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한국 영화계에서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을 단 한 명에게만 부여할 수 있다면, 그 답은 예나 지금이나 안성기다. 5살의 나이에 아역으로 데뷔해 69년의 170편의 영화를 남긴 부지런함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한국 영화 역사 번영의 중심에 있었고, 시련의 시간에도 위기 극복을 위해 앞장섰다. 배우로서의 화려한 커리어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인품을 지닌 인격자였다. 연기 잘하는 배우는 많지만 인간적으로 훌륭한 배우는 드물다. 안성기는 모든 면에서 후배와 선배의 존경을 받을 만한 모범적인 배우의 삶을 살았다.
안성기가 74세의 일기로 세상과 이별했다. 영화인장으로 치러진 5일간의 장례식장에는 영화계 인사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며 인산인해를 이뤘다. 장례식장 안팎에서도 생전 알려지지 않은 미담들도 쏟아졌다.
5일에 걸쳐 치러진 영화인장은 국민 배우에 대한 예를 갖춘 시간이었다. 영화인들은 스케줄을 조정해 장례식장으로 달려왔고, 장례 일정 중 자신의 할 일을 찾았다. 서울영화센터는 고민의 마지막을 시민들이 배웅할 수 있도록 추모공간을 마련해 운영했다.
영결식은 카톨릭 신자였던 고인을 생각해 명동성당에서 엄수됐다. 9일 오전 7시 출관 절차가 됐다. 정우성이 영정을, 이정재가 금관문화훈장을 들었으며 설경구, 박철민, 유지태, 박해일, 조우진, 주지훈 등이 운구를 맡았다.
오전 8시 명동성당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집전으로 고인의 안식을 기원하는 추모 미사가 열렸다. 오전 9시부터는 영결식이 진행됐다. 고인이 생전 이사장으로 있던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의 김두호 이사가 약력 보고 했으며, 조사는 정우성과 장례위원장 배창호 감독이 낭독했다. 고인의 장남인 안다빈은 유가족 대표로 인사를 전했다.
1952년에 태어난 안성기는 5살이었던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 출연하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어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만다라'(1981), '고래사냥'(1984),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칠수와 만수'(1988), '투캅스'(1993), '태백산맥'(1994), '취화선'(2002), '인정사정 볼것 없다'(1999), '실미도'(2003), '라디오스타'(2006), '페어러브'(2010), '부러진 화살'(2012), '신의 한 수'(2014), '화장'(2015) 등 69년간 170편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한국 영화 부흥기인 1980~9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며 임권택, 배창호, 이장호, 강우석, 이명세 감독 등 함께 한국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한국 영화 최초의 천만 흥행작인 '실미도'에도 주연으로 활약하며 새 이정표를 세웠다.
1998년부터는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참여하며 영화제 발전에 이바지했다. 2000년대 스크린 쿼터 축소 반대에도 앞장섰고, 불법 다운로드 금지 운동에도 나섰다. 또한 30년 넘게 국제구호단체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안성기는 중년에 접어들면서 주연이 아닌 조연을 맡는 일이 많아졌다. 김성수 감독과 함께 한 영화 '무사'는 그가 처음으로 주연의 자리에서 내려와 조연을 맡은 영화였다. 중국 사막 한 복판에서 계속된 촬영이었지만 싫은 기색 없이 촬영에 성실히 임했고, 먼저 촬영이 끝나면 모닥불을 피워 후배들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노년에 들어서 보여준 활약과 노력도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신의 한 수'(2014)는 배우의 존재감은 분량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활약이었다. 출연 분량은 30분 여분 남짓이었지만 바둑 기사 태석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스승으로 등장해 담백한 연기를 펼쳤다.
2016년에 개봉한 '사냥'에서는 상반신 탈의신을 통해 근육질 몸매를 보여주기도 했다. 근육 잡힌 몸의 조형에 눈이 가는게 아니라 6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 장면을 위해 몸을 만든 그 열정과 노력은 감탄을 자아냈다.
60대 중반까지 영화계에서 왕성한 활약을 펼쳤던 안성기는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아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듬해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재발해 투병을 이어왔다. 투병 중에도 '한산: 용의 출현'(2022)과 '노량: 죽음의 바다'(2023)를 촬영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안성기의 영정 사진은 사진가 구본창이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을 촬영하던 당시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인 아내 오소영 씨에 따르면 부부가 가장 좋아하던 사진이었다.
관객들은 안성기와 함께 한국 영화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보냈고, 후배 영화인들은 안성기의 영화를 보고 자라 오늘날의 콘텐츠 강국을 만들었다. 69년간 영화 한우물만 파며 영화배우로 살았던 안성기는 영원한 국민배우이자 한국 영화의 대배우로 영면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