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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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발신제한', 조우진의 가치증명

김지혜 기자 작성 2021.06.24 10:08 수정 2021.06.24 14:18 조회 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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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발신제한'(감독 김창주)은 달리는 자동차 한 대와 끊임없이 울리는 핸드폰 하나로 속도감과 긴장감을 유발하는 영화다.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 참신한 이야기와 치밀한 연출도 중요하지만 명확한 콘셉트, 지향이 확실한 연출이 뒷받침된다면 영화적 재미를 충분히 획득할 수 있다. '발신제한'은 후자다.

'발신제한'은 은행센터장 성규(조우진)가 아이들을 등교시키던 출근길 아침, '차에서 내리는 순간 폭탄이 터진다'는 의문의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를 받으면서 위기에 빠지게 되는 도심추격스릴러. 스페인 영화 '레트리뷰션:응징의 날'을 리메이크했다. '최종병기 활', '더 테러 라이브', '끝까지 간다', '설국열차', '마녀' 등의 편집을 담당했던 김창주의 감독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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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2년 만에 처음으로 단독 주연으로 나선 조우진은 영화를 이끈다. 단순히 크레디트 가장 윗자리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의 의미뿐만 아니라 영화의 원톱 주연으로 94분 간의 휘몰아치는 전개의 중심에서 관객의 심장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긴장감을 유발한다.

워커홀릭 남편이자 아이들에게 소홀한 아버지인 성규는 출근길에 협박범의 전화 한 통에 자신과 아이들의 생명을 건 질주를 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이 놓인다. 차에는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설치해 놓은 폭탄이 있고, 누구라도 내린다면 폭탄은 터지게 된다.

극 초반, 다소 인물을 동떨어져서 봤다면 사건이 터지고 나서부터는 관객도 주인공과 한 차에 올라탄 동반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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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자동차처럼 중반부까지 앞으로 내달린다. 배경 설명이나 인물에 대한 전사(前史)는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카메라는 사면초가 상황에 처한 인물을 바짝 쫓아간다. 한 차례의 폭발음과 함께 성규는 물론 관객까지 이 상황이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분초를 다투는 위급한 상황 안에 빠져들게 된다.

다만 중반 이후 드라마에 치중하면서 영화의 매력이 다소 떨어지는 느낌을 준다. 이 자리는 성규의 부성애와 범인의 사연으로 채워진다.

혐박범의 범죄 동기는 스릴러에서 중요한 서사가 되지만, 이것에 너무 함몰되면 장르적 매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발신제한' 역시 마찬가지다. 범인의 사연이 영화의 반전 요소로 임팩트를 주기에는 뻔하게 느껴지는 감이 있는 데다 다소 교훈 조으로 흐른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생명을 위협하는 협박범과 전화 통화로 대화를 이어간다는 설정 탓에 '더 테러 라이브'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 기시감이 영화의 재미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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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보다는 장점이 돋보이는 영화다. 무엇보다 오락 영화로서 준수한 재미를 자랑한다. 충무로를 대표하는 '편집 장인'이 만든 영화답게 속도감 있으면서도 텐션의 강도를 잘 조절한 듯한 편집이 돋보인다. 또한 부산 도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카체이싱 장면 역시 규모와 완성도 면에서 인상적이다.

'발신제한'은 조우진의, 조우진에 의한, 조우진을 위한 영화다. 2015년 영화 '내부자들'의 강렬한 악역 캐릭터로 대중의 눈도장을 찍은 후 변화무쌍한 연기 변신으로 자가 성장을 해온 이뤄낸 배우다. 이번 영화에서는 상업 영화의 '주인공'으로서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차갑고 냉철한 은행 센터장의 모습으로 화면에 첫 등장한 조우진은 차에 타는 순간부터 감정의 극한을 오가는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인다. 성규의 상황 타임라인에 따른 짜증, 분노, 두려움, 후회, 간절함 등 표정 연기의 레이어와 감정 연기의 세심함이 감탄을 자아낸다. 또한 조우진과 앙상블을 이룬 딸 역할의 이재인 역시 섬세한 연기로 관객의 감정적 몰입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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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발견은 지창욱이다. 스릴러 영화에서 익히 봐온 범인의 이미지, 목소리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발신제한'은 CJ 기획제작 3팀의 2021년 첫 번째 작품이다. 또한 충무로에서 '죽은 영화도 편집으로 살려낸다'는 평가를 받은 '편집 장인' 김창주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에 도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 충무로의 '믿을맨' 조우진의 첫 단독 주연작이라는 기대감이 더해졌다.

만든 이들에게 '도전과 시작'이라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발신제한'은 완벽하진 않아도 '첫 발'이라는 점에서 합격점을 줄만한 출발이다. 한국 영화 평균 제작비가 급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순제작비의 60억 원 대로 볼만한 상업 영화를 만들어냈다.

특히, 코로나19 장기화 속에서 상반기 한국 영화가 처참한 성적을 거뒀던 것을 생각하면 '발신제한'은 관객의 발길을 움직이게 할 것으로 보인다. 오랜만에 시계를 쳐다보지 않게 되는 한국 영화가 나타났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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