 대사관에 이 사태를 알리고, 인도 대테러 국장에게도 전화를 해. 그런데 받지를 않아. 얼마 후, 한 외국 공관원을 통해서 알게 된 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어.
"(그 인도 대테러 국장은) 제가 테러 관련해서 교류를 하던 분인데, 통화를 하려고 했는데 못했어요. '총을 맞고 죽었다'라는 전화를 제가 받았죠. 처음에 이제 길거리에서 테러리스트랑 조우해서 피격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강기택, 당시 주 뭄바이 총영사관 영사
사태를 진압해야 할 대테러 국장이 사망했다는 거야. 상황은 아주 심각해. 도대체 몇 명의 테러범들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는 걸까? 자, 시간을 조금 돌려볼게.
11월 26일 저녁 8시 30분경. 테러 발생 1시간 전이야. 뭄바이 남부 해변에 고무보트 2대가 도착해. 누가 타고 있을까? 맞아 테러범들이야. 총 10명이야. 테러범의 사진을 보여줄게.
테러범들의 나이는 20살에서 28살 사이였어. 이들은 파키스탄에 기반을 둔 무장단체 '라쉬카르 에 타이바' 소속이야.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 들어온 적 있지? 활동 목표는 다르지만 극단주의 이념을 내세운 테러 조직이라는 점은 비슷해. 이 무장단체는 지금 뭄바이를 공격해서 인도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려고 하는 거야. 바로 이렇게.
10명의 테러범은 2명씩 5팀으로 나눴어. 그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무차별 공격을 시작한 거야. 레오폴드 카페, 그리고 타지마할 호텔. 그리고 또 어디를 공격했을까?
'차트라파티 시바지'라는 기차역이야. 이곳의 하루 이용객은, 약 65만 명이야. 기차역으로 간 2명의 테러범은 사람들이 가득한 대합실에 수류탄을 던졌어. 그리고 테러범들은 서로 등을 맞댄 채 빙글빙글 돌면서 사방을 향해서 무차별 총을 쐈다고 해.
이날 이 기차역에서만 60여 명이 사망을 하고 100명이 넘게 부상을 당했어.
다른 테러범들이 향한 곳, 또 어디였을까? 바로 또 다른 호텔이었어. 타지마할 호텔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여행객이 많이 찾는 곳이야. 그 곳에서 테러범들은 사람들이 보이는 족족 총을 쏘고 확인사살까지 했어.
그리고 마지막 테러범들이 향한 곳은 '나리만 하우스'라고 불리는 곳인데, 주로 유대인들이 이용하는 건물이었어.
자, 공격 장소 이 다섯 군데가 전부일까? 아니. 한 곳에서 상황이 끝나면 다른 장소로 이동하면서 공격을 이어가. 심지어 이동할 때 이용한 택시는 시한폭탄을 설치해서 폭발시켰어.
이 뭄바이 테러는 기존의 다른 테러들과는 양상이 달랐다고 해. 대부분의 테러는 폭탄 테러, 자살 테러 등 한 번에 폭발로 상황이 끝나. 그런데 뭄바이 테러는 최대한 오랜 시간 최대한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는 거야. 지금 뭄바이가 핏빛으로 물들고 있어.
▲ 테러에 갇힌 한국인
그런데 카페를 공격했던 팀이 이동한 장소가 심상치가 않아. 두 명의 테러범이 타지마할 호텔로 합류를 했어. 그렇게 이 호텔에 무려 네 명의 테러범이 있게 된 거야.
호텔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일단 19층 연회장에 있던 대한 무역투자진흥공사 직원인 정현 씨는, 종이와 펜을 들고 한국인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어. 연회장에 남은 한국인들의 이름과 인원을 파악하려는 거야. 연회장에 남은 인원은 21명. 이렇게 이름과 인원을 파악하는 이유는 뭘까? 만에 하나 잘못될 경우 명단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행사 참석자 명단을 보며 전화를 걸기 시작해. 먼저 연회장을 나간 사람들의 안위를 체크하려는 거야. 그런데 정현 씨는 유독 걱정되는 한국인이 따로 있었다고 해.
