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2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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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마약·태반 들었다?" 소문 무성했던 전설의 '선약국 화상연고'…30년 만에 밝혀진 실체

작성 2026.06.12 15:42 조회 488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1일 방송된 '서칭 포 선약국'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에스파 멤버 윈터, 배우 신은정, 가수 신성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부상 트라우마를 지운 약

때는 2008년 경기도 광명의 한 스포츠 경기장이야. 출발선을 앞에 두고, 한 남자가 심호흡을 하고 있어. 경기를 앞둔 남자의 이름은 김형일. 머리엔 헬멧, 등엔 숫자 2번을 달고 있는 그는, 18년 경력의 사이클 선수야.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번 경기는, 형일 씨에게 아주 중요한 경기래. 18년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는, 은퇴 경기거든. 긴장된 마음으로 신호를 기다리던 그때! 신호와 동시에 형일 씨가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밟기 시작해. 경기 결과는 형일 씨가 1등! 형일 씨는 선수로서의 마지막 경기를 1등으로 장식하고, 멋지게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어.

18년간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형일 씨를 제일 힘들게 한 게 있었대. 바로 낙차로 인한 부상이었어. 보통 사이클 경기를 할 때, 6-70km의 속도로 달린대. 경사진 곳이나 코너를 돌 땐, 100km가 넘어간다고 해. 그러다가 맨몸으로 넘어진다고 생각해봐. 어떻게 될 것 같아? 형일 씨에게 직접 들어볼게.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선수들이 사실상 넘어지게 되면 까진다는 표현을 쓰는데, 까진다가 아니라 정확히 데이는 거거든요. 마찰로 뜨거워지기 때문에 데어요. 그래서 화상이랑 똑같아요. 그러면서 스판(경기복)이 거의 막 타요. 경기장 바닥이 아주 고른 사포 같은 재질이에요. 그래야지만 비가 와도 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넘어져 바닥에 탁! 걸리는 순간, 표현이 좀 그런데, 이게 숟가락으로 피부를 퍼내듯이 이렇게 푹 파이면서. 진짜로 선수들끼리 하는 얘기지만 '뼈가 보인다고' 해요. 그렇기 때문에 진짜로 진짜 고생 많이 했죠. 그 당시에 넘어지면."

-김형일, 선수 경력 18년, 2018 아시안 게임 감독

그래서 정말 크게 다친 날엔, 이런 생각까지 했대. '이렇게 매일 다치고 아픈데, 내가 선수 생활을 계속 할 수 있을까?'라고.

"내리막길에서 낙차할 경우는 한동안 내리막길 못 내려가요. 그래서 그만큼 너무나 힘들어가지고 '이야, 이걸 내가 앞으로 할 수 있을까? 내일 시합에서 넘어지면 또 얼마나 아플까' 이게 얼마나 괴로울까, 얼마나 힘들까. 이런 게 저한테 항상 깔려 있는 그냥 기본값이었어요."
-김형일, 경륜 선수

부상 트라우마로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그는 오랜 선수 생활을 잘 이겨냈어. 사실 그에겐,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게 해준 아주 특별한 존재가 하나 있었대. 형일 씨는 이걸 알고 난 뒤부터, 넘어지는 게 두렵지 않았다고 해. 그게 뭐였을까?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저의 사이클 인생이 18년인데요. 솔직히 전과 후가 나뉘어요. 선약국으로서."

-김형일, 경륜 선수

선약국. 바로 이곳이야.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후배의 어머니가 학교에 오실 일이 있어서. 제 상처를 보시고는 '형일아 여기 좋은 약이 있어' 그래서 가지고 오셨는데, 그냥 하얀색 크림 약이었어요. 거즈에다가 잼 바르듯이 두껍게 발랐어요. 약을요. 약을 바른 다음에 그걸 그냥 탁 붙였어요. 그리고 3일 뒤에 뗐는데, 저는 지금도 그 순간 잊을 수가 없어요. 상처가 나아 있어요. 제가 긁어도 될 만큼 상처가 나아 있는 거예요. 후배들하고 친구들한테 '야 이제 넘어지는 거 안 무서워' 이런 말까지 제가 했었어요."

-김형일, 경륜 선수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선약국에서 파는 약의 정체는 '화상연고'였어. 누군가의 인생을 180도 바꾼, 참으로 용한 약의 정체. 지금부터, 많은 사람들이 '희대의 명약'이라 부른 선약국 화상 연고에 대해 이야기할 거야.

▲ 기적의 화상연고

서울 성동구 행당시장 골목에 있던 선약국. 지금 그 자리에는 국밥집이 들어섰어. 선약국이 사라진지 벌써 30년 가까이 됐거든. 그런데 국밥집 사장이 말하길, 최근까지도 손님들이 선약국 얘길 했단 거야. 대체 얼마나 유명한지,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봤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선약국이 너무 좋다 그래서 다들 진짜 많이 구매했어요 그때만 해도요. 무조건 화상이라면 선약국부터 갔으니까."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많이 썼죠. 여기 사람들은 많이들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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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은 아주 최고였어요. 우리도 많이 사다 썼는데. 화상에는 최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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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서 물집이 생긴 그런 것도 한 번 바르면 싹 아물 정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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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데었든 물에 데었든 데인 데, 약이 참 좋아요 선약국 약이. 백발백중이야."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선약국하고 화상연고라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이 동네에선 100% 다 안다고 봐야 해요."

