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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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웰메이드 '남한산성', 왜 관객을 홀리지 못했나

김지혜 기자 작성 2017.10.18 13:18 수정 2017.10.18 17:33 조회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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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결국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 개봉한 '남한산성'은 18일까지 전국 367만 573명을 모았다.

관객 360만 명은 적은 수가 아니지만 '남한산성'은 제작비 150억이 투입된 대작이다. 손익분기점은 약 500만 명. 그러나 개봉 3주 차에 접어들어 일일 관객 수가 2만 명대(스크린 673개)로 추락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본전 회수가 어렵다.

'남한산성'은 언론시사회 직후 "웰메이드 사극"이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전반부 코미디, 후반부 드라마 구성으로 관객을 손쉽게 모으려 했던 종전의 사극과 달리 조미료 하나 안 치고 정공법으로 승부하는 '정통 사극'이었다. 어디서 본듯한 혹은 안전한 선택만 답습하는 한국 영화계에서 나온 도전적인 영화가 흥행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도 적잖았다. 

그러나 '남한산성'은 관객들의 고른 지지를 얻지 못했다.              

남한산성

◆ 관객은 '지는 싸움'을 싫어했다

'남한산성'은 인조 14년,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가장 치열한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황동혁 감독은 "김훈 작가의 소설을 읽고 47일이라는 시간 동안 남한산성 안팎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특히, 두 명의 신하 최명길과 김상헌이 벌인 논쟁과 관점의 대립에 큰 관심이 갔고, 두 신하의 주장을 듣고 결정을 내려야 했던 왕 인조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아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고 연출 계기를 밝혔다. 

이 영화는 '병자호란'(1636)이라는 굴욕의 역사를 다룬다. 감독은 과정으로서의 역사에 주목했다. 화친을 두고 주화와 척화로 나뉘었던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은 역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는 의미가 있었다. 게다가 영화가 그리고 있는 상황적 위기와 갈등이 380년이 지난 현재의 정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외교적으로 위기에 처했고, 정치권은 분열됐으며, 국민은 불안하다.

흥미로운 포커싱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지는 싸움'을 관전하는데 큰 흥미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실의 거울같은 영화라고 볼 수 있지만, 영화로 팍팍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싶어하는 관객에게 손이 가지 않은 작품이기도 했다. 게다가 신념의 대립과 논쟁의 끝에는 치욕스러운 패배가 기다리고 있다. 승리의 카타르시스가 없는, 지지부진한 과정을 견디는 인내를 발휘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결국, 일주일간의 폭발적 흥행 이후 더이상 입소문이 퍼지지 않았다. 

남한산성

◆ '혀의 전쟁', 장점이자 단점

'남한산성'은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면 으레 등장하는 대규모 전투신이 거의 없다. 중반 이후 청의 일방적인 공격과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조선의 모습이 잠시 나올 뿐이다. 이 영화는 육신이 엉겨 붙고, 피가 튀는 전쟁이 아닌 '썰전'을 그렸다.

최명길과 김상헌이라는 희대의 라이벌이 썰전의 양축이다. 최명길은 인조반정의 일등 공신으로 광해를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옹립한 인물이다. 그는 정세를 객관적으로 보는 통찰력과 나라에 대한 지극한 마음을 지닌 이조판서로 나온다.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에서 청과의 화친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

김상헌은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과 옳다고 믿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 기개를 지닌 예조판서다. 거세게 압박해오는 청의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결사 항전하겠다는 결의로 척화를 주장하며 최명길과 대립한다.

남한산성

정반대의 견해를 가진 두 사람은 인조를 앞에 두고 '혀의 전쟁'을 펼친다. 영화는 100분 토론을 중계하듯 양측의 주장을 스크린에 부각한다. 그러다 보니 대사는 길고, 호흡은 느리며, 인물의 클로즈업이 반복된다. 이러한 연출에서 극적 효과는 미미하다.

물론 '남한산성'은 종전의 사극이 시대와 인물을 포착하는 데 그치고, 사건을 가공하는데 집중한 것과 달리 시대의 공기를 담고, 인물의 내면을 투영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깊이를 보여줬다. 게다가 양측의 입장을 한쪽으로 기울이지 않고 모두 담아낸 균형감이 돋보였다. 더불어 속수무책으로 나라의 명운을 청나라에 맡긴 인조의 고뇌를 그리는데도 힘을 쏟았다.       

하지만 대다수의 관객은 빠른 이야기, 극적인 드라마에 길들어져 있었다. 장중한 탁상공론이 몰입과 재미를 주는 데는 어려움이 따랐다.      

남한산성

◆ 소설과 영화의 차이…압축의 묘가 아쉽다

'남한산성'은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소설의 백미인 문어체 대사를 살렸다. 그러나 영화는 영상 예술이고, 압축의 묘가 두드러지는 예술이다. '읽어주는 영화'가 돼버린 이 영화의 선택은 도전적인 시도였으나, 효과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영화와 소설은 엄연히 다르다. 소설의 특징과 장점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이 영화에 적합한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남한산성'은 굵직굵직한 갈등을 배우들의 '치고받는 대사'로 그려낸다. 그러나 말의 전쟁이 서사의 스펙터클로 이어지기란 쉽지 않다. 이병헌과 김윤석이라는 당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의 정제된 열연은 그 자체로는 인상적이지만 영화적 효과로는 크게 기능하지 못한 느낌이다.

잘 만든 영화가 흥행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완성도가 오락성과 늘 비례하지도 않는다. 사극의 새로운 시도와 실험이라는 점에서 '남한산성'은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순간만 즐기고 휘발되는 그저 그런 오락영화와는 다른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는 반가움이 있다.  

문제는 이 작품이 제작비 150억이 투입된 상업영화라는 것이다. 제작진은 대중적이지 않지만 의미 있는 이야기를 위해 톱스타를 기용하고, 예산을 키우는 승부수를 띄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흥행의 최저노선인 손익분기점을 채우지 못했다. 우려된다. 이러한 의미 있는 도전이 성과로 이어지지 못해 '다음'을 기약할 수 없게 될까 봐 말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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