"연락이 안 되는 분들이 좀 있었어요. 4명 정도가. 그분들 가신다고 할 때 1층 로비까지 제가 바래다 드리고, '앞으로 좀 잘 좀 부탁드립니다' 이런 얘기하고 저는 올라왔거든요. 로비에서 저는 올라오고 얼마 안 지나서 총소리 들리고 그런 일이 발생한 거죠. 그래서 그분들이 되게 걱정이 되더라고요."
-김정현, 당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직원
처음에 테러범이 공격을 시작한 곳이 어디라고 했지? 맞아, 로비야. 바로 그 로비에 한국인 4명이 더 있었던 거야. 정현 씨는 그들 중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 불안한 마음에 손이 떨려와. 다행히 전화가 연결됐어.
"저 대한무역공사 직원입니다. 지금 어디세요? 호텔, 나가셨죠?"
"저 아직 호텔이에요. 지금 구관 커피숍에 있어요."
"괜찮으신 거예요? 거기 몇 분 계세요?"
"지금 저까지 총 4명 숨어있어요. 그리고 테러범들이 지금 이곳에 있어요."
당시 상황을 직접 들어볼게.
"그러니까 행사 끝나고 저도 숙소가 있는 푸네로 돌아가야 하는데, 4명이 '그럼 커피 한 잔 마시고 가자', '바다를 바라보면서 커피 한잔 마시고 올라갑시다' 하고 저희는 커피숍으로 갔던 거죠."
-현대식, 당시 차량부품 업체 법인장
현대식 씨를 포함한 한국인 4명은 여기, 구관 커피숍에 있어. 이들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그 순간, 커피숍 유리문이 와장창 박살나고, 총알들이 날아와서 커피숍 벽에 빠바박 박혔대. 사람들은 커피숍에 있는 대형 기둥 뒤로 모두 엎드렸어. 순간 쥐죽은 듯한 정적이 흐르고, 여러 명의 발소리가 들려. 테러범들이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려는 것 같아. 그러자 한국인 4명이 기둥 뒤에서 슬며시 나와서 문쪽으로 향했어.
"커피숍 문이 휑하잖아요. 누군가라도 들어오면 안되니까. 우리가 거기 엎드린 상태로 '저 문 저렇게 뚫려져 있는데, 저거 어떻게든 막아야 되는 거 아니야? 바리케이드 쳐야 되는 거 아니야?' 의자하고 탁자를 날라서 거기다 바리케이드를 쌓았어요. 일단은 그냥 무단으로 들어오지는 못하게. 만약에 (그때 테러범이) 내려온다면 만날 수 있었죠."
-현대식, 당시 차량부품 업체 법인장
지금 내 눈에 테러범이 보이지 않는 거지, 그 앞에 나갔다가 어디서 어떤 총알이 날아올지 누가 알아.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대. 하지만 커피숍에는 자신들만 있는 게 아니었어. 현지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20명도 넘게 있었대. 어떻게든 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움직인 거였어. 게다가 대식 씨가 한 일은 또 있어. 수첩과 펜을 들고,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 대식 씨는 총소리를 듣고 이걸 카운트했어.
"3층에서 1층으로 쐈다, 뭐 몇 발 쐈다, 객실에서 쏘는 것 같은 총이 몇 발이라는 걸, 정확히는 아니지만 들리는 걸 짐작으로 계속 적었어요. 실탄을 구하는 게 쉬운 건 아니니까. 테러범들이 AK소총 갖고 왔으면, 30발이 든 탄창으로 서너 개, 너덧 개 정도 갖고 왔으면, 한 100발 정도면 어떤 결론이 나지 않겠냐, 끝나지 않겠냐, 그 생각으로 적고 있었죠."