-행당시장 상인들

이 동네 사람이라면, 선약국 화상 연고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거야. 심지어 '꼬꼬무' 제작진 중에도 이 선약국 화상연고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 당시에는 저희 어머니와 할머니가 맨날 선약국 앞에서 그 약 한번 사겠다고, 손잡고 한 20분 30분 정도 기다렸다 산 기억이 있어요. 무릎을 한 번 크게 다친 적이 있었는데, 상처 부위가 주먹만한 크기였다면, (약을 바른 후) 동전만한 크기로 바뀌었다…"

-김휘년, '꼬꼬무' 촬영 감독, 전 행당동 주민

근데 예전엔 왜 이렇게 화상 연고를 많이 쓴 걸까?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그때는 유난히 화상 사고가 많았다고 해. 그중 큰 이유가 바로 이거야.

연탄. 요즘과는 다르게 그때는 일반 가정집부터 가게들까지 주로 연탄을 떼던 시대였어. 그러니 화상 사고가 많았어. 미용실, 식당, 가정집까지 이곳 행당동 사람들에게 선약국 화상 연고는 없어선 안될 상비약이었어.

화상연고가 필요한 사람이, 여기 동네 사람들 뿐은 아니겠지? 상인들 말에 따르면, 이 연고를 구하려고 대전, 대구, 심지어 제주도에서 비행기까지 타고 왔대. 그야말로 화상 환자들의 성지였단 거지. 온라인에서도 선약국 화상연고 간증글이 넘쳐나.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왕십리 선약국약 아는 사람 있어? 진짜 심각한 화상도 낫게 해주는 전설 같은 연고!"

"나 어릴 때 왕십리 살았고 부모님이 동대문에서 장사하셔서 내 어린 시절 내내 우리집 상비약이었어."

"나 이거 알아. 우리 외가는 무조건 집에 다 있어."

"내 동생 어렸을 때 촛불 불다가 머리카락에 불 붙어서 이마 화상 입은 적 있는데, 당시에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엄마가 가셔서 화상연고 사 오셨었어."

-온라인 '선약국' 관련 경험담들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래서 '꼬꼬무'는 제대로 알아보려고, 이 화상 연고를 아는 사람들의 제보를 받아봤어. 제보가 얼마나 왔을 것 같아? '꼬꼬무' 사무실에 제보 전화가 쏟아졌고, 지금까지 받은 제보만 200건이 넘어. 전국에서 선약국 화상연고를 써봤다는 사람들이 나타났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아내가 손을 많이 데었어요. 여기 옆에 손을. 아시는 분들한테 물으니까, 즉효 약이 있다고 선약국을 알려줬어요. 아내가 바르니까 정말 거의 흉터 없이 새살이 돋아나서 몇 개월 뒤에 나았더라고요. 이게 참 좋구나…"

-김태수, 선약국 화상연고 경험자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제 얼굴하고, 가슴하고, 팔 쪽하고 거의 반 정도를 거의 화상을 심하게 입었어요. 우리 동서가 이제 연고를 하나 갖다 준 거예요. 그 화상에 좋은 연고라고 바르라고. 그래서 그걸 집중적으로 발랐어요. 흉터 하나도 안 남았잖아요."

-이정옥, 선약국 화상연고 경험자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살이 바가지로 푼 것처럼 퍼져 있고 막 엄청 심했거든요. 화상으로 다리가 이렇게 붙었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산 게 기적이라고."

-문차순, 선약국 화상연고 경험자

압력솥이 폭발해 화상을 입은 사람, 팔팔 끓는 국을 뒤집어썼다는 사람, 아기가 연탄불에 데었다는 사람 등 많은 경험자들이 약의 도움을 받았대. 심지어 이 약을 쓴 사람 중에, 가수도 있대.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안녕하세요. 저는 구 가수 'Ori', 지금은 일반인으로 살고 있는 오리라고 합니다."

"제가 그날은, 엄마 몰래 옷을 샀던 날이었어요. 근데 그 옷이 상당히 구겨진 상태로 도착을 했던 거예요. 그래서 다리미를 꺼냈죠. 이렇게 다리미를 미는 순간에 미끄러지면서 제 허벅지를 다리미 앞에 세모 부분에 덴 거예요. (화상 부위가) 상당히 컸어요. 그때 할머니가 서랍 안에서 연고를 꺼내 발라줬는데, 그걸 바르자마자 즉각적으로 진물이라든가 이런 게 가라앉으면서 저도 어디쯤이 다쳤는지 잘 기억이 안 날만큼, 어느 순간 흉터도 없이 사라져 있더라고요."

-백지아, 2009년 가수 'Ori'로 활동

지아 씨는 어릴 적에 강남에 살았는데, 당시 강남 할머니들 사이에서도 선약국의 화상 연고가 아주 유명했대. 할머니께서 발라준 화상연고 덕분에 다리에 흉이 지지 않았대.

▲ 화상연고의 실물

대체 이 선약국 화상연고. 어떤 약이길래 다들 '기적의 연고'라고 부르는 걸까? 하지만 약국은 사라진 지 30년 가까이 됐고, 이제 이 연고는 어디서도 살 수 없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아? '꼬꼬무' 제작진이 탐문을 하던 중, 한 경로당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돼.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난 아직도 그 약이 있는데. 집에 있지."

행당시장 내 토박이분들이 많다는 한 경로당에서 한 할아버지가 선약국 화상연고를 갖고 있다는 거야. 그래서 선약국 화상연고의 실물을 영접할 수 있게 됐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걸 냉장고에다 보관하라고 했었거든요 약사가. 하여튼 화상에 잘 나아. 그래서 내가 냉장고는 바꿔도 이거는 안 바꾸고 있다니까."

