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6일(목)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1승', 스포츠 영화의 한 방...억지웃음도 신파도 없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24.12.06 13:42 조회 6,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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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승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스포츠에서 1승은 연패의 끝이 될 수도, 연승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승부는 곧 기세, 1승의 의미는 그래서 특별하다.

영화 '1승'(감독 신연식)은 한국 영화 최초의 배구 영화다. 야구, 축구, 농구를 다룬 영화는 있었지만, 배구를 소재로 한 영화는 없었다.

'1승'은 제목처럼 단순하고 명쾌하다. 1승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목이 의미하는 건 만년 꼴찌팀 핑크스톰 선수들이 갈망하는 목표이자, 실패를 거듭해 온 김우진 감독의 인생 목표다.

영화를 연출한 신연식 감독은 '배구'를 우리네 '인생'에 비유하고, '1승'을 실패를 극복할 투지와 희망의 상징으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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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파산 직전의 배구 교실을 운영하고 있던 우진(송강호)은 어느 날 프로 여자배구단 '핑크스톰'을 떠맡게 된다. '핑크스톰'은 선수들을 팔아치우며 해체 조짐을 보였지만 재벌 2세 정원(박정민)이 구단을 인수하며 부활의 날갯짓을 편다.

정원은 핑크스톰 인수 후 파격적인 공약 하나를 내건다. 핑크스톰이 단 한 번이라도 1승을 하면 시즌권 구매자 100명에게 총상금 20억 원을 풀겠다는 것. 시즌 전부터 최약체로 평가받은 핑크스톰은 개막과 함께 연패를 거듭한다. 우진은 열패감에 젖어있던 오합지졸의 핑크스톰을 보며 파직, 파산, 이혼 등 실패만 거듭해 온 자신의 인생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단 한 번의 승리를 위해 이들을 일으켜 세워보자 결심하고 선수들을 한 명 한 명 지도하기 시작한다.

스포츠 영화에서 리얼리티는 중요하다. '그렇다 치고'가 아닌 '그럴듯한' 경기 구성과 플레이는 필수다. 그렇다고 해서 경기 연출에만 몰두하면 안 된다. 관객은 스포츠가 '소재'인 영화는 보고 싶을지언정 스포츠가 '주제'인 영화를 보고 싶어 하진 않는다. 그건 실제 스포츠가 이미 선사하고 있는 쾌감이다.

영화는 영화만의 매력이 있다. 목표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피땀 눈물, 승부의 세계가 선사하는 희로애락이 이야기, 캐릭터와 어우러져야 근사한 스포츠 영화가 탄생할 수 있다.

1승

'1승'이 추구하는 톤 앤 매너는 '머니볼'이 아닌 '슬램덩크'다. 다소 전형적일 수 있는 언더독 서사지만 좌충우돌 속 웃음과 거듭된 실패 속에서 우리네 인생을 거울처럼 마주하게 된다.

핑크스톰 선수로 분한 배우 중 얼굴이 익숙한 건 장윤주, 이민지 정도다. 그 외 대부분의 얼굴은 낯설다. 선수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며 승부의 클라이맥스까지 빠져들어야 할 관객에게 이는 꽤 큰 장벽이 될 수 있다.

각본을 쓰고 영화를 연출한 신연식 감독은 배구 선수를 연기하는 배우와 배우에 도전한 배구 선수들의 구성을 적절하게 짜 경기 장면의 리얼리티와 연기의 리얼리티를 상호 보완했다. 이로 인해 어떤 배우는 진짜 선수 같고, 어떤 선수는 진짜 배우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연식 감독은 우진의 선수 시절 포지션을 '세터'(Setter)로 설정했다. 농구로 치자면 가드, 야구로 치자면 포수와 같은 역할을 하는 포지션으로 경기 전체를 조율하는 지략가이자 야전 사령관이다. 이는 배우 송강호가 한 편의 영화에서 가지는 영향력에 대한 정확한 대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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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는 영화를 쥐락펴락하며 이야기의 온도를 바꾸는 역할까지 하는 배우다. 이번 영화에서의 활약을 배구 플레이에 비유하자면, 절묘한 토스와 허를 찌르는 스파이크로 극의 온도를 조율하고, 이야기의 리듬감까지 살려냈다.

'1승'에서는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송강호의 연기를 만날 수 있다. 특유의 따스한 인간미와 자연스러운 코미디가 영화 곳곳에서 녹아난다. 대사의 톤 조절과 어미의 미세한 변형으로 캐릭터의 희로애락을 보여주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으로 우진의 능청스러움을 표현했다.

송강호는 희비극에 모두 능한 최고의 배우지만, 희극에서 그의 인간적 매력이 유독 빛난다. 웃음을 낚기 위한 설정이나 과장 없이도 보는 사람을 미소 짓게 하는 생활 연기는 발군이다.

'1승'은 스포츠 영화로서의 장르적 매력도 놓치지 않았다. 우진의 맞춤 지도 아래 성장하는 선수들의 모습과 성장이 반영된 경기 속 선수들의 활약은 극이 전개될수록 박진감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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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트는 핑크스톰과 블랙퀸즈와의 재대결이자 시즌 마지막 경기다. 영화는 이 경기에 임하는 양 팀 감독의 전략과 전술, 선수들의 활약을 각종 이미지와 그래픽으로 상세하게 묘사하고, 이를 실행하는 경기 장면을 전면에 내세우며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을 폭발시킨다.

특히 배구 경기의 현장감을 극대화한 촬영이 돋보인다. 1분 이상 이어지는 랠리는 롱테이크 촬영을 통해 마치 현장에서 지켜보는 듯한 박진감을 선사한다.

제작진은 여자 배구의 묘미인 메가 랠리를 스크린에 생생하게 그려내기 위해 버추얼 리얼리티(VR) 기법을 이용했다. 촬영 현장에 총 7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배우들의 움직임을 다각도로 담아냈으며, 매초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랠리를 역동적인 카메라 무빙으로 담아냈다. 또한 최고 속도 시속 120km를 자랑하는 배구공의 움직임은 컴퓨터그래픽(CG)의 힘을 빌렸다.

스포츠 영화가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엔딩은 '통쾌한 역전극'이거나 '통한의 패배'다. '1승'은 엔딩은 정공법이나 엔딩에 이르는 과정은 다소 예상을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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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방식도 토너먼트(Tournament)가 아닌 리그전(League Match)이다. 넉아웃 스테이지(Knockout Stages)를 통해 끝내 우승에 이르는 비현실적 이야기를 그리지 않는다. 이들이 추구하는 건 '단 한 번의 승리'다. '고작 1승'이 아닌 건 패배가 당연했던 인생에서 '1승'은 '100승'과 같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배구 영화답게 김세진, 신진식, 이숙자, 한유미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들이 대거 나온다. 또한 영화 말미에는 여자 배구의 대명사가 된 '그 선수'가 카메오로 활약한다. 영화를 연출한 신연식 감독은 "'배구 영화에 내가 빠질 수 없지'라는 마음을 먹은 듯 흔쾌히 출연을 수락했다"라고 전했다.

'1승'은 피와 자극으로 점철된 최근 한국 장르 영화 속에서 기분 좋은 발견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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