-현대식, 당시 차량부품 업체 법인장
하지만 이걸 기록하는 일은 굉장히 괴로웠다고 해. 이 총성들은, 사람을 쐈다는 의미잖아. 커피숍 위층으로 모두 객실층이야. 테러범들이 호텔의 객실을 돌아다니면서 무차별 살상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야. 총성이 울릴 때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함께 들려와. 당시 처참했던 광경이 CCTV에 고스란히 담겨있어.
이상한 소리에 복도로 나온 손님. 객실로 도망치듯 들어가지만, 이를 발견한 테러범들이 총을 마구 쐈고 결국 손님은 쓰러졌어. 이들은 객실을 돌아다니며 손님들을 사살했어. 테러범들의 잔혹함은 상상 이상이었어. 테러범들과 테러 지시자가 통화한 실제 음성이 있어. 그 내용이 뭔지 알려줄게.
테러 지시자: 그래, 해! 그들을 일으켜 세운 다음, 뒤통수에 총을 쏴! 실행해! 내가 다 듣고 있다고 해!
테러범: 외국인 3명을 붙잡았습니다. 그중에는 여성도 있습니다.
테러 지시자: 전부 죽여. 총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전화기를 끊지 말고 계속 켜둬.
테러 시작부터 이 지시자는 전화로 현장에 있는 테러범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던 거야. 그 내용은 한없이 잔인했고 그들의 행동은 조직적이고 치밀했어. 그렇게 현대식 씨가 있는 구관 커피숍 위 객실층에서는 간간이 총성과 비명소리가 계속되고 있어.
그런데 단발로 들려오던 총성이 갑자기 빗발치듯 들려와. 경찰이 온 거야. 경찰은 로비에서 위로, 테러범은 위층에서 아래로 총을 쏘고 있어. 그리고 그 사이에 대식 씨를 포함한 한국인 4명이 있어. 그런데 테러범들이 이번엔, 경찰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했어. 그 순간 대식 씨는 수첩에 열심히 적던 총소리 카운트를 그만뒀다고 해.
"얘네들이 수류탄까지 갖고 있는 거 보면, 카운트하는 게 의미가 없다. 이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게 이제 직감을 했죠."
-현대식, 당시 차량부품 업체 법인장
이제 뭄바이 경찰만으로는 테러를 진압할 수가 없는 상황이야. 그래서 인도 정부는 블랙캣을 출동시키기로 결정했어. 검은 복장에 검은 복면을 써서 블랙캣이라고 불리는 이 팀은, 정예 요원들로 구성된 대테러 부대야. 근데 문제가 있어. 이 부대가 인도의 수도 뉴델리 근처에 있다는 거야. 뉴델리와 뭄바이, 무려 1,400km가 떨어져 있어. 테러 진압에 곧바로 투입하는 건 어려운 상황이지. 이런 상황에서 호텔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와사비 레스토랑에 있던 호텔 직원 차블라는 지금은 여기 없어. 지금 차블라는 손님들을 데리고 으슥한 복도를 걷고 있어. 이곳은 직원 전용 통로야. 호텔에는 손님이 주로 사용하는 복도도 있지만, 서비스를 위해 직원들만 다니는 전용 통로가 있거든. 이 통로를 통해 호텔에서 가장 은밀한 공간으로 이동 중이야. 어디로? 직접 들어볼게.
"챔버스는 개인 회원제 클럽이기 때문에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챔버스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어요. 입구가 크거나 화려하지도 않아요. 문 위에 챔버스라고 크게 적혀 있지도 않아요. 그냥 돌아다니면서는 찾기 어렵습니다."
-앙쿠르 차블라, 당시 타지마할 호텔 직원
호텔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 '더 챔버스'라는 곳으로 손님들을 이동시키고 있는 거야. 호텔의 구조를 잘 아는 직원들만 찾을 수 있는 곳, 바로 신관에 있어. 그렇게 호텔 내 가장 안전한 대피 장소로 200명이 넘는 손님이 모이게 돼.
▲ 악몽의 타지마할 호텔
그런데 여기서 좀 의문 들지 않아? 호텔의 구조를 가장 잘 아는 직원들은 테러범을 피해서 호텔을 빠져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당시 호텔 총주방장이었던 헤먼트 오베로이 셰프가 그곳에서 가장 선임자였는데, 그분이 앞장서서 매니저들에게 상황을 설명했어요."