한 식당 주인도 여전히 선약국 화상연고를 갖고 있는데, 이 분도 역시 냉장고에 연고를 보관하고 있었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보물단지처럼 꼭꼭 싸놨는데요. 진짜 너무 조금 남아서 정말로 진짜 꼭 필요할 때만 아껴서 바르고… 전 식당을 하다 보니까, 압력솥에 수시로 델 수도 있고 매일 불 앞에서 일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비상약으로 항상 놔두는 거죠. 얼굴에도 기름이 튀어 화상을 입었었는데, 진물이 빵빵하게 들었는데 (30년 된) 이 약을 바르고 흉터가 하나도 없이 사라졌잖아요."

-강희원, 행당시장 상인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뚜껑엔 '선약국'이란 글씨와, 오래전 약국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있어. 그리고 약국 제제. 약국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거지. 열어보면, 그냥 별다를 거 없는 하얀색 연고야. 근데 이 약이 그렇게 신통방통했단 거야.

대체 이 연고, 정체가 뭘까? 이 안에 무슨 성분이 들어있는 걸까? 하지만 약국이 문을 닫은 지금, 이 약의 성분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어. 다만 써본 사람은 하도 효과가 좋으니까, 이런 얘기들을 하기도 했어.

"약국 근처에 조산원이 있었거든. 거기서 몰래 태반을 얻어서 썼다는데?"
"아니야. 선약국 연고에 마약 성분이 들어있다는데?"

이런 소문이 돌았어. 과연 진실은 뭘까?

▲ 선약국 미스터리

여기서 잠깐, 너 혹시 전국민이 알만한 유명한 약, 떠오르는 거 뭐 있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국민 소화제'라 불리는, 누구나 아는 이 부채표. 1897년, 고종 황제 즉위 당시, 궁중 비방을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민병호 선생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이라고 해. 그리고, 이것도 본 적 있을 거야.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이 간호사 마크. 이것도 국민 연고 중에 하나지. 수입약이 비싸 고통 받는 서민들을 위해, 1933년 유일한 박사가 개발한 소염진통제야.

이렇게 긴 시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약들처럼, 선약국 화상 연고도 국민 상비약으로 개발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갑자기 사라진 걸까?

선약국은, 2000년대 초반에 자취를 감췄다고 해. 확인해보니까, 그 당시 이런 게 있었어.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바로 의약분업이야. 의약품 오남용 방지와 의료 서비스 향상을 위해 의사가 진료하고 약사가 조제하는 제도야. 2000년 7월 1일 이 의약분업을 전면 시행되면서, 약국에선 더 이상 자체적으로는 약을 제조할 수 없게 됐어. 그리고 그즈음, 선약국도 문을 닫은 게 아닌가 추정되고 있어.

약국이 문을 닫기 전, 유리문에는 이런 게 붙었다고 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선약국 영업 종료>

"그동안 선약국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부 사정으로 영업을 종료합니다. 그간 보내주신 따뜻한 성원 잊지 않겠습니다."

이 안내문을 본 사람들,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약국 앞에 줄을 서서 약을 사갔다는 사람들이 몰렸어. 이른 아침, 아직 문이 열리지도 않은 약국 앞에 매일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대. 어찌나 줄이 길었는지, 시장 전체를 둘러쌌다고 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 약국이 없어진다 하니까 줄을 어디까지 서서 몇 개씩 사오고 그랬다니까요. 쫙 줄을 어디까지 섰었다니까."

-강희원, 행당시장 상인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진짜 명약이에요. 그 약은 정말 왜 없어졌는지 저한테 물어보면 나도 몰라요 그래요. 정말 다 아쉬워해요. 10명이면 11명도 그 신세 진 약에 대해서는 정말 다 고맙게 생각해요."

-김숙희, 행당시장 상인

사람들은 그만한 명약이 없었다며, 여전히 아쉬워하고 있어. 마지막까지 명성이 자자했던 선약국은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어. 그럼 약국 주인이자, 이 화상 연고를 만든 선약국 약사는 어디로 갔을까? '꼬꼬무'가 약사의 행방에 대해 추적했어.

"그 양반, 엄청 큰 제약회사에서 스카우트 해갔다는데?"
"아니야. 내가 들은 건, 다른 데서 약국을 열었다는데?"
"이건 비밀인데, 그 약에서 마약 성분이 들어있어서 험한 곳에 끌려갔대잖아."

약사의 행방에 대해선,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어. 그럼 약사의 이름이라도 알 수 없을까? 근데 너는 동네 약사님이나, 단골 가게 사장님 이름 알아? 아니지. 보통 상호는 알아도, 약사의 성함까지 아는 건 드문 일이지. 이름도 성도 모르는 선약국 약사,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 약사를 찾아라

각 지역마다 약사회라는 게 있대. 제작진이 성동구 약사회에 찾아가서 관계자를 만나 선약국에 대해 물었어. 그런데 약사회 측에서는 "안 그래도 저희가 그 약사님 찾으려고 엄청 고생을 했어요"라고 말해. 그 이유가 뭐냐면, 어느 날부터 성동구 약사회에 이런 전화들이 걸려왔대.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선약국 화상연고가 필요하시다면서 그 약사님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고 전화를 많이 받은 적이 있어요. 어떤 여자분은 찾을 방법이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거의 좀 울먹이면서 그 연고를 발라야 낫는데 왜 그 연고를... 이런 거는 어떻게든 약사회든 어디에서 연고를 바를 수 있게, 살 수 있게 해 줘야 되는 거 아니냐면서 막 울먹이면서 얘기하신 한 분이 있었거든요. 제 입장에선 죄송하다는 말밖에 드릴 수가 없었고…"

