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구약성서 창세기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노아의 방주'는 과거 여러 차례 영화화됐다. 인간의 죄와 그로 야기된 종말은 영화적 소재로써 감독들의 구미를 당기기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올해 할리우드에서는 예수를 다룬 '선 오브 갓', 모세의 이야기를 그린 '엑소더스', 가인과 아벨을 소재로 한 '더 리뎀션 오브 가인' 등 성경 내용을 모티브로 한 영화가 줄을 이를 전망이다. 그 첫 번째 주자는 오는 20일 개봉하는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노아'(NOAH)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영화 '레퀴엠'(2000)으로 주목받은 뒤 '레슬러'(2008), '블랙 스완'(2010)을 통해 할리우드의 일급 감독으로 도약했다. 그는 고통과 희망, 욕망과 광기 같은 인간 내부에 도사리는 극단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독특한 연출력으로 명성을 얻었다. '노아의 방주'를 소재로 한 '노아'를 연출한다고 발표했을 때 이 영화는 단숨에 기대작으로 떠올랐다.
'노아'는 "태초엔 아무것도 없었다"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해 창세기에 기록된 천지 창조를 강렬한 비주얼로 묘사한다.
천지창조 이후 신이 만든 인간들은 타락했고, 죄를 일삼았다. 창조주는 홍수로 인류를 심판하고자 했다. 영화는 신으로부터 대홍수에 대한 예언을 받은 노아가 종말을 준비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노아(러셀 크로우)는 대홍수로부터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거대한 방주를 짓기 시작한다. 방주에 탈 수 있는 이는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의 암수 한쌍과 노아의 가족들뿐. 세상 사람들은 노아의 종말 이야기를 믿지 않고, 그가 짓는 방주를 조롱한다. 그러나 노아는 묵묵히 그날을 기다리며 신의 계시대로 모든 것을 행하기 시작한다.
감독은 13살의 나이에 '노아'에 대한 시를 써 상을 받았을 정도로 이 인물에 대한 관심이 컸다고 한다. 창세기에 몇 단락으로 기술돼 있는 노아의 방주 사건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했다. 성경에 기록된 150일간의 홍수, 방주라는 거대 세계는 감독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사건 자체가 아닌 사건 안에 놓인 노아의 내면을 파고들었다. 신의 선택을 받은 노아가 예견된 종말 앞에서 겪는 내적 갈등과 고뇌가 핵심이다. 대홍수가 닥친 후 벌어지는 세상의 혼돈, 선택받지 못한 인간들의 살기 위한 몸부림, 이를 바라보는 노아의 고뇌는 선과 악, 죽음과 탄생이라는 거시적인 질문과 맞닿아있다.
감독의 성경에 대한 해석과 가공은 관객의 호불호가 갈릴 것을 보인다. 대홍수 후 방주 안에서 일어나는 가족 간의 갈등과 그로 인한 노아의 고뇌는 대부분 감독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대홍수 당시 방주에 탄 인간은 노아와 아내 그리고 세 아들 셈, 함, 야벳과 그들의 배우자뿐이었다. 감독은 노아의 양녀이자 셈의 연인인 일라(엠마 왓슨)라는 인물을 만들어내 탄생과 죽음, 인류의 멸망과 계승에 대한 고찰을 한다.
감독은 노아의 내적 갈등을 극단으로 몰아붙이며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딜레마를 표현한다. 이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는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한 고찰이다.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전작들과는 다르게 성경이라는 장대한 서사를 영화화했다. 종교적인 거시 담론을 한 인간의 선악 갈등으로 풀어내다보니 대홍수 무렵 노아에겐 독단과 광기만이 남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노아는 신을 등지고 자유 의지로 타락한 인간들을 냉철하게 외면한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사람이 응징을당하고, 노아는 가족과도 갈등을 빚는다. 둘째 아들 함(로먼 레건)은 자신이 데려온 여인의 죽음을 외면하는 아버지에게 "모두가 죄인은 아니다. 그 중에는 (죄를 짓지 않은) 평범한 사람도 있다"고 분노를 표출한다.
또 가인의 후예이자 타락한 세상을 다스리는 우두머리 두발 가인(레이 윈스턴)이 대홍수의 참극 앞에서 "신이시여, 나도 똑같은 인간입니다"라고 절규하는 장면도 많은 생각거리를 남긴다.
사건의 앞뒤 맥락에 대한 묘사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노아의 내면에 포커스를 맞춘 이 영화는 성경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인간의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성경의 큰 축을 따른 내러티브 안에서 비종교인의 공감과 이해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는 다소 의문스럽다.
비주얼은 이견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감독은 3D, 특수효과에 의존하지 않고 노아의 방주를 사실적으로 재현해냈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복제 동물들을 실제처럼 만든 다음, CG를 통해 움직임과 호흡을 주는 2차 작업을 더했다.
방주 세트 역시 성경에 기록된 구체적인 치수에 따라 1,200평의 6층 건물 규모로 제작했다. 대홍수의 묘사는 방주 세트 주변에 8만 5,000리터의 물탱크 5개와 거대한 파이프를 설치, 특수 제작된 빗물 바를 이용해 거대한 폭우를 완성했다.
대홍수를 앞두고 각종 동물들이 방주에 올라가는 풍경과, 비와 파도가 스크린으로 쏟아질 듯한 느낌을 주는 엄청난 스케일의 홍수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또 성경에 나오는 거인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크리쳐 '감시자들'이나 노아의 조부 므두셀라(앤소니 홉킨스)에 대한 묘사는 신화적이고 판타지적인 요소를 부각해 흥미를 돋운다.
배우 중에선 단연 노아 역의 러셀 크로우가 돋보인다. '글래디에이터'에서 보여준 묵직한 카리스마와 '뷰티풀 마인드'에서 빛을 발했던 섬세한 내면 연기 모두 노아라는 한 인물에 투영한 듯 멋진 연기를 펼쳤다.
감독은 개봉 전 제작사 파라마운트 픽쳐스로부터 편집 요구를 받았지만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았고 2시간 20여 분에 이르는 긴 런닝타임을 지켜냈다.
'노아'를 바라보는 국내 관객 나아가 세계 관객의 평가가 자못 궁금하다. 종교적 관점에서의 평가와 상업 영화로서의 평가까지 말이다. 3월 20일 개봉, 상영시간 139분,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