-앙쿠르 차블라, 당시 타지마할 호텔 직원
뭄바이 테러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 '호텔 뭄바이'(2018)에 이 이야기가 담겨 있어. 이 영화에서 호텔의 총주방장은 "직원용 뒷계단은 안전하다. 하지만 손님들을 호텔에 갇혀 있다. 지금 떠나도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고 직원들에게 말해. 그러자 한 직원은 "전 35년 일했고, 여기가 제 집입니다"라며 호텔에 남겠다는 의지를 밝혀. 그러자 다른 직원들도 "저도 남겠어요"라며 손님들을 두고 떠나지 않겠다고 해.
"(탈출을) 원했다면 가능했겠죠. 저희는 뒷길도 알고, 비상구 위치도 알고 있었으니까요. 누군가 정말 도망치고 싶었다면 뒤쪽으로 호텔을 빠져나갈 수 있었죠. 그리고 아무도 뭐라고 안 할 테니 자유롭게 나가도 좋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하지만 모두가 함께 남아 손님들을 최대한 돕고자 했던 것 같아요. 저희도 당시에 정말 죄송한 마음이었어요. 물론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요. 손님들이 그런 상황에 놓였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손님들을 두고 떠난다는 생각은 아예 들지도 않았어요."
-앙쿠르 차블라, 당시 타지마할 호텔 직원
레스토랑에 숨어있던 여행객 다라 황은 호텔 직원들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고 해. 두려움에 떨며 힘들어하는 손님들에게 직원들이 이걸 건넸대.
물수건이야. 머리에 얹을 수 있도록 차가운 물수건을 만들어준 거야. 이뿐만이 아니야. 갇혀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샌드위치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건넸어. 그리고 손님들의 상태를 세심히 살피면서 "걱정 마십시오. 다 괜찮을 겁니다", "손님을 지키는 게 저희의 의무입니다"라는 말을 전해.
"직원들은 정말 세심하게 저희를 돌봐줬어요. 그렇게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손님을 돌보는 게 정말 대단했어요.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었어요. 그냥 스스로 한 거예요."
-다라 황, 여행객
차블라 또한 챔버스에서 손님들을 챙겼어. 손님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아주 침착하게 말이야. 하지만 직원들만 있는 뒤편 공간에서는 몇 번이고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불안감을 삼켰다고 해. 이렇게 모두 구조를 기다리며 불안한 밤을 보내고 있어.
테러 발생 3시간째. 시간이 갈수록 테러범들의 행동은 극으로 치달아. 테러범과 테러 지시자가 아주 끔찍한 계획을 실행해 옮기려 해.
테러 지시자: (구관) 최상층 객실에 불을 질러라. 객실을 비운 뒤 불을 질러라. 영웅이여, 자네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거다. 모두 아래층으로 내려오게 만들어라. 아직 불을 지르지 않은 건가?
테러범: 네, 지금 실행중입니다. 곧 불이 난 걸 보게 될 겁니다.
테러 지시자: 좋다. 곧 불이 나는지 지켜보겠다.
"(신관) 19층에서 내려다보면 보이거든요. 불이 이렇게 나서 그걸 봤죠."
-김정현, 당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직원
"실내에서 불길 소리가 들렸어요. 바람에 담요 펄럭이는 듯한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죠. 불에 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그 호텔 안에 있었으니까요."
-다라 황, 여행객
호텔 상황은 실시간으로 악화되고 있어. 테러범들이 방화를 하고 수류탄을 여기저기 투척하자, 폭발음과 함께 건물 전체가 진동해. 19층 연회장에 있던 정현 씨는 '9.11 테러 때처럼 건물이 무너지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대.
"건물이 약간 진동이 있을 정도의 느낌이 있었고,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 9.11 테러가 지나고 나서 있었던 일이니까. 우리가 높은 곳에 있는데 불이나 폭탄이 터지는데, 무너지는 거 아닌가..."