-성동구 약사회 사무국장

선약국 약사를 찾아달라는 전화가, 최근까지도 걸려왔대. 하도 전화가 오길래, 약사를 백방으로 찾아봤지만,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해. '꼬꼬무' 제작진은 다시 한번 수소문을 해달라고 부탁했어. 그랬더니 정감 감사하게도 약사회에선, 하던 일도 제쳐두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어. 그리고 마침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혹시요. 그... 선약국 하시던 약사 님 성함 기억하세요? 예. 예. 신, 제, 선이요? 예예."

드디어 선약국 약사의 이름을 알아냈어. 바로, 신제선 약사님. 그럼 이름 석 자 가지고, 이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그런데 '꼬꼬무'가 알아보니까, 전국의 약사 소식을 다루는 약국신문이라는 게 있어. 이런 대단한 약을 개발했다면, 혹시 신문에 실리지 않았을까? 근데 그 옛날엔, 전부 종이로 된 신문이었잖아. '꼬꼬무'가 찾고 찾고 또 찾은 끝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 93년부터 발간된 약국신문을 보관 중인 것을 알아냈어. 그때면, 선약국도 영업하던 시기야. 그래서 '꼬꼬무'가 신문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싹 다 뒤져봤어. 그리고 마침내 찾아냈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1995년 7월 10일에 실린 선약국 관련 기사야. 심지어 약사님의 사진도 있어. 기사에 실린 내용은 이래. 선약국이 행당동에 문을 연 건 1970년 1월. 일반 약보단 조제약 위주로 운영하다 보니, 초창기엔 생활고에 시달리는 등 어려움이 많았대. 하지만 뚝심 있게 연구에 매진했고, 우리가 아는 화상 연고를 개발했다는 내용이야. 그리고 이 기사에, 신제선 약사가 직접 한 말이 실려있어.

"돈벌이가 목적이었다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만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면서 다른 사람을 돕는데 내가 배운 것을 토대로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보람 있는 일도 없지 않겠어요?"
-약사 신제선

이윤보단 사람이 먼저였던 신제선 약사. 약사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도우며 보람을 느낀다는 약사님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어.

▲ 고마운 약사님

그 중에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약사님을 잊지 못한다는 사람이 있어. 30년 전의 일이야.

유재혁 씨는 고장난 보일러를 손 보며 호스를 살피는데, 순간 호스가 터져 팔팔 끓는 물을 뒤집어써 얼굴에 큰 화상을 입었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병원에서 추후에는 이식까지도 생각을 해봐야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살 이식까지도 이렇게 너무 화상도가 굉장히 심한 거라고. 얼굴이 아마 굉장히 보기 흉할 거라고. 마음이야 두말할 것 없이, 내 얼굴이 진짜 세상에 나갈 수도 없을 정도로 되는 게 아닌가."

-유재혁, 선약국 화상연고 경험자

그런데 재혁 씨는 섣불리 화상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어. 병원에서 전문 치료를 받기에 형편이 넉넉지 않았거든. 그때 찾아간 곳이, 바로 선약국이었어. 뜨거운 화기를 없애기 위해, 일단 연고라도 발라보자는 마음이었대. 그런데 재혁 씨의 얼굴을 본 약사님이, 이렇게 얘기하더래.

"많이 아프고 힘드시죠? 연고를 발라 드릴테니까, 3일 후에 괜찮아지면 그때 다시 오세요."

그 자리에서 약 한 통을 듬뿍 바르고 거즈를 붙여주더니, 돈을 받지도 않았대. 그리고 3일 뒤에 거즈를 떼어 보니, 말끔하게 나아졌다는 거야.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때 현실은 정말 너무너무 생생해서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아 이런 분들한테 내가 도움을 받아 가지고 얼굴이 이 정도 돼 있고, 참… 오래된 일인데…"

-유재혁, 선약국 화상연고 경험자

그런데 이런 경험이 재혁 씨 뿐만이 아니야. 200명이 넘는 제보자들은, 화상 뿐 아니라, 욕창, 골수염, 동상 등에도 선약국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 많은 사람들이 그 약사님을 그리워하며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대.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인사드리고 싶죠. 그분이 진짜 보고 싶어요. 저는 우리 아내가 많이 데었다 나았기 때문에 평생 잊지를 못 하고요."

-김태수, 선약국 화상연고 경험자.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정말 그 약만큼은 너무 좋다고 선전하고 싶어요 지금도."

-김순희, 선약국 화상연고 경험자

"(욕창이) 다 나았을 때 거짓말이 아니라 솔직한 얘기로 눈물 나더라고요."

-김명수, 선약국 화상연고 경험자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힘들었을 그 시기에 정말로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약을 만들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김형일, 선약국 화상연고 경험자

▲ 솔깃한 제보

그런데, '꼬꼬무'가 200개 넘는 제보를 받았다고 했잖아? 그 중에 몇몇 분들이 솔깃한 얘기를 했어.

"제가 그 선약국 약사님을 봤어요. 일영 쪽에 일이 있어서 갔는데, 가다 보니까 선약국 간판이 하나 있는 거예요."
"일영인가 아마 그쪽으로 간 것 같아요. 거기로 옮겼다고 그래서 거기 가서도 사온 것 같아요."

