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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헌트', 야만의 시대와 첩보 장르의 결합…이정재의 성공적 사냥

김지혜 기자 작성 2022.08.12 16:01 수정 2022.08.18 09:59 조회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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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올 여름 극장가에 출격한 네 편의 텐트폴(성수기용 대작) 영화는 모두 감독들의 남다른 야심이 드러난다. 최동훈 감독은 '외계+인'으로 도술과 SF를 결합한 한국형 어벤져스에 도전했고, 김한민 감독은 '한산:용의 출현'으로 '명량'에 이은 이순신 3부작의 연속 흥행에 도전했으며, 한재림 감독은 '비상선언'으로 한국 최초의 항공 재난 블록버스터에 도전했다. 여기에 배우 출신 감독 이정재가 '헌트'(감독 이정재, 사나이픽처스·(주)아티스트스튜디오)로 한국의 근현대사에 첩보 액션을 접목하는 도전에 나섰다.

여름 시장을 공략한 네 편의 영화 중 가장 기대치가 낮았던 '헌트'는 수준급의 완성도와 재미를 확보하며 텐트폴 4파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이 영화는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스타 배우의 연출 도전 자체가 아닌 데뷔 감독의 연출력 수준에 놀라게 될 것이다. 시간과 땀의 흔적이 결과물로 오롯이 드러난다.

1983년, 워싱턴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가 일어난다. 1급 기밀 유출로 인해 안기부가 발칵 뒤집힌 가운데 망명을 신청한 북한 고위 관리를 통해 조직 내에 숨어든 두더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안기부 해외팀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김정도'(정우성)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 이른바 '동림' 색출 작전을 시작한다. 스파이를 통해 일급 기밀사항들이 유출되어 위기를 맞게 되자 날 선 대립과 경쟁 속, 해외팀과 국내팀은 상대를 용의 선상에 올려두고 조사에 박차를 가한다.

영화 '헌트' 스틸컷

동림을 찾아내지 못하면 스파이로 지목이 될 위기의 상황에서 박평호와 김정도는 감춰진 실체에 다가서게 된다. 서로를 향한 의심과 경계 속에서 두 남자는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게 된다.

'헌트'는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긴장감 넘치는 갈등 구도로 첩보물의 재미를 극대화한다. 영화의 오프닝부터 휘몰아치는 액션신은 혼돈의 시대와 신념이 다른 두 인물의 갈등 관계까지 넌지시 보여주며 영화적 재미를 끌어올린다.

첩보물에서 시대상 혹은 정치 대립은 이야기의 중요한 백그라운드다. '헌트'는 1980년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아웅산 묘지 테러, 광주 민주화 운동, 이웅평 월남 등의 사건에 픽션을 가미에 스토리 라인을 짰다. 지금으로부터 약 40여 년 전 시대와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는 것은 동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낯설고 무겁게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헌트'는 시대와 사건을 영화의 플롯, 장르의 텐션으로 직조하는 유려함을 보인다. 1980년대이라는 먼 과거로부터 온 이야기가 낡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첩보 장르의 매력을 흥미롭고 세련되게 풀어낸 영화의 개성과 완성도 덕분이다. 실제 사건을 알고 보면 감독과 배우가 심어놓은 함의가 풍부하게 읽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장르 영화의 묘미를 만끽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TWO RIVALS, A HIDDEN TRUTH. FESTINALDECANNES LEE JUNG-JAE JUNG WOO-SUNG HUNT A FILM BY LEE JUNG-JAE

이 영화를 추동하는 주요한 두 에너지는 스릴과 스피드다. 사냥하지 않으면 사냥당하게 되는 상황에 놓인 두 인물이 서로를 스파이로 의심하면서 심리전을 펼치고, 이를 통해 텐션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또한 내외부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을 막기 위한 두 사람의 고군분투는 육탄전, 시가전, 총기 액션 등으로 이어지며 아드레날린을 분사한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의 현장과 시대의 야만성을 액션의 무대나 장르의 먹잇감으로 소비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역사와 시대에 대한 진중한 태도와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며 '신념의 대립으로 싸우지 말자'라는 주제로 연결시킨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실제 기록된 일을 기반으로 디자인한 이야기지만 정치적으로는 중립적이다. 박평호와 김정도는 목표는 같으나 목적이 달랐다. 이정재 감독은 둘의 이야기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그렸다. 각각의 이야기와 입장, 신념을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이들의 목표가 다른 방식으로 교차될 때의 비극을 관조하듯 바라본다. 특정 시선을 영화에 주입하거나 어떤 태도를 강요하지 않고 판단이나 감상을 보는 이의 몫으로 남겨뒀다.

