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인턴'과 '타짜: 벨제붑의 노래', 올 추석 연휴를 겨냥하는 두 편의 영화가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한다.
장르도 소재도 다르지만 두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전자는 성공한 할리우드 영화의 리메이크, 후자는 한국의 대표적인 시리즈물이다. 즉, 두 영화 모두 앞서 나온 영화와의 비교가 불가피한 작품이라는 의미다.
이름값을 등에 업고 시작한다는 점과 기준이 되는 비교 대상이 있다는 점, 기대와 우려가 명확한 두 영화가 추석 극장가에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 '인턴', 리바이벌에 그친 리메이크…최민식만 홀로 빛난다
로버트 드니로, 앤 해서웨이가 주연한 영화 '인턴'(2015)은 잘 만들어진 오락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할리우드의 어떤 높은 벽을 느낀 건 한국 영화에서 가장 취약한 장르기 때문이다. 동시대의 다양한 관객들을 아우르는 소재를 바탕으로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들며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는 영화 말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낸시 마이어스는 할리우드에서도 이 분야의 독보적인 감독이기도 하다.
'82년생 김지영'과 '만약에 우리'로 주목받은 김도영 감독이 연출하고 최민식, 한소희가 한국판 '인턴'에 야심 차게 도전했다. 그러나 한국판 '인턴'은 새로운 시선과 개성이 더해진 리메이크라기보다는 종전 작품의 뼈대와 특성을 재생, 재연한 것에 머문 리바이벌이다.
성공한 젊은 여성 CEO가 이끄는 패션 회사에 시니어 인턴이 입사한다는 얼개부터 영화 중반까지는 원작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전개를 보여준다. 실버 인턴 기호(최민식)의 입사 적응기, 여성 CEO 선우(한소희)의 회사와 가정의 위기가 교차하며 두 사람의 교감과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미 본 적 있는 이야기가 공간과 배우만 바뀌어 더 느린 호흡으로 펼쳐진다.
한국적 정서를 가미하고자 한 미세한 각색과 설정 변화도 엿볼 수 있다. 실버 인턴과 MZ 인턴 간 문화적, 언어적 차이를 이용한 웃음 코드라던가 영화 중반 선우와 기호와 가까워지게 되는 소동극은 플랫폼의 변화와 소통의 가벼움으로 인해 발생하는 촌극으로 다뤘다. 다만 이러한 각색이 인상적인 변주보다는 휘발성 웃음에 그친다는 한계도 명확하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돋보이는 건 최민식이다. '한국의 로버트 드니로'를 생각할 때 주저 없이 떠오르는 배우다. 두 배우 모두 선 굵고 거친 메소드 연기의 일인자지만, 힘을 뺀 코 연기에도 능한 관록의 장인이다. 하얗게 머리카락과 얼굴 가득한 주름을 뚫고 나오는 최민식의 따스한 미소와 능청스러운 연기는 어른의 여유와 품격을 느낄 수 있다.
여성 CEO 캐릭터의 경우 원작에서는 엄마이자 아내로서의 겪은 미숙함을 현실성 있게 풀어냈다면 한국판 인턴에서는 알파걸 아내와 무능한 남편의 관계의 균열에만 집중했다. 한소희는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배우임은 분명하지만, 아직 그녀가 분출하는 감정에 관객이 동화할 수준의 역량을 뿜어내지는 못한다. 최민식이 신의 온도에 걸맞은 리액션으로 한소희를 받치지만 이들의 내공 차이도 분명 존재한다.
'인턴'은 시작부터 리메이크 난도가 높은 프로젝트였다. 감독과 배우들은 땅에 발을 붙인 각색이라고 자신했지만, 원작의 정서는 애초에 한국인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했다. 존경받는 기성세대와 손뼉 쳐 줄 수 있는 신세대의 교감은 웬만한 입체성만으론 몰입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게다가 이야기의 공간이 사실성과 현실감을 수반해야 하는 오피스라면 더더욱 그렇다.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 리메이크를 이렇게까지 비교하는 건, 원작이 국내에서 360만 명이나 본 영화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온 지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원작보다 더 낫거나 아니면 다른 차별성이라도 있어야 리메이크작을 봐야 할 이유가 생긴다. 그러나 '인턴'은 모든 요소에서 하위 호환이다.
◆ '타짜4', 쪼는 맛 아쉬운 헐거움과 건너뛰기
'타짜' 시리즈는 장장 20년간 이어져 온 한국 시리즈 영화의 대명사이다. 물론 관객들이 기억하는 '타짜'는 2006년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영화가 유일무이할지도 모른다. 작품의 흥행과 성취를 논외로 하더라도 20년간 4편까지 이어온 이 시리즈의 지구력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4편인 '타짜: 벨제붑의 노래'는 시리즈 중 유일하게 캐릭터의 연결고리가 없는 독자적인 영화다. 이야기의 배경 역시 동시대이며, 젊은 두 사업가의 우정이 깨지며 벌어지는 파국을 그렸다.
관계의 균열은 질투와 열등감에서 비롯됐다. 문제는 박영태(노재원)가 장영태(변요한)에게 느끼는 질투와 욕망에 올라타기가 쉽지 않다.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왔던 친구에게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적어도 이 영화의 각본은 보는 이들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다.
타이틀롤로 나선 변요한과 노재원은 커리어에서 가장 큰 기회를 잡아 성실한 연기를 펼쳤으나 영화 전체를 장악한다는 느낌은 주지 못한다. '타짜' 시리즈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서브 캐릭터가 메인 캐릭터만큼 빛났다는 점이다. 4편에서는 조우진, 윤경호, 문지훈이라는 카드를 내세웠지만 영화가 끝나고도 회자될 개성과 매력은 아니다. 여기에 베트남과 일본의 유명 배우까지 등장시키지만, 이들의 얼굴이 생소하기에 감독이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한다.
'타짜4'는 전반적으로 서사가 헐겁고 캐릭터를 가볍게 소비한다. 두 캐릭터를 가른 운과 운명의 수레바퀴는 나열식 에피소드로 밋밋하게 구른다. 장영태의 누나인 태희의 퇴장은 예상치 못한 충격을 주는데 심지어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그 인과를 수습하지 않는다. 미요시 아야카는 김혜수, 신세경, 임지연이 전편에서 했던 '도박판의 꽃'과 같은 롤이겠으나 매력 발산의 판이 충분하게 깔리지 않은 기능적인 활용에 그쳤다.
'타짜'에서 도박은 화려한 손장난이 난무하는 눈요깃감에 그치지 않는다. 이 시리즈에서 도박판은 돈으로 치환된 욕망이 득실거리는 이전투구판이다. '타짜1'에서 섰다의 룰을 아예 모르는 관객조차 마른침을 삼켜가며 몰입했던 건 시시각각 뒤집히는 화투판에 따라 캐릭터의 운명이 상승과 추락을 거듭했던 고도의 긴장감을 발현했기 때문이다. 그 밀도는 원작의 이야기와 캐릭터를 잘 살린 각본과 영화적 연출, 그리고 개성 강한 배우들의 탄탄한 열연이 더해진 결과였다.
'타짜4'는 쪼는 맛이 약하다. 특히 영화의 핵심인 도박판 연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주인공 앞에 마주한 인물들은 대부분 관객에게 생소해 몰입감을 주지 못할뿐더러 변수나 돌발 상황에 대한 긴장감이 유발되지 않는다. 텍사스 홀덤 룰은 초반에 자막으로 제시되다가 후반부엔 설명을 생략한다. 물론 포커의 룰을 안다고 해도 이 장면이 지향하는 목표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설계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