-김정현, 당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직원
한 객실 손님은 유서를 썼다고 해. 그리고 욕실에 들어가서 헤어캡을 가지고 나왔어. 만약 잘못된다면 가족에게 전해질 유서에 피가 묻지 않기를 바랐다는 거야.
그런데 21명의 한국인이 있는 신관 19층 연회장의 분위기가 지금 심상치가 않아. 다들 조용하지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 소화기를 든 사람, 신을 벗고 맨발인 사람도 있어. 당시 정현 씨가 19층 연회장을 직접 촬영한 영상을 보여줄게.
회의를 하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 탈출을 하려는 거야. 사실 이날 저 19층 연회장에는, 다른 곳에서 합류한 인원들이 있었어. 그중 좀 특수한 사람들이 있었던 거야. 바로 이 사람들.
기업인, 정치인, 셀럽, 국제 행사의 경호를 담당하는 전문 경호원이야. 이들은 인도에서 열리는 크리켓 대회 경호를 위해서 남아공에서 방문을 한 거였대. '꼬고무'가 취재할 때 이들에 대한 얘기가 참 많이 나왔거든. 경호팀이 탈출 과정에서 큰 활약을 했다는 거야.
"경호를 담당하는, 덩치도 좋고 훈련된 사람들이었는데, 그 사람들하고 같이 회의도 하고 그랬는데."
-강기택, 당시 주 뭄바이 총영사관 영사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한데요. 그분들이 경험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의지를 하게 되더라고요."
-김정현, 당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직원
'꼬꼬무'는 경호팀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어. 그래서 수소문을 해서, 이들을 찾았어.
"안녕하세요. 저는 페이즐 네이글입니다. 당시 저는 '챔피언스 리그 크리켓 토너먼트' 보안 총괄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게 저희가 하는 일의 본질입니다. 저희 일이 그런 거예요.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고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거죠. 다른 선택지는 없었어요. 오직 '모두 함께 이곳을 탈출한다'는 목표 뿐이었죠. 국적이 어디든, 누구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페이즐 네이글, 당시 인도 크리켓 대회 경호팀
그런데 테러범들이 장악한 호텔에서 어떻게 탈출하려는 걸까. 새로 합류한 사람까지 포함해서 연회장에 있는 인원은 무려 100명이 훌쩍 넘어. 이들은 모두 탈출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생사를 넘나드는 숨 막히는 탈출 이야기가 펼쳐질 거야.
▲ 호텔 탈출 작전
경호팀은 연회장의 조명을 전부 낮추고, 사람들을 창과 문에서 떨어진 중앙으로 모이게 했어. 그리고 비상계단을 막고 엘리베이터를 통제했어.
"일단 가장 먼저 해야할 건, 저희가 있는 19층으로 아무도 올라오지 못하게 막는 거였어요. 그 층 전체를 봉쇄해야 했죠. 가장 쉬운 방법은 비상계단을 막는 거였어요. 그래서 팀원 리건과 다른 동료 한 명이 가구로 계단 입구를 막았어요. 그리곤 저희가 타고 올라온 엘리베이터 2대를 통제하기 시작했는데, 엘리베이터 1대를 19층으로 부른 뒤, 내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엘리베이터 문 사이에 의자를 끼워서 내려가지 못하게 했어요. 그러면 엘리베이터 1대만 작동하게 되죠. 그렇게 되면, 그 1대의 층수를 보면서 외부인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파악할 수 있게 돼요. 그렇게 팀원 2명을 거기에 배치했습니다."
-페이즐 네이글, 당시 크리켓 대회 경호팀
이렇게 연회장을 최대한 안전하게 만들고 탈출 계획을 세워. 탈출로는 직원들이 주로 사용하는 비상계단.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소화기와 생수를 챙기고, 여자들은 안전을 위해 높은 구두를 벗게 해. 그러면 이제 그 비상계단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될까? 혹시라도 계단에서 테러범을 만날 수도 있으니, 테러범들의 위치 확인, 탈출로의 안전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해.
