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범죄도시4', 봐? 말어?..."이만한 오락영화 없지"vs"박수칠 때 떠나야"

김지혜 기자 작성 2024.04.24 10:53 수정 2024.04.24 14:05 조회 3,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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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범죄도시' 시리즈는 영화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다. 매년 한 편씩 개봉하는 이 시리즈는 나왔다 하면 천만을 기대하는 '메가 히트작'일 뿐만 아니라 경쟁작들이 개봉을 피해 가는 '생태계 포식자'로서의 위용까지 떨치고 있다.

2017년 혜성처럼 등장한 1편은 688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2편 1,269만 명, 3편 1,068만 명을 모아 '신과 함께' 이후 두 번째로 시리즈 쌍천만 흥행 신화를 만들어냈다. '범죄도시'의 쌍천만 스코어는 영화 보기의 패러다임이 극장에서 OTT로 넘어간 코로나19 시대에 이뤄낸 결과였다.

'범죄도시'를 보는 관객이 내 생에 다시없을 '인생 영화'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관객들이 이 영화에 원하는 건 명확하다. 화끈한 액션과 허를 찌르는 유머 그리고 통쾌한 범죄 소탕이다. 언제 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한다는 면에서 '범죄도시' 시리즈는 관객들의 기대감을 충족해 왔다.

오는 24일 '범죄도시'가 네 번째 이야기로 돌아온다. 하나의 브랜드가 된 '범죄도시' 시리즈는 관객에겐 '믿고 보는 오락 영화'다. 그러나 이제는 진부함과 식상함을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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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맛이라고? 1편의 개성이 그립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형사들이 수사한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영화를 만들어 왔다. 뼈대가 되는 하나의 사건에 비슷한 유형의 여러 사건을 버무려 '범죄도시'만의 픽션을 탄생시켰다. 1편은 차이나타운 조선족 범죄 사건, 2편은 필리핀 한인 관광객 납치 살인 사건, 3편은 일본 야쿠자의 한국 내 마약 밀반입 사건을 그렸다.

4편은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 사건을 다룬다. 필리핀 시내에서 한국인 앱 개발자가 잔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시신은 국내로 인계되고 마석도(마동석)는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쳐 달라는 피해자 모친의 부탁에 따라 수사에 착수한다. 이 살인 사건의 이면에는 한국에서 해외까지 판을 키운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이 있다. 사건을 수사하던 마석도와 형사들은 이 조직을 움직이는 몸통이 특수부대 용병 출신의 행동 대장 '백창기'(김무열)와 IT업계 천재 CEO '장동철'(이동휘)임을 알게 되고 사이버수사대, 필리핀 경찰과 공조해 본격적인 추적을 시작한다.

영화가 지루하지 않다는 것,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오락 영화로서 큰 장점이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독보적 캐릭터인 '핵주먹' 마석도(마동석)는 건재하고, 1편과 2편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던 장이수(박지환)가 돌아와 활약한다. 마동석의 강력한 복싱 액션과 끊임없이 시도되는 유머, 단순하지만 속도감 있게 풀어내는 전개까지 시리즈의 특징을 그대로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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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실망스러웠던 3편에 이어 나온 4편이었기에 기대치가 높다. 그러나 4편 역시 3편에서 보여줬던 시리즈의 답습과 반복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두 편 연속 아쉬운 결과물을 접하면서 1편에서 느꼈던 개성을 그리워할 관객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1편은 범죄 느와르에 가까운 영화였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차이나타운에서 벌어진 조선족의 잔혹 범죄와 조직 간 알력 다툼, 그리고 이 조직을 소탕하는 형사들의 일망타진 작전은 범죄 르포 같은 리얼리티를 보여주며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단순히 유혈이 낭자해서 공포감과 긴장감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건을 반영한 범죄 묘사로 현실 공포를 조장하며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물론 1편의 성공은 마동석의 독보적 캐릭터가 절대적이었지만 매력적인 빌런 장첸(윤계상)과 개성 넘치는 조연들의 앙상블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요인이었다.

2편은 압도적이었던 1편에 못 미치긴 했지만 나쁘지 않은 속편이었다. 액션의 비중과 강도를 높였으며, 라이징 스타 손석구가 만들어낸 잔혹한 악역으로 마동석과 균형의 추를 맞춘 전략도 주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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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3편부터는 이야기의 무게감과 밀도가 확 떨어졌다. 영화 초반 충격적인 사건을 등장시켜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사건의 전개와 위기를 해결하는 방식을 단순화해 수사물로서의 현실감은 물론 재미와 박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무겁고 진중한 느낌을 확 빼 범죄 느와르에서 액션 코미디로 방향을 선회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4편 역시 3편과 완성도와 재미를 비교한다면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3편을 재밌게 본 관객이라면 4편 역시 즐길 수 있지만, 3편에서 이미 식상함과 진부함을 느꼈던 관객이라면 4편 역시 불만스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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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조건 이기는 마동석vs질 예정인 빌런…'범죄도시'의 한계

'범죄도시' 시리즈는 맛있는 자극으로 점철된 영화다. 마석도의 핵펀치가 유발하는 아드레날린, 강력한 악역이 주는 도파민, 선이 악을 이기는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로 귀결된다.

