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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마작', 막막하지 않은 청춘은 없다…부유하는 청춘의 초상

작성 2025.10.28 10:57 수정 2025.10.2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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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谁的青春不迷茫(수적청춘불미망).

열정과 용기, 이상이라는 키워드로 청춘을 정의 내리는 것은 파편적이다. 무모함과 고집, 객기로 점철된 방향의 시기 또한 청춘이다. 불완전하고, 불안전하기에 무슨 일도 일어날 수 없는 청춘의 한 때를 대만 거장 에드워드 양은 '마작'(麻將)이라는 게임에 은유했다.

'마작'은 대만 뉴웨이브의 거장 에드워드 양이 1996년에 만든 영화다. '독립시대'(1994), '하나 그리고 둘'(2000)과 함께 '신(新) 타이베이' 3부작을 이루는 영화지만 국내에 개봉되지 않아 소수의 마니아들에게 회자되던 작품이다. 무려 29년 만에 정식 개봉된 이 작품에선 번영과 방황으로 점철된 시대의 향수를 눅진하게 느낄 수 있다. 또한 영화를 영화로, 그때 그 시절로만 넘기기에는 현시대와 맞닿아 있는 듯한 어떤 정서와 낭만이 관통한다. 그건 아마도 시기와 때에 국한할 수 없는 '청춘'이라는 키워드 때문일 것이다.

'아시아의 네 마리의 용'이라 불리며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낸 1990년대 대만의 타이베이, 여기 네 명의 청년이 있다. 홍어, 소부처, 홍콩, 룬룬은 한 집에서 살며 사기를 치는 일에 몰두한다. 리더격인 홍어는 부유한 집 아들이다. 그러나 사기꾼인 아버지는 큰 빚을 지고 가족을 버렸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품고 집을 나와 집안을 빚더미에 앉게 한 여성에게 복수를 준비한다. 이 계획에 풍수지리에 관한 얕은 지식으로 사기를 치는 소부처와 잘생긴 얼굴로 여자들을 꼬시는데 남다른 능력을 지킨 홍콩이 가담하게 된다. 룬룬은 무리 중 가장 조용하고 소극적인 인물이자 그나마 윤리적인 판단을 하는 인물이다.

이 가운데 홍어의 아버지에게 원한을 품은 또 다른 조직이 홍어를 납치하는 계획을 꾸미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룬룬을 홍어로 착각하는 일이 발생하며 일이 꼬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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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모함과 객기…불나방 같은 다섯 청춘의 얼굴

네 청년이 힘을 모아 하는 일은 남의 등을 처먹는 것이지만, 이들은 갱스터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들떠있다. 이들이 여자를 대하는 방식은 다소 경악스럽다. 일행 중 한 명이 여자를 데리고 오면, 반드시 그 이성을 공유해야 한다. 여성을 도구로 여긴다는 "모든 것을 나눈다"는 무개념에 기인한 룰이다.

홍콩은 바에서 꼬신 앨리슨을 집에 데리고 온다. 앨리슨은 영국인 남자친구의 배신에 실의에 빠졌다가 홍콩의 잘생긴 외모에 반해 그의 집까지 오고야 만다. 그러나 그와 함께하기 위해 그의 친구들과도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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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철없고, 한심하며, 비도덕적이기까지 한 네 청년의 일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여기에 프랑스 여성인 마르트가 이들 무리에 끼어들며 우정에도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마작'은 다섯 명의 인물을 통해 번영의 시대의 혼란과 갈등, 시행착오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타이베이라는 도시는 이 영화의 여섯 번째 주인공이다. 색색깔의 네온사인과 푸른빛 조명으로 휘감인 도시의 전경은 화려함 그 자체이고, 거리를 빼곡히 채운 현지인과 외국인의 분주한 모습은 이 도시의 번영을 보여주는 듯하다.

타이베이의 밤거리는 화려함 뿐만 아니라 쓸쓸함이 공존한다. 풍요 속 빈곤 혹은 빛 이면의 그림자와 같다. 네 명의 친구들은 무의미하고 공허한 일을 하며 젊음을 낭비하고 있다. 사람은 수단이며, 감정은 장식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맹목적으로 쫓는 건 가치에 대한 판단이 배제된 무모한 욕망이다. 돈에 대한 욕망, 복수에 대한 욕망에 불나방처럼 투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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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은 좌절한다…홍어의 오발탄과 홍콩의 눈물

영화에서 마작은 단 한 번 등장한다. 룬룬이 마르트를 찾으러 집에 왔을 때 그의 아버지가 거실 한편에서 마작 게임을 하는 모습이 스치듯 나온다.

마작은 네 명이 겨뤄 한 명이 이기는 게임이다. 균형과 규칙이 중요한 놀이기도 하다. 4는 홍어, 소부처, 홍콩, 룬룬을 의미할 것이다. 이들은 저마다 회심의 패를 들고 사회에 뛰어들었지만, 이들 누구도 이기는 삶을 살진 못한다. 욕망을 쫓다가 뜻밖의 상황과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며 좌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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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공감하기 어려웠던 인물인 홍어는 오발탄으로, 홍콩은 오열로서 자신의 패가 유발한 나비효과와 마주한다. 홍어는 아버지를 원만했지만 동시에 그리워했다. 홍콩은 여성들을 이용했지만 동시에 이용당했다. 이들의 뒤늦은 회한은 당종성, 장첸의 뜨거운 연기에 의해 와닿는다. 이 절규와 눈물을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들이 불러일으키는 연민의 감정은 어쩔 도리가 없다.

에드워드 양 감독은 부유하는 청춘을 점멸하는 도시의 불빛, 시시껄렁한 언어의 향연, 속고 속임 당하는 소동극으로 그려냈다. 다만 그는 방황하는 청춘을 목도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사랑', 어쩌면 그 조차 손에 잡히지 않은 신기루일 수 있지만 눈에 보이고, 느껴진다고 믿는 그 신비로운 감정을 포착하며 재현한다. 낭만적인 키스신으로.

시대를 초월한, 거장의 반짝이는 시선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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