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인생을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외로움을 느껴본 이라면 '그녀'(감독 스파이크 존즈)는 가슴 절절하게 와 닿을 영화다. 또 지금 외로운 당신이라면 이 영화에서 거울과 같은 캐릭터를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마천루로 둘러싸인 미래 도시,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손편지 대필작가로 살아간다. 테오도르는 타인의 감정을 대신 글로 옮겨주는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묵은 감정은 해소하지 못한 채 외로움을 벗 삼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컴퓨터 운영체계(OS) 속 인물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를 만나게 되고, 오랜 대화 속에서 깊은 교감을 나눈다.
인간과 운영체계의 사랑, 언뜻 생각하기에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것이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인간의 고독을 형상화하는 데 있어 SF스러운 설정을 선택했지만, 그 표현은 클래식 영화의 그것처럼 고전적이고 우아하다.
'그녀' 속 미래 사회는 물질적 풍요가 넘치지만, 정신적 빈곤을 앓고 있는 인간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 현대 사회의 모습을 투영한다. 더불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이 끊이지 않지만, 교감이 부재한 인스턴트식 관계가 넘쳐난다는 점 또한 닮았다.
사만다는 인간보다 인간을 더 이해하는 운영체계로 때로는 테오도르의 인생 상담원으로, 때론 영혼을 보듬는 소울 메이트 역할을 한다. 때문에 테오도르가 사만다에게 느끼는 감정은 우정인 동시에 사랑이고, 두 사람은 친구인 동시에 연인이며 나아가 가족 같은 고차원적인 관계로 발전한다.
'그녀'는 만남-사랑-갈등-이별에 이르는 남녀 사이의 연애 사이클을 미래 사회, 그것도 컴퓨터 세상 아래에서 펼쳐 보이며 흥미를 유발한다. 이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빼앗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관계를 다루면서도 그 어떤 멜로 영화보다 감정의 결을 선명하게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구처럼 사만다가 테오도르의 삶에 들어오면서 생긴 변화는 놀랍다. 사랑에 빠지기 전,후 테오도르가 바라보는 세상을 영화를 극명한 대비로 보여주는데 부정에서 긍정으로 옮겨지는 그 변화는 사랑을 경험해본 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공감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언젠가 테오도르였으며, 어느 순간 사만다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당신에게 거울 같은 영화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테오도르 역의 호아킨 피닉스는 섬세한 감정 연기로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도 또 아리게도 만든다. 사랑 앞에서의 두근거림과 희열, 이별 뒤의 불안과 좌절을 풍부한 표정과 감정연기로 생생하게 표현해냈다.
특히 "앞으로 내가 느낄 감정을 벌써 다 경험해버린 게 아닐까. 그리고 여기서부턴 쭉 새로운 느낌은 하나도 없게 되는 건 아닐까. 내가 느꼈던 그 감정에서 좀 축소된 어떤 감정들만 남는..."이라고 독백하는 그의 공허한 표정은 잊히지 않을 잔상을 남긴다.
분노가 넘치는 강렬한 외모를 가진 피닉스는 심연의 눈빛으로 인간 내면의 고독을 그 어떤 배우보다 잘 그려냈다. 이 영화는 그의 화려한 필모그래피안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배우는 타이틀롤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이다. 요한슨은 얼굴 없이 오직 목소리만으로 가상의 인물 '사만다'를 실존하는 것처럼 연기해냈다. 매력적인 목소리와 풍부한 감정으로 한 남자의 마음을 들었다 놓는다.
'존 말코비치 되기'(1999), '어댑테이션'(2002), '괴물들이 사는 나라'(2003) 등 독특한 상상력과 뛰어난 연출력으로 할리우드의 실력파 감독으로 인정받은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그녀'를 통해 독특한 영역의 멜로 영화를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기발한 아이디어에만 머물지 않고, 인간 내면의 상처와 회복이라는 메시지에 집중한 탄탄한 각본은 박수받을 만하다. 또 뮤직 비디오 출신 감독답게 미래 도시를 담은 화려하면서도 품격있는 영상도 인상적이다. 더불어 아케이드 파이어가 참여한 OST도 영상미학에 일조했다.
이 작품은 지난 3월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됐으며, 각본상을 수상했다. 청소년 관람불가, 상영시간 126분, 5월 22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