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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로비', 감독 하정우의 경쟁력

김지혜 기자 작성 2025.04.08 15:07
오프라인 대표 이미지 - SBS연예뉴스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연구밖에 모르는 스타트업 대표인 창욱(하정우)은 4조 원이 걸린 스마트 주차장 국책사업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폭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라이벌 회사 대표 광우(박병은)와 입찰 경쟁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국책 사업의 실권자인 조 장관(강말금)과 그녀의 남편 최 실장(김의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접대 골프에 발을 딛는다.

두 사람은 한 골프장에서 부부인 최실장과 조장관을 따로 로비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4명씩 팀을 이뤄 라운딩을 해나가는 가운데 아부와 거짓말, 진실게임과 치정을 넘나드는 대환장 하루가 펼쳐진다.

'로비'는 골프를 소재로 할 뿐 골프 그 자체에 집중하는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창욱과 광우의 악연을 소개한 뒤 약 30분만 에 본무대인 골프장으로 진입한다. 영화는 라운딩 동안 벌어지는 일을 소동극처럼 다루며 블랙 코미디로서의 개성을 드러낸다. 카메라는 창욱팀과 광우팀을 오가며 실권자의 환심을 사려는 창욱과 광우,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의 동상이몽을 흥미롭게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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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원제는 '오비'(OB)였다. 'OB'는 'Out of Bound'의 약자로 골프에서 공이 정해진 코스 영역을 빠져나가는 것을 말한다. 골프 선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오비다. 오비가 났다는 것은 골프가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출과 주연을 겸한 하정우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다 우연"이라는 말로 영화를 압축하며 인생의 예측 가성과 불가항력성을 골프에 대입하고, 골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통해 웃음을 선사한다.

창욱팀 대 광우팀의 팀플레이가 된 라운딩은 우리 사회 혹은 사회생활의 축소판 같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실세에게 아부하고, 권력자는 그것을 이용한다. 누구나 그럴싸한 목표와 계획을 세우지만, 뜻하지 않은 변수로 미끄러지고 낙마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영화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들을 캐릭터들의 앙상블로 그려내며 웃음과 동시에 풍자에도 도달한다.

연출 데뷔작인 '롤러코스터'가 B급 감성으로 무장한 야생의 코미디 같은 느낌이 있었다면 '로비'는 한층 정교하고 세련된 블랙 코미디다. '롤러코스터'에 비해 내러티브가 정리돼 고, 기승전결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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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는 하정우, 박병은, 김의성, 강말금, 강해림 등 10인의 개성 강한 배우들의 캐릭터 연기가 돋보인다. 이들은 마치 하정우의 아바타처럼 그가 의도한 대사의 말맛과 리듬감을 살려 소소한 웃음을 선사한다. 김의성과 강말금이 능청스러운 비호감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으며, 하정우와 박병은, 이동휘도 안정감 있게 캐릭터를 연기한다. 엄하늘이라는 개성 강한 신예는 '로비'의 최대 수확이다.

하정우의 블랙코미디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뤄진다. 동선의 이동을 최소화해 캐릭터들이 엉겨 붙게 만들고 갈등과 봉합을 넘어 풍자와 아이러니를 발생시킨다.

대사의 질이나 구성의 묘가 빼어난 편은 아니다. 그러나 이 대사들이 개성 강한 배우들에 의해 발화되고, 티키타카가 이뤄질 때 묘한 리듬감이 발생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과장돼 있지만, 이들은 시종일관 진지하게 상황에 대처한다.

다만 이런 화법은 호불호가 다소 갈리는 편이다. 저항 없이 웃음을 유발하는 티키타카와 실없는 말장난의 연속이라는 극단의 반응이 나온다. 감독으로서 확실한 개성은 있지만 아직까지 폭넓은 대중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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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는 지난 12년간 총 3편의 장편 영화를 연출했다. '롤러코스터'를 들고 부산영화제에 참석했을 때만 해도 도전 정신이 남다른 이 배우의 특별한 이벤트 정도로 여겼던 것이 당시 분위기였다. 그러나 '롤러코스터'는 기대 이상으로 개성이 넘치는 영화였고, 그저 그런 영화들이 넘쳐나던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 꽤 인상적인 감독 신고식을 치렀다.

두 번째 영화는 순제작비 70억이 투입된 시대극 '허삼관'이었다. 중국의 국민 작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준수한 결과물임에도 '하정우답지 않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관객 수는 '롤러코스터'(27만 명)에 비해 4배(95만 명) 이상 들었지만,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흥행 성적과 평가였다.

'로비'는 '허삼관'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하정우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허삼관'이 다소 의외의 선택이었다면 '로비'는 본인의 촉수가 본능적으로 작용한,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적극 반영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현실적인 주제와 엉뚱한 유머는 하정우만의 개성이지만 부조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상한데 재밌는 영화"라는 김의성의 자평이 딱 맞아떨어지는 영화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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