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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 조우진을 과소평가했다...연기력 경신의 귀재

김지혜 기자 작성 2018.12.12 17:11 수정 2018.12.1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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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고백하건대, 배우 조우진을 과소평가했다.

2015년 영화 '내부자들'을 통해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 호평이 쏟아졌지만 '비슷비슷한 악역 캐릭터로 소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적잖았다.

차기작은 드라마 '도깨비'였다. '김비서' 캐릭터를 통해 전작과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피비린내 풍기는 엘리트 악역에서 진지하게 웃긴 코믹 캐릭터로 안방극장에서도 사랑받았다. '내부자들'에서 "여 썰고~저 썰고"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던 조우진은 '도깨비'에서 "네에~"라는 말투를 유행시켰다.

2015년 이후 조우진은 14편의 영화와 3편의 드라마를 했다. 출연 빈도를 생각하면 '다작 배우'로 거론될 만 하지만 "또?", "지겹다"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작품 안에서 변신의 폭과 변주의 범위가 넓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펙트럼이 넓다'는 표현을 흔히 쓰지만 조우진의 연기 스펙트럼은 그야말로 놀랍다. 희극과 비극, 선역과 악역을 넘나 든다. 특히 놀라운 것은 같은 악역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캐릭터라도 변주를 통해 완전히 다른 색깔을 낸다는 것이다. '내부자들'의 조 상무가 다르고, '강철비'의 최명록이 다르다.

연기는 결국 디테일의 싸움이다. 이를테면 조우진은 경상도 배경의 영화 '보안관'과 '브라더'에 출연했지만 각각 부산과 안동이라는 경상남도와 북도의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분해 구사했다. '도깨비'에서도 코믹 캐릭터를 연기했고, '미스터 션샤인'에서 코믹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겹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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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5분 남짓한 짧은 출연에도 또렷한 존재감을 남기는 능력도 보여줬다. 영화 '1987'에서의 오열 연기는 치밀어 오른 분노를 우리의 슬픔으로 전이시키는 놀라운 순간을 만들어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조우진은 다시 한번 악역 연기를 선보인다. 국가의 경제가 부도 직전에 몰리자 IMF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재정국 차관'으로 분했다. 그 흔한 이름 하나 부여되지 않은 캐릭터에다 주인공 '한시현'(김혜수)과 대척점에 서 자칫 납작한 악역에 머무를 수 있는 인물이었다.

조우진은 "내가 연기하는 인물이 욕을 먹어야 한시현(김혜수)의 올곧은 마음과 행동이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생각 아래 캐릭터 분석에 들어갔다. 인물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우월감과 자기 확신, 신념을 잃지 않는 입체적인 인물을 만들어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쭉 훑어보면 '연기력 경신의 귀재'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그와 인터뷰하면서 느낀 바를 전한다.

'작은 차이가 모여 큰 차이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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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F 찬성한 차관은 매국노? "선악 구분 짓지 않으려 했다"

조우진이 연기한 재정국 차관은 시대와 직함을 따져보면 실존 인물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 말미 'CEO 박대용'이라는 명패가 스치듯 등장하기는 하지만 영화 내내 이름 한 번 불리지 않는다.

"단순한 악역이라고 할 수 없다. 선과 악을 구분 짓지 않으려고 했다. 오랜 시간 경제 공부를 하고, 전문가로서의 행보를 이어온 끝에 정부 고위 관료가 됐다. 이 사람 안에 자리 잡은 그릇된 신념을 뚜렷하게 표현하되 올곧은 사고를 바탕으로 행동에 옮기는 한시현과 대척점에 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인물의 갈등이 최대치에 도달해야 관객의 공분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차관이 가지고 있는 확신에 찬 신념을 어떻게 드러낼까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IMF 총재(뱅상 카셀)과 비공개 협상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상황상 IMF 총재 대 한국 측 협상단의 구도로 협상이 진행돼야 하지만 영화에서는 재정국 차관과 한시현의 대립각이 부각된다. 서로 다른 이상과 목표를 추구하는 두 인물이 각자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논쟁을 벌이는 장면은 영화의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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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 선배와 불꽃 케미를 만들어보자고 다짐했다. 사전 리딩을 했다. 이 장면에서는 무슨 목표점을 잡고 어떻게 부딪혀야 할지를 상의했고, 리허설을 통해 서로의 연기와 리액션을 조율했다. 대사와 대사가 부딪히는 장면이지만 상대의 액션과 리액션이 중요한 장면이었다. 물론 긴장감이 있었다. 김혜수 선배는 베테랑인 데다가 저보다 훨씬 대단한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오신 분이지 않나. 하지만 사람으로서 배우로서 이렇게 포용력이 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상대를 배려해주셨다."

