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엄마가 되고 늘 고민해온,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어요.”
배우 이보영은 엄마가 된 후 느낀 점이 많은 듯했다. 모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강요, 육아의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어떤 게 '좋은 엄마'인지 스스로 큰 혼란을 겪은 듯 보였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그 대화의 창구로 선택한 작품이 tvN 드라마 '마더'였다.
이보영은 '마더'에서 강수진 역을 맡아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란 근원적인 질문을 시청자에 던졌다. 극 중 수진은 자신이 낳지도 않은 혜나(허율 분)를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인 가정에서 빼내 와 자신이 엄마처럼 돌보며 친엄마 이상의 모성애를 보여준 인물이었다. 그런 수진의 행동은 '유괴'라는 범죄 테두리 안에 있었지만, 갈수록 끈끈해져 간 수진과 혜나의 관계는 둘이 헤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시청자가 이런 새로운 형태의 모녀를 응원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연기해낸 배우 이보영의 힘이었다.
수진은 연기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 혜나의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촘촘하고 섬세한 연기로 그려내야 했고, 또 수진이 갖고 있는 과거의 아픔을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해야 했다. '마더'는 수진 외에도 혜나의 친엄마 자영(고성희 분), 수진을 어릴 적에 버린 친모 홍희(남기애 분), 양모 영신(이혜영 분) 등 다양한 엄마들의 군상을 보여줬다. 그 중심에 위치한 수진은 연기 내공이 탄탄한 배우가 해야만 했고, 그게 바로 '믿고 보는' 이보영이었다.
이보영은 실제 엄마로서 느끼고 고민한 게 많았던 만큼, '마더'에 더 집중하고 수진에 온전히 녹아들 수 있었다. 그래서 드라마가 종영했지만 빠져나오는 게 쉽지 않다. 영신, 윤복(혜나의 가명)의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올 정도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이보영은 결국 눈물을 보였다. 그만큼 '마더'는, 배우이자 엄마인 이보영에게 가슴 깊은 곳에 아로새겨진 남다른 작품이다.
Q. '마더'를 끝낸 소감부터 듣고 싶다.
마지막 촬영을 할 때, 가슴이 아프고 먹먹했다. 대본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너무 행복한 현장이었다. '나한테 다시 이런 날이 올까, 이런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어 하루하루 끝나는 게 아쉬웠다. 이런 스태프, 배우들과 또 언제 이런 작품을 할까 싶다.
Q. '마더'를 선택한 이유가 뭔가. 실제로 엄마라 더 끌린 부분이 있었나.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처음 대본을 보고나서, 내가 아이를 낳고 끊임없이 고민하던 문제들,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느꼈다. 사회적으로 엄마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엄마가 된 후 '왜 나한테만 모성을 강요할까',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이를 키우며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한테도 매일 혼나는 기분이었다. 난 당연히 준비된 엄마가 되어 있어야 하더라. 울컥울컥 한 경험들이 많았다.
Q. 어떤 경험들이 있었기에, 엄마에 대한 사회적인 시각을 말하고 싶었던 건가.
'엄마 일'이라 치부해버리는 일들이 있다. 아이가 옷을 얇게 입거나 양말을 벗고 있으면, 왜 춥게 입혔냐 양말은 왜 안 신겼냐며 엄마를 나무란다. 아이가 스스로 벗어던진 건데도 말이다. 또 오빠(남편)가 더 힘이 좋고 품이 넓어 나 대신 아이를 안고 있을 때가 있다. 그때 내가 들어온 시나리오라도 옆에서 보고 있을라치면, 주변 시선이 나한테 꽂힌다. 그 순간 난 나쁜 엄마, 시집 잘 간 여자가 되어 있다. '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치가 있기 때문에, 속사정을 몰라도 그렇게 평가를 내려버린다. 이런 일들에 대해 정말 이야기하고 싶었다.
Q. 본인도 처음 엄마가 된 건데, 그런 사회적 시선 속에서 혼란을 많이 겪었겠다.
아기를 낳고 100일까지 반성과 자책을 많이 했다. 엄마로서 첫발을 내딛은 산후조리원부터 말을 많이 들었다. 난 밤중 수유를 안 했는데, 나만 안 한다고 주변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더라. 왜 사람들이 나한테만 뭐라고 하나, 수유를 안 하는 난 나쁜 엄마인가, 난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 그런 죄책감과 미안함에 많이 울었다.
Q. 그래서 '마더'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서 만족하나.
많은 엄마들이 공감해주신 것 같다. 솔직히 시청률이 높을 거란 기대는 안 했다. 처음 '마더' 대본을 받았을 때, 조용하고 큰 증폭 없이 서정적이지만, 먹먹하고 품격있다고 느꼈다. 이혜영 선생님이 원맨쇼하듯 연기하는 걸 보고, 드라마에 빠져있지 않은 사람은 “뭐야?” 할 수도 있다. 보시는 분들이 선생님의 숨결, 호흡 하나하나에 전율을 느끼길 바랐다. 그런 인내심이 시청자에게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잘 따라와 주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Q. 엄마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어떤 점을 느끼길 바라나.
'난 나쁜 엄마가 아니다', '내가 지금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엄마도 사람이고, 엄마가 처음이다 보니 아이한테 잘못하거나 실수할 수도 있다. 그건 엄마도 아이도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 맞춰나가는 거다. 엄마라는 이름에 너무 짓눌려 자신이 나쁜 엄마가 아닐까 하는 죄책감을 갖지 않길 바란다.