다만 박평호와 김정도의 대립 구도는 긴장감이 넘치도록 잘 그린 반면 인물 각각의 내면을 보다 입체적으로 묘사하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쉽다.

영화 '헌트' 스틸컷 이정재

결과적으로 '헌트'는 이정재 감독의 집념과 프로덕션의 승리다. 이정재는 과거 출연을 제안받았던 작품을 직접 연출하기로 결정한 후 무려 4년 여의 시간을 쏟아 시나리오를 직접 고쳤다. 30년의 연기 경력은 연출 도전에도 큰 자양분이 됐다. 자신이 쓴 시나리오에 대한 명확한 그림과 비전이 있었기에 작은 디테일조차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디테일이 중요한 심리전과 스케일이 중요한 액션 연출에 있어서 섬세함과 과감함을 놓치지 않았다. 이정재의 야심은 뚝심으로 완성됐다. 누가 이 영화를 데뷔작으로 보겠는가.

이정재의 뒤를 든든히 받친 스태프들은 충무로의 일급 자원들이다. 제작자 한재덕 사나이 픽처스 대표를 필두로 촬영 이모개, 미술 박일현, 음악 조영욱, 무술 허명행 등 이른바 장인들이 이정재의 비전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이정재와 정우성의 23년 만의 연기 재회도 성공적이다. 같은 해에 데뷔해 30년간 '청춘 스타'를 상징하는 배우로 사랑받아 온 두 사람은 '태양은 없다' 이후 두 번째로 작품에서 만났다. 지향은 같지만 방식은 다른 박평호와 김정도처럼 이정재와 정우성은 같은 듯 다른 연기 방식을 추구하는 배우들이다. 작품 밖에서의 두 사람의 관계성이 영화 안에서도 보이지 않게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절묘한 앙상블을 펼친다.

시대를 재현한 룩도 탁월하다. 의상부터 세트까지 완벽하게 마련된 공간 안에서 배우들은 각자의 롤을 제대로 수행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워싱턴 장면은 여의도에서, 일본 장면은 부산에서, 태국 장면은 강원도 고성에서 촬영했지만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의 마술적 영화 미술을 보여준다.

헌트

카메오의 활용도 인상적이다. 이 영화에서는 황정민, 이성민, 주지훈, 김남길, 정만식, 박성웅 등 제작사 사나이 픽처스의 애배우들을 보너스처럼 만나볼 수 있다. 톱스타 카메오가 연쇄적으로 등장할 경우 발생하는 반작용 즉, 극의 집중도가 흐트러진다는 우려를 예리하게 피해 갔다. 이 중 절반의 배우들이 한 시퀀스에 등장해 본연의 역할을 다한 후 조용히 퇴장한다. 대부분 대사도 없다. 극의 집중도를 흐트러트리지 않으면서도 눈요깃감으로 소비되지도 않았다.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카메오다.

황정민의 경우 5분 내외의 출연이지만, 조연에 이름을 올려도 될 만큼 임팩트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이웅평을 모델로 만들어진 캐릭터는 헤어스타일, 패션 등의 소화는 물론이고, 북한 사투리를 제 언어처럼 소화한 연기력도 탁월하다. 이 배우가 얼마나 캐릭터 연기에 능수능란한 인물인지 짧은 등장과 활약에서도 알 수 있다.

'헌트'는 최근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이 투자배급을 맡았다. 상반기에는 '범죄도시2'의 공동배급으로 대박을 쳤으며, 하반기에는 '헌트'로 텐트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수년간 100억 원 미만의 중형 사이즈 영화로 손해보지 않는 장사를 해왔던 이 회사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230억 대 대작 '헌트'를 자신있게 내놓았다. 앞서 세 편의 한국 영화 대작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린 상황에서 후발주자인 '헌트'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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