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여러모로 새 역사"…'헌트', 칸에서 증명한 '감독 이정재'의 역량

김지혜 기자 작성 2022.05.20 16:53 수정 2022.05.26 04:46 조회 591
기사 인쇄하기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헌트' 레드카펫 이정재 정우성

[SBS 연예뉴스 | (칸=프랑스)김지혜 기자]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배우 이정재의 30년 연기 경력의 종합판이었다면, 영화 '헌트'는 감독 이정재의 기념비적인 시작이다.

이정재는 감독 데뷔의 첫 발을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중 하나인 칸 국제영화제에서 뗐다.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 칸의 초청을 받았다는 것도 놀랍지만 한국의 배우 출신 감독이 데뷔부터 국제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운대가 맞았다"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영화가 공개되고 난 후에는 "칸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밤 12시 칸영화제가 열리는 뤼미에르 극장에서 영화 '헌트'의 공식 상영이 진행됐다. 칸 영화제의 공식 섹션은 경쟁부문, 비경쟁부문, 비경쟁 부문 내의 심야상영, 주목할 만한 시선, 특별상영, 시네파운데이션, 단편영화 부문으로 나뉜다.

이 중 경쟁부문과 비경쟁부문 초청작만이 칸영화제를 상징하는 뤼미에르 극장에서 레드카펫 행사와 함께 상영된다.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는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전 세계 최초 공개)로 공개됐다.

TWO RIVALS, A HIDDEN TRUTH. FESTINALDECANNES LEE JUNG-JAE JUNG WOO-SUNG HUNT A FILM BY LEE JUNG-JAE

'헌트'는 1980년대를 관통한 실제 사건에 픽션을 가미해 흥미로운 첩보 액션 영화로 완성됐다. 이 아이템은 이정재가 영화화를 꿈꾸며 오랫동안 품고 있던 것이었다. 몇몇 감독에게 연출 의뢰를 하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 이정재 본인이 감독을 맡기로 하면서 원안자인 조승희 작가와 시나리오를 공동집필했다.

영화 촬영을 시작한 이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방영됐고, 이 작품은 이정재의 국제적 위상을 바꿔놓았다. 국내 최고의 톱스타는 1년 사이 월드 스타가 돼 미국 대중문화 시상식의 남우주연상을 잇따라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배우 이정재에 대한 관심은 '감독 이정재'로도 옮겨갔다. 칸영화제는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을 미리 선점해 칸에서 첫 공개하는 영리한 선택을 했다. 이정재는 자신의 연출 데뷔작으로 2010년 경쟁 부문에 초청됐던 '하녀'에 뒤를 이어 12년 만에 칸을 찾았다.

영화 헌트 스틸컷

◆ '헌트'는 어떤 영화?…심리전에 액션 가미한 첩보물

'헌트'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펼쳐지는 첩보 액션 드라마다. 조직 내 스파이를 집요하게 쫓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 역할은 이정재가, 스파이의 실체에 다가서는 또 다른 요원 '김정도' 역할은 정우성이 맡았다.

1980년대 남북 관계를 바탕으로 5.18 민주화 운동, 이웅평 귀순 사건,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등의 실제 사건에 픽션을 가미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쳐냈다.

근본적으로 두 인물을 중심으로 한 캐릭터 드라마다. 여기에 화려하고 다채로운 액션을 통해 영화의 박진감과 쾌감을 더했다. 남북관계와 민주화운동이 이야기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극 초반 너무 많은 정보가 제시된다는 느낌도 준다.

그러나 본격적인 전개 이후부터는 두 인물의 심리전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조직 내에 스파이가 침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사건건 대립했던 박평호와 김정도는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긴장감을 유발한다. '스파이 찾기'에 몰두하다 보면 영화가 선사하는 끊임없는 트릭과 반전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영화 헌트 스틸컷

첩보 액션이라는 장르에 방점을 찍고 봐도 만끽할 요소가 많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휘몰아치는 전개로 속도감을 유지하며, 장소에 따라 콘셉트를 달리하는 액션 장면이 등장해 볼거리가 끊임없이 제공된다. 영화의 분위기를 리드하는 데 있어 음악의 중요성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헌트'에서의 음악은 또 한 명의 주인공처럼 느껴질 정도로 관여도가 높다.

