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부끄러움을 알던 어른 장준하, 그는 왜 사망했을까
14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1975년 8월에 발생한 한 남성의 의문사를 추적했다.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시 운악산 약사봉에서 한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추락사로 처리되었지만 석연찮은 시신의 상태. 산에서 미끄러져 사망했다고 볼 수 없는 깨끗한 손과 멀쩡한 옷, 그리고 그가 끼고 있던 안경은 흠집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가 추락사로 처리된 이유는 간단했다. 사건의 목격자가 있었던 것. 해당 사건의 목격자인 김 씨의 진술로 추락사가 된 것이었다.
사고를 목격한 유일한 목격자, 마흔한 살 김 씨는 산악회 회원들 중 홀로 정상으로 향한 장 씨를 쫓아 정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후 장 씨가 추락했다고 알렸다. 그런데 김 씨는 사건 하루 전날 장 씨의 일정을 미리 확인하고 그를 쫓아 의아함을 자아냈다.
사고 발생 3일 뒤 장 씨의 빈소를 찾아온 김 씨는 장 씨가 군인들과 함께 커피를 나눠 마신 후 자신과 함께 정상에 올랐고, 정상에 오른 뒤 장 씨가 지름길로 가자며 문제의 계곡길로 앞장섰다고 했다.
그리고 장 씨가 나무에 의지하다가 추락했다며 분명한 것은 나무가 휘는 것을 보았다는 것. 이후 자신은 계곡길로 뛰어 내려가 장 씨에게 인공호흡을 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어 산악회 회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일은 2시간 안에 발생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은 전문 산악인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장 씨가 커피를 나눠마셨다는 군인 2명의 신원도 확인 불가. 민간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군사보호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에 의문을 품고 사건을 취재한 한 기자. 그런데 그는 갑자기 취재를 중단당했고 그 후 유언비어 유포죄로 구속되었다. 종결짓고 모르는 것으로 해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던 것.
약사봉에서 사망한 인물은 지식인들의 상징이라 여겨지던 종합교양 월간지 사상계의 발행인 장준하, 일명 장 선생이었다.
사상계는 국민들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만 좇던 정치계를 비판하며 시대의 등불이 되었다. 이에 장 선생에 대해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다.
부패한 정부와 정치권을 보며 나라를 제대로 지키고 바로잡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어른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가졌던 장 선생.
그는 이승만 정권을 넘어 군사정권에도 수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그리고 1962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사상계 죽이기가 시작되었다. 결국 빚더미에 앉으며 발행인에서 물러난 장 선생. 그는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 압도적인 지지로 첫 선거에서 승리한다.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패에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고 책임을 진 장 선생. 그는 거듭된 정권의 개헌에 현행 헌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백만인청원운동을 펼쳤다. 독재에 반대하는 민심을 전하겠다는 것.
그러나 박정희는 그를 불온세력이라 몰아세우며 공개적으로 협박했다. 그럼에도 장 선생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박정희 정권은 그를 계속 핍박했다.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세 번의 구속, 그리고 석연찮은 죽음을 맞이한 장 선생. 장 선생이 사망한 후에는 가족들에 대한 테러로 이어졌다. 결국 아들은 한국을 떠났고, 남은 가족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살아남아라,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이겨내야 한다"라는 장 선생의 아내 가르침에 따라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낸 가족들.
이후 2003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들은 장 선생의 사망사건을 재조사했다. 그리고 석연찮은 부분들에 주목했다. 당시 사건의 목격자였던 김 씨가 경찰이나 병원측보다 먼저 장 씨의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죽음을 알렸던 것. 또한 김 씨는 사건 현장에서 홀연히 사라진 뒤 자정 무렵 보안사의 부대장과 함께 현장을 재방문한 것으로 밝혀져 의아함을 자아냈다.
그러나 김 씨는 모든 사실을 부인하며 모든 것이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2017년 사망하며 영원히 진실을 함구했다. 그리고 조사위는 보안사에 장 선생의 모든 자료가 삭제된 것을 확인하고 조사를 멈출 수밖에 없어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런데 2011년 8월, 일련의 문제로 이장을 하게 된 장 씨. 그렇게 시작된 개묘 작업에서 드러난 유골은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장 씨의 두개골에 엄청난 강도의 함몰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이에 가족들은 정밀 감식을 의뢰했고 그 결과 추락 전 이미 두개골에 큰 손상을 입고 사망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사고가 아닌 사건의 가능성이 드러난 것.
앞서 불령선인, 독립운동가 존재를 알고 임시정부를 찾아가 광복군이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된 청년 장준하는 "나는 내 자손에게 이 고생을 시키지 않겠다, 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겠다"라는 생각 하나로 서울과 베이징을 왕복하고도 남을 거리를 걸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도착해 광복군이 되었다.
그리고 CIA의 전신, OSS의 한반도의 일본군을 무력화하겠다는 작전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이 작전이 시작되기 전 일제가 항복을 선언했다. 그러나 독립의 기쁨보다 독립 이후의 일을 걱정했던 장준하.
결국 한반도는 두 동강이 나버렸고 민주주의 대신 독재가 국민들을 괴롭혔다. 이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간 장준하.
독재 정권에 반발하며 1975년 8월 22일 거사를 준비했던 장 선생. 그러나 거사 5일 전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시대가 허락하지 않은 불온한 꿈을 꾼 장 선생. 그는 자주독립을 꿈꾸고 군사독재 탄압에도 바른말을 멈추지 않은 어른이었다. 이에 청년들의 마음을 달구고 굳어지게 만들었다.
자신이 살아왔던 시대와 다른 평온한 시대가 되길 바랐던 장 선생, 부끄러움을 알고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어 했던 장 선생.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가 바라는 시대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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