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손익분기점 돌파는 영화를 만드는 모든 이들의 1차 목표다. 한 편의 영화는 감독과 배우의 사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영화의 작품적 성취와 실질적 수익을 기대하며 투자한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진다. 감독과 배우들이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목표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수없이 언급하는 것도 그 이유다.
지난 7월 15일 개봉한 영화 '호프'에 영화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과 배우에 할리우드 배우까지 출연했으며 한국 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인 600억 원이 투입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제작 규모는 한국 시장에서 감당 가능한 수준이 아니다. 실제로 '호프'는 해외 시장까지 겨냥한 글로벌 프로젝트로 기획된 작품이고, 개봉 전 칸영화제 경쟁 진출이라는 화제성과 함께 필름마켓에서 전 세계 200개국에 선판매하는 성과를 거뒀다.
국내 흥행은 또 다른 핵심 목표다. 한국 영화계의 하나의 브랜드가 된 나홍진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 국내 관객에게 어떤 평가를 받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뿐만 아니라 국내 시장에서의 상업적 성취도 영화의 전체 성패를 따질 수 있는 중요 지표다.
'호프'는 개봉 3일 만에 100만, 5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올해 개봉 영화 중 가장 빠른 흥행 속도를 자랑했지만 300만 돌파까지는 11일이 걸렸다.
관객 동원 추이가 더뎌지면서 감독과 배우는 물론 투자배급사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측이 노심초사하고 있는 가운데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다.
영화의 투자사 중 한 곳인 에피소드컴퍼니가 27일 '<호프> 손익분기점 능선 넘었다! 에피소드컴퍼니 선투자 2분기 흥행 릴레이 주목'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송한 것이다. 홍보 대행사는 보도자료 배포를 알리기 위해 '<호프> 손익분기점 넘었다'라는 문자메시지까지 발송해 혼선을 야기했다.
보도자료 내용 역시 손익분기점 돌파를 암시하는 듯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호프'가 지난 주말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전하면서 "350만 관객 돌파를 앞두면서 수익성 확보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시장에선 '호프'의 개봉 전 이뤄진 적극적인 해외 선판매 성과에 힘입어 실제 국내 손익분기점이 낮아졌다"고 알렸다.
제작비 500억 원 이상이 투입된 영화의 손익분기점이 350만 명인 건 기적의 계산법으로도 나올 수 없는 수치다. 선판매 수익을 고려해 단순 계산을 해봐도 '호프'의 손익분기점은 500만 명 이상이다. 이 회사는 350만 명을 막 돌파한 시점에 혼선을 야기할 수 있는 단어와 표현을 쓰며 샴페인을 먼저 터트렸다.
그 밖의 내용은 자사의 선투자 전략에 대한 자화자찬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에피소드컴퍼니의 공격적인 선투자 행보가 콘텐츠 기업으로서의 안목과 실적 체력을 동시에 입증하는 IR 호재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는 말과 에피소드컴퍼니의 투자와 사업 계획에 대한 나열도 이어졌다.
논란이 되자 투자사는 "'호프' 손익분기점 중간 지점 넘었다"라는 자료를 재배포했다. 그러나 이미 배포된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호프> 손익분익점 돌파'라는 제목의 기사가 여러 건 보도된 상황이었다.
코스닥 상장사인 에피소드컴퍼니는 어린이 동영상 콘텐츠 제작, 배포 사업을 핵심으로 했던 '캐리소프트'를 전신으로 한다. 올해 1월 웹콘텐츠 제작사인 '스튜디오에피소드' 지분을 인수하고, 2월에는 배우 이준혁, 이종석 등이 소속되고, '비밀의 숲' 시리즈를 제작한 에이스팩토리 지분을 인수했다. 이후 올해 3월 사명을 캐리소프트에서 에피소드컴퍼니로 변경했다.
올해 초부터 드라마·영화·웹콘텐츠·글로벌 애니메이션 등에 집중 투자하며 사업확장을 꾀하고 있다. '군체'와 '와일드씽'에도 부분 투자를 했고 이 영화의 개봉 당시에도 자사의 안목과 성과를 강조한 보도자료를 여러 차례 배포했다.
에피소드 컴퍼니는 주요 경영진이 쇼박스 출신이다. 국내 4대 투자배급사 출신이 이끄는 회사에서 영화의 손익분기점 계산을 착각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런 사소한 보도자료 하나가 결정권자의 컨펌 없이 배포될 리가 없고, 컨펌 없이 배포됐다면 더 큰 문제다.
'호프'는 메인 투자사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한 수많은 부분 투자사의 투자로 제작된 영화다. 플러스엠의 경우 모기업인 메가박스중앙이 현재 회생절차에 돌입해 그 여파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자사 최고의 제작비일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 역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인 만큼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플러스엠은 '몽유도원도', '열대야' 등 하반기 개봉할 것으로 예정됐던 영화들의 개봉을 잠정 연기한 채 '호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플러스엠은 개봉 전부터 '호프'의 제작비에 관심이 집중되고 흥행에 관심이 쏠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영화의 흥행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특히 국내 관객의 안목과 취향은 까다롭기로 유명해 최근 몇 년간 흥행 불패 감독과 세계적인 거장도 흥행에서 쓴맛을 봤다. 언론의 재차 확인에도 정확한 제작비와 손익분기점을 밝히지 않은 것은 영화의 개봉과 흥행에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메인 투자사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손익분기점'을 부분 투자사가 자사를 띄우기 위한 언론플레이로 섣불리 사용하며 흥행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이들의 힘을 빠지게 했다. 이 보도자료의 작성과 배포를 플러스엠은 사전에 알지도 못했다.
그저 사실관계가 잘못된 보도자료 하나가 아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고, 누군가는 이 보도자료의 의도를 의심하며 영화를 만든 이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수 있다.
'호프'는 개봉 13일째인 오늘(28일) 전국 350만 관객을 돌파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감독과 배우들은 개봉 3주 차까지 무대인사와 GV(관객과의 대화) 행사 등을 소화하며 영화가 관객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발로 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