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뻔한 영화? 펀한 영화!] '미스 슬로운', 탁월하십니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4.10 14:03
오프라인 대표 이미지 - SBS연예뉴스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현장예매로 영화를 보는 대다수 사람들은 최근 극장을 갔다가 한숨을 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데이트 코스로 극장을 찾거나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요즘 개봉 영화는 행복한 선택지를 제시해주지 못한다고 여길 수도 있다.

"'미녀와 야수', '프리즌'은 봤기 때문에 더이상 볼 영화가 없어"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근사한 영화 한 편을 추천한다. 바로 '미스 슬로운'(감독 존 매든)이다.

'미스 슬로운'은 로비스트 슬로운이 모두를 좌절시킨 거대 권력을 상대로 로비 전쟁을 그린 스릴러다. 법안 통과를 둘러싼 흥미로운 정치 게임으로서의 매력과 관객의 허를 찌르는 반전 드라마로서의 쾌감까지 겸비한 수작이다. 

승률 100%의 로비스트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은 총기 규제 법안인 '히튼 해리스'(영화 속 등장하는 가상 법안으로 모든 총기 판매 시 신원 조사 의무화를 명시한 총기 규제 강화 입법안)법 통과를 저지시켜달라는 제안을 받지만, 자신의 신념에 따라 경쟁사에 입사에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을 수호하고자 한다.  

슬로운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동료의 아픔까지도 승리의 전략으로 활용하며 비난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경쟁에서는 좋은 위치를 선점해나간다.   

직업 세계에 대한 흥미로운 묘사가 영화 초반 이목을 집중시킨다. 로비스트는 특정 압력단체의 이익대표로서 정책이나 입법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정책 입안자나 정당, 의원을 상대로 활동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로비 활동이 불법인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로비스트가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프라인 대표 이미지 - SBS연예뉴스

각본의 힘이 좋다. 우리에겐 낯설 로비스트 세계를 촘촘하게 묘사하며, 미국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워싱턴 정계의 물밑 싸움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시작부터 방대한 대사를 쏟아내는 영화는 자칫 지루해지게 마련이지만 '미스 슬로운'은 제시카 차스테인, 마크 스트롱, 마이클 스턴버그, 알리슨 필 등의 배우들이 보여주는 빼어난 연기를 통해 극 초반부터 몰입감을 높인다.

시나리오는 영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바 있는 조나단 페레라가 집필했다. 감옥에 다녀온 한 로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페레라는 한국에서 영어 강사를 하며 각본을 쓴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페레라는 로비스트 세계에 대한 면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권력 암투의 생생한 현장을 그려냈고, 자신의 직업적 경험을 살려 법정 드라마로서의 매력도 부각했다. 첫 시나리오임에도 2015년 블랙리스트(해당 연도에 발표됐지만 아직 영화화되지 않은 시나리오 중 호평받은 작품리스트)에 오를 정도로 글발을 인정받았다.

배우의 영화이기도 하다. 제시카 차스테인의 '연기 차력쇼'라 불릴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과 극 장악력으로 영화를 끌고 간다. 관객들에게 다소 낯설고 어려울 수 있는 정치 게임, 로비 행태, 법정 싸움 등의 이슈도 차스테인의 다이나믹한 연기에 의해 흥미진진한 영화적 재미로 승화됐다. 한 명의 뛰어난 배우가 영화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을 때 그 작품은 얼마나 특별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차스테인은 11명의 로비스트를 만나 슬로운을 입체적 캐릭터으로 구축해나갔다. 차가운 눈빛과 정제된 언변, 불과 얼음을 오가는 감정 처리 등은 물론이고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오피스룩에서도 슬로운의 캐릭터가 부각되게 했다. 

오프라인 대표 이미지 - SBS연예뉴스

정치 게임으로 시작한 드라마는 중반 이후 프레임이 바뀐다. 로비스트 슬로운의 로비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다. 위기에 처한 슬로운이 자신을 향한 네거티브를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가 후반부의 또 다른 재미다.

윤리에 대한 가치 판단의 몫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 이야기도 몹시 매력적이다. 슬로운은 승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싸움에 뛰어든 이유로 '신념'을 들었지만, 그녀가 신념을 지킨 로비스트인지는 의문이다. 또한 최고의 결과가 과정의 비도덕성까지 덮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영화를 보고 나서도 '슬로운'이라는 인물을 모르겠다는 점이 아닐까.   

오랜만에 만나는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다. 이 영화에서 슬로운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무성에 가까운 캐릭터로 그려진다. 극장 남성 경쟁자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라고 뒷담화 하지만, 슬로운은 로비스트 슬로운으로 전투를 치를 뿐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악녀였고, 끝까지 악녀다. 인물에 대한 거리두기를 통해 그 인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미스 슬로운'은 지난 3월 29일 개봉해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개봉 후 8일 연속 수위를 차지했음에도 2주차에 접어들며 스크린 수가 100개 미만으로 떨어졌다. 안정된 스크린 수를 확보라는 이점 때문에 다양성 영화들이 선호하고 있는 CGV 단독 개봉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극장 확장성이 아쉽다. 

다행히도 '미스 슬로운'은 아직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ebada@sbs.co.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네이버 공유하기
  • 네이버밴드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광고영역
광고영역
광고영역
&plink=SBSNEWSAMP&cooper=GOOGLE&RAND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