경호팀과 한국인들은 정보 파악을 위해서 모든 채널을 총동원했어. 이때 여기저기 전화를 하던 강기택 영사에게 희소식이 전해졌어. 현재 테러범들은 구관 쪽에 있는 상황이야.
"그때 공유 받았던 건, 구관과 신관을 잇는 연결 통로를 경찰이 장악했다는 거였거든요. 구관과 신관은 확실하게 경찰력으로 분리가 됐다."
-강기택, 당시 주 뭄바이 총영사관 영사
곧바로 경호팀은 호텔 보안 책임자에게 연락해. 크리켓 선수들이 이 호텔을 숙소로 사용할 예정이어서 그전부터 호텔 보안팀과 소통을 해왔었거든. 호텔 보안 책임자에게 "비상계단을 통해서 탈출을 하려고 하는데 인원이 많아서 안전한지 확인이 필요하다. 혹시 19층까지 좀 올라와 줄 수 있냐"고 요청했어.
"수닐(보안 책임자)이 무사히 올라올 수 있다면, 반대로 저희가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는 뜻이 되겠죠."
-페이즐 네이글, 당시 크리켓 대회 경호팀
과연 보안 책임자는 무사히 올라왔을까? 5분, 10분, 시간이 흐리던 바로 그때. 가구로 막아놓았던 비상계단 문을 누군가 두드려. 호텔 보안 책임자야. 탈출 가능성에 청신호가 켜진 거지.
자, 이제 탈출 시작이야. 무려 100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가장 마지막에 연회장 구석구석을 살피는 사람은 강기택 영사야.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영사로서, 강영사는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후 연회장을 마지막으로 빠져나가. 구관과 신관 사이의 길목이 차단됐다고 하지만, 사태는 언제든 악화될 수 있어. 대규모 탈출이 들키는 순간 테러범들이 무리를 해서라도 신관으로 진입을 할 수가 있으니까. 강영사는 이런 생각을 했대.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그건 나여야 한다… 그런데 그건 저만의 마음가짐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소방관이든 군인이든, 국민을 지키는 걸 소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흔히들 하는 생각의 결이라고 저는 믿는 편입니다."
-강기택, 당시 주 뭄바이 총영사관 영사
그런데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탈출하고 있는데,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아. 그날의 탈출 현장을 보여줄게.
차분하고 질서정연한 모습이야. "먼저 내려가겠다" "빨리 좀 가라" 재촉하는 모습이 전혀 없어. 한국, 인도, 미국, 프랑스, 태국 등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모두 한마음 한뜻이야. 최대한 조심해서 움직이자, 우리 모두 다 함께 꼭 살아남자… 그렇게 15층, 10층, 5층. 경호팀은 몇 층씩 미리 내려가 안전을 확인한 뒤 다시 올라와서 사람들을 인솔했어. 그리고 3층, 2층, 1층. 드디어 눈앞에 밖으로 나가는 문이 보여. 그런데, 바로 나갈 수는 없어.
"또 다른 문제가 생겼어요. 밖으로 곧장 나갈 수 없었어요. 건물 안에는 테러로 인해 사람들이 갇혀 있었고, 건물 밖에서는 경찰과 군인이 테러범을 가려내려고 진을 치고 있었어요. 그래서 문을 열고 무작정 나갔다간 테러범으로 오인 사격 당할 수 있었거든요."
-페이즐 네이글, 당시 크리켓 대회 경호팀
이들은 밖을 향해 하얀 손수건을 흔들었어.
"'항복하겠다, 시키는 대로 하겠다'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직원에게 흰 손수건을 주며 경찰과 군인에게 보여주라고 했어요."
-페이즐 네이글, 당시 크리켓 대회 경호팀
그렇게 테러 발생 5시간 만에, 드디어 한 사람씩 호텔 밖에 땅을 밟게 돼. 호텔 밖으로 나온 그 순간 기분이 어땠을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새벽 공기, 시원한 공기… 안도감이 확 밀려오는 거죠. '살았다'라는 표현이 나오더라고요 입에서."