일영, 경기도 양주에 있는 곳이야. 제작진은 바로 차를 타고 일영으로 향했어. 고속도로를 지나니, 일영이라 적힌 이정표가 보여. 그러고도 한참을 달리다 보니, 시골길이 나오고, 한 주유소가 나와. 제보자들에 따르면, 그 주유소에서 100미터 정도 더 가면 선약국이 있었다고 해. 근데 그 곳에 가보니, 약국이 아닌 철물점이 있을 뿐이야. 철물점 주인은, 이곳으로 선약국의 행적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고 해.

"여기가 아니에요. 가끔 와요. 소문을 듣고 여기 선약국 있다는데 어디냐고. 몇 년 전까지도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희는 약국과 상관이 없어요."
-철물점 주인

해프닝이었어. 그럼, 여기 일영에서 약사님을 봤다는 목격담은 뭘까? 제작진은 약사님의 사진을 인근 주민들에게 보여줬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거 사장님이신데. 서울에서 이쪽으로 이사 와서 지내다가, 여기에서 이제 이사 간 거죠, 다른 데로 떠난 거죠.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죠. 떠나는 사람한테 어디로 갈 거냐고 미리 알아볼 수도 없는 거고요."

-일영리 주민

이미 오래전에 이사를 가셨고, 지금은 어디에 계신지 알 수가 없대. 이후에도 제작진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추적을 이어갔지만, 더 이상 약사님의 근황을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어. 이렇게 약사님을 찾을 수 없는 걸까?

▲ 등잔 밑이 어둡다

때는 17년 전인 2009년 SBS 방송국. 당시 막내 촬영 감독이던 박성호 감독은 늦은 시간 사무실에서 혼자 일을 정리하고 있었어. 그때 전화벨이 울렸고, 박 감독이 전화를 받자 한 남자가 이런 얘기를 해.

"제가 방송국에 제보를 하나 하고 싶은데요, 이거 아마 어디에서도 못 보신 자료일 겁니다."

제보자가 말하는 자료는 한국전쟁 당시 컬러 사진이라고 했어. 이 얘길 들은 박성호 감독의 눈이 반짝였어. 한국전쟁 자료는 대부분 흑백이었으니까. 박 감독은 제보자에게 당장 만나자고 했지만, 만날 수 없었어. 이 제보자가 해외에 살고 있었거든. 대신 박 감독은 그 사진들을 메일로 우선 받았어. 바로 이 거야.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 사진들을 본 박 감독,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어. 그는 바로 이 사진들을 당시 선배들에게 보여줬어.

"이야, 사진 좋네. 근데, 제보자가 해외에 있다고? 방송이 내일모레인데. 이거 방송할 수 있겠냐?"

시간이 너무 촉박한 거야. 어쩔 수 없이 박 감독은, 훗날 메인 카메라 감독이 되면 그때 다시 연락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2024년, 막내였던 박 감독은 어느새 메인 촬영 감독이 됐어. 그는 오래전 제보자에게 받았던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어. 하지만 연락이 안돼. 번호는 이미 바뀐 상태야. 그래서, 사진을 주고받았던 메일로 연락을 했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메일 주소 있는 거 가지고 메일을 보냈어요. '2009년에 연락 받았던 박성호입니다. 혹시 기억하시는지요' 하면서. 이런 식으로 연락을 보냈어요. 근데 연락이 올지 안 올지는. 회사 메일 같은데 어떤 회사인지도 모르겠고, 검색해 봐도 나오지도 않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과정에서…"

-박성호, SBS 촬영감독

메일에 3일 만에 답이 왔어. 근데, 이 제보자가 마침 한국에 잠시 들어온다는 거야. 며칠 뒤, 박 감독과 제보자가 만나게 돼. 처음 제보를 받은 지 무려 15년 만의 만남이야.

박 감독이 제보자에게, 어떻게 사진을 갖게 됐는지 물었어. 그러자 제보자가 이런 얘길 해줬대. 해외에서 우연히 한 미국인과 친해지게 됐는데, 그 미국인의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장교였단 거야. 그리고 그때, 거제도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했다고 했대. 그런데 제보자가 이 얘길 듣고 깜짝 놀라. 제보자의 아버지도, 한국전쟁 때 거제 포로수용소에 계셨던 거야. 반가운 마음에 얘기를 나누던 중, 그 미국인이 이렇게 말했대.

"우리 집에, 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찍은 컬러사진이 엄청 많습니다."

그 사진들이 아까 메일로 받았던 그 컬러사진들인 거야. 사진 하나를 보여줄게.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여기 왼쪽이 제보자의 어린 시절 모습이고, 오른쪽이 제보자의 아버지야. 그럼 포로수용소에 계셨으면, 제보자 아버지의 신분이 뭐였을 것 같아? 박 감독은 제보자에게 "아버지께서 어쩌다 포로수용소에 계셨던 거냐" 물었어. 그때 제보자가, 박 감독에게 이런 얘길 들려줘.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아버님은 어떻게 포로수용소에 가게 되신 겁니까? 물어보니까 평양에서 잡힌 민간인 포로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민간인 포로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잡혀 계셨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석방이 되고 나서 한국 군대에 가셨다가, 거기서 마지막에는 약사님을 하셨다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왕십리 선약국 되게 유명한데 혹시 아시냐고 물어보더라고요. "

-박성호, SBS 촬영감독

제보자의 이름은 신윤환. 선약국 약사님 성함, 뭐였지? 신제선, 성이 같아. 제보자의 아버지가 바로, 선약국 약사님이라는 거야.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기사에 실렸던 사진과 제보자의 가족사진. 어때? 같은 인물 같아? 등잔 밑이 어둡다고, 약사님의 아들을 아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었던 거야. '꼬꼬무'가 선약국 약사를 찾는단 얘길 우연히 듣고, 박성호 감독이 연락을 해온 거지.

