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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이변의 순간vs당연한 결과"…제94회 아카데미, OTT·소수자를 껴안다

작성 2022.03.28 16:40 수정 2022.03.28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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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컬 시상식'인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막을 내렸다.

아카데미는 미국 시상식이지만 2020년 봉준호 감독의 작품상 수상과 지난해 윤여정의 연기상 수상으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시상식이 됐다. 올해는 한국 작품이나 배우가 후보에 오르진 못했지만 시상자(윤여정)와 초청자(박유림, 진대연, 안휘태) 자격으로 레드카펫을 밟았다.

올해 시상식에서도 의미 있는 기록들이 쏟아졌다. 지난 2015년부터 극장용 영화와 안방 영화의 공존을 추구해온 아카데미는 94년 역사에 처음으로 OTT(Over-the-top: 영화, TV 방영 프로그램 등의 미디어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영화에게 작품상을 안기는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냈다.

그 주인공은 애플 TV+의 '코다'였다. '코다'는 이날 후보에 오른 3개 부문(작품상, 각본상, 남우조연상)의 트로피를 모두 다 차지하며 100%의 수상률을 자랑했다. 최다 관왕의 영예는 기술 부문 6관왕을 휩쓴 '듄'이 차지했다. 총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최다 노미네이트 기록을 남겼던 '파워 오브 도그'는 감독상 단 한 부문을 받는데 그쳤다.

몇 년 전부터 인종과 성별, 국경의 벽을 허물며 다양성을 포용해온 시상식의 기조는 올해도 이어졌다. 여성 감독(제인 캠피온)이 2년 연속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또한 커밍아웃한 배우(아리아나 드보스)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농인 남자 배우(트로이 코처)가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역대 다섯 번째 흑인 남우주연상(윌 스미스) 수상자도 나왔다.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흥미로운 결과들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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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변인가 돌풍인가…'OTT 최초 작품상' 주인공 된 '코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은 션 헤이더 감독의 '코다'에게 돌아갔다. 2014년 만들어진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코다·Children Of Deaf Adult)인 10대 소녀 루비가 음악과 사랑에 빠지며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원작의 특징과 장점을 극대화한 음악영화다. 차별점은 실제 농인 배우들을 캐스팅해 극의 리얼리티를 높였다는 것이다. 이날 남자 농인 배우 최초(남녀 통틀어서는 두 번째)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트로이 코처를 비롯해 말리 매트린, 다니엘 듀런트가 그 주역이다. 영화를 연출한 션 헤이더 감독은 각본의 60%가 수화로 돼있는 것을 고려해 촬영 전부터 수화를 배워가며 배우들과 소통했다.

'코다'는 지난해 1월 열린 선댄스 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된 후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 감독상, 앙상블상 등 4관왕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의 잠재력을 눈여겨 본 플TV+는 선댄스 영화제 사상 최고 판매액인 2,500만 달러(약 280억 원)에 구매했다.

초반 오스카 레이스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아카데미 최종 후보에는 작품상과 남우조연상(트레이 코처), 각본상(션 헤이더) 3개 부문 지명에 그친 데다가 '파워 오브 도그'의 기세가 워낙 거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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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을 약 한 달 앞두고 흐름이 바뀌었다. 미국프로듀서조합(PGA)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미국배우조합(SAG) 최고상인 앙상블상을 수상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2020년 영화 '기생충'이 경쟁작 '1917'에게 대부분의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내주다가 배우조합의 앙상블상을 받으며 바람을 탄 것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그렇다고 해도 작품상을 낙관할 수는 없었다. '파워 오브 도그'는 평단의 압도적인 지지에 힘입어 '아카데미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골든글로브 시상식,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휩쓸었다.

결과적으로 아카데미 회원들은 보편적이고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한 가족 드라마 '코다'의 손을 들어줬다. 서부 심리극에 동성애 코드를 결합한 '파워 오브 도그'는 월등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선택을 받지는 못했다.

두 영화 모두 OTT 배급작이라는 점에서 넷플릭스와 애플TV+의 경쟁도 볼만했다. 넷플릭스는 2019년 '로마'(감독 알폰소 쿠아론), 2020년 '아이리시 맨'(감독 마틴 스콜세지)와 '결혼 이야기'(감독 노아 바움백), 2021년 '맹크'(감독 데이빗 핀처)와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7'(감독 아론 소킨)에 이어 '파워 오브 도그'와 '돈 룩 업'으로 4년 연속 아카데미 작품상에 도전했다. '파워 오브 도그'를 대표 선수로 내세운 올해의 경우 상대적으로 경쟁작이 약해 작품상을 탈 적기로 여겨졌다.