-김정현, 당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직원
"모두에게 기쁨의 순간이었죠. 건물 안에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오고 상황이 다 끝나니 비로소 자유를 느꼈고 정말 기뻤어요. 사람들이 무사히 살아 나가는 모습을 보니 행복하더군요."
-페이즐 네이글, 당시 크리켓 대회 경호팀
극도의 긴장감으로 긴 시간을 보냈어. 이제 안전한 장소로, 혹은 걱정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야겠지. 그런데 강 영사는 집으로 향하지 않고 계속 호텔 쪽을 주시하고 있어. 아직 현대식 씨를 포함한 한국인 4명이 저 호텔 안에 갇혀있잖아. 아직 그의 일은 끝나지 않은 거야.
그리고 19층 연회장 탈출 소식은, 신관 챔버스에 숨어있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졌어. 그리고 그들도 결정을 내렸어. 탈출하기로. 호텔 직원들이 사용하는 통로를 이용해서 빠져나갈 계획이야. 직원들은 손님을 복도 한쪽 벽에 바짝 붙여서 이동시켜. 그리고 직원들은 하나같이 서로의 팔짱을 낀 채 손님들 앞을 막아서.
"손님 여러분 걱정 마십시오. 만약 총을 맞게 된다면 저희가 먼저 맞게 될 겁니다."
직원들이 손님들의 노출을 최대한 막기 위해 인간 방패가 된 거야. 호텔 직원 차블라는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고 해. 호텔 밖까지 한 차례 손님들을 데려다 준 직원이 다시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었어. 그렇게 챔버스에 있는 사람들 중 거의 절반이 무사히 빠져나갔을 무렵, 총소리가 들려. 테러범들이 챔버스에 나타났어.
챔버스는 이 호텔에서 가장 비밀스럽고 안전한 공간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테러범들이 나타난 걸까? 여기엔 말도 안되는 뒷이야기가 있어.
"지금 이 챔버스라는 곳에 사람들이 대피해 있어요. 여기 기업인, 장관, 200~300명이 여기 있습니다."
챔버스에 있던 한 정치인이 전화로 뉴스 생중계 인터뷰를 한 거야. 그 후 어떻게 됐을까?
테러 지시자: 호텔에 3명의 장관과 사무총장 1명이 있다.
테러범: 그거 아주 잘된 일이군요. 금상첨화네요.
그렇게 직원 통로까지 찾아낸 테러범들이 신관으로 넘어와 챔버스에 나타난 거야. 총성이 들리자마자 호텔 직원들은 탈출 중인 사람들을 다시 챔버스에 몰아넣고, 손님들에게 문을 잠그라고 했어. 그리고 직원들은 다른 방향으로 뛰기 시작해. 테러범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려고. 테러범들은 호텔 직원들을 따라오면서 총을 쏴대.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7명의 호텔 직원이 목숨을 잃었다고 해.
"솔직히 말하면 정말 슬펐습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죽은 직원들은 불과 5분 전까지만 해도 저희와 함께 서 있던 분들이었어요."
-앙쿠르 차블라, 당시 타지마할 호텔 직원
수많은 사람들의 생사가 오가는 가운데 테러 발생 7시간이 지나고 있어. 한국인들 뿐 아니라 커피숍 안에 사람들 모두 지친 기색이 완연해. 그런데 그 순간 창 밖으로 철커덕 하는 소리가 들려. 뭔가 밖에서 걸쳐지는 느낌이 있어서 봤더니, 어떤 남자 얼굴이 쓱 나타나. 소방관이야.
"소방차 사다리가 거기 걸쳐져 있고 소방관이 한 명 올라오더라고요. '이제는 살았다. 이제는 끝났다' 이런 생각을 했죠."