"되게 신기했어요. 어떻게 제가 아는 사람 내용이 제보가 나가고, 찾고 있다는 말을 전에 들었을 때는 되게 신기했어요."
-박성호, SBS 촬영감독

'꼬꼬무'는 박 감독을 통해, 신윤환 씨를 만나기로 했어. 근데 신윤환 씨, 해외에 산다고 했잖아? 옛날엔 시간이 없어서 가지 못했지만, '꼬꼬무'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가야지. 그래서 날아간 곳, 비행거리 8,400km. 미국 시애틀이야. 그곳에서 신제선 약사님의 아들 신윤환 씨를 만날 수 있었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선약국 화상연고를 보여주자 윤환 씨도 반가워 했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걸 어디서 구했어요? 반갑네. 이건 저한테도 아주 큰 기념품이 되겠는데요."

윤환 씨에게 아버지 신제선 약사님에 대해 물었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아버님은 현재는 돌아가셨죠. 2008년 11월에 고인이 되셨어요. '이렇게 찾아주는구나. 이렇게도 잊지 않고 찾아주는구나' 그거에 많이 놀랐어요. 그리고 저도 잊고 있었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까 이렇게 찾아주는 분들이 많다는 거에 너무 놀랐어요. 그리고 이렇게 또 방송국에서 연락을 해주니까, 새삼스럽고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하는 계기가 됐어요."

-신윤환, 신제선 약사의 장남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꼬꼬무'는 윤환 씨로부터, 신제선 약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 지금부터 공개되는 이야기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선약국 화상연고의 비밀을 찾는 여정이야.

▲ 전설의 시작

1970년대 서울 성동구 행당시장. 윤환 씨네 가족은 선약국 바로 위층에 살고 있었어. 약사님은 이른 새벽부터 1층 약국으로 출근을 해. 어린 윤환 씨의 눈에 아버지는 마치 마법사 같았대.

"아버지께서 무슨 큰 통을 놔두고 젓는다든지 하는 거예요. 나중에 다 커서 생각해 보면 마치 영화에서 보면 마치 마녀가 뭐 만드는 것처럼 그런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신윤환, 신제선 약사의 장남

윤환 씨의 아버지가 약학지식을 동원해 연구하고 개발했던 것, 바로 화상연고였어. 근데 왜 여러 약 중에 화상연고였을까? 한국전쟁 때 평양에서 포로로 잡혀 왔다고 했잖아. 전쟁이 한반도를 할퀴었던 시기, 폭격과 화염으로 화상 환자가 넘쳐났어. 대부분 간단한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참혹한 죽음을 맞는 경우가 많았어. 그 모습을 목격한 청년 신제선은 '누구나 쉽게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 전쟁통에 화상, 특히 외상, 찰과상 뭐 이런 환자들을 무수히 본 거예요. 아버님은 그런 거 보면서 더 마음이 아팠던 것 같아요. 내가 언젠가 저 약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대요."

-신윤환, 신제선 약사의 장남

마침 신제선 님은 포로로 끌려오기 전 북에서 약학 공부를 했었대. 전쟁이 끝나고 한국에 남아, 서울의 한 약학대학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대. 그렇게 약사고시에 도전한 끝에, 두 번 만에 합격했어. 처음에는 울산에서 작은 약국을 운영하다가, 1970년 1월 행당시장에 조제 전문 약국을 열어. 그곳이 바로, 선약국이야.

윤환 씨를 통해 그의 어머니이자 약사님의 아내분도 만날 수 있었어.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다는 부부. 남편에 대해서, 가족이 봐도 참 존경스러운 사람이라고 했대. 그 이유를 들어볼게.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남편이 지나가는 사람 중에 누가 붕대 감고 지나가거나 하면 불러요. 불러서 '이거 발라라 돈은 안 받는다, 낫거든 돈 달라'고 하는데, 돈도 얼마 안 받아요. 그럴 거를요, 한 10년 했어요. 좋은 일을 그렇게 많이 했어요. 그렇게 알려져서, 갑자기 막 알려지는 거예요. 10년쯤 지나니까 하루가 다르게 알려졌어요 그때는."

-장혜경(89세), 신제선 약사의 아내

▲ 선약국 운영 원칙

그렇게 선약국이 입소문을 타던 어느날, 약국 앞에서 큰소리가 들려.

"아이고 약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약사님 아니었으면 어떻게 살았나 몰라요. 은인이에요 은인!"

이러면서 큰절을 올리는 거야. 화상 연고의 효능을 본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와 감사 인사를 하더라는 거야. 그렇게 하루가 멀게 인기가 솟던 어느 날, 약국에 한 부동산 업자가 찾아와 이런 얘길 해.