단순하고 무식하지만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형사의 본분에 충실한 마석도는 시민들이 생각하는 '민중의 지팡이'의 표본과 같은 사람이다. 어떤 극악무도한 악당이 나타나도 마 형사의 빅펀치 한 방이면 나가떨어지는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해 한국적인 히어로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무조건 이기는 마 형사와 어쨌든 질 예정인 빌런의 대결 구도는 이제 좀 식상해진 것이 사실이다. 마동석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서 악역의 위용을 낮출 수밖에 없는 건 '범죄도시'의 한계다. 오죽하면 4편 기자간담회에서 '마석도의 빌런화'를 제안하는 질문이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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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징악의 구조가 잘못은 아니다. 정의구현하는 형사물에서 당연한 귀결이다. 다만 선이 악을 이기는 결말로 가는 과정에서 이야기로서의 흥미로움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빌런의 존재감도 줄었다. 1편과 2편에서 선악의 구도를 꽤 균형 있게 맞추며 긴장감을 유발했던 것에 비해 3편과 4편은 긴장의 밀도가 떨어졌다. 3, 4편 모두 두 명의 빌런을 내세우는 변화를 감행했지만 '1+1=2'가 아니라 '1+1=0.5'처럼 여겨질 정도로 임팩트가 낮았다. 3편에 비하면 4편의 빌런 김무열의 활약은 돋보이지만,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수준은 아니다.

'범죄도시' 흥행 요소 중 하나인 코미디도 예전만 못하다. 아이디어가 돋보이고 센스가 넘치는 유머보다는 말장난에 의존한다. 유머의 타율도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캐릭터의 낮은 지능을 활용하는 '수'가 뻔히 보이는 유머는 웃기기보단 우스울 때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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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은 어떨까. 마 형사의 액션 베이스는 복싱이다. 여기에 빌런들은 각종 무술 혹은 도구(칼)로 맞서왔다. 마동석은 '범죄도시' 시리즈의 액션에 대해 "1, 2편에서는 슬러거 타입을 적용했다. 그런데 복싱인데도 복싱처럼 보이지 않아서 3편에서는 좀 더 정교한 복싱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3편은 통쾌한 느낌을 가져가되 실제 복싱 같은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고 액션 디자인의 변화를 설명했다.

2편부터는 마석도의 핵주먹에 고속 촬영과 과장된 사운드를 입혀 파워를 강조하는 식으로 변화를 줬다. 이 변화는 액션의 판타지성을 부각해 오히려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범죄도시'의 맨주먹 액션이 처음부터 이렇게 허무맹랑한, 판타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동석은 4편의 액션에 대해 "1, 2편에서 했던 슬러거 스타일과 3편에서 했던 복서 스타일, 그리고 인파이팅과 아웃파이팅을 합치고 경쾌한 느낌보다 묵직한 느낌을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소개했다. 한마디로 4편은 '복싱 액션'의 종합판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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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편까지 쭉 가는 시리즈…언제까지 '아는 맛'이 통할까

브랜드 가치와 브랜드 만족도라는 게 있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도합 3,000만 명의 흥행으로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네 편의 영화를 통한 브랜드 만족도는 한 번 점검해봐야 한다. 특히 최근 2년간 나온 두 영화에 대한 실관람객의 평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최신작인 4편의 가장 큰 아쉬움은 관객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얻고 있음에도 시리즈의 진화와 확장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기조 아래 반복과 재생산에 그친듯한 결과물을 뽑아냈다. 오락 영화의 최대 미덕이 '재미'라고는 하지만 그 재미에 어떤 야심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시리즈의 퇴보를 의미한다.

공장에서 찍어낸 기성품 같은 영화의 만듦새 때문에 천만 흥행을 달성하고도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이름을 기억하는 관객은 드물다. '범죄도시'는 예나 지금이나 마동석의 영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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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은 공식 석상에서 '범죄도시' 시리즈를 8편까지 기획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았다. 최근 열린 4편의 언론시사회 자리에서 마동석은 "5편부터는 톤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반가운 선언이다.

누군가는 '범죄도시' 시리즈는 더 이상 만듦새가 중요한 영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만들기만 하면 흥행하는 영화에 무슨 고민이 필요하겠냐"라는 영화인들의 비아냥 섞인 반응도 적잖다. 흥행의 영광에 취해 해 왔던 것을 반복, 답습한다면 브랜드 가치는 물론 극장 영화로서의 상품성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극장의 위기 시대에 성공적인 영화 기획은 귀하고, 흥행은 더욱 어렵다. 시리즈 세 편 도합 3,025만 명의 관객을 모은, 21세기 가장 성공한 시리즈인 '범죄도시'가 공장형 영화로 변질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유종의 미를 거두길 기대한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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