-현대식, 당시 차량부품 업체 법인장
이제 탈출이야. 대식 씨를 비롯한 한국인들이 가장 먼저 창가에 도착했어. 그리고 손을 내밀어. 누구에게? 사다리차를 타려는 사람들에게. 한국인들은 커피숍 손님이 모두 내려갈 때까지 그대로 도왔다고 해. 그렇게 한국인들은 제일 마지막으로 커피숍을 빠져나와. 호텔에 갇혀있던 한국인들이 모두 무사히 탈출을 한 거야.
그리고 지금 호텔 앞에서 이들의 탈출 소식을 누구보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지. 호텔 밖에 서 있던 강기택 영사는 그제야 자리를 떴어. 강영사는 바로 총영사관으로 향했어. 왜냐하면 테러 자체가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잖아. 당시 뭄바이에는 300명이 넘는 교민이 있었어. 교민들의 안전을 끝까지 확인하려고 한 거야.
▲ 뭄바이 테러가 남긴 것
총성이 멈추지 않은 채 다음날 아침이 밝았어. 그리고 이제야 대테러 부대 블랙캣의 진압이 시작돼. 호텔에 갇혀있던 직원 차블라와 여행객 다라 황은 아침이 돼서야 무사히 구출이 됐어. 하지만 참극은 쉽게 끝나지 않았어. 도심 곳곳에 테러 진압이 최종 완료된 건, 무려 60시간이 지난 후였어. 이번 테러로 170여 명이 사망하고 3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어.
테러범 10명 중 9명은 사살이 됐고 1명은 체포가 됐어. 체포된 테러범의 나이는 21살이었어. 그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해.
"그들이 돈을 줄 거라고 했어요. 그럼 저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저는 돈을 벌 수 있다면 뭐든지 괜찮다고 대답했어요."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사람들을 죽였어.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을 돕고 살리기 위해 애썼어.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그건 나여야 한다'는 강기택 영사.
"그게 제 일이니까.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들 그런 다짐을 하면서 자기 맡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강기택, 당시 주 뭄바이 총영사관 영사
다른 사람의 안위를 백방으로 챙긴 김정현 씨.
"애써 태연한 척 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연락을 줄 때 '괜찮았다, 아무 일 없었다' 다 똑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김정현, 당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직원
탈출의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을 먼저 배려했던 현대식 씨.
"우리 생각에는 '죽을 때 죽더라도 이렇게 하는 게 그냥 상식이다', '기본적으로 해야 되는 거다'."
-현대식, 당시 차량부품 업체 법인장
게다가 마음만 먹으면 호텔을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손님들과 함께 남는 것을 택한 호텔 직원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또 한 사람이 있지. 페이즐을 비롯한 경호팀. '꼬꼬무'가 그에게 작은 선물을 전달했어. 바로, 신관 19층 생존자 김정현 씨의 영상 편지야. 이 영상을 보고 페이즐 씨는 크게 감동하며 눈물을 보였어.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나서서 도와줬던 그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덕분에 저희들이 한명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나올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김정현, 당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직원
"굉장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날 밤 그 자리에 있었던 분을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니 정말 좋네요. 그날 당시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오직 훈련받은 대로 행동했어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 생존자분 얼굴을 직접 보고 목소리를 들으니 이제야 실감이 나네요. 이렇게 직접 보니까 감정이 북받쳐 오르네요. 여러분이 저희를 믿어주지 않았다면 결코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저희와 함께 하나의 팀으로 함께 해준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페이즐 네이글, 당시 크리켓 대회 경호팀
페이블 씨에게 '그날 밤으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 거냐'라고 물었어.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답했어.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할 겁니다. 하지만 더 빠르게 할 거예요. 더 빨리 구출해서 사람들이 되도록 스트레스 덜 받게 할 거예요. 돌아가도 저는 똑 같은 선택을 할 겁니다."
-페이즐 네이글, 당시 크리켓 대회 경호팀
페이즐은 테러가 있는 날 이런 감정을 느꼈다고 해.
"저에게 그날 밤은, 생명의 존엄함,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와 협력의 중요성 그 자체였습니다."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하루가 멀다 하고 극단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지금. 우리가 이런 소중한 가치들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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