"약사님, 여기 길가에 목 좋은 자리가 하나 났는데, 약국으로 딱이에요. 가격 좋을 때, 빨리 계약하셔요"

근데 약사님은, 자리를 옮기지 않았어. 당장 계약할 돈이 없었대.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약을 샀는데, 어떻게 된 걸까?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선약국에는 특별한 운영 법칙이 두 개 있었다고 해. 첫 번째는, '약은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90년대 초 선약국의 화상연고, 한 통에 얼마였을 거 같아? 단돈 3천원. 저렴한 가격이지. 심지어 오랜 시간 약값을 올리지도 않았어. 사람들이 와서 약을 여러 개를 달라고 해도, 필요한 만큼만 딱 줬다고 해. 이게 수작업으로 만드는 거라 개수가 한정적이라, 혹여 꼭 필요한 사람이 못 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해.

화상연고로 큰 도움을 받은 한 손님이 언젠가 약사에게 "약사님, 이거 너무 훌륭한 약인데, 어디 제약회사랑 손 잡으면, 큰돈을 벌지 않겠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대. 여기에 약사님은 이렇게 답했대.

"저는 그런 건 관심 없습니다, 그냥 제가 이렇게 환자에게 직접 드리는 게 좋아요"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약사 선생님이 돈보다는 자기가 많은 사람한테 도움을 주고, 봉사하는 그런 느낌을 제가 받았습니다."

-김태수, 선약각 화상연고 경험자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약사님 마인드도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생각하신 분이었던 것 같아요. 되게 검소하시고요. 뭐라 그럴까. 꼭 그분이 돈을 벌려고 하시는 게 아니라, 진짜 화상연고를 원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했는데, 영리 목적이 많지 않았어요."

-김숙희, 행당시장 상인

그가 약을 만든 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을 낫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대. 제약회사랑 손 잡으면, 약값이 오를 수도 있고, 성분이 바뀔 수도 있다는 걸 우려한 거 같아.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파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환자가 낫느냐 안 낫느냐에 명예를 걸었어요. 나 진짜로 남편 존경했어요."

-장혜경, 신제선 약사의 아내

돈벌이는 관심 없이, 그저 환자가 잘 낫는 걸 보고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었다고 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선약국의 두번째 운영 원칙은 '약사는 듣는 사람이다'. 약국에 환자가 왔을 때, 약사님이 제일 먼저 건네는 말이 있다고 해.

"아이고… 많이 힘드시죠?"

너가 환자라면, 이 얘기를 듣고 어떻게 반응할 것 같아? 어디가 아픈지, 얼마나 아픈지 다 얘기하겠지. 약사님은 그럴 때마다, 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경청했대. 그렇게 얘길 다 들은 약사님이 하는 말은 "아유~ 얼마나 힘드셨어요". 그리고 살며시 손에 쥐어주는 게 있어.

그러다 보니 약을 사러 오는 게 아니라, 약사님 보고 싶어 왔다며 쉬어가는 주민들도 있었대.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약 안 사는 사람도 우리집에 옵니다. 오면 앉아서 한숨 쉬고 앉았다가, '많이 힘드시죠?' 그러면 이야기해요 자기 힘든 거. 한참 하고 나면 박O스 하나 따드리고, 그거요. 평생하고 살았어요."

-장혜경, 신제선 약사의 아내

이렇게 사람들에게 힐링의 장소이자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던 약국이 갑자기 문을 닫은 이유, 뭘까? 우리가 아까 얘기했던, 의약분업 때문일까? 가족에게 직접 물어봤더니, 의약분업 시행으로 더 이상 화상연고를 제조할 수 없게된 건 맞다고 해. 그런데 선약국이 문을 닫은 더 큰 이유가 있었어. 약사님이 오랫동안 앓아왔던 지병이 악화된 거야. 그래서 간 곳이, 경기도 양주에 있는 일영이었어. 공기 좋은 곳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건강을 챙기려 한 거지.

행당동 어느 골목에서 많은 사랑을 받던 선약국은, 그렇게 사라지게 돼.

▲ 천국에 간 약사님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 현관문을 두들겨.

"아휴, 선약국 약사님 맞으시죠? 제가 약사님 찾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요."

어떻게 알았는지, 사람들이 일영까지 찾아오기 시작한 거야. 그러면서 벌건 상처를 보여주며 약이 필요하다고 너무 간절하게 말하더래. 아마 외면할 수 없던 약사님은 안타까운 상황의 환자들에게 남은 연고를 내어줬다고 해. 아까 일영에서 사람들이 받았다는 약이, 마지막 연고였던 거야.

환자의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가슴 아파했고, 누구나에게 따뜻했던 신제선 약사님. 지난 2008년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고 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간호사가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아버님 천국 가셨어요' 이거 무슨 말이지? 싶어서 '무슨 말이에요?' 그랬더니, '얼굴을 보세요' 얼굴을 보니까, 아버님이 너무 편안한 모습으로 웃고 계시는 거예요. 아버지가 정말 좋은 곳에 가시는 구나…"

-신윤환, 신제선 약사의 장남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참 멋지게 끝내고 남 많이 돕고, 참 좋은 사람이 갔어요. 약하고 함께 갔어요."

-장혜경, 신제선 약사의 아내

▲ 선약국 화상연고의 비밀

그럼 많은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어줬던 화상 연고의 비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는 걸까? 그 비밀이, 이 안에 있어.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선약국 화상 연고에 대한 특허증이야. 이 연고가 너무 유명해지자, 약사님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었대.