Q. '엄마'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 생각이 많은 듯하다.
난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배우도 일종의 프리랜서 아닌가. 그래서 감사한 점이 많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어서 남편과 육아를 번갈아 가며 할 수 있다. 이럴 수 있는 사람이 요즘 사회에 얼마나 되겠나. 내 동생만 하더라도,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뒀다. 직장에서 6시 칼퇴근하려면 엄청 눈치를 봐야 한다. 난 운이 좋아 일과 육아의 양립이 가능하지만, 주변을 보면 그게 힘든 일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아이 때문에 직장에도 아이에게도 미안해하고, 결국 직장을 그만두는 상황에 직면한다. 내 동생이 그랬고, 올케가 그랬고, 나중엔 내 딸이 그렇게 살 수도 있는 거다. 여자가 엄마가 되더라도 계속 일을 했으면 좋겠다.
Q. 아이를 낳고 생각이 크게 달라진 것 같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마더'란 작품은 못 했을 거다. 원래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달라졌다. 세상에 아픈 아이는 없어야 하고, 모든 아이한테 엄마가 있으면 좋겠고, 아이는 다 보호받아야 한다. 우리 딸이 엄마가 될 때까지, 내가 옆에 있어 줘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
Q. 이번에 연기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이혜영 선생님은 재미있고 장난을 많이 치는 분이다. 그런데 촬영만 들어가면,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났다. 윤복이 얼굴을 봐도 그랬다. '난 슬프다, 힘들다' 그런 주문을 하지 않더라도, 슛만 들어가면 한 번에 감정에 몰입됐다. 13화 엔딩에서 수진과 윤복이 헤어지는 장면을 촬영할 땐 하도 소리를 지르며 울어 체력적으론 힘들었지만, 감정적으론 뭔가 정화가 되는 기분이었다. 힘들다는 생각보단, 먹먹하고 따뜻하다, 그래서 좋다는 생각이었다.
Q. 절절한 모녀연기를 함께 보여준 허율의 연기력에 놀랐다. 허율은 어떤 배우인가.
정말 최고의 파트너였다. 어떤 상대역보다도 최고였다. 허율에게 '내가 너의 첫 번째 파트너가 되어 영광이었다'라고 카드를 써줬다. 연기해오는 것도, 준비해오는 것도, 웬만한 어른들보다도 어른스럽다. 아직 어린아이라 현장에서 분명 짜증 나고 힘든 경우가 많았을 텐데, 인상 한 번 찡그리거나 투정 한 번 부린 적이 없다. 허율은 연기를 해야만 하는 아이다. 현장에서 이렇게 즐거워하고, 이런 연기를 한다는 게 진짜 대견하다.
Q. 언제부턴가 배우 이보영이 연기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하는 작품마다 연기도 좋고 호평을 받는다. 달라진 이유가 있나.
과거엔 어렸다. 연기가 간절하지도 않았고, 현장에 가는 게 공포스러웠다. 이 일이 나한테 맞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난 가만히 있는데 구설수에 오르내리면, 당황함을 넘어 사람들의 시선 자체가 무섭게 느껴졌다. 그래서 20대 땐 힘들었다. 연기에 미련도 재미도 없었다. 실제 성격과 다르게 계속 청순한 역할만 들어와, 그런 척 연기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때 오빠(지성)를 만나기 시작하며 진짜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렇게 연기를 좋아서 할 수도 있다는 걸 오빠를 보고 느꼈다. 근데 오빠와의 연애가 공개된 후, 내게 작품이 안 들어왔다. 안 하는 거랑 못하는 건 다르지 않나. 2년 정도 작품이 안 들어오니, 사람이 달라지더라. '다음 작품부터는 이 악물고 할 거야'란 오기가 생겼다. 그 후 들어간 게 '위기일발 풍년빌라'였다. 그때부터 현장이 너무 재미있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 깨달은 게, 내가 몰입하고 즐겁게 찍으면 사람들도 알아준다는 거다. 예전엔 많이 미성숙했다.
Q. 남편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마더'를 본 지성 씨의 반응이 궁금하다.
'마더' 12부까지는 같이 봤는데, 오빠가 새 작품에 들어가기 전이라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잠시 외국에 나갔다. 거기서 13, 14부를 보고는 연락이 왔다. 13부를 보고 진이 빠져서 14부를 바로 못 봤다며, 고맙다고, 자기의 상처도 치유되는 거 같다고, 보면서 눈물이 한없이 났다고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Q. '배우 이보영'을 칭찬한 최고의 반응인 거 같다. 엄마, 배우란 이름 말고, 그냥 '여자'로서 이보영은 현재 행복한가.
모르겠다. 예전엔 '여자 이보영'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젠 아이를 떼놓고는 행복을 생각할 수 없다. '마더' 15회를 보며, 영신이 수진의 어릴 적이 그립다고 하는 장면에서 울컥했다. 내 마음이 그렇다. 어느 순간 지유도 크면 부모의 품을 떠날 거다. 딸 지유가 커가는 게 아쉽다. 시간이 안 갔으면 좋겠다. 하루하루가 아깝다.
[사진제공=tvN, 다니엘에스떼]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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