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l강경윤 기자] “송화 같은 궁상맞은 인생 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저도 송화와 닮아지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더라고요.”
뮤지컬 '서편제' 4연째 송화 역을 맡은 배우 이자람(38). 그는 1999년 최연소 춘향가 8시간 완창 기록을 통해 기네스북에 오른 소리꾼인 동시에 '아마도 이자람 밴드'의 작곡과 보컬을 맡고 있는 가수다.
최근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이자람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귀여운 눈웃음이 가득하다는 특징이 인상적이었다. 뮤지컬 속 송화의 모습은 흰 저고리를 입은 소리꾼이었는데, 2017년 현실에서 송화가 존재한다면 장난기 어린 이자람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라는 상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송화와 이자람은 얼마나 닮았고 또 얼마나 다를까.
“'서편제' 삼연 때까지는 송화 같은 삶이랑은 100km 떨어져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지지리 궁상 같은 삶은 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인정했어요. 닮기도 닮았구나. 한 여인이 겪은 사건과 슬픔, 분노, 그리고 이겨내는 과정을 연기하면서 '버텨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송화는 어찌 보면 우리가 가진 외로움과 슬픔에 일말에 답을 해주는 것 같아요.”
말투는 경쾌하지만 그 의미는 누구보다 묵직했다. 진지한 대답 끝에도 이자람은 “특히 송화가 '아리아리랑' 하면서 길 걸어 다닐 때요. 그때는 그냥 저인 거 같아요. 으헤헤”하면서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자람은 '서편제'란 작품의 의미에 굳이 '전통' 혹은 '한'(恨)만으로 보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서편제'가 그저 쉽게 한으로 해석되진 않길 바라요. 제가 해석한 송화는 분명 쾌(快)가 있어요. 유머를 잃지 않고 '심청가'까지 가는 게 있거든요. 우리도 일상에서 지하철에서 누군가에 어깨를 부딪힐 때 그때그때 삶에서 겪는 불만이 있잖아요. 그런 수많은 걸 한으로 생각한다면 편협할 것 같아요. 나아가 판소리도 한만 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젊은 소리꾼다운 명쾌한 소신이었다. 실제로 이자람은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으로서만 본인을 규정짓길 원치 않았다. 그는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 '아티스트'로 불리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나 판소리 외에도 꾸준히 밴드 활동을 하고 극을 쓰는 등 다양한 활동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제가 가장 잘하는 건 노는 거예요. 노는 욕망이 살아지면 예술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판소리를 하다가 너무 많은 책임감이 들면 바로 밴드 음악으로 가서 또 음악을 미친 듯이 해요. 그렇게 놀다가 또 밴드 음악도 어떤 막중한 책임감이 들면 또 대본을 쓰러 가요. 대본을 쓰다가 '어, 대본이 왜 이렇게 엉망이지?'하는 생각이 들면 또 음악으로 도망가요. 제가 하는 일들은 그렇게 번갈아서 제게 위로로 작용해요.”
그렇다면 '서편제'는 이자람에게 어떠한 '위로'로 작용할까.
“밖에서 보기에 '서편제'의 배우 이자람은 매우 흔들림 없이 제 길을 가는 사람처럼 보일 거예요. 하지만 실제로는요,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웃음) 뮤지컬에 도전하면서 앙상블, 스태프, 배우들이 다 잘하는데 때때로 저 혼자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때때로 견딜 수 없을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공연 도중에 손으로 작게 하트를 만들어주는 스태프들의 응원이 있어서 '나는 오늘도 멋진 톱니바퀴가 되겠어'란 마음을 먹고 무대에 서요.”
'서편제'가 막을 내리면 이자람은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까. 이자람은 한동안 밴드 음악을 하고 싶다고 밝게 말했다.
“배우로서 무대에 서면서 창작하는 걸 1년 동안 멈춘 상태예요. 그렇다 보니 무언가를 창작하고 싶은 욕망이 올라와요. 가장 첫 순서는 밴드 음악이 될 것 같고요. 그 이후에는 대본을 쓰고 싶어요. 음악 창작 프로그램인 '로직'을 배운 지 얼마 안돼서 빨리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서편제'는 판소리가 뮤지컬과 결합해 새로운 대중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성공 사례이기도 하다. 판소리의 대중화를 숙제처럼 안고 있는 현대의 소리꾼들에게는 '서편제'가 문화적 이정표인 동시에, 넘어서야 할 또 하나의 숙제이기도 하다.
“어떤 국수집이 있고, 그 국수집이 오래도록 잘 되게 하고 싶다고 가정을 해볼게요. 저는 전단지를 뿌리고 홍보하는 것보다, 국수를 잘 뽑는 걸 노력하고 싶어요. 메뉴를 발전시키고 그 어디서도 맛볼 수 없었던 맛있는 국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 판소리가 대중화되도록 어떤 노력을 하기보다는, 제가 작품을 통해 소리를 잘 빚어내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