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광활한 모래사막 위에 대형 스피커가 하나둘 세워진다. 거대한 탑이나 성벽을 세우는 것처럼 보이는 이 행위의 목적은 사막에서 열리는 레이브 파티(Rave party: 테크노, 앰비언트, 하우스, 드럼 앤 베이스 등 1990년대 후반부터 각광받기 시작한 테크노음악을 들으며 즐기는 밤샘 파티)를 위한 세팅이다. 이윽고 이어지는 테크노 사운드, 어느덧 사막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술에 취한 듯 약에 취한 듯 음악에 몸을 맡긴다.
빼곡한 인파들 사이로, 파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차림의 중년의 남성과 아이가 누군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 루이스와 그의 아들 에스테반이다. 이들은 수개월째 연락이 닿지 않은 딸, 누나를 찾아 이곳에 왔다. 그녀가 레이브 파티에 간다고 한 뒤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
영화를 구성하는 사건은 이들이 딸을 찾는 여정에서 발생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상황은 관객의 예상을 번번이 빗나가며 충격과 공포, 절망감과 무력감까지 선사한다.
제목인 '시라트'(Sirat)가 스크린에 뜨는 건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30여 분이 지난 후다. 최근의 영화들은 오프닝 크레디트가 영화 시작과 함께 뜨는 도식적인 구성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어디에 배치되느냐에 따라 감독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시라트라는 제목이 스크린 위에 투척되는 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거라는 신호다.
'시라트'(الصراط)'는 이슬람에서 천국과 지옥을 잇는 다리를 뜻한다. 하디스에서는 모든 인간이 심판 후 통과해야 하는 경로로 통하기도 한다.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가장 날카로운 칼날만큼 날카롭다'고 묘사돼 있다.
딸을 찾는 아버지의 여정을 통해 영화는 천국과 지옥의 경계인 시라트를 시각과 청각으로 펼쳐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인물들이 한 즉흥적인 선택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일으키며 생과 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세상은 '인과응보'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이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생사의 갈림길 앞에 선 인간이 아무리 머리를 쓰고 발버둥을 친다고 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만다. 신 아래의 인간, 운명 앞에 선 발버둥은 얼마나 무력한가.
'시라트'에서 사운드는 제3의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음향을 제거하고 나면 사막을 배경으로 한 지루한 로드무비에 그칠 수도 있었다. 전체 114분의 러닝타임 중 절반에 가까운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산자락과 사막에 정차하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사건이라고 할만한 일이 발생하는 건 후반 20여 분 남짓이다.
서사는 전진하지 않고 제자리를 도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영화를 보러 온 관객은 어쩔 수 없이 인물들이 모는 허름한 트럭에 탑승하게 되는 데 하차 없이 완주하는 건 사운드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영화에 흐르는 음악이 장르를 규정하고, 이야기의 공기까지 조성한다.
음향은 영화를 완성하는 기술 요소의 하나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라트'에서는 음향이 연출의 핵심이자 스토리텔링의 일부로 작용한다. 어떤 순간엔 전지적 시점으로 인간을 관망하는 절대적인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극 중 인물들에게 음악은 쾌락의 몸짓이자 정화의 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청각 마법이다. 후반부, 망연자실한 인물들이 사막에서 보여주는 춤사위는 우리나라의 씻김굿 같은 행위로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를 연출한 올리버 라세는 빈틈없는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신과 인간이라는 종교적 질문, 삶과 죽음이라는 철학적 고찰을 형상화했다. "물리적인 서사 속에 형이상학적인 모험을 담는 것이 목표"였다는 감독의 야심은 '사운드 폭풍'에 가까운 과감하고 도전적인 연출로 완성됐다.
'시라트'는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의 경계는 한 끗 차라고 한다. 어떤 이는 죽음의 다리를 무사히 건넜고, 어떤 이는 앞선 이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랐는데도 죽는다. 재난, 전쟁이라는 것도 당하는 사람에게는 이유도, 빠져나갈 방법도 알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현상이자 결과하고 말하는 듯하다.
물론 이들이 경로를 이탈하지 않았다면 살아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레이브 파티에 가겠다는 욕망, 딸을 찾겠다는 목적을 위해 일탈을 감행했고, 예측하지 못한 재앙과 마주하게 됐다.
삶의 경로, 운명의 경로를 이탈했던 루이스는 다시 길 위로 돌아와 어딘가로 향한다. 그를 실은 기차는 사막 위에 놓인 철길을 따라 정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는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갔을까. 확실한 건, 모든 것을 잃은 그에게 생(生)은 있어도 천국은 없다.
* 이건 온몸에 진이 빠지고 마는 강렬한 체험의 영화다. 반드시 돌비애트모스나 광음시네마 같은 사운드 특수관에서 관람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