애플TV+는 넷플릭스만큼 오리지널 영화에 대대적인 투자를 해오지 않았다. '코다'의 경우도 이미 완성된 영화를 구입한 사례였다. 그러나 효율적인 오스카 캠페인을 펼치며 아카데미 역사에 '최초 OTT 작품상' 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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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인 캠피온, 28년 만에 거머쥔 오스카 감독상…작품상은 불발

제인 캠피온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랜 한을 풀었다. 1994년 시상식에서 영화 '피아노'로 감독상에 도전했지만 각본상과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을 받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 해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역작인 '쉰들러 리스트'라는 막강한 경쟁작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워 오브 도그'는 제인 캠피온을 28년 만에 아카데미 감독상에 후보에 올려놓았다. 여성 감독이 두 차례나 감독상 후보에 지명된 것은 아카데미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올해 감독상 경쟁자 중에는 28년 전 위너였던 스티븐 스필버그도 있었다. 제인 캠피온은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해 폴 토마슨 앤더슨, 케네스 브래너, 하마구치 류스케 등의 명감독을 제치고 두 번의 도전 끝에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제인 캠피온은 수상 소감에서 "저는 연출하는 것을 너무 사랑합니다. 이야기에 깊이 빠질 수 있고 어떤 세상을 구현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며 연출과 창작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작품은 '브라이트 스타' 이후 12년 만에 연출에 복귀한 작품이었다.

이 수상으로 지난해 클로이 자오에 이어 2년 연속 여성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을 차지했다. 또한 94년 아카데미 역사를 통틀어서는 캐서린 비글로우, 클로이 자오에 이은 세 번째 여성 감독의 수상이었다.

감독상 수상으로 작품상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으나, 작품상은 '코다'에게 돌아갔다. '파워 오브 도그'는 앞서 열린 주요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 석권해왔기에 작품상 불발은 감독 개인에게나 넷플릭스에게도 조금은 아쉬운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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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받을 사람이 받았다"…이견 없는 2전 3기의 남녀주연상

남녀주연상은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핫한 부문이다. 올해는 관록의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수상 후보로 올라 "누가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남우주연상은 '킹 리차드'의 윌 스미스', 여우주연상은 '타미 페이의 눈'의 제시카 차스테인에게 돌아갔다. 두 사람 모두 세 번의 도전 만에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윌 스미스는 '테니스 여제' 윌리엄스 자매의 아버지 리처드 윌리엄스를 다룬 영화에서 인생 최고의 연기로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것' 하비에르 바르뎀, '맥베스의 비극' 덴젤 워싱턴, '파워 오브 도그' 베네딕트 컴버배치, '틱, 틱... 붐!' 앤드류 가필드를 제친 결과였다.

이로써 스미스는 94년 역사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섯 번째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흑인 배우가 됐다. 1964년 시드니 포이티어를 시작으로 2002년 덴젤 워싱턴, 2005년 제이미 폭스, 2007년 포레스트 휘태커가 수상에 성공했다.

윌 스미스는 "'킹 리차드'의 리처드 윌리엄스(윌 스미스의 배역)는 너무나도 맹렬하게 가족을 보호하는 인물이다. 제가 이런 역할을 이 시기에, 이 세상에서 하게 되어서 소명이라고 느껴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저는 제 인생에서 사람들을 사랑할 것을 명받았다고 생각하고, 내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학대를 감내해야 하기도 하고, 자신에 대한 비난도 감수를 해야 한다. 또한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과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소를 지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덴젤 워싱턴이 그러더라. 네가 정말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할 때가 악마의 유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제가 지금 우는 것은 상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모든 분에게 빛을 내리는 이 순간이 벅차기 때문이다.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고 눈물 흘렸다. 

여우주연상은 국내에서 '차여신'으로 통하는 제시카 차스테인의 차지였다. '로스트 도터' 올리비아 콜맨, '페러렐 마더스' 페넬로페 크루즈, '비잉 더 리카르도스' 니콜 키드먼, '스펜서' 크리스틴 스튜어트 등과 경쟁했던 차스테인은 놀라운 분장술, 뛰어난 연기력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 어느 해보다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만큼 "후보에 함께 오른 분들 모두 사랑한다. 당신들과 함께 거론되는 것 자체가 제게는 큰 영광"이라고 경쟁자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는 메시지와 차별을 극대화하는 법안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며 의미 있는 수상 소감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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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한 호스트…산만한 진행에 돌발 순간까지 '아찔'

아카데미 측은 게스트로만 시상식을 꾸렸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호스트를 내세웠다.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레지나 홀, 에이미 슈머, 완다 사이키스가 총 세 챕터로 진행된 시상식을 한 챕터씩 맡아 이끌었다. 그러나 시상식의 진행과 구성은 다소 산만했다.