"아버님한테 막 큰소리를 치는 거죠. '이게 뭐냐. 너 뭐 했느냐' 뭐 이런 식으로. 이게 근거가 있는 약이냐 하는 거죠."
-신윤환, 신제선 약사의 장남

당시 미국에 있던 아들 윤환 씨가 이 얘길 듣고, 아버지에게 제안했어. "아버지, 아무도 그런 말 못 하게, 제가 특허를 받으면 어떨까요?" 당당하게 화상연고의 특허를 받자고 한 거야. 그것도 미국에서. 그렇게 윤환 씨가 화상 연고의 특허를 받는데 성공해. 그리고 이 특허증 안에, 선약국 화상연고의 원료 및 용량, 혼합 방식 등 모든 비밀이 담겨있어.

아까 성분에 대해, 태반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마약 성분이 들어있다, 별의별 얘기들이 있었잖아. 하지만 확인 결과, 전혀 사실이 아니었어. 그럼 이 약, 어떻게 만들었을 것 같아?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건 미국 특허 상표청에서 발급 받은 선약국 화상연고에 관한 공식 특허증이야. 근데 중간중간 가렸어. 맛집 레시피를 다 공개하지 않는 것처럼, 저작권 관련 모든 성분 공개는 어려워. 하지만 '꼬꼬무'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래. 이 약의 성분을 약사님의 방식으로 잘 혼합해 꾸덕한 연고 형태로 바르면, 습윤이 유지되고 2차 감염을 차단된다고 해. 그러면 피부 스스로 재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서 화상 뿐만 아니라 욕창 같은 피부 궤양이 잘 치료될 수 있다는 거야.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저도 참 신기했던 것들이 몇가지 있어요. 신문에 큰 사고가 날 때마다 아버지께서 연락을 했어요 오라고. '내가 고쳐줄 테니까 와라' 어떤 때는 무료라도 해줄 테니까 오라고. 특히 어디서 큰 사고가 났다? 화재 사고가 났다고 하면, 어머니한테 다 전화하라고. 오라고 하라고. 아버지는 정말 고쳐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나름 개인적으로 아버지가 참 신기하다 싶었어요."

-신윤환, 신제선 약사의 장남

▲ 시대의 상처를 어루만진 선(善)

선약국이 영업했던 때는 1970년부터 2000년. 군사독재와 경제 개발, 민주화 운동을 거치며 성장의 시대이자 야만의 시대라고 불린 시절이야. 뜨거운 시대를 살아가면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던 소시민들이, 각자의 사연을 안고 약국의 문을 두드렸어.

"근처 한양대에서 데모를 많이 했잖아요. 옛날에. 화염병 던지고 그러는 걸 했는데, 거기서 데고 오면 그약을 사다 발라줬대요."
-김숙희, 행당시장 상인

"언젠가 한번 화장품 공장이 폭발한 사건이 있었어요. 얼굴을 다들 뎄는데, 한 10명 정도 될 걸요. 그랬는데, 선약국 간다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다 깨끗이 나았어요."
-장혜경, 신제선 약사의 아내

사람들은 "많이 힘드시죠?" 묻던 친절한 약사. 그 약사가 내어준 작은 연고 하나를 통해 상처뿐 아니라 다친 마음까지 위로 받을 수 있었어. 지금까지 수많은 분들이 선약국을 잊지 못하는 이유. 그 때문이 아닐까?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때 생각하면 너무너무 감사해요 진짜. 지금 살아만 계신다면, 과일이라도 갖고 가서 인사드리고 싶어요."

-김순희, 선약국 화상연고 경험자

"그때 당시에는 고맙다는 그런 표현을 못 했는데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감사하죠."

-김명수, 선약국 화상연고 경험자

"내 얼굴을 이렇게 낫게 해준, 약이 있어서 약사님께 너무 감사해요.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유명자, 선약국 화상연고 경험자

신제선 약사님의 이름은, 돕는다는 뜻의 제(濟), 착한 마음이라는 뜻의 선(善) 자를 쓴대.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면서, 오로지 환자가 낫기만을 바란 동네 약사이자 할아버지의 따뜻하고 선한 마음. 그게 바로 전설로 남은 선약국 화상연고의 가장 중요한 재료가 아닐까. 신제선 약사님이 평생 무슨 꿈을 꾸었던 거 같냐 물으니, 아내는 이렇게 답했어.

"그 사람은 무슨 꿈 없어요. 좋은 일 하는 거 그것밖에 몰라요. 환자가 낫는 거 그게 기뻐서 감사해서. 나은 사람이 더 놀라요. 약사가 너무 좋아하니까. 그걸로 살았어요. 그 낙으로 살았어요."
-장혜경, 신제선 약사의 아내

이제 선약국은 영원히 사라진 걸까? '꼬꼬무'가 이번 선약국 편을 준비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선약국의 유산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그 옛날 신제선 약사님의 선한 마음을 기억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좀 더 이롭게 하는 방법을 찾고 있는 거야.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선약국 약사님의 어떤 노력으로 그분의 어떤 일들로 인해서 많은 분들이 혜택을 봤잖아요. 그것처럼 제가 가진 어떤 능력으로 재능기부 형식으로 교육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줬다는 게 보람이 큰 것 같아요."

-김형일, 前사이클 국가대표 감독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제 개인적으로 봉사 활동을 좋아해요. 지금도 하고 있고요. 어쩌면 나도 내 자리에서 묵묵히 어느 사람한테든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제가 약사님 떠올리듯이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유재혁, 18년 동안 자원봉사 활동

이렇게 이어가는 착한 마음들은, 또 다른 누군가의 가슴 속에 소중한 씨앗으로 심어지겠지. 그리고 먼 훗날에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되어 이 세상을 좀 더 다정하고 아름답게 만들지 않을까.

꼬꼬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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