조우진은 재정국 차관을 연기하는 데 있어 경제학자로서의 치밀함과 정치인으로서의 호흡을 담아내려 했다. 그는 "학자들은 분석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차갑기만 한데 정치인은 사람을 상대로 하다 보니 예리하면서 능글맞은 측면이 있다. 학자보다는 정치인으로서의 성격을 보여주고자 했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설명한 캐릭터 분석과 연기 디테일이 빛을 발하는 또 하나의 명장면은 화장실 대화 신이다. 조우진이 가진 특유의 쪼(무언가를 표현하려고 애쓸 때 나오는 일정한 행동과 말투)와 독특한 음성, 발음이 두드러져 집중력을 높이는 가운데 인물의 이면을 동물적인 연기 감각으로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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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헌X송강호X정우성에게 배운 건...장점 흡수해 '조우진화'

조우진은 이병헌, 송강호, 정우성, 김혜수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연기 호흡을 맞추며 잠재력을 실력으로 발전시켰다. 가능성 있는 배우라고 해도 실전에서 제 실력을 뽐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난다 긴다 하는 배우들 앞에서 연기하는 것은 담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조우진이 걸어온 길을 보면 센 상대 앞에서 오히려 플러스 역량을 발휘하는 배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단기간에 정상급 배우로 성장한 것은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과의 호흡하며 습득한 내공의 힘이기도 할 것이다.

"현장에서는 최대한 상대에게 집중하고자 한다. 그게 좋은 결과를 갖고 오더라. 운이 좋게도 좋은 선배들과 작품을 했고, 그분들을 따라가려고 노력한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연기력뿐만 아니라 인격도 훌륭하신 선배들이었다. 대중의 큰 사랑을 받는 분들의 공통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조우진이 선배들에게 배우고 흡수한 역량은 어떤 것일까. 먼저 '마약왕'에서 호흡을 맞춘 송강호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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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선배님은 정말 동물적이다. 야수 같달까. 그러면서도 경이로울 정도로 현장에서 유연하시다. '송강호가 연기하면 모든 장면이 특별해진다'라고 말한 어떤 감독님의 말에 100% 공감한다. 오늘날의 송강호는 연기에 대한 치밀한 분석력과 노력이 쌓이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런 부분을 티 내지 않으신다. 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연기를 하신다. 그런 액션을 받고 연기할 수 있어 매 신마다 쾌감을 느꼈다."

영화 '강철비'에서 호흡을 맞춘 정우성과 '돈'에서 호흡을 맞춘 유지태에게서는 올곧음을 배웠다고 했다. 그는 "큰 키처럼 태산 같이 크고 올바른 성품을 가지신 분들이다. 게다가 그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신다. 연기뿐만 아니라 생활적인 면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배우가 봐도 매력이 넘치는 인물은 이병헌, 김혜수라고 했다. 조우진은 이병헌과 '내부자들'에서 첫 호흡을 맞춘 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영화 '남산의 부장들'까지 호흡을 이어가고 있다. 김혜수와는 '국가부도의 날'에서 첫 호흡을 맞췄지만 서로를 '갓혜수', '불꽃우진'이라 부르며 극찬하고 있다.

"이병헌 선배와는 지금도 친하지만 앞으로도 더 친해지고 싶다. 그분의 연기력을 뱁새처럼 이라도 따라가고 싶다. 김혜수 선배님은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멋진 분이다. 자기 관리와 연기력까지 모두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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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l about 조우진...본명은 조신제

조우진의 본명은 조신제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조우진은 스무 살이 되던 해 배우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다. 대학로에 가 몸으로 부딪히며 연기를 배웠다. 1999년 연극 '마지막 포옹'으로 데뷔해 희극과 비극, 아동극까지 넘나들며 연기 경험을 쌓았다.