'헌트'에는 국내 최고의 스태프가 모였다. 촬영 이모개, 음악 조영욱, 편집 김상범, 미술 박일현, 의상 조상경 등이 총출동해 각 분야에서 최고의 결과물을 냈다. 이 장인들은 한데 모으고 조화를 이루게 한 건 감독 이정재의 역량이다. 배우 출신 감독들은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에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이정재는 각 분야의 장인들과 프로덕션에 있어 폭넓은 경험을 가진 한재덕 대표, 박민정 PD와의 협업을 통해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완성했다.

특히 1980년대라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암흑기를 묘사하는 데 있어 과감할 정도로 디테일하게 그려내며 어느 영화에서도 못 본 인상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감독 이정재의 집요함과 고집이 수려한 데뷔작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낳았다.

이정재 정우성

이정재와 정우성의 23년 만의 '연기 재회'도 주요한 볼거리다. 극 중 관계와 극 바깥의 실제 관계가 오버랩되며 두 배우의 투샷은 영화 내내 흥미롭게 다가온다. 말로써 대립하거나 몸을 부딪히며 갈등을 표현하는 장면들도 좋지만, 서로를 향한 의심과 불안, 긴장을 담아낸 두 배우의 표정 연기가 백미다.

톱스타들의 카메오 출연은 그 면면이 놀라울 정도다. 황정민, 이성민, 주지훈, 김남길, 조우진, 정만식 등이 감독과 제작사 그리고 프로덕션에 대한 신뢰로 카메오 출연을 결정했다. 특히 황정민과 이성민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영화의 결정적 장면을 완성하기도 했다. 박평호의 오른팔 주경 역의 전혜진과 박평호와 유사 부녀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유정 역할의 고윤정, 두 여성 캐릭터의 비중과 묘사, 연기도 매력적이다.

헌트

◆ 칸 신고식 마친 '헌트', 여름 시장 정조준

'헌트'의 월드 프리미어는 칸 뤼미에르 극장을 채운 2,500여 명의 관객으로부터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 배우 이정재에 대한 호기심과 물음표는 영화 상영 후 박수와 호평으로 이어지는 분위기였다. 영화에 대한 예비 반응을 체크하는 바로미터로 이보다 더 솔직한 무대는 없다.

영화를 관람한 후 만난 영화평론가 전찬일은 "이정재 감독의 연출력에 놀랐다. 데뷔작으로 200억이 넘는 예산의 큰 영화를 연출하면서 만듦새와 재미를 놓치지 않는 역량이 상당하더라. 지난해 '오징어 게임'으로 배우로서 의미 있는 성취를 거둔 이정재가 감독으로서의 능력도 보여줬다. 여러모로 새 역사를 쓰고 있는 것 같다"고 호평했다.

미국 버라이어티는 "액션 시퀀스들을 인상적이고 효율적으로 구현했고 스타일리시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완성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데드라인은 "카리스마 넘치는 주연배우들과 강렬한 액션이 인상적"이라며 "서스펜스와 인간의 감정까지 최대한으로 끌어오리는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헌트' 레드카펫

칸에서 화려한 신고식을 치른 '헌트'는 올여름 국내 극장가를 공략한다. 투자배급을 맡은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은 이 작품을 통해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의 각축장이었던 여름 텐트폴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다.

창사 이래 가장 큰 제작비인 200억 원을 투자한 대작에 이정재와 정우성이라는 국내 최고 스타의 앙상블이다. 앞서 여름 시장 출격을 선언한 '한산:용의 출현', '외계+인', '비상선언'과 비교해서도 밀리지 않은 위용이다. 공식적으로 확정되진 않았지만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은 '헌트'의 개봉 시기를 8월 10일로 보고 있다.

칸영화제에서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 '헌트'는 20일 오전 11시, 오후 9시 30분, 오후 10시 30분까지 총 3차례 추가 상영을 이어간다. 이 상영 회차는 영화에 대한 화제성과 기대감에 힘입어 일찌감치 매진을 기록했다.

ebada@sbs.co.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