오프닝부터 세 사람은 유머와 조롱을 오가는 아찔한 입담을 선보였다. 객석에 자리한 배우들의 작품과 사생활을 소재로 수다를 떨었고, 배우들은 호탕한 미소와 어색한 쓴웃음을 오가는 반응을 보였다.

선 넘은 농담을 던진 건 호스트 만은 아니었다. 과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사회자로도 활약한 바 있는 크리스 록은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시상자로 무대에 올라 윌 스미스 가족을 향한 근본 없는 농담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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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록은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삭발 헤어스타일을 보고 "'지.아이.제인2'에 출연하면 되겠다"라고 농을 쳤다. 이에 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었다. 재차 관련 농담을 던지자 윌 스미스는 무대에 올라 크리스 록의 뺨을 가격했다. 자리로 돌아와서도 "내 아내는 언급하지 말라"며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제이다 핀켓 스미스는 2018년 탈모증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건강 문제로 머리를 기르지 못하는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 채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잔치집에 온 손님을 불편하게 한 것이다. 농담과 조롱은 한 끗 차 같지만 그 온도차는 상당하다. 상대도 웃을 수 있어야 농담이다. 상대가 불쾌함을 느낀다면 그건 비하고, 조롱이다.

크리스 록이 원인을 제공했지만 전세계로 생중계되고 있는 시상식에서 폭력을 행사한 윌 스미스의 돌발 행동도 비난을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카데미 측은 "그 어떤 폭력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해 향후 공방의 가능성도 열려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올해 11개 부문의 사전 시상을 도입했다. 매년 떨어지는 시청률 문제를 해결하고 보다 재미있는 시상식을 만들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이는 영화인들의 많은 반발을 샀지만 아카데미 측은 강행했다. 사전 시상까지 했지만 4시간에 이르는 시상식 시간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공연 시간이 늘어나면서 영화인들은 위한 시간은 여전히 부족했다.

뿐만 아니라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을 음악으로 끊는 무안한 진행은 올해도 변함없었다. 국제장편상 수상자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퇴장'을 종용하는 음악 소리가 나오자 소리 지르듯 수상 소감을 말했고, 떠밀리듯 무대 위에서 내려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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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자에서 시상자로…'윤여정 모멘트'는 어땠나

윤여정의 등장은 국내 팬들의 가장 큰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감동적인 수상 소감을 남겼던 윤여정은 올해 시상자 자격으로 무대에 올랐다.

윤여정은 "제가 할리우드 사람은 아니지만 올해 또 오게 돼 기쁘다"면서 자신을 초청해준 아카데미 측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또한 지난해 자신의 이름을 잘못 호명한 사람들을 지적했던 수상 소감을 언급하며 자신 역시 후보자들의 이름을 미숙하게 발음하더라도 이해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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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은 남우조연상을 발표했다. '코다'의 트로이 코처가 농인인 것을 배려해 수어로 이름을 발표하고 수어로 축하를 전했다. 또한 배우가 두 손으로 자유롭게 수어 소감을 할 수 있도록 트로피를 들고 한참을 서있었다. 트로이 코처의 수상 소감에는 눈시울을 붉히며 공감을 표시했다.

윤여정을 이날 블랙 롱드레스에 올림머리를 하고 레드카펫에 올라 시상식 룩의 정석을 보여줬다. 여기에 유엔난민기구(UNHCR)의 난민 캠페인을 지지하는 의미의 '#WithRefugees'(난민과 함께)' 파란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아 시선을 모았다.

◇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자(작)

작품상='코다'
감독상=제인 캠피온('파워 오브 도그')
남우주연상=윌 스미스('킹 리차드')
여우주연상=제시카 차스테인('타미페이의 눈')
남우조연상=트로이 코처('코다')
여우조연상=아리아나 드보스('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각본상=케네스 브래너('벨파스트')
각색상=션 헤이더('코다')
촬영상=그레이그 프레이저('듄')
편집상=조 워커('듄')
미술상=패트리스 베르미트 외 1명('듄')
의상상=제니 비번('크루엘라')
분장상=린다 다우즈('타미 페이의 눈')
음악상=한스 짐머('듄')
주제가상=빌리 아일리시 외 1명('007 노 타임 투 다이')
음향상=Mac Ruth 외 4명('듄')
시각효과상=폴 램버트 외 4명('듄')
국제장편영화상='드라이브 마이 카'
장편애니메이션상='엔칸토'
단편애니메이션상='더 윈드실드 와이퍼'
단편영화상='더 롱 굿바이'
장편다큐멘터리상='소울, 영혼, 그리고 여름'
단편다큐멘터리상='더 퀸 오브 바스켓볼'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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