2010년까지는 본명 조신제로 활동했다. 당시 역학을 공부하던 지인에게 조우진이라는 이름을 받아 쓰기 시작했고, 3년 전 개명했다.

IMF 사태는 조우진이 이른 나이에 생업 전선에 뛰어든 계기였다. 1979년생인 조우진은 예정대로 라면 1997년 대학에 입학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즈음 가세가 기울었다.

"대학 입학 등록금이 없었다. 그다음 해에도 대학을 못 갔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자' 싶어 대학로에 문을 두드렸다. 워크숍서 연기를 배우면서 무대에 올랐다. 2000년도에 연극과(서울예대)에 입학했다."

군 제대를 기점으로 학교를 관두고 직업 연극인의 길로 나섰다. 그는 당시에 대해 "2005년에는 1997년과 달리 학자금 대출 제도가 활성화돼있을 때였다. 이 돈을 가지고 남은 학기를 채울 수도 있었지만 연극에 집중하고 싶었다. 연극을 하면서 통장 잔고가 바닥나면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조우진의 창의적인 연기는 정규 교육 과정을 통해 습득한 게 아니라 연극판에서 기고 구르며 얻는 산물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른 나이에 생활 전선에 뛰어들다 보니 사람을 많이 만나고, 여러 직종을 경험했다. 그렇게 쌓인 데이터가 연기를 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연기는 다른 무엇보다 멘탈이 중요하다. 약 15년간 무명으로 배우 생활을 하면서 정신력을 다진 게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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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진을 알린 이 작품, 이 역할 '4'

조우진은 준비된 천재일까, 현장에서 만들어진 연기 괴물일까. 본인은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호연의 힘을 감독들의 연출력, 상배 배우의 역량으로 돌렸다. 스스로 생각하는 대표작 리스트와 그 이유도 궁금했다.

"본격적인 액션 연기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강철비'를 꼽고 싶다. 이 작품을 통해 액션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기도 했고, 더 해보고 싶다는 의욕도 생겼다. '도깨비'는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해 줬다. 지금도 거리에 나가면 '김비서'라고 불러주시는 분들이 많다. 그만큼 캐릭터가 각인이 됐다는 거다. 그 작품이 있어서 '여썰어 아저씨'에서 '김비서'가 됐다. '내부자들'과 전혀 다른 캐릭터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해 준 작품이라는 점에서 고맙다."

'국가부도의 날'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보였다. 조우진은 "깊이와 확장면에서 고민하게 해 준 작품이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표현할까를 고민하다 보니 종전의 영화와 다른 느낌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다. 여타 작품에서 표현됐던 공무원, 고위직 관료를 변주하면서 뻔하지 않고, 있을법한 입체감 있는 인물을 만들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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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작 '내부자들' 역시 빼놓지 않았다. 조우진은 "'내부자들'을 통해 처음으로 팬카페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무명 배우 시절에도 격려해주신 몇몇 분들이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응원해주는 분들이 생겼다. 대낮에 운전을 하고 가다가 긴 터널을 통과하면 밟은 빛이 나타나 눈이 부시지 않나. 어두운 터널에서 날 밖으로 꺼내 준 느낌이었다. 그래서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라고 표현했다.

쉴틈 없는 연기 활동을 이어오면서 나름의 작품 선택 기준도 확립됐을 것이다. 처음에는 캐릭터 중복에 대한 우려가 있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부질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작품과 캐릭터는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다르게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고,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하다 보면 입체적으로 완성될 때가 있다. 매 작품 운명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관객의 신뢰와 사랑을 받으며 '믿고 보는 배우'로 성장한 조우진이기에 원톱 주연에 대한 욕심도 생길 법하다. 그 다운 답변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내가 만족할만한 연기는 어떤 것일까'를 늘 생각한다. 그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100%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연기를 해보고 싶다. 사람에게 있어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이다. 그런 순간이 연기로도 왔으면 한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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